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는 현장에서 자란다" 한국농수산대학의 이유 있는 변신

[조재호 국립한국농수산대 총장 인터뷰]"비영농 기반 특별전형, 면접 강화…농어업 백년대계 이끌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대담 서동욱 편집장 정리 홍세미 송민수 기자 2021.08.02 10:0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조재호 국립한국농수산대 총장/사진=김휘선 머니투데이 기자
1995년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농업부문 시장개방이 시작됐다. 정부는 국내 농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농수산대(이하 한농대)를 설립했다. 1997년 한국농업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고 2009년 지금의 한농대로 교명이 바뀌었다.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한농대는 농어업인을 양성하는 3년제 국립대학이다. 입학생은 입학금과 수업료, 기숙사비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대신 졸업 후 6년간 ‘의무영농기간’이 있다. 이 기간 농어업에 종사하지 않을 경우 지원받았던 학비 등을 모두 반환해야 한다. 남학생이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발될 경우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한농대 측에 따르면 6년의 의무영농기간이 지난 뒤 농어업에 종사하는 졸업생 비율은 84.7%에 달한다. 이처럼 농어업 종사비율이 높은 이유는 입학 과정에서 실제 농어업에 종사할 학생을 선발하고 다양한 현장실습 위주의 커리큘럼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농어업 및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현상 등의 영향이 있지만 한농대는 1997년 개교 당시 6개 학과 240명이었던 입학 정원이 지금은 19개 학과에 570명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지난해 기준, 개교 이후 555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해 취임한 조재호 한농대 총장은 취임과 함께 대학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내놓았다. 농지 보유 등 영농기반으로 평가했던 기존 입시 제도를 입학생의 ‘영농 의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 영농기반이 없더라도 농어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의지를 평가해 더 많은 청년을 유입시키려는 전략이다.

이에 일반전형에서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농업을 승계받는 농지 보유 등 영농기반을 반영하는 비율을 15%에서 10%로 줄였다. 아울러 영농기반점수가 반영되지 않는 특별전형 비율을 올해 48%까지 늘렸다. 지원자의 영농의지를 볼 수 있는 면접평가 비중을 올해 25%에서 내년 30%로 확대한다. 조재호 총장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하면 그 학생을 우선적으로 뽑는다”며 “왜 농업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정착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농대의 강점, ‘장기현장실습’


한농대 기본 과정은 3년 전문대학 과정이다. 1년을 추가해 심화과정을 밟으면 학사학위를 받는다. 조 총장은 농업계 고등학교나 일반 대학 농과대학과 차별화되는 한농대만의 특징을 ‘장기현장실습’으로 꼽았다. 1년 동안 직접 현장에 가서 실습하는 것인데 현장 실습장은 전국 곳곳에 있다. 농장으로 가서 농사를 직접 하거나, 농업 관련 기관 또는 연구소에서 실습하기도 한다. 학생이 희망하는 직무를 정해 실습활동을 하기도 한다. 조 총장은 “우리 학교만의 특징인 ‘장기현장실습’으로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무리 없이 농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농대의 3년 교육과정은 ‘졸업논문’으로 귀결된다. 졸업논문은 사실상 ‘창업계획서’ 혹은 ‘영농계획서’인데 졸업 이후 구체적인 영농의 방향과 자금조달계획 등이 담겨야 한다. 조 총장은 “창업에 초점을 맞춰 교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으며 장기 현장실습은 우수한 논문 작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토록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기후위기…급변하는 농업환경에 적극 대응


농어업도 ‘디지털 전환’이 시작됐다. 조 총장의 중장기발전 전략 중 하나는 ‘디지털 농업 육성’이다. 그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시작됐다”며 “농업 역시 궁극적으로는 디지털로 전환될 것이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과거에는 농사짓는 방식이 자신의 경험과 책자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진행됐다면 앞으로는 데이터가 중요해진다”며 “센서를 설치하고 기온, 토양 상태 등의 데이터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앞으로 이러한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능력이 좌우될 것”이라며 “이 같은 능력을 키워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농대는 ‘학과제’가 아닌 ‘학부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19개 학과로 신입생을 모집했지만, 내년부터는 4개 학부 19개 전공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 조 총장은 “이전에는 농업의 형태가 한 가지만 키우는 전업농이었다면, 지금은 농수산업과 축산업 등 같이하는 ‘복합농’ 형태가 많아졌다”며 “나눠져 있는 학과를 묶어서 배우고 싶은 학문을 같이 묶어서 배우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는 “한 학기를 지켜보면서 전공을 선택하면 탄력성이 생기고 학생들은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의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지자체와 함께 ‘평생교육 강화’


한농대는 귀농귀촌자와 농어업인 가운데 교육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원을 농수산인재개발원으로 확대 개편한다. 일반 농어업인이나 농고·농대 졸업생 등 다양한 수요층을 위한 것이다. 조 총장은 “수도권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지방은 인구가 줄고 있다”며 “귀농·귀촌은 지자체의 인구감소 대응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재호 국립한국농수산대 총장/사진=김휘선 머니투데이 기자
다음은 조 총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농어촌 인구 감소까지, 한농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위기인 만큼 좋은 인재를 모집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더 많은 청년이 유입될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농업 분야로 진출하고 싶어도 농지 등 기반이 부족해 입학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많았다. 앞으로는 ‘영농의지’ 평가 비중을 높일 것이다. 기존에 있던 영농기반평가 비중을 올해 20%에서 내년 15%로 줄인다. 2023년에는 아예 반영하지 않을 것이다. 지원자의 영농의지를 볼 수 있는 면접평가 비중을 올해 25%에서 내년 30%로 확대할 것이다. 일반인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도록 할 것이다. 내년부터 도시에 있는 인재를 유입시키기 위해 영농기반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특별전형 비율을 현행 37%에서 48%로 높일 계획이다. 2023년에는 54%로, 2024학년도에는 60%까지 늘려나갈 것이다.

