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3조원어치 팔았는데…존폐 갈림길 '지역화폐'

실효성 논란에 정부 지원축소 불똥, 성공사례 참고 대안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홍세미 기자 2022.09.01 09:2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지역화폐가 기로에 섰다. 지역화폐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사용이 크게 늘었지만, 최근 지자체가 사용 혜택을 크게 축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을 줄이면서 생긴 재정 부담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전통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크다.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한 수단이었던 지역화폐, 효율적인 운용방안은 없는지 짚어본다.
▲ 카드형 경기도 지역화폐.
▲ 세종시 지역화폐 '여민전'.

# 서울에 사는 A씨는 거주 중인 자치구의 지역사랑상품권 판매 일정이 나오면, 휴대폰에 알람을 맞춰둔다. 판매 시작 시간 5분 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수시로 화면을 새로고침한다. 계좌에는 미리 상품권을 구매할 금액을 넣어뒀다. 상품권 판매 시각이 되면 재빨리 구매 버튼을 누르지만 접속자가 몰려 구매가 쉽지 않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상품권 구매에 성공한다.

이렇게 구매한 상품권은 집 근처 시장이나 작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할 때 주로 사용한다. 자녀의 학원비를 결제할 때도 사용한다. 상품권은 7~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다. 상품권을 통해 소비하면 그만큼 절약하는 셈. 코로나19 사태 초반인 2020년에는 지역사랑상품권을 15%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이벤트성으로 사용한 금액의 5%를 캐시백으로 돌려주기도 했단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늦게 알게 돼 총 20%의 혜택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뒤늦게나마 ‘현명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A씨는 상품권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지역의 지역사랑상품권을 구매하기도 한다. 다른 자치구의 상품권을 구매해 외식이나 도서 구입에 쓰기도 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면 행선지의 지역사랑상품권을 미리 사둔 뒤 여행 경비 일부로 쓴다.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 중이어서 상품권 사용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은데, 상품권 판매는 점차 줄고 있고, 할인율도 더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가 들려서 안타깝다.



◇지역 경기 활성화 꾀하며 발행된 ‘지역화폐’


A씨가 구매한 지역사랑상품권이 바로 지역화폐다. 형태에 따라 종이상품권, 카드형, 모바일형 등으로 나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일정 규모(매출 10억원) 이하의 소규모 매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들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또, 발행 지역에서만 쓸 수 있다. 종로사랑상품권이라면 행정구역이 종로구인 상점과 식당에서, 춘천사랑상품권은 춘천에서만 사용하는 식이다. 기존 전통시장에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온누리상품권’과 다른 점이다. 특정 지역 안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해 지역 내 소비의 외부유출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신용카드보다 수수료가 적고 현금성 매출로 잡히기 때문에 업장에서도 반긴다.

지역별로 보면, 광역 단위에서 서울은 ‘서울사랑상품권’, 부산 ‘동백전’, 인천 ‘인천e음’, 광주 ‘광주상생카드’ 등이 있고, 기초자치구별로도 각각 지역화폐를 갖고 있다. 지역마다 지역화폐를 발행한 시점이 다른데, 대부분 2019년에 시작해 코로나19가 확산돼 지역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2020년에는 전국적으로 발행이 확대됐다. 지자체가 발행을 담당하고, 할인이나 캐시백 등 혜택의 일부는 국비에서 지원받는다.


◇지난해 23조 달해…축소·중단 위기


지역화폐가 전국적으로 발행된 2020년, 전국 판매액은 13조3000억원이었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23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만 14조9000억원이 판매됐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전체 판매액은 30조원에 이르겠지만, 예상 판매액은 20조원 안팎일 거란 관측이다. 국비 지원액이 줄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8000억 정도로 책정했다. 2021년 지원액은 1조2552억원, 약 40% 줄었다.

