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본 적 없는' 이낙연의 대선 로드맵…7개월 대표직 성과낼까

[Who's next?]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0.11.02 11:1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Who’s next?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입니다. 앞으로 1년 반 남았습니다. ‘정치의 시간’으로 보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입니다. 대한민국 정치 시계는 예나 지금이나 총선과 대선에 맞춰 돌아갑니다. 2021년 4월 7일 보궐선거가 끝나면 정국의 방향은 2022년 3월 9일로 급속히 이동하게 됩니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차기 대선주자 분석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의 생애, 능력과 도덕성, 비전과 정책 등 그의 모든 것을 담아보려 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입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7월 25일 오후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자 시·도당 순회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낙연’을 만든 사람 1. 선생님 2. 김대중 전 대통령 3.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생을 바 뀌게 한 사람은 세 명이다. 첫 번째는 이 대표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다. 이 대표는 1952년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이 대표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광주에 있는 북성중학교 입학을 권유했다. 선생님은 이 대표의 어머니를 설득해 북성 중학교 입학을 시켰고 이 대표는 광주의 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에 들어갔다. 훗날 이 대표는 국회의원이 된 이후 담임 선생님을 후원회장으로 모시기도 했다.

두 번째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197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1976년에 육군 만기제대했다. 가정형편상 사법시험 공부를 하지 못해 투자신탁회사에서 근무하다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1987년 치러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평민당 후보의 ‘마크맨’으로 동교동을 출입했다. DJ는 이 대표를 눈여겨봤다. DJ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이 대표가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DJ는 이 대표에게 1990년에 열린 보궐선거에서 평민당 소속으로 전남 함평·영광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호남에서 평민당 소속 출마는 곧 당선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당시 도쿄 특파원을 가기 위해 거절했다. 그런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전남 함평·영광에 출마해 본격 정치의 길을 걸었다.

그 이후 지역구에서 4선을 달성하고, 민선 7대 전라남도지사를 지낸 이 대표를 중앙 무대로 부른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 대표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로 임명됐다. 이 대표가 초대 총리가 됐을 때는 탕평인사라고 보는 시선이 강했다. 영남사람인 문 대통령이 ‘호남홀대론’을 걷어내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남도지사가 초대 총리로 기용된 것은 조금 약한 것 아니냐는 평까지 나왔다.

이 대표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오히려 이 대표는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처음으로 대선주자에 올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018년 10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을 묻는 조사에서 이 대표는 14.6%로 1위를 차지했다. 대선주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총리직을 안정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이다. 논란을 만들지 않고 ‘일 잘하는 내각 수장’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이 총리는 완벽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전남도지사 시절 6개월 이상 같이 일하는 참모진이 있다면 다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낙연 총리의 꼼꼼한 일처리 때문에 참모진이 고생한다는 얘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19년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낙연의 ‘생각’

이 대표가 국회의원 생활 동안 발의한 법안을 보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 대표의 법안 발의 성격은 △지역구 관련 △농어촌 관련 △복지 관련이었다. 그의 의원시절 대표 법안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을 통해 대기업이 얻는 이익의 일부를 거두는 ‘농어촌부흥세’ 신설이다. 또 대기업의 농촌 진출을 막기 위해 비농업인이 농어업법인에 출자할 때, 총 출자액의 33.3%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이 대표는 독거노인과 노숙인 관련 복지 증진 대책 등 복지 관련 법안도 발의했다. 이 대표는 2010년 국정감사에서 노인 고독사에 대한 실태파악과 대책마련을 보건복지부에 처음으로 촉구해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을 이끌어냈다. 이듬해 노숙인을 비롯해 쪽방·만화방·비닐하우스 등에서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의 자립 기반 조성을 위한 ‘홈리스 복지법안’을 발의해 노숙인을 위한 최초의 기본법인 ‘노숙인 지원법’ 제정에 기여했다.

