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에 도전장, '97'세대 다가온다

[신년 심층 리포트①]민생·경제 내걸고 ‘86세대’에 도전장, “전면에 등장할 당위성 부족” 지적도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1.01.05 09:4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1 거리에 화염병이 난무하고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1980년대. 군부 독재정권을 향한 반정부 시위는 1986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절정에 달했다. 4·13 호헌 조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희생은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6월 10일 전국적으로 발생한 시위로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개헌이 이뤄졌다. 민주화 역사의 주역은 1960년대 태어나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86세대였다.

#2 1997년,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보, 삼미, 진로, 대우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도산하거나 법정관리로 넘겨졌다. 기업 구조조정과 연쇄부도로 실직자가 쏟아졌고 신규고용은 급격히 둔화됐다. 1998년 실업자 수는 140만명에 달했다. 1970년대 태어나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97세대’가 성인이 돼 겪은 세상이다. 



‘97세대’ 출사표…“이제는”vs“아직은”


정치권의 ‘세대교체’ 논의가 활발하다. 그 중심에는 97세대가 있다. 지금의 정치권 주류는 86세대다. 21대 국회에서 169명이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97세대는 주류권력으로 자리 잡은 86세대의 견고한 아성에 ‘탈이념’과 ‘실용’의 기치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97세대를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복잡하다. ‘아직은…’ 이라는 물음표와 ‘이제는…’ 이라는 느낌표가 공존한다. 97세대가 진영논리에 갇힌 한국 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유치원 3법’의 박용진(49),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47), ‘정의당 당대표’ 김종철(50) 등이 97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민주화, 통일, 평화 등 이념 지향적인 86세대와 달리 97세대는 민생, 복지, 경제 정책에 더 관심이 많다. 86세대의 시대정신이 ‘민주화’라면 97세대는 ‘삶의 질’이 중요한 화두다.



86세대 이야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던 그 시절, 그런데…


▲(왼쪽부터)이인영 통일부장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86세대가 정치권에 진출한 시기는 2000년 16대 총선 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 시절 정치권에 ‘젊은 피’가 들어와야 한다며 운동권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 전대협 1기 의장 이인영(서울 구로갑), 전대협 2기 의장 오영식(비례대표),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서울 서대문갑), 전대협 3기 의장인 임종석(서울 성동) 등을 수도권에 내세웠다. 

선거 결과는 실패였다. 임종석을 제외하고 모두 낙선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상대 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도 젊은 인재를 영입했다. 당시 이회창 총재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병국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성헌 전 의원 등을 내세웠다.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민주당 86세대는 17대 총선에서 대거 원내로 진입했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152명 중 초선만 108명이 넘었다. 초선 돌풍 속에 86세대만 20명에 달했다. 운동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대협 소속 인물은 12명이나 국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MB정부 때 치러진 18대 총선에선 줄줄이 낙선했다. 전대협 출신 중에선 최재성 전 의원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86세대는 19대 국회에서 대거 생환하면서 부활했다. 2010년 전당대회에서 이인영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지도부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내에 들어오는 수가 많아지면서 86세대는 정치권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20대 총선에서 원내에 들어온 86세대는 132명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21대 국회에서는 86세대가 169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386세대는 컴퓨터 용어에서 비롯된 조어다. 당시 30대였던 이들은 40대가 돼 486으로, 50대가 돼 586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86세대로 불린다. 30대부터 50대까지, 정치권에 있었던 시간은 짧지 않다. 86세대를 보는 정치 소비자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던 순수함에 여전한 지지를 보내는가 하면 ‘이념에 갇혀 있는 기득권’이란 비판도 존재한다. 지난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선 이러한 인식의 단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9월 16일 대정부질문에서 자신을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생이라고 소개한 뒤 “21대 국회에는 87년 민주화의 주역들께서 많이 함께하고 계신다”면서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한때는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람들이 기득권자로 변해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돼버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심장이 어째서 식어버린 것이냐”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온몸을 내던졌던 젊은 시절의 뜨거움을, 과거의 무용담이 아니라 시대의 벽을 부수는 노련함으로 나서주시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97세대의 이야기…
‘먹고사는 문제 중요’, 경제·민생에 몰두하는 이유


▲(왼쪽부터)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민국 미래통합당 의원/사진=뉴시스

97세대는 민생과 밀접한 복지정책이나 경제, 민생문제에 집중한다. 97세대로서 국회에 처음 등장한 사람은 33세의 나이로 17대 국회에 들어온 김희정 한나라당 전 의원이다. 18대 국회에서는 홍정욱 전 의원과 김세연 전 의원 등 4명의 1970년생이 국회에 입성했다. 97세대는 19대 국회 때 10명(3.3%)이, 20대는 19명(6.3%)이 진출했다. 21대 국회에서 70년대생은 42명으로 전체 300명 중 14%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 23명, 국민의힘 16명, 정의당 1명, 국민의당 1명, 시대전환 1명 등이다.

대표적인 97년생은 민주당에서 박용진·박주민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 국민의힘에서 김세연 전 의원, 정의당 김종철 대표 등이다. 이들은 자천타천 내년 있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다.

박용진 의원은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삼성저격수’라고 불렸다. 2018년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전국 시도교육청의 유치원 감사에서 적발된 사립유치원의 명단과 비리 행태를 공개했다. 이후 ‘박용진 3법’으로 불리는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에 대한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또 2019년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2014~2019년까지 전국 사립유치원, 초중고, 대학교까지 총 6173억원에 이르는 사학비리 규모를 공개했다. 체급을 키운 박 의원은 최근 대권 도전 의사까지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달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인이 좌우의 논리와 여야의 진영을 넘어서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 공동체의 번영을 도모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꽤 거시적인 메시지까지 썼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처장으로 활동한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을 변론, ‘세월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20대 총선 때 국회에 들어온 박 의원은 2018년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총 21.28%를 얻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올해는 민주당 당대표로 출마했다. 지난 7월 21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지만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 분위기 속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을 들었다. 박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견해차가 큰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 법안과 형법상 낙태죄 처벌 규정을 없애는 낙태죄 폐지 법안을 발의하면서 소신 활동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국민의힘에서는 97세대들은 초선 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인 세 결집에 나섰다. 모임명은 '지금부터'다. 모임 대표는 강민국 의원(경남 진주시을)이다. 김병욱(포항울릉)·김웅(송파구갑)·김형동(안동예천)·전봉민(부산수영구)·허은아(비례) 등이 속해 있다. 지난달 8일 모임을 가진 ‘지금부터’의 첫 주제는 ‘86세대 교체론’이었다.



“97세대, 전면에 등장할 ‘당위성’ 부족”


97세대가 약진하고 있지만 세 결집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86세대는 군부세력 아래 민주주의 시위를 주도한 시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DJ가 발탁해 비슷한 시기에 대거 정치권에 들어온 동질감도 있다. 반면 97세대는 의정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신선하기는 하지만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기에는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과거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들고 나온 ‘40대 기수론’처럼 시대적 상징성을 가지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학교 교수는 “민주화 시대를 연 86세대는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상징하는 세력이었다”라며 “그러나 이제 기득권 층이 됐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이상 도덕적인 우월성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87세대에 대한 실망감이 자연스럽게 후배 세대인 97세대에게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그러나 97세대가 아직 개념화되지 않았다”라며 “86세대에 대한 실망감이 97세대를 나오게 했지만,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들고 나온 40대 기수론처럼 시대적 상징이 있는 게 아니다. 꼭 지금 97세대가 나와야 하는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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