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는 ‘그날 그 수술실’을 알고 싶다

“설치 찬성” 압도적 여론에도 의료계 반발, 야당 신중론 부딪혀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21.07.02 10:3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서울대학병원 수술장면/사진=머니투데이DB

# 2014년 12월 28일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 의료진이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실에서 생일파티를 하며 케이크를 먹고 가슴 보형물을 들고 장난치는 사진이 SNS에 올라와 파문이 일었다. 병원 측은 “환자가 수술 뒤 회복 중인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비난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강남구 보건소는 문제의 성형외과에 대해 진상 조사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의료법상 마땅한 사법처리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진료실과 수술실의 환경, 위생상태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 입장에서도 의료진의 일탈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 2021년 6월 27일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광주 서구 A척추전문병원의 의사와 간호조무사 6명을 대리수술을 한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입건해 소환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병원에서는 2018년 특정 시기에 간호조무사들로 채용된 이들이 수술실에서 의사 대신 수술을 한 내부 고발이 제기됐다.
내부고발자는 경찰에 대리 수술 정황이 찍힌 동영상 10여 개와 수기로 작성한 수술 기록지 수백 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동영상에는 간호조무사로 추정되는 이들이 수술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피부 봉합을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찍혔다.

수술실 내 CCTV 설치 문제는 6년간 이어지고 있다. 2015년 19대 국회에서 최동익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관련법을 처음으로 발의했으나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도 10여 개의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다.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안규백·김남국·신현영 의원이 제출한 3건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안규백·김남국 의원의 법안은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고 신 의원 안은 병원 자율에 맡긴다는 내용이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계의 반대 때문이다. 의료계의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영상 유출 시에 환자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가 침해된다는 점이다.

대한의학회는 “극히 소수의 무자격자에 의한 수술 및 대리수술 등이 발생하는 사건의 대응책으로 이들을 식별하기 위해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 대다수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환자와 소비자 단체들은 의료사고와 대리수술, 성범죄 등 수술실 내 부적절한 행위를 방지하고 환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CCTV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술실은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아 범죄나 의료사고 발생 시 관련정보 확보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 10명 중 8명은 “CCTV 설치 찬성”


수술실 CCTV 설치 찬반 조사 결과/이미지=리얼미터 제공
6월 21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YTN 의뢰로 6월 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8.9%로 나타났다. 반대는 17.4%,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3.6%였다.
지역 연령대, 이념 성향, 지지 정당 등과 관계없이 찬성 응답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자세한 조사 개요 및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CCTV 설치법에 여야 간 평행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를 위한 의료피해 당사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수술실 CCTV 설치법 처리가 시급하다”며 야당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CCTV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지사는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 “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환자의 인권과 알권리를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수술실 CCTV 설치가 의사 고유의 권한 침해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며 반대하는 것은 배타적 특권의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좀 더 신중히 접근하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CCTV를 선악 구도로 가르면 안 된다”며 “환자 안전과 더불어 의료 행위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입법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종합적으로 검토해 진료하는 의사와 치료받는 환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고 했다.



김부겸, “정부는 신중할 수밖에”


김부겸 국무총리가 6월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스1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 “정부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이날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술실 내부에 CCTV 설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찬성 의견이 79%로 압도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느냐”며 “이제 병원 노동자들도 CCTV 설치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대리수술이라든가 여러 사건사고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수술은 고도의 전문적인 과정으로 의료인들의 부담이 없겠느냐 하는 문제가 있어 수술실 입구부터 CCTV를 설치해 대리수술과 같은 문제부터 풀어보고자 한다”고 답했다.

이어 “수술실 내부를 바라보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조심스러워 한다”며 “블랙박스 등을 설치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있으나 녹화는 조심스럽고 환자의 프라이버시 등도 있어 정부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행정부를 이끌어가는 수장이자 중대본부장으로서 백신 접종이나 코로나19 대응에서 의료계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 의료계가 반대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데 대한 부담 때문에 신중론 입장을 밝힌 것이라 본다”고 해석했다.



의협, "CCTV, 대리수술 문제 해결하는 근본대책 될 수 없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달 17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광주A병원 대리수술 의혹 관련자들을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엄중한 징계를 요구했으며, 동일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협은 수술실 내 CCTV 설치·운영만으로 대리수술 및 의료사고 증거 보존 등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기에 수술실 내 CCTV 설치·운영 의무화 입법추진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의협은 "대리수술 방지책 등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국회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개정추진을 즉각 보류하고, 이해 당사자인 의로계, 정부, 정치권,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구성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정책추진 여부를 결정해 나갈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한, 의협은 지난달 21일 세계의사회(WMA)가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에 따르면 WMA는 "CCTV 의무 설치 법안은 과거 의료인들의 비윤리적, 범죄적 행위 때문에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CCTV 의무 설치는 불신을 지속해서 증명하는 것이며 치료·회복 과정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WMA는 "의무적인 감시는 환자의 참여를 억제할 것이고 중환자 치료에 있어 많은 외과 의사들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이런 조치는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선택권을 줄이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수술실 CCTV법’ 법안소위 문턱 못 넘어…7월 국회로


6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된 의료기기법 일부개정안 등을 논의하는 법안소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료법 일부개정안)이 또다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법안소위에는 민주당 김남국·안규백·신현영 의원 안이 계류 중이다.

김남국 의원안은 수술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장에게 CCTV 설치 의무를 부여하고, 환자·보호자 요청 시 수술 등 의료행위 촬영·보존을 의무화했다. 안규백 의원안은 수술실 CCTV를 설치하도록 하고 환자·보호자 요청 시 수술 등을 촬영·녹음할 수 있도록 했다.

신현영 의원 안은 수술실 등 의료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에 CCTV 설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설치는 자율에 맡겼다. 또한, CCTV를 설치한 의료기관장에게 촬영에 따른 환자·보호자·의료기관 종사자의 동의 요건을 명시하고, 영상정보 유출 시 벌칙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소위의 쟁점은 △CCTV를 수술실 내부와 외부 중 어디에 설치하는지 △촬영 시 환자 또는 보호자의 동의만 받을 것인지 또는 의료진의 동의도 받을 것인지 △촬영 영상 열람은 어디까지 허용할지 △설치 의료기관의 범위는 어떻게 정할지 등이었다.

앞서 열렸던 법안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수술실 입구 CCTV 설치 의무화까지는 합의를 했다. 하지만 수술실 내 CCTV 설치와 설치 의무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의료계 반대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의료법 개정안 의결은 7월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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