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통합 vs 법치 훼손’ 사면의 두 얼굴

[심층리포트②]“국가원수의 시혜적 행사”…자의적 남발 땐 신뢰 무너뜨려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21.02.05 11:2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제안을 철회하라'며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뉴스1
법치주의 국가에서 형의 선고는 법원 판결에 따른다. 선고 결과가 어떠한 법률적 효력을 갖는지도 법률이 규정한다. 법원 판결에 대해 정부 권력이 미칠 수 없다는 것이 대원칙인데 유일한 예외가 국가원수의 사면 권한이다.
사면권은 과거 ‘은사’로도 불렸다. ‘덕에 기초한 군주의 특권 행위’로 본 것이다. 이처럼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면권의 존립 근거로 법률과 재판의 불완전성에 대한 보완을 꼽는다. 사회의 법적·도덕적 가치가 변화했음에도 독립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종속돼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렸을 때 이를 바로잡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정책적 고려’도 사면권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죄를 지어 수감됐지만 자신의 죄를 충분히 반성하고 교화됐다면 계속해서 형을 집행하기보다는 사면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사면제가 자의적으로 행사될 경우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는 훼손된다. 실제로 사면이 시행될 때마다 논란이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 제63조에서 사면권을 최초로 규정했다. 몇 차례의 헌법 개정을 통해 지금의 사면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면제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들을 다뤄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00년에 있었다. 당시 헌재는 “사면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원수에게 부여된 고유한 은사권이며, 국가 원수가 이를 시혜적으로 행사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법률가로도 활동했던 다산 정약용도 사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다산은 <다산시문집 제10권 원(原)편(篇)>의 원사(原赦)에서 사면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형벌(刑罰)의 의의는 그를 아프고 괴롭게 함으로써 허물을 고쳐 착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만약 사면이 없다면 어쩌다 형벽(刑
)에 빠졌을 때 곧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된다. 더구나 죄상이 모두 다 정확할 수도 없고, 참소(讒訴)와 무고(誣告)도 있고, 혹은 격노(激怒) 끝에 엉겹결에 국금(國禁)을 범해 형벌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옛 성인(聖人)은 조심해서 백성들을 돌보는 방향으로 형을 집행하지, 되도록 놓아주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썼다.
다산은 그러나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무턱대고 일괄 대사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형량에 따라 일정 기간의 복역을 필한 경우에 사면하는 것이 법을 두려워하여 요행수를 바라지 않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사면제도의 기원
사면제도의 기원은 유구하다. 서양에서는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00년경)에 처음 등장했다. 근대적 의미의 사면은 영국에서 헨리 7세 때 법제화됐다. 당시 의회의 힘이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군주의 권력이 줄어든 데 따른 것이다. 국왕과 의회 상호 간의 견제를 위해 사면권이 제도화됐다. 이후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이 미합중국 헌법에 사면권을 처음으로 명시하면서 세계 각국이 현대적 의미의 사면권을 헌법에 규정하게 된다.
중국에서 사면이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한나라(기원전 202년) 때로 추정된다. 한나라 고황제(高皇帝)는 재위 12년간 모두 아홉 번 사면을 행했고 제2대 혜제(惠帝)는 재위기간 9년 동안 한 번의 사면을 단행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 사면 역시 고대 중국으로부터 도입돼 삼국시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 문무왕은 669년 2월 교서를 내려 사면을 단행했다. 교서를 내린 날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저지른 범죄자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내용이었다. 삼국통일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시대에도 사면은 왕의 즉위나 태자 책봉과 같은 경사가 있거나 반대로 왕이 질병에 걸리거나 홍수가 나는 등 흉사가 있을 때 이뤄졌다. 고려 말에 이르러 사면권 행사가 빈번해지자 정도전은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임금이 대신하여 시행하는 것으로, 임금이 사사로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상소를 공양왕에게 올리기도 했다. 조선왕조 역시 나라의 경사와 흉사에 사면을 시행했다.

해외사면…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 미국 예외
현대에 들어 사면제도는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많이 행해진다. 반면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시행된다.
독일은 수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이 확인된 경우에만 사면이 이뤄진다. 사면에 앞서 반드시 유죄를 선고한 판사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판사가 사면에 반대할 경우 사면이 이뤄질 수 없다. 엄격한 제도 탓에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특별사면이 단 4차례만 이뤄졌다. 양원제 국가인 노르웨이에선 하원에 의해 소추된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사면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쟁생보호심사회’란 기구를 법무부에 두고 있다. 사면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우선 심사위에 신청해야 한다. 심사위는 이렇게 신청받은 개별 사안을 일일이 심사해 ‘사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추려내 그 명단을 법무부에 전달한다. 사면 신청 요건 또한 까다롭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 징역 및 금고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각각 지난 다음에야 사면 신청이 가능하다.

핀란드는 대통령이 특별사면 여부를 결정할 때 우리나라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의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해 대통령의 사면권을 견제하고 있다. 덴마크는 행정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사면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 △선거법 위반 사범 △전쟁범죄 옹호죄 △테러 범죄자 △반인륜 범죄 △15세 미만 미성년자 폭행범 등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사면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로 사면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실형 선고 등 유죄 판결이 확정된 뒤 5년이 지나면 사면 청원서를 내면 대통령이 이들을 특별사면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69~1974년 재임 중 신청받은 사면 가운데 무려 50.8%를 승인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했다. 닉슨 본인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자리에 물러난 직후 후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1년 1월 퇴임을 불과 2시간여 앞두고 140명을 사면했다. 탈세 등 혐의로 해외에 도피 중이던 억만장자 마크 리치, 마약 소지·거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과도한 특별사면에 비판 여론이 일면서 클린턴 행정부를 기점으로 사면 승인율이 떨어졌다. 부시 행정부에선 7.6%, 오바마 행정부에선 3.4%까지 낮아졌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한층 강화된 사면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면을 스스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새 지침은 △테러 △국가안보 관련 범죄 △폭력 △어린이 대상 범죄 △총기 범죄 △공공부패 등 6대 사범에 대해서는 사면을 자제토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해서도 사면을 제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흑인 여성 비폭력 마약사범에 사면장을 수여해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사진=AFP

그러나 트럼프 정부에서는 대통령은 독단적으로 사면을 남발해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퇴임하면서 73명을 사면하고 70명을 감형하는 대규모 사면을 감행했다. 사면의 대상은 화이트칼라 범죄자와 유명 래퍼 등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 후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선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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