부산광역시는 최근 ‘동백전’의 1인당 충전 한도를 월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줄였다. 충전할 때 할인율도 10%에서 5%로 절반으로 낮췄다. 경남은 ‘경남사랑상품권’ 할인율을 10%에서 5%로 줄였다. 인천광역시의 ‘인천e음’은 캐시백 혜택이 당초 ‘한 달 50만원 한도 내 10%’였는데, 지난 7월부터 ‘한 달 30만원 한도 내 5%’로 줄었다. 광주광역시는 ‘광주상생카드’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 대전광역시는 ‘온통대전’의 캐시백을 중단한 데 이어 지역화폐 자체를 없애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내던 시절 추진했던 대표적인 역점 사업이다. 그래서 성남시를 비롯한 경기지역 지자체들은 일찌감치 지역화폐를 도입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축소에 이들 지자체들도 인센티브를 대폭 줄이고 있다.

▲ 거제 고현중앙시장.



◇정부 “지원 실효성 검토”…중단 가능성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을 줄이는 배경에는 ‘건전재정’ 기조가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5% 정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의 본예산 상승폭은 평균 8%대였다. 예산 상승폭이 줄면서 각 부문 사업 규모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특히 지난 정부에서 지원이 확대된 부분을 먼저 손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지자체가 발행한 지역화폐에 대해 처음으로 재정 지원에 나섰다. 군산, 거제 등에 지역화폐 발행액의 10%가량을 국비로 지원했다. 조선업 침체 등으로 경제적 피해가 큰 지역의 소상공인들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지원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지원액도 커졌다.

정부의 지원 축소 또는 중단과 관련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전국 지역화폐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대대적으로 지원한 데 대해 학계 등 전문가들의 많은 지적이 있었다”면서 “예산편성 과정에서 원점에서 실효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 지자체가 실효성 점검을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 중앙정부 예산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는 형태는 재고돼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 추경호 부총리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세재정연구원 “지역 경제 기여도 낮아”


정부가 지역화폐 재정 지원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보고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발표한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송경호·이환웅) 보고서에서 “지역화폐의 소비 진작 효과는 크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특정 지역 소비가 늘어나도 나라 전체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는 것.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고,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게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지역 소비의 역외 유출 차단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인접한 다른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 경쟁을 유발할 뿐 지역 내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원래 할 소비를 조금 더 저렴하게 했을 뿐, 다시 말해 ‘보조금의 효과’로 소상공인의 매출이 증가한 것 외의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결론이다. 

이런 연구 결과에 따라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기에는 사업의 효용성이 크지 않고 오히려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역화폐 지원에 대해 “재정중독 사업에 재정을 지원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홍남기 전 부총리도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지자체 스스로 판단해 발행하라”며 지원 확대에 반대하기도 했다.
▲추석맞을 채비에 분주한 서울 종로구의 통인시장/사진=더리더



◇일부 업종·세대에 편중돼 효용성↓…‘카드깡’ 부작용도


정부가 지역화폐 지원금을 줄이는 배경에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도 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김유찬 원장은 지난 2020년 10월 7일 국정감사에 출석해서 “지역화폐가 소상공인에게 지원효과가 있는지를 실증분석한 결과 모든 업종에 효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업종에는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소상공인의 지원 효과가 일부 업종에 편중돼 전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초 지역화폐는 자금의 외부 유출을 방지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고안됐다. 초기 지역화폐의 주요 무대는 재래시장이었다. 재래시장을 살려 소상공인에게 도움을 주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화폐 활성화를 명목으로 사용처가 학원, 커피숍, 슈퍼마켓, 음식점 등으로 늘어났다.

8월 23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통인시장을 방문했다. 절기상 처서(處暑)를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자 시장도 추석을 맞이할 채비에 바빴다. 통인시장에서 40년 넘게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처음 지역화폐를 발행했을 때는 서울사랑상품권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며 “시간이 지나니까 이곳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다. 마트나 다른 상점에서도 쓸 수 있다고 하니 거기서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옆집 채소가게 점주도 “그건 맞는 말”이라고 거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지역화폐 쓰러 많이 왔는데 이제 쓰지 않는다”라며 “오늘 방문한 손님 중 한 명도 지역화폐를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화폐의 소비층이 주로 20~40대 젊은 층에 편중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처음 지역화폐는 종이 상품권 형태로 출발했지만 카드와 모바일 형태로 진화해왔다. 종이 상품권은 소비자와 소상공인 모두 사용 방법에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은행 등 지정된 판매처에서 평일 일과시간에만 구입과 환전이 가능해 대부분 모바일로 대체됐다.