19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부양을 받지 못하는데도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라남도지사를 수행하면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정책은 ‘100원 택시’다. ‘100원 택시’는 버스가 닿지 않는 마을 주민들이 택시를 부르면,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100원에 데려다주고 나머지 요금차액은 시·군이나 전남도가 택시회사에 보전해주는 정책이다. 산간벽지 농어촌 노인들에게 소위 ‘기사 딸린 자가용’인 것이다. 이 정책은 다른 지자체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대표가 전라남도지사를 지내면서 적극 시행해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대표의 100원 택시는 한국정당학회 매니페스토 정책평가단이 실시한 전국 17개 광역단체장의 공약평가에서 최고의 공약으로 선정된 바 있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 대표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법안은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이 포함된 경제 3법이다. 이번 국회 내에 통과하겠다는 입장이다. 통과된다면 당대표 임기 중 가장 큰 성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도 그에게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3월 31일 오후 청와대 본과 접견실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찍먹과 부먹 사이’

이 대표는 선거에서 져본 적이 없다. 전적은 5전 5승이다. 16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총선까지 내리 4선을 달성했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전라남도지사로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4월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 호남 출생인 이 대표가 그 밖을 벗어나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다. 청와대를 끼고 있는 종로는 정치적으로 상징적인 공간이다. 역대 대통령 중 세 명을 배출했다.

이 대표는 어느 계파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이 대표는 DJ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범동교동계로 분류됐을 뿐 계파색이 짙지는 않았다. 또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로 기용됐지만 정통 친문계는 아니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부겸 전 의원, 박주민 의원과 함께 3파전을 형성한 이 대표는 60.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이 대표는 내년 3월까지만 당대표 임기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권, 대권 분리 조항 때문에 대선 1년 전 당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7개월 동안 이 대표는 확실한 성과를 이뤄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이낙연호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래야 대선 때 내세울 대표 공약이 생긴다. 현재 민주당의 상황은 좋지 않다. 김홍걸·이상직 의원 논란과 추미애 법부무 장관 아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여권 인사 연루 의혹 등 악재가 겹치고 있다.

이 대표는 안정적이면서 신중하다. 사안마다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아 ‘달달한 고구마’라는 별명도 붙는다. 이 대표가 대선주자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점으로 거론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스갯소리로 ‘탕수육을 부먹(부어 먹느냐)하냐, 찍먹(찍어 먹느냐)’ 하냐고 물으면 “탕수육 먹는 방법에 대해 많은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지난 7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찍먹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8월 라디오에 출연, 선명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대해 “저는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라며 “저의 역할을 뛰어넘는 어떤 것을 기대하셨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자제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숫자로 보는 이낙연
지난달 26일 기준 이 대표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는 지난달 21일 기준 7만6000건이다. 또 팔로우 수는 9만1000명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3만 명이다. 이 대표의 밴드 팬클럽 연사모(이낙연 대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수는 3000명이다.

이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전체 중 2위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17%로 여야 대선주자 중 2위를 기록했다. 한 달 전 같은 조사 21%에서 4%p 떨어졌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 대표의 선호도가 36%로 1위였다. 민주당 지지율은 38%를 기록했다.
이 대표의 관련주로 거론되는 종목은 남선알미늄과 삼부토건이다. 이 두 종목은 지난달 희비가 엇갈렸다. 이 대표의 친동생 이계인 씨가 SM그룹의 자회사인 삼환기업 대표를 지내고 있어 같은 SM의 자회사인 남선알미늄이 ‘테마주’로 분류됐다. 이 씨는 지난달 11월 삼환기업 대표에서 물러났다. 그 뒤로 지난달 22일 삼부토건이 이 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히자 지난달 26일에는 25%오른 3890원으로 마감했다. 반면 남선알미늄은 10% 내린 3955원으로 마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이 대표는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선거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후보 교체를 주장한 후단협 소속 의원들에게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라고 논평을 내기도 했다.

2002년 16대 대선 후보 때부터 당선인 신분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의 대변인을 맡았다. 청와대 합류 요청도 받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 가지는 않았다. 이 대표는 훗날 본인의 저서 <어머니의 추석>에서 ‘노 대통령께서는 두세 번쯤 사람을 보내 저의 신당 동참을 권유하셨다. 장관직 제안 얘기도 있었다. 고민했다. 2003년 민주당이 분당한 직후 어느 날 아침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다. 신당 가지 마라 잉!” 어머니는 그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중략) 나중에 어머니를 뵙고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를 여쭤봤다. 어머니의 대답은 역시 짧았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때 이 대표는 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탄핵 역풍이 몰아닥쳤던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9명의 민주당 의원 중 한 명이었다. 2017년 10월 국무총리 신분으로 경남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묘역에 참배한 후 ‘당신을 사랑하는 못난 이낙연’이라고 적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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