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주 가야금 연주가, “울림 주는 나만의 ‘류’ 연주할 거예요”

국악은 근본 잃지 않으면서 변화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20.10.08 13:3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국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악기.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 하여 ‘가얏고’라고도 불리는 악기. 오동나무 공명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가야금 현을 손으로 뜯으면 깊은 떨림과 울림이 마음을 움직인다. 

가야금의 종류는 12현부터 시작해 25현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최근 광고나 서양악기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만나는 가야금은 12현을 개량해 만든 25현 가야금이다. 25현 가야금은 저음역부터 고음역까지 풍부하게 소리를 낼 수있어 창작곡에 많이 쓰인다. 

가야금 연주가 서경주 씨는 악기에 대한 열정과 활발한 연주 활동을 통해 차세대 가야금 명인으로 꼽힌다. 서 씨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가야금을 연주하는가’라는 질문에 “줄을 뜯었을 때 손끝에서 울려 펴지는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심명 깊은 고운 소리가 가야금의 매력이죠”라고 답했다. 

서 씨는 전남 광주에서 체육 교사인 아버지와 가야금 연주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에는 서 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자개가 박힌 가야금이 있었다. 서 씨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딸에게 한복이나 예쁜 옷을 입혀 가야금 앞에 앉혀놓고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도 가야금 앞에 앉으면 제가 오른손 왼손 연주자세를 정확히 잡고 앉았다고 해요. 그래서 가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씨익 웃을 때도 있어요. 시작하게 된 계기가 정확하게 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 같아요.”

사실 서 씨는 가야금보다 피아노를 먼저 배우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었다. 하지만 유학이나 더 많은 배움이 이뤄질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 부모님께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제 길이 아니였던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회상했다. 

그렇게 피아노를 그만두고 몇 달 쉬는 동안 서 씨의 어머니는 그에게 “가야금을 배워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배우게 됐다. 서 씨는 당시에 가야금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악기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서 씨의 어머니는 자신의 스승인 임경주 가야금 명인을 찾아 서 씨를 만나게 했다고 한다. 그때가 서 씨가 중학교 2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전주 덕진구에 있는 어느 커피숍에서 임경주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 “그날은 눈이 내리는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고 떠올렸다. 

그 다음 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새 학기부터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혼자서 레슨을 다니며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학교 수업을 토요일 오후까지 하던 때였는데, 학교 측 배려로 출석만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고 한다.

서 씨는 “처음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던 모습이 생각나는데 혼자 머나먼 길을 다니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두 손으로 가방을 꼭 끌어안고 다녔던 게 생각나요”라며 “아직도 터미널에서 레슨실까지 가는 길은 눈을 감고 다닐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이 난답니다”라고 말했다.

서 씨는 서울에 도착하면 레슨실에서 공부하고,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광주에 내려오는 일정을 꼬박 일년을 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입시를 치른 후에 그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가야금 연주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서 씨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국악관현악과와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다. 그는 여러 국악관현악 단체들과 굵직한 협연들을 비롯해 초청공연, 독주연주회 등 전국과 해외를 무대로 한 연주회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야금 외에 철현금까지 다양한 연주 실력도 갖추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가야금 명인들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가락을 토대로 자신의 독특한 가락을 첨가해 자신의 고유한 가락을 남기는데, 이를 ‘류(流)’ 또는 ‘바디’라 한다”며 “저만의 류가 있는 연주가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가야금은 12현의 산조가야금이다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12현 산조가야금은 기악 독주곡인 산조(散調)를 비롯해 민요, 병창, 시나위 등의 민속악 연주에 두루 사용되는 가야금이다. 19세기 후반, 가야금 산조가 유행하면서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민간에서는 구전심수(口傳心授),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다. 현재는 민속악뿐만 아니라 창작곡 연주에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가야금의 악보가 서양의 오선보로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가야금 종류가 다양하다고 하는데 소개한다면


▶먼저 12현 가야금 중 법금(法琴) 또는 정악가야금(正樂伽倻琴)이라고도 불리는 악기는 <삼국사기>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문헌들에 언급된 가야금으로 궁중과 풍류방의 음악인 정악(正樂)을 연주할 때 사용되는 악기다. 한국 고대 전통 악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악은 모두 정악가야금으로 연주됐고, 현재도 정악을 연주할 때
는 정간보를 보고 연주한다.
열두 줄의 가야금은 무궁무진하게 많은 변화를 이뤄왔다. 줄의 수에 따라 다양하게 개발됐고, 그중 몇 악기는 표준 가야금으로 정착했다. 18현, 25현 가야금은 줄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음량을 확대하기 위해 명주실과 강선을 혼합해 반주 및 창작 음악에 적합하도록 개량된 악기다. 25현 가야금은 주로 국악관현악, 실내악, 합주 등에 많이 연주되며, 철로 만든 줄로 음색에 변화를 준 철가야금이나 음역에 변화를 준 고음, 중음, 저음 가야금과 전자 칩을 부착한 전자 가야금도 제작되는 등 현재까지 매우 다양한 개발로 가야금의 종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가야금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른 현악기와 비교했을때 특징이라면


