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추 국가 이미지 만들어갈 것”

[the Leader 초대석] 김기환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2022.11.01 09:2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 김기환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복잡해진 국제 상황 속에서 국격을 더 높이기 위해 KF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가야 하는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꿨다. 직접적인 교류가 멈춘 시기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공공외교의 플랫폼이다. 공공외교의 의미를 찾아봤다. ‘외국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 문화, 예술, 가치, 정책, 비전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증진시키고, 우리의 국가이미지와 국가브랜드를 높여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높이는 외교활동’. 외국 국민들과 직접 만나야 하는데, 기회가 현저히 줄었다. 게다가 국제교류기여금 재원 수입도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다.

외교 환경 또한 만만치 않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안보 환경은 엄중해지고, 미중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장기화되고, 경기 위축의 우려도 커졌다. ‘한류’라는 버팀목이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자리를 찾는 게 버거운 상황이다.

잔뜩 위축된 시간을 지나온 KF를 이끌어 가게 된 김기환 이사장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취임 한 달여를 맞았다.

▲ 김기환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이 9월 19일 취임했다./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김 이사장은 “우리가 지금 직면한 국제관계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틀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이제는 경제안보의 측면을 바로 보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글로벌 가치를 공유하며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인권, 기후변화 등 인류 공통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가 위기만 가져온 건 아니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국제적인 인적 교류가 중단되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새로운 장을 열었다. 바로 디지털 공공외교다. 많은 사업이 취소·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 실행돼 효과가 떨어지는 상황이 잇따라 발생했다. 재단은 사업의 잇따른 ‘온라인화’를 겪으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기존의 오프라인 사업들을 온라인화시켰다. 이와 별개로 일부 사업은 처음부터 디지털콘텐츠로 기획했다. 지난 8월에는 디지털 공공외교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정식 오픈해 호응을 얻고 있다.

▲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공식 유튜브 채널 '7707'

김기환 이사장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콘텐츠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재단이 발간한 ‘지구촌한류현황’을 보면, 지난해 한류 팬이 전년보다 29% 늘었다. 김 이사장은 “해외에서 K-pop,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한국이 안전하고 깨끗하며 시민의식이 높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며 “아울러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의료·방역 수준이 높고 디지털화된 선진 사회로 알려진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일본인 대학생 21명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강의를 듣고, 대전과 부여에서 백제 문화 탐방에 나섰다. 서울에서 열린 한일 축제 한마당에도 참여해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한 참가자는 “친절한 한국인의 정에 흠뻑 빠져 일주일을 보냈다”고 소감을 밝혔고, 또 다른 참가자는 “한일 관계가 좋아지려면 민간 교류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 이번에 경험한 한국을 주변에 알려 양국의 우호 관계 구축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일 대학생 교류 사업’이다. 1971년 한일 각료회담 합의로 시작된 사업은 올해로 51주년을 맞았다. 코로나로 2년간 중단됐다 이번에 재개됐다. 김 이사장은 “한일 양국 국민 간의 감정은 나쁘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양국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KF의 공공외교를 통한 관계 지속에 특히 기대를 많이 걸었다”고 전했다. “재단은 오히려 한일 관계가 악화되던 기간 동안 두 나라 사이 통로로 남아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것.

▲ KF(Korea Foundation, 한국국제교류재단)가 한일 대학생 교류 사업 대면 행사를 올해 재개했다. 9월 23일-29일까지 일본 대학생 대표단 23명(대학생 21명, 외무성 및 일한문화교류기금 인솔자 각 1명)이 한국을 방문했다./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 10월 19일 한국국제교류재단 청렴실천 및 갑진근절 서약식./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재단의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해 해외 공무원 연수 프로그램들은 당장 ‘성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 ‘지한파’를 늘려가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8월 주한 헝가리대사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초머 모세(Dr. Csoma Mozes) 전 대사는 KF 장학생 출신의 첫 주한 외교 대사로 주목을 받았다. 초머 전 대사는 2000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장학생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은 이후 2008년 최초로 헝가리 국립대학에 한국학 학사과정 설치, 2013년 한국학 석사과정 설치, 그리고 2017년 한국학 박사과정 설치 과정을 함께하면서 한국학 연구를 계속해왔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지난 2016년 ‘공공외교법’이 제정되면서 국내 유일한 공공외교 추진기관으로 지정됐다. 재단은 이미 1991년 설립된 이후 한국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우호적인 국제 민간 네트워크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다각적인 사업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전 세계 18개국 100개 대학에 한국학 교수직 156석을 설치했고, 43개국의 해외 싱크탱크가 진행하는 한국 연구를 764건 지원했다. 또, 10개국의 해외박물관 28곳에 한국실을 설치하기도 했다. 1만2000여 명의 해외 인사가 재단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고, 쌍방향 문화교류는 1330여 건에 달한다. 해외 사무소는 8곳으로, 워싱턴 D.C., LA, 모스크바, 베를린, 베이징, 도쿄, 하노이, 자카르타 등에 있다.

