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자식사랑 ‘셰어런팅’을 지워라

[법으로 보는 세상] ‘자녀 모르게 올린’ 게시물 범죄 무방비, ‘잊힐 권리’ 강화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2022.09.02 09:2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 2016년 10월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시에 사는 대런 랜들(당시 13세)은 자신의 부모를 상대로 약 3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부모가 자신의 어린 시절 ‘굴욕 사진’을 찍어 10년 넘게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다. 아기 얼굴에 초콜릿을 묻혀놓고 사진을 찍는다든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아기의 맨몸을 찍어 온라인에 올려놨다는 것. 대런은 “부모가 찍어 올린 사진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이 법적으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모를 고소했다”고 밝혔다.

# 지난 5월 배우 A씨가 5살 아들과의 여행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팬들로부터 우려를 샀다. A씨는 한 호텔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는데, 아이가 옷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팬들은 해당 사진을 언급하며 “제발 지우거나 아이 몸을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이를 볼 경우 당황스러워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 댓글도 달리자 A씨는 사진을 삭제했다.

성장기록을 남기거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자녀의 사진이나 일상을 SNS에 올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금 ‘카카오톡’을 실행해보면, 가까운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이 아이들 사진인 걸 쉽게 볼 수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인터넷카페 등 다양한 SNS에서 많은 아이들의 일상을 쉽게 접하게 된다.



부모 86% ‘셰어런팅’…범죄 노출 우려도


▲ 부모의 SNS 이용 시 자녀의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인식 및 경험/자료=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서 만 11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의 86.1%는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55.4%는 SNS에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 일상을 올릴 때 자녀와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자녀의 동의 없이 게시물을 올린다는 얘기다. SNS에 자녀의 개인정보를 올린 후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례는 13.2%로 집계됐는데, 개인정보 도용이나, 자녀에 대한 불쾌한 댓글 등이 그런 예다.

자녀의 사진이나 일상 등 상세한 정보를 담은 포스팅을 게시하는 것을 셰어런팅(Sharenting)이라고 한다. 양육(parenting) 과정을 온라인상에 공유(share)한다는 의미다. 가족, 친지, 가까운 지인들과 아이의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기에 SNS는 더없이 편리하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정보는 불특정 다수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복제되고, 링크를 타고 흘러다닐 수 있다. 아동의 개인정보통제권을 박탈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 중 부모의 SNS가 아동 상대 범죄의 타깃이 된 사례도 있다.

영국의 다국적 금융서비스 기업인 바클레이는 “2030년, 갓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일어날 신분 도용의 3분의 2는 셰어런팅에 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뉴욕주립대학교는 미국 FBI 자료를 인용해 부모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의 77%는 ‘친구 공개’로 돼 있었고, 아동 유괴 사건 범인의 76%가 부모의 지인이었다고 밝혔다.



‘디지털 네이티브’ 아동·청소년 보호 장치 미비


▲ ‘셰어런팅 캠페인-엄마 아빠, 나는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사진=세이브더칠드런 유튜브 영상 캡처

부모가 인터넷상에 올린 자녀들의 사진이나 영상 외에도 온라인 게시물에 포함된 개인정보로 고통을 호소하는 아동·청소년도 늘고 있다. 과거 성착취물 등 디지털 성범죄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일상의 영역으로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온라인에서 수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생성하고 제공한 정보도 늘어간다. 이렇게 쌓인 정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또래 집단 내에서 온라인상 이뤄지는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일상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이어져 범죄 노출의 위험이 크지만, 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게 현실이다.



