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남자' 박남춘 인천시장, "쓰레기 난제 클린 해결"

[열린정책 소통합시다]수도권 쓰레기 문제는 "발생지 처리가 원칙"

머니투데이 더리더 대담 서동욱 편집장 정리 홍세미 송민수 기자 2020.11.02 09:2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은 자신을 ‘뼈노’(뼛속까지 친노(親盧))라고 소개한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시장의 정계입문을 제안한 사람도, 지금까지 이끈 사람도 노 전 대통령이다. 박 시장은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의 인연을 ‘운명’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방폐장 부지 선정, 새만금사업, 미군기지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은 노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작과 함께 꺼내 든 사안이다. 이 가운데 미완의 과제들은 지금도 논의되고 있다. 박 시장은 참여정부 시절 가장 아쉬운 정책으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꼽는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이 당초 계획대로 진행됐으면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라며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고 수도권 규제를 풀어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발전시키는 게 행정수도 이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시장은 2000년에 처음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일 때 박 시장은 해수부 직원이었다. 당시 박 시장은 국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박 시장에게 총무과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박 시장은 업무상 이유를 들어 거절의 뜻을 밝혔지만 노 전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시장은 결국 노 전 대통령 뜻을 따라 해수부 총무과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처 혁신을 이끌던 경험은 정치 생활을 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 취임 이후 박 시장을 불러 국정상황실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지금의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었다. 박 시장은 2003년 11월부터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집무정지를 당했을 때 박 시장에게 17대 총선에 출마하라고 권유했다. 박 시장은 정치에 뜻이 없다며 거절했다. 공직자로 돌아가길 희망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전방위로 포위된 노 전 대통령에게 힘이 되고 싶었고 또 한번 노 전 대통령 뜻을 따른다. 그가 18대 총선 출마를 결심한 이유다. 박 시장은 “지금이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지만 당시에는 ‘친노’ 딱지가 붙으면 될 것도 안 됐다”며 “그럼에도 출마한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져 출마하지 못했다. 당시 당대표는 손학규 전 대표였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박 시장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미완의 과제를 이루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박 시장은 19대 총선에 출마, 당내 경선에서 11표 차이로 이겨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박 시장은 “정치할 팔자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뒤 20대 총선에서 또 한번 당선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시장’으로 출마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사람은 박 시장의 아내다. 박 시장은 아내와 어릴 적 동네 친구다. 박 시장을 오래 알았던 아내가 그의 꿈을 기억해 시장 도전을 제안한 것이다. 박 시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고향 인천에서 시장을 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아내가 상기시켜줬다”며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7회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57.5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25년 인천시의 수도권 매립지 사용이 종료된다. 인천시는 ‘발생지 처리 원칙’이라는 환경정의에 입각해 각자의 쓰레기를 자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5년 인천시와 환경부, 서울시와 경기도가 함께 매립지 사용 종료 시점을 2016년에서 2025년으로 연장하면서 대체 매립지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다. 박 시장은 “서울시와 경기도가 5년 동안 대체 매립지 선정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인천시는 박 시장을 총괄단장으로 하는 ‘수도권매립지 종료 태스크포스(TF)’를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이번달에 인천시는 쓰레기 매립지 종료 이후의 계획을 발표한다. 박 시장은 “쓰레기를 매립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라며 소각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노 전 대통령을 언제 처음 만났나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이었고 나는 소속 직원이었다. 국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문해남 장관 비서관이 ‘아마 장관님이 내일 박 과장을 불러 총무과장을 맡아달라고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실망감과 당혹감에 밤잠을 설쳤다. 다음날 이른 아침 8시 10분 노 전 대통령이 나를 불렀다. 일대일 대면은 처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나에게 ‘박 과장이 이번에 총무과장을 맡아주십시오’라고 했다. 그 제안을 거절했다.

-왜 거절했나

▶국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과장을 하라니, 당연히 싫었다. 또 그 전에 몇 년 동안 격무 부서에서 일했다. 총무과장을 맡으면 재충전할 수도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내가 거절하니 당시 부서 차관인 홍승용 전 차관을 불러 ‘장관의 진심 어린 설득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공무원을 어떻게 국장에 진급시킬 수 있느냐’며 진급 심사를 다시 해오라고 했다. 홍 전 차관까지 나서서 날 설득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내가 항복했다. 노 전 대통령 뜻대로 총무과장을 맡았다.