김 이사장은 취임과 함께 “재단의 해외 거점을 늘리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뉴욕, 두바이, 토론토, 시드니 등 글로벌 허브 지역에서의 현지 밀착형 공공외교 활동을 발굴하고 시행해나가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거점을 신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뉴욕은 ‘글로벌 캐피털’의 중심인 만큼 그 역할이 막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총영사로서의 경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다음은 김기환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취임 일성으로 ‘글로벌 중추국가 실현을 위한 공공외교’ 방침을 밝혔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G7 플러스’ 국가로 인식되고 있어 그 위상에 걸맞은 역할과 기여를 기대받고 있다. KF도 글로벌 공급망 위기 대응, 기후변화 대응,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인권 등 글로벌 도전과제에 대한 기여를 고려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 제6차 공공외교위원회에서 이러한 기조하에 확정한 ‘제2차 공공외교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비전과 중점과제를 KF 중장기 전략에 반영하고, 이를 KF 사업을 통해 구체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 10월 5일 '공공외교 랩소디 - 월드 인 하모니'가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개최됐다./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코로나로 인해 재단의 변화가 크지 않았나
▶코로나 팬데믹은 디지털 콘텐츠의 중요성을 느끼고 디지털 공공외교를 본격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수많은 기존 오프라인 사업들이 ‘온라인화(digitalize)’됐고, 이와 별개로 처음부터 디지털콘텐츠로 기획된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재단 대표 유튜브에 업로드됐는데, 오리지널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호응이 매우 높다. 2021년부터는 디지털 공공외교에 본격 돌입했고, 올 8월에는 당초부터 ‘디지털콘텐츠’로서 기획된 공공외교 콘텐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새 유튜브 채널 ‘7707’을 정식 오픈하기도 했다.
초청 대상자를 한국에 직접 모시지 못해 다른 방향을 강구했다가 좋은 반향을 얻은 ‘미 평화봉사단 재방한 초청 사업’도 재미있는 예다. 1966~1981년 한국에 파견됐던 미국 평화봉사단원을 한국에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하는 사업인데, 코로나19로 입국이 막히자, KF는 초청 대신 방역물품과 한국 식품, 기념품을 넣은 키트를 과거 평화봉사단 550여 명에게 우편으로 전달했다. 이를 받은 봉사단원들이 감동해 수많은 편지로 그간의 사연을 KF에 전해왔고, 이 이벤트를 뉴욕타임즈 등 여러 매체가 주목하기도 했다.

-외교 환경이 녹록지가 않다. 어떻게 보나
▶미·중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의 경쟁과 국제 규제가 대두되고 이에 대응한 경제안보 외교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국제 제재와 혼란, 중국의 제3기 시진핑 정부 출범과 이념적 성향이 강화되는 분위기여서, 정치, 경제, 교류 측면에서 국제관계의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국제관계가 재편되고 있고, 이제는 안보의 경제적 측면, ‘경제 안보’를 바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글로벌 공급망 이슈를 이해하고, 우리의 첨단 과학 기술과 첨단 산업의 발전을 지원해나가야 한다.

