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보는 세상]죽음 내몬 ‘반의사 불벌’ 스토킹처벌법

재신고 사건 구속수사 2.7%뿐…처벌 강화 등 보완 목소리 커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2022.10.04 10:3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 9월 14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시 중구의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역내 여자 화장실 앞에는 흰 국화꽃이 소복이 쌓여 있고, 벽에는 색색의 포스트잇이 겹겹이 붙었다. 포스트잇에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자가 남자를 거절해도, 이별해도 스토킹과 살인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 ‘막을 수 있었는데, 막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등의 글이 쓰여 있다. 신당역 출구 앞에도 조화와 메모가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잡는다. 스토킹 끝에 희생된 여성 역무원 A씨를 추모하는 공간이다. SNS에는 ‘#신당역’을 단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지난 9월 14일 밤 신당역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20대 여성 역무원 A씨가 전 직장동료 전주환(31)에게 살해됐다. A씨는 2019년부터 3년간 전 씨의 스토킹에 시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A씨와 전 씨는 입사 동기로, 전 씨는 A씨에게 만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다 급기야 A씨를 불법촬영해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가 2021년 10월 전 씨를 불법 촬영과 촬영물 이용 협박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은 전 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전 씨는 올해 2월까지 A씨에게 합의를 요구하며 협박하는 등 스토킹을 이어왔다. A씨는 1월 전 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추가 고소했지만, 이때도 전 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합의에 실패하고 지난 8월 검찰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은 전 씨는 지난달 15일 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선고 전날인 14일, 전 씨는 흉기를 갖고 머리에 일회용 위생모를 쓴 채 피해자가 순찰을 도는 화장실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범행했다.

▲ 9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역 앞에서 열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희생자를 위한 추모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 시행 1년 되는 ‘스토킹 처벌법’

오는 21일이면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된다. 스토킹 처벌법은 지난해 3월 24일 국회를 통과했고, 같은 해 10월 21일 시행됐다. 법이 발의된 건 1999년이었다. 무려 22년이 지나고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스토킹 범죄 처벌과 그 절차에 대한 특례,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스토킹 범죄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범행한 경우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량이 가중된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전, 스토킹 처벌은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쳤다.

경찰은 진행 중인 스토킹 행위에 대해 신고를 받으면 즉시 현장에 나가 응급조치를 하거나 긴급응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응급조치는 스토킹 행위 제지, 향후 스토킹 행위 중단 통보, 스토킹 행위가 반복된 경우 처벌 경고, 스토킹 행위자와 피해자 등의 분리와 범죄 수사, 피해자 등에 대한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요청의 절차 등 안내, 스토킹 피해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의 피해자 등 인도 등이다.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고 스토킹 범죄의 예방을 위해 긴급을 필요로 하는 경우 이뤄지며, 스토킹 행위의 상대방이나 거주지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스토킹 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이 해당한다.

▲ 진보당 당원들이 9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출구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과 관련한 '여성혐오젠더폭력STOP 진보당 전 당원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스토킹 처벌법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법 시행 이후 스토킹 사건 4배 이상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관련 사건은 크게 늘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검찰에는 한 달 평균 136건의 스토킹 사건이 들어왔다. 이후 올해 1분기 486건, 2분기 649건으로 늘었다. 열 달 만에 4.7배 증가한 수치다. 스토킹 행위 신고 후 재발 우려가 있는 경우 행해지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도 꾸준히 이뤄졌는데, 법 시행 이후부터 올해 7월까지 검찰의 긴급응급조치는 2725건, 잠정조치는 4638건이었다.

경찰에 접수된 신고 건수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형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 4151건이던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는 2021년 1만4509건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접수된 신고는 1만6571건으로, 이미 작년 전체 신고 건수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긴급응급조치는 1850건, 잠정조치는 3873건이었다.

신고로 이어지지 않은 스토킹 피해도 많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여성 100명 중 2.5명이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었다. 특히, 조사 당시(2021년 9월 22일~11월 30일) ‘지난 1년간 스토킹 피해를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이 0.2%로 나타났다. 피해는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고, 가해자는 과거 사귀었거나(14.7%) 학교·직장의 구성원(13.5%), 친구(11.6%) 등 아는 사람의 비율이 전혀 모르는 사람(32.8%)보다 높았다. 스토킹 피해를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수사를 의뢰한 경우는 18.6%에 그쳤다.

▲ 이원석(오른쪽) 검찰총장이 9월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전국 스토킹전담검사 긴급 화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처벌법 시행에도 반복되는 비극

비슷한 사건은 지난 2월에도, 지난해 12월과 11월에도 발생했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에서는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가해자는 여성에 대해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경찰은 가해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반려됐다.

지난해 11월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과 가족이 여성의 전 남자친구 김병찬(35)에게 살해됐다. 당시 피해자는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로 두 차례나 긴급 호출했지만, 경찰이 12분 만에야 현장에 도착해 비극을 막지 못했다.

