조례안 안 만드나 못 만드나…1건도 발의 안 한 의원 ‘16%’

[조례안으로 본 민선 8기 지방의회 ⑤]풀민지DB, 광역의회 17곳 조례안 전수분석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홍세미 신재은 기자 2023.05.03 09:1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국가의 주요 정책은 국회 입법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지방 행정에서 조례안도 마찬가지다.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상당수 생활 정책들이 조례안 형태로 만들어져 시행된다. 지방 자치의 근간을 이루는 지방의회의 핵심 기능이기도 하다. 입법국정전문지 머니투데이 <더리더>가 국내 첫 지방의회 종합 정보사이트 ‘풀민지DB’ 오픈을 기념해 출범 10개월을 맞은 민선 8기 지방의회의 조례안 처리 실적과 의미, 개선점 등을 모색한다.
▲지난해 열린 6.1 지방선거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머니투데이 '더리더'가 국내 첫 지방의회 종합 정보사이트인 풀뿌리민주주의 지방의회 데이터베이스(풀민지DB)와 각 지방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작년 7월 1일부터 올해 4월 17일까지 발의된 조례안 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 출범 10개월째를 맞는 민선 8기 광역시·도의회 의원 중 16%인 142명은 조례안을 1건도 발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민선 7기의 경우 4년 임기 중 단 한 건의 조례도 발의하지 않은 의원은 184명(6.2%)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2018년부터 2022년 1월까지 지방의회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을 분석한 결과, 광역의원의 연평균 조례안 발의 건수는 2.99건이었다. 한 건의 조례안도 발의하지 않았지만 이들 의원들 중 상당수는 이번 민선 8기에 다시 당선됐다. 경실련이 지난해 8월 ‘조례발의 연평균 1건 미만 전직 의원 당선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의회에서 단 한 건도 조례안을 발의하지 않은 의원 중 104명(59.4%)이 당선됐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할 수 있는 조례안 발의 등 정책활동과 무관하게 당선되는 의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면서 당선 후에도 또다시 조례안 발의가 뒷전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조민지 사무국장은 “지방의회에 대해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있다”며 “책임 있는 의정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조례안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는 추세다. 17개 시도광역시의회 중 11곳의 의회(강원, 경기, 광주, 대전, 부산, 세종, 울산, 전남, 제주, 충남, 경남)는 조례 입법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상남도 조례 입법평가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허동원 경남도의회 의원은 “지방자치 활성화로 조례 등 자치 법규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자치법규를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례 입법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찾기 힘든 조례안’…“한 번에 볼 수 있는 풀민지DB 기대감”

그동안 지방의회는 개별법에 근거해 의회 정보를 자율 공개했다. 머니투데이 <더리더>가 각 지방의회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의원 현황 △회의 내용 △의안 정보 등 각각 다른 기준과 양식으로 운영됐다.

의회 의정정보가 취합된 사이트인 국회·지방의회 의정정보시스템에서는 243개 지방의회 중 175개 의회 자료만 확인할 수 있다. 의정정보시스템에 정보제공을 하지 않는 의회는 68곳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시행에 따라 전국의 지방의회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내고장알리미’ 사이트에 지방의회 정보를 공개했다. 그러나 1년 단위로 정보가 갱신돼 실시간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243개 지방의회 현황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순은 전 자치분권 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따라 지방의회의 권한과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며 “주민에 대한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조항도 개정안에 포함된 만큼 의정활동 공개 의무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이 지방의회의 활동을 관찰 또는 감시할 때 통합 의정활동 통합 공개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민지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 역시 “243개 의회 현황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면 시민 누구나 의회별 현황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보다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보공개를 통해 주민이 직접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머니투데이가 한국언론재단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4월 초 오픈한 풀민지DB(풀뿌리민주주의 지방의회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풀민지DB는 민간 영역에서 제작한 첫 지방의회 종합 정보사이트로 지방의회 의원들의 인명 정보, 조례안 정보, 지방의회 관련 뉴스, 지방의원들과 유권자들 간의 쌍방향 게시판 기능 등을 모두 담고 있다.

박환희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머니투데이가 만든 풀민지DB와 같은 사이트가 생겨 지방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반갑다”면서 “유권자들이 풀민지를 통해 지방의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창휘 경기도의회 의원은 “언론에 보도되는 지방의원 관련 뉴스를 보면 부정적인 소식이 많은데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의원들도 많이 있다”면서 “풀민지DB가 지방의원과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충북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2월 1일 '지방의회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국회와 정부에 촉구했다./사진=뉴시스


◇일하는 지방의회 되려면…“지방의회법 제정” 필수

지난해 1월 13일부터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돼 의회의 권한과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 사무기구의 인사권이 지방자치단체장에서 지방의회 의장으로 이관됐고 정책지원 전문인력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여전히 재정 권한과 조직 자율권 등이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다. 또 정책지원관의 경우 2인당 1인으로, 의정활동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개정안 시행으로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과 정책 지원 전문인력이 도입돼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반쪽짜리 개정안’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지방의회 의원은 진정한 의미의 ‘자치분권’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의회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의회에서는 조직권과 예산편성권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지방의회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의회법이 제정되면 지방의회는 조직권과 예산편성권 등을 확보할 수 있다. 권혁열 강원도의회 의장은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정부를 견제·감시하기 위해 국회에 국회법이 있는 것처럼 지방의회에도 실질적으로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충북 시·군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난 2월 1일 제천에서 정례모임을 갖고 ‘지방의회 독립성 강화와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지방의회법 제정 촉구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인천광역시의회는 인천의 실정에 맞는 자치분권 방안을 마련하고 지방의회법 제정 촉구 및 조직·예산권 확보를 위한 추진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의회기본법 제정 TF’를 구성했다. TF는 의장을 단장으로 자치분권발전 TF와 실무지원반, 입법·법률 자문단으로 꾸려져 입법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법률안을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박선춘 씨지인사이트 대표(전 국회사무처 기획조정실장)는 “정책 활동 지원을 위한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의원들 스스로가 조례안 등 정책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성과 적극성을 키워야 한다”면서 “아울러 우리 국민이나 언론도 지방의회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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