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 9년 방치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됐더라면...

[법으로 보는 세상]폐기·발의 반복한 이해충돌방지법, 뒤늦게 입법화 시동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21.03.19 14:5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본사 정문에서 LH 직원들이 전국대학생합동조사단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사진=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후폭풍이 거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국회는 부랴부랴 재발 방지법과 처벌법을 쏟아내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불공정 거래 또는 투기행위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기 어렵고, 처벌이 미약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여야는 지난 17일 LH 부동산 투기 사태와 관련해 특별검사(특검)와 국회의원 전수조사에 전격 합의했다. 조사 대상, 범위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고 있어 어떻게 좁혀나갈지가 관건이다.



현행법 무엇이 문제인가?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을 처음 제기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11일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의 법적 평가와 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속 변호사들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의혹' 법적평가와 제도개선방안 긴급토론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 자리에서 이강훈 변호사는 허술한 법 체계를 지적했다. 현행 공공주택특별법은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하거나 이용한 경우' 처벌토록 한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규정 자체로만 보면 업무 처리와 관계없이 정보를 알게 된 경우 처벌이 어렵다"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공무원이) 신도시 관련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빠져나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문제가 된 LH 직원 중 상당수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게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 정보를 전해듣고 부동산 거래를 한 제3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처벌할 수 있지만 제공받은 정보로 부동산 거래를 한 사람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다. 처벌 수위가 낮다는 비판도 있다. 업무 중 알게 된 미공개 정보로 부동산 거래를 했을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공무원이 공무상 비밀에 가까운 행위들을 누설하거나 그를 이용한 부동산 거래행위를 했는데도 민간인의 주식 미공개 정보 이용 거래보다 형량이 더 낮다"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허술한 농지법도 이번 사태에 한 몫


LH 직원들이 사들인 땅의 98%는 논밭이다. 현행 농지법은 현재 농사를 짓고 있거나 농사를 지을 계획이 있는 자에 한해 농지 매입을 허용한다. 규정은 이렇지만 농엉경영계획서만 제출하면 누구나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 당국은 뒤늦게 칼을 빼들었다. 정부는 지난 17일 3기 신도시 투기 의심자로 1차 조사된 LH 직원 20명이 보유한 농지를 강제처분하기 위해 특별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합동조사단장인 최창원 국무조정실 1차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방자치단체, 농어촌공사 등 관계기관과 함께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18일부터 LH 직원 (20명의) 소유 농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며 "투기 의심자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어떤 부당 이익도 얻을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역(시흥시 과림동)의 토지거래 건수가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 전에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스1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농지 이용 투기세력의 철저한 수사·감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합동조사단은 농지법상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경찰청 산하 특별수사본부와 관할 지자체에 전달해 농지 강제처분 절차 등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농지법 위반 행위로 판명되면 강제처분 의무가 부과된다. 1년이 지나도 처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할 지자체장이 6개월 이내 기간을 정해 처분할 것을 명령하게 된다. 매각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당정청협의회는 지난 19일 농지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LH 직원들이 매입한 제3기 신도시 토지의 상당부분이 농지로 드러난만큼 농지 투기를 막기 위한 농지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농지취득 심사를 강화하고 농지취득 이후 불법 행위가 발견되면 즉각 처분명령을 내리는 등 처벌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9년간 방치된 이해충돌방지법, 시행됐더라면...


이해충돌이란 공직자의 의무 및 책임이 사적 이익과 부딪치는 상황을 말한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이해충돌에 대한 사전 예방과 사후 처벌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입법예고한 안에 따르면 공직자가 인·허가, 승인, 예산, 수사·재판, 채용·승진, 감사 등의 업무를 수행할 때 자신이 직무 관련자와 '사적 이해관계'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즉시 기관장에 신고하고, 관련 업무에서 배제될 수 있도록 했다.

공직자가 이를 어기거나 사적 이해관계자와의 거래 행위를 사전에 신고하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비밀을 제3자에게 이용하게 하는 행위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이 법안은 2013년 처음 국회에 발의됐지만, 폐기와 발의를 반복하며 지난 9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입법 당사자인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현행 공직자윤리법과 부패방지법, 청탁금지법, 공무원행동강령, 대통령령 등으로 갈음해왔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투명성기구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2의 LH 사태를 막아라!'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방울달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LH 사태를 맞아 이해충돌방지법이 속히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투명성기구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그동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앞장서지 않았다"며 "오늘의 LH 사태의 책임 절반은 국회 몫"이라고 비판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해충돌방지법 공청회를 열고 본격적인 법안처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여야 모두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3월내 국회를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정무위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내주까지 이해충돌방지법 심사를 진행한다. 법안소위를 통과하면 24일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쳐 법사위 심사와 본회의 의결 등을 거칠 예정이다.



국회에 쏟아지는 '부동산 투기방지법’


여야는 부동산 투기를 막고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들도 쏟아내고 있다. 상당수 법안이 미공개 정보 이용 공직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투기 이득을 환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일 LH 임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총 36건의 '부동산 투기 근절법'이 발의됐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14건), 한국토지주택공사법(10건), 공직자윤리법(7건), 부패방지법(3건), 도시개발법(1건) 개정안과 특정재산범죄수익 환수법(1건) 등이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공직자가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에 (투기 등에) 사용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하고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데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10년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안을 내놨고, 문진석 민주당 의원은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는 조항을 담았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중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안이 처벌 수위가 가장 높다. 징벌적 처벌제도를 도입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50억원 이상의 투기이익을 얻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심 의원은 ”투기의 ‘투’자도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LH 투기 의혹 관련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사진=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은 업무상 비밀을 통해 얻은 부당이익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가하는 방식으로 환수하고, 해당 부동산을 몰수하는 내용을 담았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LH임직원과 가족의 실거주 목적 외 부동산 취득을 제한하고 사업지구 토지에 대한 사전 전수조사, 투기 이익을 몰수하는 벌칙조항 강화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재산등록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토교통부 공무원 및 부동산 정책을 집행하는 공공기관 직원의 부동산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고, 국토부 소속 3급 이상 공무원은 등록재산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LH 투기의혹에 대해 대책 TF회의를 열고 ‘공직자 투기 및 부패방지 5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공직자 윤리법과 토지주택공사법 개정 △공공주택법 개정 △부동산거래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비슷한 법안들이 많이 발의가 돼야 빨리 처리가 되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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