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문화벨트로 탈바꿈”...정문헌 구청장이 그리는 종로구

[the Leader 초대석]창신동은 미래 도시로, 탑골공원은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릴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대담 서동욱 편집장, 정리 이하정 기자 2022.09.02 09:2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 정문헌 종로구청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종로의 길이 언제 뚫리고 언제 넓혀지고 언제 포장됐는지… 다 알죠. 제가 보는 종로는 많이 답답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와 달라진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된 거죠.” 제17·19대, 두 번의 국회의원과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내고, 고향 종로의 행정수장에 나선 이유를 정문헌 구청장은 이렇게 밝혔다. 정 구청장이 바라본 종로구의 현주소. “살기 좋으면 인구가 빠지지 않았겠죠.”

서울 종로구는 그동안 ‘정치 1번지’였다. 청와대가 자리한 까닭이었다. 선거마다 민심의 척도가 됐고, 유수의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진 곳이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나와 용산에 새 둥지를 틀었다. 청와대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도심 한가운데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재를 가진 공간을 찾아보긴 힘들다. 대한민국 국정의 역사가 담겼고, 이제 시민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공간. 하지만 과거의 위상은 더 이상 없다. 종로가 갖는 상징성도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할 때다. 정문헌 구청장이 구상하는 종로의 ‘신성장동력’을 들여다보자.

◇ “역사문화 1번지 변함없어”…‘문화뉴딜’로

“청와대(대통령실)가 빠져나갔지만 여기가 역사문화 1번지라는 건 변할 수 없습니다. 그걸 잘 엮어 활성화시켜서 종로가 다시금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으로 작동하게 만들어야죠.” 정 구청장은 21세기는 문화사업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서울시 문화재의 70%가 모여 있는 종로는 새로운 시대에서도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화뉴딜’이라는 개념을 꺼냈다. 종로 특유의 방대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자산들이 시너지를 발휘해 종로 전체가 마치 거대한 공연장, 명품박물관 같은 모습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그렇게 되면 상권까지 활성화돼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종로의 서촌과 북촌이 이어지게 됐다. 700년 만이다. 평창동 미술가에서 출발해 청와대를 지나 경복궁·삼청동 - 송현동 갤러리타운 - 인사동 화랑가 - 창덕궁·창경궁·종묘 - 대학로 공연예술거리까지, 하나의 거대한 문화벨트가 만들어진다. 정 구청장이 그리는 그림은 이 벨트를 걸어 다니는 것이다. 청와대를 관람했다면 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인근의 평창동 미술가를 둘러보는 식이다. 한 곳 관람이나 관광으로 그치지 않고 다음 지점의 문화자원을 향유할 수 있게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각종 문화재와 미술관뿐 아니라 패션, 주얼리 등 ‘꺼리’는 충분합니다. 이 자원들을 어떻게 연계해 ‘흘러다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마치 유럽에서 도보여행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종로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문화벨트는 종로구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인근 명동을 비롯해 사대문 안은 누구나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 구청장은 덧붙였다.

정문헌 구청장이 염두에 두고 있는 특히 중요한 한 가지는 탑골공원 정비다. 취임 두 달, 보람된 일이 있냐는 질문에 정 구청장은 “아직”이라며 “탑골공원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릴 수 있다면 보람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 탑골공원은 과거 원각사 터. 문화재청과 협의해 현재 원각사 탑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각을 없애 제대로 된 탑을 볼 수 있게 하고, 공원의 담장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구청장은 “원각사 탑을 둘러싼 보호각은 설치 당시에는 탑의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으로 설치된 것인 만큼 지금 보면 탑이 쇠사슬에 묶인 형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호각 철거와 그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 정문헌 종로구청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 창신동은 변할까…“공항터미널도”

종로의 새로운 모습이 궁금해지는 곳, 낙산 아래 창신동 일대다. 1961년 설립된 평화시장의 영향으로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산업 종사자들의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이후에는 평화시장 일대 의류 생산 공장들이 창신동 주거지로 이전·확산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 생산기지가 됐다. 대로는 물론 비좁은 골목길 사이로 오토바이가 수없이 들고 난다.
정 구청장은 3만3000평에 가까운 창신동 남측 구역 상업지구를 단일 계획으로 묶어 복합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창신동 미래도시 프로젝트’. 정 구청장은 “강남구의 코엑스(COEX)와 비슷한 규모가 될 것”이라며 “코엑스가 컨벤션센터 중심이라면 창신동에는 호텔, 극장, 아쿠아리움 외에도 현재 자리한 패션업체나 완구거리의 상점들이 특화돼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또, 시민들이 공항으로 가기 전 미리 체크인을 할 수 있도록 도심공항터미널도 설치할 계획이다.
미래도시 프로젝트에서 특히 염두에 두는 것은 향후 변화될 생활상이다. 드론이 상시 날아다니고, 재택근무가 점차 확산되는 시대에 맞춰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건물을 높이 올려 서울의 ‘랜드마크’로 키우고, 대신 1만 평의 녹지를 확보하고 5000평의 연못을 조성해 ‘미래도시’와 ‘에코시티’를 동시에 구현하겠다는 것.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 구청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세운상가를 100층으로 짓겠다고 밝혔다”면서 “규제가 완화되면 창신동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표는 “임기 내 철거.”

