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자치]주민이 직접 만든 '우리 동네 도서관'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 주민이 사업 기획부터 운영까지…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1.04.09 10:0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내 손으로 우리 동네를 바꿀 수 있을까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양한 정책을 펼칩니다. 내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책인데도 주민이 직접 참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나 주민이 정책을 설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주민참여제도입니다. 조직의 구성과 운영 방법 등은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산도 주어집니다. 2억 원에서 많게는 200억 원까지 지역마다 다른데 모두 우리가 내는 ‘세금’입니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주민참여제도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바뀐 사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서울시 은평구입니다. <편집자주>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구산동 도서관 마을.주민참여예산으로 진행된 대표적인 사업이다.사진은 (왼쪽)구산동 도서관마을 외관, (오른쪽)도서관 내부의 모습/사진=더리더




◇주민이 사업 기획부터 운영까지…구산동 도서관 마을


서울시 은평구 연서로13길에 '마을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 있다. 구산동 '도서관 마을'이다. 구산역에서 9분정도 거리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다. 기존 주택 8채를 리모델링하고, 골목을 그대로 복도로 활용했다. 이 도서관은 주민들이 사업 기획부터 예산 확보와 시설 운영까지 전 단계에 참여한, 대표적인 주민참여 사업으로 꼽힌다.

2006년 5월 주민들이 옛 구산동주민센터를 도서관으로 만들어달라고 서명운동을 한 게 시작이었다. 열흘만에 2000명이 넘는 주민이 서명에 동참했다. 구산동에 노숙인 요양시설과 장애인학교는 있지만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 문화시설은 부족해 불만을 느낀 주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주민들이 모여 은평구에 도서관 설립을 제안했지만 구에서는 건설비가 부족한 이유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2012년 서울시주민참여 제도에 신청해 '더불어 만들어가는 책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19억원을 확보했다. 이듬해 '꿈을 찾는 만화도서관'으로 5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국비 10억, 시비 35억 등 도서관 사업에 들어갈 예산을 주민이 직접 따낸 것이다. 2014년에는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협동조합을 발족, 도서관을 운영할 위탁법인도 만들어 주민이 직접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2015년에 개관했다. 구산동의 도서관마을은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있다. 전 층에 걸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열린 공간으로 설계됐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서가와 열람실이 배치돼있다. 지상 1층에는 미디어 자료실이, 2층에는 어린이 자료실이, 3층에는 청소년 자료실과 청소년 힐링캠프가, 4층에는 마을 자료실이, 5층은 도서관 사무실이 있다. 일일 방문객은 1000명 이상으로 은평구 주민이 자주 찾는 마을 도서관이 됐다.
▲은평구의 모두를 위한 안전한 보행로 사업은 주민이 직접 제안해 진행됐다. 신사동고개 사거리에서 3호선 녹번역까지 2.2km길이로 뻗어있다./사진=더리더



◇노인·장애인·임산부…‘모두를 위한 안전한 보행로’


은평구는 서울시에서 장애인이 세 번째로 많이 사는 자치구다. 2016년 기준 서울시 등록 장애인구 중 2만 1000명이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다.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턱이나 계단이 누군가에게는 밖에 나오기 싫게 할 만큼 큰 불편을 준다. 은평구가 보행 환경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은평구 주민들은 보행을 방해하는 턱을 없애고 시각장애인 보도블럭을 설치하는 내용이 담긴 ‘모두를 위한 안전한 보행로 사업’을 2016년 제안했다. 안전한 보행로는 총 2.2km 길이로 신사동고개 사거리에서 6호선 응암역, 이마트, 은평구청을 지나 3호선 녹번역까지 뻗어 있다.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해 사업비 8500만원을 확보해 진행했다. 주민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국민디자인단 회의 등을 거쳐 개선작업에 나섰다. 이 사업으로 은평로의 보행을 방해하는 턱이 없어지고 시각장애인 보도블럭이 설치됐다. 경사로나 교차로, 신호등 앞에는 음향신호기와 점자표시판도 세워졌다. 빗물이 횡단보도 앞이나 버스 승차지점에 고여 있지 못하도록 보도와 차도의 경계에 배수구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 보행로의 이름을 ‘유니버설 보행로’로 붙였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제품이나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으로 주택이나 도로를 설계하도록 인식을 개선시키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 사업을 제안한 주민 박성준 씨는 은평구의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안전한 보행이 보장되는 은평로 스토리텔링북’에서 “보행 환경 개선은 주민과 단체, 구청이 항상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살기 좋은 은평을 만들기 위해서는 걷는 거리, 이동하는 길이 가장 먼저 안전하고 편리하게 변해야 한다”고 사업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은평구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마을버스의 승강대를 주민이 직접 제안해 설치됐다. /사진=은평구청 제공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마을버스 승강장에 ‘승차대’ 만들다


2018년 기준 은평구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마을버스는 은평03번이다. 은평03번은 연신내역 6번 출구 앞에서 출발해 갈현건영아파트까지 운행되고 있다. 하루 평균 5300명이 이용한다. 마을버스 이용객 수 2위 역시 이곳 연신내역 앞에서 구산동 e-편한세상아파트 사이를 운행하는 ‘은평09번’이다. 2016년 은평구 주민들은 구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 승강장에 승차대를 설치하는 사업을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제안했다.

2016년 4월부터 6월까지 사업이 진행돼 01번용과 03번용이 만들어졌다. 승차대의 지붕 덮개를 넓게 설계하고 덮개 밑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긴 의자도 설치했다. 은평구 주민은 “승차대가 없을 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버스를 기다리기 불편했다”며 “설치된 이후에 공간이 생겨 마을버스를 이용하기 편해졌다”고 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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