-업무는 어떻게 수행했나

▶우선 서점에서 책 제목에 ‘혁신’이나 ‘학습’ 단어가 들어 있는 책 스무 권 정도를 사들고 집에 가서 통독했다. 다음 날 3페이지로 요약해 장관에게 줬다. 핵심 내용은 조직원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스스로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 수십 개의 실천 과제가 도출됐고 학습 조직도 수십 개 결성돼 활발하게 활동해 부처가 스스로 혁신을 하게 이끌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 이유로 장관을 그만뒀다. 나는 공무원이니까 그저 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성공을 바랐다. 모시던 전직 장관이라서가 아니다.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임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장관으로 있던 몇 달 사이 해양수산부의 변화가 이뤄지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내가 본 장관 노무현은 겸손하고, 성실하고 소신과 원칙을 가진 공직자였다. 언론사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했다가 고생한 기억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선은 반전드라마와 같다. 당시 감회가 새로웠겠다

▶지지율 1%에서 시작해서 대통령까지 됐다. 노 전 대통령이 광주 지역 경선에서 1등 한 것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TV중계로 보면서 아내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진실한 사람은 승리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됐다. 2003년 1월 인수위원회 경제 2분과 전문위원으로 합류했다. 2003년 1월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수여식이 끝난 뒤 한 시간 지나 노 전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로 보자고 해서 그의 방에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이 불러서 뭐라고 했나

▶‘이제 해수부만의 개혁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 전체의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정부혁신과 관련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논문과 책자를 구해 하루라도 빨리 보고서를 올려주세요’라고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어나 나가는데 노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뒤로 국정상황실의 정책팀장을 맡았다

▶국정상황실장 자리가 아니어서 내심 섭섭했다. 당시 국정상황실장으로는 이광재 의원이 내정됐다. 섭섭하긴 했지만 그때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도울 일에 중점을 둬서 국정상황실 합류를 수락했다.

-국정상황실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국정상황실은 청와대의 기획실이다. 국정운영을 기획하고 장기적 일정과 계획을 짜는 일을 하는 곳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 갈등 과제들을 모두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행정수도 이전, 방폐장 부지 선정, 새만금사업, 용산미군기지 이전, 전시작통권 환수 등 20여 개가 넘는 과제들이 쌓여 있었다. 이런 것들을 정리해 노 전 대통령에게 줬다.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그중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그 문제 중에 해결된 게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루려고 했던 것들이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제일 아쉬운 건 행정수도다. 행정수도가 진도대로 갔으면 성공했을 것이다. 수도권의 경제활동 규제가 핵심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고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발전시키는 게 행정수도 이전의 핵심이다.

-이광재 실장이 상황실장에서 물러난 이후 국정상황실장이 됐다

▶2004월 11월부터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당시 좌우명이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살자’였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려면 누구보다도 투명하고 흠결 없는 공직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항 속 금붕어처럼 몸가짐에 조심하지 않으면 참여정부에 적대적인 야당이 온갖 트집을 잡고 발목을 잡아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가만두지 않는 상황이었다.

-국정상황실장을 하며 무엇을 이뤘나

▶휴면예금의 저소득층 지원을 도입했다. 또 김포신도시 개발계획이 확정될 때 국방부와 당시 건설교통부의 협의를 이뤄냈다. 또 대통령 지시로 정책품질관리제도가 도입됐는데, 이 제도에 따라 정책품질관리 매뉴얼이 마련돼 문제가 되는 정책은 메뉴얼에 따라 관리되도록 하는 방안이 정착됐다.

-그 이후 인사제도비서관, 인사수석을 맡았다

▶2005년 1월 노 대통령은 나를 관저에 불러 오찬을 함께 하면서 인사업무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국정상황실장에서 인사제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달라는 것이다. 사실 그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는 강등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대통령 지시니까 따랐다. 7개월 정도 인사제도비서관을 지내다가 인사수석에 임명됐다. 7개월 동안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익히게 한 후 수석으로 배정한 것이다.

-인사수석을 맡으면서 지켰던 원칙은 무엇인지

▶‘삼다일공’(三多一公)이다. 삼다는 ‘다원’(多源), ‘다청’(多廳), ‘다로’(多勞)이다. 다원은 많은 소스를 통해 공개적으로 인사 후보를 발굴하는 것이고 다청은 사람을 평가할 때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다로’는 발품을 많이 판다는 것이다.

-인사수석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고위공무원단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공직사회 내에 계급이라는 수직적 장벽을 모두 헐어버리고 계급과 부처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고위공무원단 풀에서 최고 적임자를 적소적재에 배치할 수 있게 됐다.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우리 공무원 사회에 활력과 긴장감을 불어넣어 정부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박남춘 인천광역시장/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대통령에게 17대 총선 출마를 제의받았다고
▶대통령 탄핵 발의로 집무 정지 상태였다. 당시 대통령 부속실장이 없었다. 내가 국정상황실장을 하면서 두 역할을 겸직하듯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나에게 ‘오늘 나랑 이야기하세’라고 말하며 뒷산을 걷자고 했다. 산을 같이 걷는데 ‘박 실장, 나랑 정치하자’라고 했다. 선거에 출마하라는 이야기다. 저는 ‘능력도 안 되고 자질도 안 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에게 ‘정치하면 잘할 사람이야. 정치라는 게 남의 표를 얻고 남의 돈을 얻어서 하는 건데 깨끗한 사람이 해야 해. 그런 싸움판에서 살아남으려면 박 실장처럼 올곧은 사람이 하는 게 정치요’라고 했다.

-그때 왜 고사했나

▶정치 생각이 없었다. 공직사회로 돌아가 차관, 장관으로 승진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정계에 몸담을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치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18대 총선 때는 출마를 결심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잘 풀렸으면 내가 공직사회로 돌아갔겠다.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지지율이 너무 낮아졌다. 노무현 정부는 전방위 포위됐다.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출마를 결심했다.