◇ ‘돌아오라 종로로’…시작은 교육플랫폼

현재 종로구의 인구는 14만3000여 명. 추이를 보면, 2012년 16만4000명에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구정의 동력인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정 구청장은 주거환경과 교육여건 개선을 강조했다. 특히 “교육여건 개선은 ‘사람이 돌아오는 종로’를 위한 필수요건”이라며 “비대면 기술을 바탕으로 교육플랫폼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모토는 ‘서울에서 배우고(서울 Learn) 종로에서 자라는(종로 Grow-Up) 미래교육’이다. 서울시가 구축한 ‘서울런’ 콘텐츠와 연계해 종로구 안에 있는 성균관대, 상명대 등의 대학생과 청소년들을 연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멘토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업성취도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기업과 연계한 창의교육 채널도 운영할 방침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험생들은 종로의 학원가를 찾았다. 하지만 이제 그 명성은 찾기 힘들다. 많은 수험생이 대치동으로, 목동으로 학군지를 찾아 이동한다. 정 구청장은 교육플랫폼을 구상한 배경에 대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변한 세태를 이야기했다. “‘꼭 회사를 가야 하나, 꼭 학교를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세상이 빨리 온 것”이라며 “유소년 시기 꼭 이뤄야 할 공동체 교육과 별개로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야 한다”며 “플랫폼이 정착되고 나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나갈지 또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문헌 구청장이 지난 7월 4일 쪽방촌과 경로당을 현장방문했다./사진=종로구청

▲ 경량 안전모 착용 시연에 나선 정 구청장. /사진=종로구청

◇ “나는 행정 전문가”…주민과 직접 ‘회의’도

종로구는 정 구청장 취임 후 ‘직소 민원실’을 운영하고 있다. 정 구청장이 주민들과 직접 화상회의에 나선다.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민원에 대해 구민 이야기를 듣고, 회의 후 10일 안에 민원답변서를 보낸다. 신속한 해결이 어려운 사안은 민원인과 담당부서 관계자들이 대면회의를 추가로 갖는다. 정 구청장은 “정책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회의는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로 정례화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취임 후에는 한 달에 걸쳐 17개 동주민센터를 순회했다. 청운효자동에서는 청와대 개방에 따른 생활환경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창신동에선 낙후된 생활기반시설에 대한 민원이 쏟아졌다.
재선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관으로서의 경험과 종로구의 행정을 책임지는 지금은 뭐가 다를까. 정문헌 구청장은 “일하는 데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없다”며 “유기체 전체를 챙기다가 부분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고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달라진 건 출근시간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 정문헌 종로구청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다음은 정문헌 구청장과의 일문일답.

-종로구청장의 소속 정당이 12년 만에 바뀌었다. 주민들이 선택한 이유는
▶전임 구청장이 구민들의 선택으로 3기 연임을 마친 데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 어떤 행정이든 10년 넘는 세월을 지속하다 보면 그에 따른 부작용과 폐단이 쌓이게 마련이고 또한 변하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적응이 절실해지는 법이다. 또, 12년 세월 동안 종로의 인구가 특히 크게 감소하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종로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모두 보낸 저를 종로구민들이 선택한 건 우리 종로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면서 미래의 발전을 이끌어달라는 당부로 받아들인다.

-전통적으로 종로는 ‘정치1번지’였다. 현재의 종로를 어떻게 진단하나
▶종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던 시절의 대한민국을 이끈 ‘1번지’지만, 오랜 세월 청와대와 중앙청 등 국가 최고통치기관들이 자리하면서 구민들에게 많은 재산권의 제약이 부과됐다. 삶의 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인구감소가 가장 빠른 곳 가운데 하나가 됐다. 청와대 이전을 계기로 이제 주민들의 행복을 보장하고 서울 700년 역사 그 자체로서 종로의 본모습을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고 본다.