-임기 내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사업은
▶임팩트와 공감하는 스토리가 있는 사업들을 잘 기획하고 시행해 우리 입이 아닌 주요 외신을 통해 한국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지는 홍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인권보호, 기후변화 대응, 첨단 과학기술 선도 등 글로벌 도전 과제들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그동안 재단의 활동이 동남아시아 쪽에서 활발했는데
▶동남아시아 지역은 우방국이고, 한류의 팬덤이 소재한 지역으로서 활발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KF는 부산에 ‘아세안문화원’을 운영하고 있고, 아세안문화원은 2014년 12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후속 성과사업으로 외교부가 건립을 추진하고 KF가 운영을 하고 있다. KF는 일방적으로 한국을 알리기보다는 ‘쌍방향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세안문화원은 우리 국민에게 아세안을 소개하는 주요 쌍방향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 들어 베트남에서 반한 감정의 수위가 높아져 우려가 높다
▶한류는 국가마다 그 양상이 모두 다르다. 베트남의 경우 동남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한국 드라마가 소개되고 인기를 끌었는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 따르면 한류 부정 인식 공감률이 높게 드러나고 있어 주목되는 국가다. 베트남의 반한 감정이 부각된 것은 근래의 일이지만, 실상 현지에서는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학자들이 반한 감정의 문제를 지적해온 지 오래됐다. 이는 주로 가정의 생계를 여성이 책임지는 베트남에서 대졸 여성들이 한국으로 결혼 이민을 많이 떠나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나 추측할 수 있다. 또, 한국에서 종종 일어나는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문제는 베트남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도되는 경향이 있다. 베트남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고, 한·베트남 관계가 심화되는 데 양 국민들의 호감과 상호 인식이 중요하며,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일 대학생 교류 사업’이 재개됐다
▶한일 대학생 교류 사업이 중단된 것은 팬데믹 때문이었는데, 올해 일본 대학생들의 한국 방문이 지난 9월 말에 이루어지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본 대학생들은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가면서, 한국인들이 정이 많고 솔직해서 좋다며, 일본 미디어나 정치인이 반일, 혐한을 말하지만 대다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전하기도 했다. 재단은 한일관계가 악화됐던 기간 동안 한일 간 통로로 남아 부단히 노력해왔다. 한일 정·재계, 언론, 학계 전문가들이 기탄 없이 대화하는 한일포럼은 한일관계의 부침에 관계없이 매년 멈추지 않고 시행해왔고, 양국 한일관계 전문가들이 모이는 한일관계 콘퍼런스, 상호 우호적 감정을 가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 차세대 정책전문가 네트워크와 일반 시민들이 모여 양국 사회의 미래를 논하는 한일 시민 100인 미래대화 등이 대표적이다.

▲ 김기환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사진=한국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의 ‘트렌드’라고 할지, 변화되는 모습들이 있나
▶물론이다. 공공외교의 흐름에 대해 학자들마다 다른 의견도 많은데, 공공외교의 목적, 대상, 방법 등이 시대에 따라,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발전돼왔다. 그러나 결국 자국이 처한 환경과 위치는 어떠한지 성찰하고, 자국이 가지고 있는 매력 자산이 무엇인지 찾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외교의 측면에서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나라들은 자신의 강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휘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공격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며 신뢰할 수 있는 공공외교’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타국과 비교하고 경쟁 또는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재력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등의 방법은 공공외교의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공공외교는 상대방에게 한국의 매력을 보여주고, 각 개인들과 국제사회에 공감과 기여를 하고, 그럼으로써 한국에 우호적인 마음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관계를 조성해나가고자 한다.

-재단이 제주에 자리를 잡은 지 4년째, 업무 패턴에도 변화가 있었을 텐데
▶제주 본부와 KF글로벌센터가 있는 서울사무소, 부산에 위치한 KF아세안문화원으로, 지금 재단은 크게 삼원화돼 있다. 국내뿐 아니라 8개 해외사무소들과도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따라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볼 수 있으면서 보안에 취약하지 않은 ICT 지원과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상당히 잘 구축돼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갑자기 재택근무가 필요해졌을 때 재단이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그러나 제주 이전이 재단 업무 수행에 문제를 야기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재단은 기본적으로 국내외 출장이 많고 해외 유수 대학이나 박물관 등에서의 방문도 잦은 기관인데. 서귀포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 데 보통 5시간이 소요돼 시간과 비용 소모뿐 아니라 시의적절한 대응이 어려운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외교부에서 통상전문가로 오래 근무했다. 정부의 역할과 공공외교 주체로서의 역할이 다른데
▶물론 전통적인 정무외교·통상교섭과 공공외교는 주안점이 상이하지만, 연결돼 있다고 본다. 워싱턴D.C.에서 주미공사에 이어 뉴욕총영사로 부임해 활동하는 동안의 경험과 네트워크는 우리 재단의 정책, 문화, 지식 공공외교를 추진해나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관련 분야 경험과 지식을 살려 우리 경제안보에 도움이 되는 공공외교 활동도 발굴하여 시행해나갈 예정이다.

PROFILE

1957년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
제17회 외무고시 합격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 석사
2012여수국제박람회유치지원 대책반장
자유무역협정정책국심의관·다자통상국장
주미국공사
주뉴욕총영사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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