-농고나 일반 대학 농대를 졸업할 수도 있는데, 한농대만이 가지는 경쟁력은 무엇인가

▷3년간의 재학 기간 동안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며 농어업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점이다. 또 우리는 실습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학생들의 현장실무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다. 다른 농업계 대학과 다른 점이다. 현장위주 실습으로 학생들이 큰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자신한다. 졸업 후에도 경영 컨설팅과 다양한 농업 교육 정보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농업 현장에서 겪을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현장 수업 등이 위기를 겪고 있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학생의 학습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1학기에는 학과별 방역수칙을 지켜 진행했다. 250명 내외로 학과, 학년별 4주 단위로 제한적 대면교육을 실시했다. 2학기는 학과별 7~8주 동안 520명 내외로 제한적 대면교육을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대면교육 불참자에게는 교육효과 제고를 위해 실시간 동영상을 제공한다. 또 대면교육기간 중에는 농기계, 굴삭기, 드론 등 자격증 취득 시험 등을 지원했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등, 농업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 등 급변하는 농업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청년농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 현재 농업계에서는 농가 인구와 청년 후계인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4차 산업혁명 등 농업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한농대는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등 농업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재양성을 위해 기존 교과목에 디지털 교육내용을 접목할 것이다. 디지털농업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디지털 교육을 위한 인프라도 지속 확충해나갈 예정이다.
▲조재호 국립한국농수산대 총장/사진=김휘선 머니투데이 기자

-‘농업의 디지털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기존의 모든 교과 과정에 디지털 농업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도록 할 것이다. 디지털전환을 대비한 교육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디지털전환 교과설계 컨설팅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의 역량수준 진단을 실시해 수준별 교과설계를 진행할 것이다. 무인 농기계와 드론 파종 등 디지털 농업 기술을 실습할 수 있도록 10만 평 규모의 새만금 실습장도 디지털 농업 실습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예산 당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농업 교육이 가능한 역량 있는 교원을 확보하기 위해 교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추진하고 신규채용할 때 평가기준을 강화할 것이다. 현장연구 전문가와 장비·SW 업체 전문가, 성공사례농장 등 각 분야 실무 전문가로 초빙 교수진을 구성하고 특강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드론·3D프린터 활용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교육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술들이 농업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나
▷농업은 씨 뿌리기부터 농약 살포, 수분 공급까지 수많은 일손이 필요한 과정이지만 드론 한 대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다. 특히 사람이 직접 농약을 뿌릴 때 농약중독은 물론, 더운 여름철 일사병에 걸리기 쉬운 위험도 감소할 수 있다. 특히 농산물이나 세포와 같은 바이오 소재를 원료로 한 3D 프린팅 기술은 농업과 농식품 가공 산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발전되면서 육체적 노동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와 스마트화 기술로 대체된다. 농산업에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농지 규모와 기후 등 자연적 환경의 제약을 받는 우리 농업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장의 상황에 맞춰 작물의 생산량과 생육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맞춤식으로 재배하는 새로운 생산혁명을 통해 소득과 수익성도 높아질 것이다.

-기후변화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지난해 기후변화교육센터를 설립해 현재 다양한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후변화 실습교육 시설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한 작물재배 적지와 생산성 예측 등의 결과를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는 실습 커리큘럼을 모든 교육과정에 포함할 계획이다. 또 졸업생과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기후변화교육센터 온·오프라인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기후변화교육센터 내 자연광형시스템 등 28종의 시설·장비를 외부 연구기관에 개방하여 교육과 연구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조재호 국립한국농수산대 총장/사진=김휘선 머니투데이 기자
-1997년 개교한 이래 지난해까지 5551명의 졸업생을 냈다. 졸업 후 학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지난해 조사 기준 졸업생의 농어업 종사율은 84.7%다. 과거에는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농어업을 승계받거나 협업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근래 들어 독립경영을 위한 농어업 창업비율이 점차 증가해 44.9%에 달하고 있다. 대부분 농어업 생산분야에 종사하거나 경영을 하고 있다. 농어업 기반 및 자금 마련을 위해 농어업 법인, 농어업 관련기관 등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총장이 되기 전 농식품부에 있었다. 농식품부에서 청년농 육성 정책을 설계했다. 그때부터 청년농 육성을 계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농업은 성장산업이다. 농촌에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령층 농업인들이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운 단계에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산물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령층 농업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청년농이 필요하다.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미래 농어촌을 책임질 청년 후계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재호 한국농수산대 총장

1967년 출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34회 합격
제52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장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 국장
농림축산식품부 차관보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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