이렇다 보니 모바일 금융에 익숙한 세대만 지역화폐를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지역화폐의 경우 2019년 4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전체 이용액의 68%를 2040세대가 썼다. 50~60대 이용률은 18%에 그친다. 

이른바 지역사랑상품권을 싸게 팔아 현금화하는 이른바 ‘현금깡’ 문제도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그런저런 문제지적을 많이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역화폐는 필요…지원 축소는 시기상조”


그럼에도 소상공인과 시민은 지역화폐를 폐지하는 것에 한목소리로 반대한다. 과일가게 점주는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매출이 많이 감소했다”며 “이곳에서 40년 넘게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손님이 없는 적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관광객도 오지 않아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정도”라며 “물가도 올라서 서민이 힘들어하는데 지금 지역화폐마저 없으면 매출이 더욱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화폐를 줄이더라도 시장을 위한 정책이 우선 시행되고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상인은 “평소 지역화폐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추석이나 명절 때는 쓰러 많이 온다”며 “지역화폐 자체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용처를 제한하든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금리가 인상하고, 장바구니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화폐를 줄인다는 방침은 시민에게 아쉬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이모씨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지역화폐 할인이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며 “다른 지역 혜택이 더 많아 부러웠는데, 오히려 줄인다고 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5월 허태정 전 대전시장과 김종천 전 시의회의장, 5개 자치구청장, 소상공인대표 등이 중구 으능정이거리 스카이로드에서 지역화폐 ‘온통대전’ 출시 기념식을 열고 있다./사진=뉴시스



◇성공한 지역화폐, 지역 활성화 도움 ‘톡톡’


지역화폐 재원이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을 줄이는 다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부산경실련은 지난달 3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비와 시비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닌 가맹점과 시민 편의성을 높이는 지역화폐로 거듭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내년 국비 지원액이 더욱 삭감된다면 캐시백으로만 유지되는 지역화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만큼 부산의 지역화폐 동백전을 살릴 방안을 찾는 공론의 장을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화폐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해외사례로 영국의 브리스톨 화폐와 일본의 아톰 사례가 있다. 영국 브리스톨시는 43만 명의 소규모 도시로 2012년 지역화폐인 브리스톨파운드(BP)를 발행했다. 지역 공동체 기업이 운영을 맡아 가맹점 유치 등 마케팅을 펼쳐 이 화폐로 브리스톨 시장과 직원은 급여 일부를 받고, 시민들은 지방세 등 세금까지 납부할 수 있다. 실물통화와 온라인, SNS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까지 구축돼 전 세계적으로 지역화폐 유통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또 2004년 발행된 일본의 아톰통화는 도쿄 등 전국 5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본의 대표 장수 지역화폐다. 가맹점에서 진행하는 빈 병 회수나 에코백 사용 등 지역 환경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통화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화폐 예산을 단순히 지원받아 운영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에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게 설계하는 모델이 나왔다. 경기 용인시는 지난 7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슬기로운 와이페이’ 사업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지역화폐 플랫폼을 구축해 신용카드나 통신, 항공, 철도 등 여러 분야에서 적립된 마일리지 포인트를 지역화폐 ‘와이페이’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시는 지난해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2022년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돼 확보한 국비 18억원과 시 예산 2억원 등 20억원을 투입해 올해 말까지 시스템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는 우리카드와 모빌리티 기업 MaaS의 고객 마일리지가 와이페이로 전환된다. 공유 차·킥보드·자전거 운용 업체인 MaaS에도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용인시민이 보유한 마일리지가 상당할 것으로 시는 예상했다. 시는 이들 두 기업 외에도 계속해서 마일리지 연계 기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최보현 지역화폐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역화폐가 잘 안착되기 위해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시민도 이제 막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지원금을 줄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화폐를 잘 운영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지역에서 잘 사용할 수 있게 주민과 같이 고민하면 더 좋은 정책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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