해외선 아동 권리 폭넓게 논의



해외의 경우 ‘셰어런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자녀의 개인정보통제권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부모가 자녀 사진을 본인 동의 없이 SNS에 올리는 경우 부모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한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자녀 사진을 본인 동의 없이 SNS에 게재하면 사생활 침해 혐의를 적용한다. 벌금이나 징역형에도 처할 수 있다. 베트남은 지난 2018년 부모가 자녀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본인 허락 없이 SNS에 올리면 처벌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독일의 아동법은 신생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부모가 동의하고 결정했더라도 나중에 아이가 커서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일이라면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본다. 유니세프 노르웨이위원회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해 부모들이 자녀 사진을 공유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셰어런팅’ 부작용의 핵심은 ‘잊힐 권리’


▲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7월 14일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사진=뉴시스

‘셰어런팅’에 앞서 짚어볼 건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다. ‘잊힐 권리’란 정보 주체가 온라인상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 통제권리를 뜻한다. ‘알 권리’에 가려 개념조차 생소했던 게 불과 최근이다. 2012년 유럽연합은 데이터보호규칙을 제안하며 17조에 잊힐 권리를 정해뒀다. 2010년 스페인의 변호사 마리오 곤잘레스가 구글과 신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영향을 미쳤다. 곤잘레스는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간 내용을 담은 옛날 기사가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며 소송을 냈는데, 2014년 재판부는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으니 구글은 검색 결과를 지우라”고 결정한 것이다. ‘잊힐 권리’를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로 남았다. 이후 두 달 동안 유럽에서만 8만 건 이상의 포털 게시글 삭제 요청이 몰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서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서 본인의 게시물임을 입증할 수 있으면 게시판 관리자에게 접근배제 조치나 게시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게시물은 검색 목록에서 사라진다.

잊힐 권리를 어디까지, 어떻게 보장해야 할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거리다. 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자는 쪽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공개할 권리가 있다면 폐기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소, 이메일, 쇼핑 내역 등 민감한 정보가 인터넷에 여과 없이 유통되기도 하는 만큼 자기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줘야 한다는 논리다. 잊힐 권리만 과도하게 중시하면 공공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때론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공적 논의를 위한 정보 제공’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수 있는데, 이것저것 지우기 시작하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잊힐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럽과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잊힐 권리를 입법을 통해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제3자에 의한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의 권리침해에 이르지 않는 공개된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삭제 청구가 어렵고, 이 경우 민법상 금지청구권의 해석을 통해 삭제가 가능하지만 법원의 삭제 결정에 이르는 절차가 복잡하다. 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잊힐 권리를 명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내년부터 아동·청소년 ‘잊힐 권리’ 시범 사업


▲ 최영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이 8월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관계부처 합동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내년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잊힐 권리’ 시범 사업에 나선다. 당사자가 신청하면 본인이나 타인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과 동영상, 개인정보가 담긴 글 등을 지워준다. 부모가 SNS에 게시한 아기 때 사진이나 친구가 동의 없이 등록한 내 영상도 삭제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직접 올린 콘텐츠도 보다 쉽게 지우거나 숨김 처리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7월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잊힐 권리’ 시범 사업 대상은 온라인 게시물에 포함돼 있는 개인정보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아동과 청소년이다. 구체적인 신청 요건은 올 하반기 중 확정된다. 정부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신청자 본인이 게시한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의 게시물과 보호자가 SNS에 올린 자녀의 영유아 시절 사진, 친구가 동의 없이 게시한 동영상 등에 대해 삭제해줄 방침이다. 다만 범죄 수사와 법원 재판 등이 진행되고 있거나 법적 의무 준수를 위해 삭제가 어려운 경우는 제외된다.

시범 사업을 통해 정부는 성인들도 아동·청소년 시기의 온라인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을지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2년간 검토를 거쳐 2024년에는 관련법 제정에 나선다. ‘잊힐 권리’를 법으로 명시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아동·청소년을 시작으로 ‘잊힐 권리’의 법제화에 시동을 거는 셈이다. ‘셰어런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제재보다는 부모의 경각심을 높이는 교육을 제공할 방침이다.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인정 의미”…“디지털 환경 사생활 존중 논의 확대해야”


▲ 제100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린 5월 4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어린이가 ‘아동권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 고우현 선임매니저는 정부의 이번 계획에 대해 “유엔아동권리협약비준 국가로서의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아동과 청소년을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권리주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또, “아동·청소년들에게 잊힐 권리를 인정해줬다는 점, 법적대리인이 부재하거나 부적절한 경우 제도 개선을 통해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동 개인에 대한 게시물 삭제와 인식 제고 교육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한 접근이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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