한 달 뒤에는 이석준(25)이 전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숨지게 하고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렸다. 이때도 전 여자친구는 신변 보호 대상자로 등록돼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지만, 가족에 대한 별도 조치는 없었다.

각계에서는 반복되는 비극에 분노하는 성명을 내놨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정부가 평범한 여성의 삶을 망가트리고 일상을 뒤흔들어 두려움 속에 생활하게 만드는 스토킹 범죄를 막을 근본적인 방지책을 조속히 만들라”고 촉구했다. 진보당은 “스토킹 범죄자를 피해자로부터 격리하고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해야 한다”며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하면 징역형으로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여성을 성적 객체로 여기는 여성혐오가 먼지처럼 떠다니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며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6년 동안 우리가 배우고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경찰 스토킹 범죄 대응 협의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시스

◇ 스토킹 처벌법 보완 움직임

잇따르는 스토킹 범죄에 스토킹 처벌법 보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제도 보완의 방향은 크게 3가지. △구속 수사 확대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처벌 강화 등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은희(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7772건이 스토킹 재신고 사례였다. 이 중 구속 수사가 이뤄진 건 211건으로 2.7%에 그쳤다. 조 의원은 “신변 보호를 받던 피해자가 재신고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라며 “더 적극적인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 7월까지 경찰은 4016건에 대해 가해자를 검찰로 송치했는데, 이 가운데 구속 송치는 238건에 그쳤다.

스토킹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범죄 중 다수는 계획 범죄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논문 ‘친밀한 파트너 살인의 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 범행을 계획한 비율은 63.5%에 달했다. 따라서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를 철저히 분리하고 특히 구속영장 발부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혁 부경대 법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보복 범죄나 피해자 위해와 관련되는 내용을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최근 스토킹 범죄는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라는 지시를 일선 청에 전달했다.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도 검토되고 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 조항은 법 제정 당시에는 스토킹 행위를 폭넓게 규정해 과도한 처벌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포함됐다. 하지만, 신당역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피해자는 스토킹 피해 신고에 따른 보복 위험에 노출될 뿐 아니라 합의를 강요당하며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기 어렵다. 결국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인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건 직후 법무부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을 지시했고, 법무부는 정부 입법을 통해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1년간 이 법이 적용된 기소된 피고인들은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처벌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법이 온라인 공간에서의 스토킹 범죄도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9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안 처리 촉구 성명'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스토킹 관련법 16건 국회 계류

지난해 3월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지난달 27일 현재 스토킹 범죄 관련 법안은 국회에 16건이 계류돼 있다. 이 중 14건이 구속 요건 완화, 반의사불벌 조항 삭제 등이 담긴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이다.

다른 2건은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제정안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부가 지난 4월 각각 발의했지만, 그동안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다 지난달 16일에야 국회 여가위에 상정됐다. 정부가 제출한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 소관 부처를 여성가족부로 지정하고, 경찰의 피해자 신변보호조치와 취업.법률상담 당의 지원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스토킹 범죄 ‘피해자’의 범위를 이미 피해를 입은 경우뿐 아니라 예방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으로 넓혔다. 앞서 스토킹 처벌법에서 피해자의 범위를 너무 좁게 규정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직장 내에서 스토킹 신고.피해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스토킹으로 인한 학업 중단 피해가 없도록 전학 등 취학 지원의 근거도 뒀다. 아울러 지원시설 관계자 등이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반하거나 스토킹 행위자가 현장 조사를 거부•기피하는 등 업무 수행을 방해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가위는 정부안과 국회안 두 가지를 병합 심사해 결론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 피해자 보호 실효성 높여야

스토킹 처벌법 안에도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이 규정됐지만, 한계가 여러 차례 드러났다. 이에 따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안 심사 과정에서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보호 조치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자료 ‘해외사례로 알아보는 스토킹 피해 방지 방안’을 보면, 미국은 1990년대부터 50개 주와 워싱턴 D.C., 5개의 미국령 행정 관할, 그리고 연방법 차원에서 스토킹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입법했다. 1994년 여성폭력방지법(VAWA)이 제정되고 1995년 여성폭력 담당 기관(The Office on Violence Against Women, OVW)이 설치되면서, 스토킹 등 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 집행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 기관 및 제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영국은 1997년 ‘괴롭힘방지법’을 도입해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했다. 이후 온라인 스토킹 등 새로운 형태의 스토킹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수차례 법을 제·개정해왔다. 현재 영국에서는 스토킹에 대해 최대 징역 10년형을 선고한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강력해 스토킹 혐의가 입증되기 전에도 경찰이 피해자에 대한 임시 보호명령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고, 가해자가 명령을 어기면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2000년 ‘스토커 규제법’을 도입했고, 2017년에는 스토킹을 비친고죄로 바꾸며 온라인 스토킹 등 범위를 넓혔다. 피해자 보호 조치를 위반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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