-‘정치1번지’ 틀을 깨겠다고 밝혔는데
▶청와대가 이전했다고 해도 종로는 지금도 많은 정부기관과 외국공관들이 자리하는 정치중심지다. 그러나 단지 ‘정치1번지’뿐만 아니라 ‘문화1번지’ ‘행복1번지’로서 종로의 새로운 모습을 구축해나가야 할 때이기도 하다.

-구상하고 있는 ‘문화뉴딜’이란
▶종로 특유의 방대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자산들이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종로 전체가 마치 거대한 공연장과 명품박물관 같은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때마침 청와대 공간이 개방되면서 우리 종로의 서촌과 북촌 두 한옥마을이 700년 만에 이어지게 됐다. 평창동 미술가에서 출발해 청와대, 경복궁, 삼청동과 송현동 갤러리타운, 인사동 화랑가, 창덕궁·창경궁·종묘, 대학로 공연예술거리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벨트로 묶이게 된다. 유서 깊은 문화자산을 기반으로 많은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도록 제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단지 예전의 명성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예술문화 활동들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관련 경제산업활동에도 큰 시너지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뉴딜은 문예부문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새로운 성장엔진을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 개방은 문화벨트의 완성뿐만 아니라 그동안 종로구민들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던 규제의 해소도 의미하는 만큼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데 따른 환경보존도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

-종로에서 특히 정비가 필요한 곳이 창신동 일대인데
▶현재 창신동 일대는 여러 개로 나누어진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있지만, 구청에서는 이를 단일한 계획으로 통합해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거대 단일 개발로 통합되는 만큼 기대효과도 크고 새로운 첨단 산업업종의 유치도 가능할 것이다. 이곳에 강남의 코엑스와 견줄 만한 첨단 초대형 미래도시를 만들어 우리 종로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서울의 새로운 성장기지를 마련하겠다.

-종로에는 옛 유적이 많다. 대규모 개발에 어려움이 있을 텐데
▶문화재 보호는 종로구 자체가 서울의 역사인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대도시 행정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종로에서 문화재 보호는 너무나 당연하다. 문화재관련 법에서 요구하는 보호규정을 철저히 준수할 뿐 아니라 관내 존재하는 문화재들이 지역의 상징으로 부각될 수 있도록 주변 경관에 대한 검토도 철저히 하겠다.

-종로를 강남 이상의 교육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교육여건 개선은 종로구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본요소이고, 또한 ‘사람들이 돌아오는 종로’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급속도로 발달한 비대면 기술을 바탕으로 종로구의 교육플랫폼을 만들어 관내 청소년들이 굳이 먼 곳으로 찾아다닐 필요 없이 내 책상에서 바로 훌륭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할 생각이다.

-화상회의로 주민들과 민원회의를 하고 있는데, 해보니 어떤가
▶정책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시간만 허용된다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민원사항에 대해서는 줌을 통하는 등의 비대면 방식으로 제가 구민들 말씀을 직접 경청하는 직소민원실을 운영하고 있고, 이 회의로부터 10일 이내에 민원답변서를 보내드린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때는 민원인과 담당자들이 또 한 차례 최종대면 소통회의를 갖도록 하고 있다.

-이전 구정에서 이어받을 사업은
▶전임 집행부가 종로구민들의 선택으로 3기 연임을 하신 바탕에는 구민들의 공감을 이끈 정책들이 있다. 이런 정책들은 당연히 민선 8기에서도 더욱 발전시켜나가되, 상황변화에 따른 세부방침의 수정도 함께 해나갈 예정이다. 일례로 부암·평창·구기·통인·삼청동 일대 ‘그림 마을’ 특화사업은 새 집행부의 문화뉴딜 정책으로 더욱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훌륭한 정책이다. 삼청동의 이웃 동네인 송현동에는 곧 이건희기증관이 들어서 또 하나의 미술허브 역할이 기대된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반영해서 기존의 그림마을 특화사업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재선 국회의원이었고,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다. 기초단체장인 종로구청장에 출마한 건 의외의 선택이었는데
▶제 고향의 행정을 책임지게 된 데 대해 2004년 초선 국회의원으로 등원할 때와 또 다른 깊은 사명감을 느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일하면서 국정의 흐름에 대해 큰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종로구정이 국정 및 시정과 공조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가 나서 자랄 때 종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끈 1번지였는데, 제가 행정을 맡게 된 종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을 선도하는 ‘문화1번지’ 역할을 이룩해내도록 하겠다.

정문헌 종로구청장

1966년 9월 6일 서울 종로 출생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제17대 국회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
대통령실 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
제19대 국회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
국민의힘 서울시당 종로구 당협위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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