▶현악기의 생김새와 연주방법은 다양하고, 종류만큼이나 무수히 많다. 대표적으로 국악기의 가야금은 활이나 술대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오동나무 위에 올려진 열두 줄의 명주실은 손으로 직접 꼬아 만들어낸 것으로 굵고 얇음의 차이로 음높이를 표현한다.
악기의 현침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뜯고 집고 튕기며 소리를 낸다. 이때 왼손 주법으로 농현, 퇴성, 요성, 전성들을 덧대어 풍부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가야금은 다른 서양 현악기들에 비해 나일론이나 철줄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왼손주법이 발달되어 풍부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고, 명주실만 고집한다. 한 줄 한 줄 뜯어가며 연주자의 공력과 깊은 성음이 더해지는 가야금의 매력은 줄을 뜯었을 때 손끝에서 울려 펴지는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심명 깊은 고운 소리다. 



‘가야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관 단어가 ‘산조’다. 산조란 어떤 음악인가


▶산조는 기악곡의 귀한 꽃, 즉 보물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발전되어 다듬어지면서 여러 류파가 형성됐고, 또 악기들마다의 류파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가락이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산조’의 한자 뜻은 ‘애틋한 감정을 가진 가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애틋한 가락의 성음은 이로 말할 수 없이 깊이가 있고 국악만의 멋을 나타낼 수 있는
고유한 표현법 또는 깊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산조’를 일편단심의 꽃말을 가진 ‘무궁화’로 표현해보고 싶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산조 가락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고, 연주자들의 연주 기량에 따라 성음이 서로 다르게 나오며, 음악의 변화가 이루어지되 전통의 근본적
인 음악 특색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독주회와 협연 등 많은 무대에 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어떤 무대였나


▶연주가로서의 무대는 작은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소중하다. 특히나 무대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순간들은 행복하고 설레지만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뒤따라오니 항상 긴장된다. 그동안 독주회, 협연 등 정말 숨가쁘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저의 두 번째 협연무대다.
강봉천 선생님의 ‘절영의 전설’이라는 곡으로 오디션을 통해 세 번의 무대에 오르게 됐는데 절영(絶影)이란 조조의 애마로 자신의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달릴 정도의 빠른 말을 상징한다. 장단과 함께 몰아치는 말밥굽 선율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곡이다. 이 곡을 제13회 전북도립국악원 대학생 협연의 밤에서 연주한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
데, 오디션을 보면서도 곡의 집중도가 제일 높았던 기억이 난다. 곡이 시작할 때 타악기 공소리가 멀리 울려 펴지는 중후함은 절영을 달리게 하는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야금 연주곡은 무엇인가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곡과 연주하고 싶은 곡은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18현 창작곡 백성기 선생님의 ‘무지개’를 제일 좋아한다. 이 곡은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을 장단에 빗대어 각 악장마다 다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장단과 주고받는 가야금 선율들이 아기자기하게 표현되는 곡으로 저에게는 특별한 곡이다.
고등학생 때 콩쿠르에 나가기 위해 이 곡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콩쿠르에는 나가지 못했고, 그 아쉬움을 대신해 저의 두 번째 개인 독주회에서 이 곡을 처음 연주하게 됐다. 그때의 저의 감정은 마치 제가 무지개 위에 올라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서장에서 시작되는 선율들과 중모리의 가락들이 특히나 마음을 울리게 했다. 그래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무언가 다른 특별한 연주 감성이 올라온다. 다시금 무지개를 연주하게 된다면 여러 장단에 몸을 맡기듯 심취하면 더 큰 만족이 있는 멋진 연주가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연주가, 스승이 되고 싶은가


▶사실 예술가로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인 동시에 엄청난 고생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악인으로 또 가야금 연주가로서 누구보다도 심혈을 쏟아 달려왔다. 가야금 명인들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가락을 토대로 자신의 독특한 가락을 첨가해 자신의 고유한 가락을 남기는데, 이를 ‘류(流)’ 또는 ‘바디’라 한다. 수많은 시
간을 갈고닦으며 경지에 오를 만한 실력을 갖춰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만의 류가 있는 연주가가 되고 싶다.
또 저는 철저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배웠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저만의 방식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중이다. 수업에 있어서 인성과 예절을 기본으로 여기며 학생들과 많은 소통을 해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가끔은 저도 연주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지금의 시기를 새롭게 도약하는 시간으로 발판삼아 좋은 스승이자 연주가로 노력과 열정을 쏟으려고 한다. 앞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소리를 더 많이 들려줄 수 있도록 하겠다.




서경주 가야금 연주가

●1987년 광주광역시 출생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국악관현악 학사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전공 석사
●국립전통예술중학교 전공지도강사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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