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국회 통과한 스토킹법, 악마의 집착 멈출까

[법으로 보는 세상] ‘개인간 애정 문제’로 취급하다 피해키워…법 실효성 여전히 ‘미흡’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21.04.16 15:2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사진=이미지 투데이 제공

2019년 4월 17일 경남 진주에서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안인득(당시 42세)으로 사건 당시 그는 조현병 환자로 알려졌다. '조현병 범죄'로 회자됐지만 배경에는 스토킹 범죄가 자리잡고 있었다.    

안인득은 범행 전 반년 넘게 윗집에 사는 최모양(19)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녔다. 집 앞에 오물을 뿌리고 그 가족에게도 욕설과 위협을 일삼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양의 가족은 수차례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그를 풀어줬다.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안인득은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들을 흉기로 살해했다. 최양도 범행 당일 그에게 희생되고 말았다. 안인득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고 최종심은 교화 가능성 등의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노원구 세 모녀’를 잔혹하게 연쇄 살해한 피의자 김태현(25)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사진=뉴스1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3월 25일 오후 9시8분쯤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들어가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김태현(25)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그는 체포 이틀 전인 23일 오후 5시30분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김태현은 숨진 큰딸을 지난해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알게됐다. 올해 1월초 강북구 모처에서 만나 게임을 했고 1월 중순에도 한 차례 더 만나 게임을 했다. 같은달 23일에는 다른 지인 2명까지 4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큰딸과 김태현은 말다툼을 했고, 이후 큰딸이 연락하지 말라며 김태현의 수신을 차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김태현이 앙심을 품고 살인을 결심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조사 결과 김태현이 큰딸을 스토킹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됐다. 큰딸은 평소 지인들에게 "김태현으로 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노원 세모녀 사건'의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고 난 후, 국회는 3월 24일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포안'(스토킹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없이 지속해서 따라다니거나 괴롭히는 등의 스토킹을 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다. 

◇22년 만에 국회 통과한 '스토킹 처벌법'

3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사진=뉴스1
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 것은 22년 만이다. 첫 법안은 지난 1999년 15대 국회에서 당시 김병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이후 올해 2월까지 총 21회 발의됐지만, 매번 국민의 사적 생활을 간섭한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에 통과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은 스토킹 범죄 가해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만약 흉기 등을 소지할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량이 늘어난다. 이는 15대 국회에서 처음 법안이 발의된 이래 22년 만의 법 제정이다. 그동안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돼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료 또는 과료에 그쳤다.

이 법안은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지·직장·학교 등 일상생활 공간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통신매체를 이용해 연락하기 △물건을 보내거나 훼손을 통해 공포심 조장하기 등을 스토킹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스토킹 시작 단계에서부터 경찰이 개입해 스토킹 행위를 제지하거나 처벌 경고와 같은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거나 통신매체를 이용해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긴급조치도 가능하다. 만약 경찰의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이와함께 검사는 스토킹 범죄 재발 가능성이 있다면 법원에 스토킹 행위자를 구치소에 유치하는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 그동안 너무나 가벼웠던 스토킹 처벌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018년 2772건, 2019년 5468건, 2020년 4515건으로 집계됐다. 신고 건수 대비 처벌 비율은 각각 19.6%, 10.6%, 10.8%로 높지 않다. 그나마 처벌된 건수도 스토킹처벌법이 없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금고형 같은 미미한 처벌법이 대부분이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41호는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면회나 교제 요구,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나 과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수사당국은 스토킹 신고가 접수되면 통상적으로 이 규정을 적용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해왔다.

◇ "피해자 보호하기엔 여전히 부족" 지적 이어져

이번에 통과된 스토킹처벌법 법안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포함됐다. 또한 신림동 원룸 강간 미수 사건처럼 일회성 행위의 경우에는 스토킹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스토킹 범죄는 친밀성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관계 중단을 요구할 때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가 가해자 협박에 의해, 또는 재범 염려로 처벌을 원하지 않을 수 있는데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넣은 것은 피해자에게 또다시 부담과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법안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없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불안감을 주는 행위'라는 조건이 다 들어가야 스토킹 행위에 성립된다고 보는 것"이라며 "스토킹 가해자 대부분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주장하는 만큼 포괄적인 규정을 통해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반의사불벌' 조항에 대해 "이 조항이 남아있어 피해자를 협박해서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젠더 폭력에 대해 좀 더 엄벌을 취하자는 취지로 이 조항은 반드시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정 교수/사진=머니투데이 DB
여성가족부는 "피해자 보호조치 관련 연구용역이 여성정책 연구원에서 진행 중이며, 오는 8월께 완료될 것"이라며 "연구용역이 완료되기 전에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사업운영 지침을 개정해 피해자 보호에 차질이 없도록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해외는 ‘스토킹 범죄’ 처벌 어떨까 

스토킹을 경범죄로 다뤘던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이미 스토킹을 범죄화하고 형사처벌을 강화한지 꽤 오래됐다.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캐나다, 호주, 영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상당수 국가들이 스토킹 처벌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한 최초의 국가다. 캘리포니아주는 1989년 스토킹 피해자들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발생하자 1990년부터 스토킹 금지법을 제정하고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까지 미국 전체 50개 주가 스토킹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입법화했다. 가장 처벌이 강력한 미시간주의 경우 피해자가 미성년자고 가해자의 연령이 5세 이상 연상인 경우 중죄로 보고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만5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영국 역시 1997년 ‘괴롭힘 방지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피해자를 놀라게 하거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행위가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이를 괴롭힘으로 본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행위의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이 내려진다.

독일은 2004년부터 논의가 시작돼 2007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SNS 등을 이용하는 경우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며,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만일 피해자가 스토킹으로 인해 사망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다.

일본은 2000년 스토킹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따라다니기 등 행위’ 보다 정도가 심한 ‘스토킹 행위’를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 6개월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2013년에는 기존 규정만으로는 사이버 스토킹을 처벌할 수 없다는 비판에 따라 ‘원치하는 이메일을 계속 보내는 행위’도 스토킹에 포함시켰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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