-그때는 선거에 출마하지도 못했다

▶18대 때 ‘친노’ 딱지가 붙으면 될 것도 안 됐다. 뻔히 알면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도리랄까, 나라도 잘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출마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출마한 곳은 당시 인천 중동 옹진이었다. 당시 현역 의원은 한광원 의원이었다. 그때 당대표가 손학규 전 대표였다.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다.

-그 뒤로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돌아가셨다. 반대 세력이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나라도 노 전 대통령이 구상했던 것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아직도 정치를 하는 이유다.
-19대 총선 경선에서는 11표 차이로 이겼다
▶‘정치할 팔자구나’라고 생각한다. 11표 차이로 가까스로 경선에서 이기고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선거에서는 여당 후보가 둘로 나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 그때 여당 후보가 둘로 나뉘지 않았다면 승부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내가 인기가 있거나 잘나서 당선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흐름대로 흘러갔고 운이 좋았다.

-오랜 정치생활을 했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평도 있다

▶성격이 좀 그렇다. 감투를 쓰는 것보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편이다. 이해찬 대표일 때 당수석대변인을 하라는 제의가 왔는데 거절했다. 당시 당대표 비서실장이 김태년 원내대표였는데, 나에게 ‘수석 대변인은 애원을 해서 가는 자리인데 왜 거절했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 지역구 돌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국회의원 임기 동안 우리 지역구 바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국회의사당과 인천을 매일 오가 4년 사이에 20만km 넘게 뛰었다. 그렇게 해서 재선까지 했다.

-그 뒤로 인천시장에 출마했다

▶내가 행정고시에 합격할 때는 시장이 임명제였다. 합격했을 때 내 고향 인천에서 시장을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잊고 지냈는데 아내가 기억했다. 나와 아내는 어릴 때부터 연애를 했다. 오래전 꿈을 아내가 기억하고, 권유해서 시장직에 도전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15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자원순환정책 대전환을 위한 시민공동행동 발표'에서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실현하겠다는 내용의 자원순환정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인천시, 가장 큰 현안은 쓰레기 매립

인천시는 2025년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사용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인천시와 환경부·서울·경기 등 매립지 4자 협의체는 2015년 수도권매립지 2025년 폐쇄에 동의했다. 4자 협의체는 2025년 종료되는 수도권매립지를 대체할 공동매립지를 찾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 선정이 가장 큰 현안이다

▶쓰레기 매립은 1992년부터 시작됐다. 무려 33년 동안 수도권매립지로 인한 환경적, 경제적 피해를 감내하는 것이다. 2017년 우리 시와 서울시, 경기도가 용역을 진행했지만 주민 수용성 우려로 결국 대체 매립지 후보지를 정하지 못했다. 이제는 ‘발생지 처리 원칙’이라는 환경 정의를 따라야 한다. 각자의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자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시는 현재 자체매립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2015년 4자 합의가 이뤄졌다

▶방향이 잘못됐다. 2015년 체결된 4자 합의의 기본 취지는 현 수도권매립지 종료였다. 지난 5년간 대체 매립지를 찾기 위해 선행됐어야 하지만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때 ‘대체 매립지’를 찾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쓰레기 매립지를 어떤 지역이 받겠나. 특히 총선 전 정보가 흘러나가면 난리가 난다. 자꾸 미루다 지금까지 온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2025년에 자원순환정책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장 취임 이후 대통령에게도 건의했고 환경부, 서울시, 경기도에 ‘쓰레기를 매립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매립 말고 어떤 방안이 있나
▶지난해 일본으로 해외순찰을 갔다. 우리 시와 비슷한 규모인 요코하마와 오사카의 쓰레기 처리방식을 살폈다. 일본은 40년 전부터 쓰레기를 땅에다 묻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 소각장이 많다. 한 도시에 6군데 있다. 태운 소각재를 금속 오염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 땅에 묻지 않고 해산처분한다. 항만을 확장해 그 부지에 물을 단단하게 가둬놓고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쓰레기를 땅에다가 묻는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매립지가 인천에 있으니 서울시와 경기도, 환경부는 개선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 소각장 만들고 쓰레기를 매립하지 않고 해결할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쉽지 않겠다

▶굉장히 힘든 길이다. 이 주제는 재선이 힘든 아이템이다. 누가 좋아하겠나. 또 소각장을 만들자고 해도 반대 여론이 있다. 그렇지만 가야 할 길이다. 이미 선언했다. 이번 달에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매립할지 발표할 것이다. 논란이야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류 도시가 되지 못할 것이다. 
-바이오공정 인력양성센터가 인천으로 유치됐다. 바이오 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1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의 공동 공모사업인 한국형 NIBRT 프로그램-바이오공정 인력양성센터 구축사업에 인천시가 최종 선정됐다. 인천이 바이오분야 기업과 종합병원, 대학, 연구기관 등 기존 인프라에 더해 인력양성기관까지 유치하면서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바이오공정 인력양성센터 구축사업은 어떤 것인지

▶바이오의약품 생산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연간 2000명의 교육생이 배출된다.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품질관리와 연구개발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할 인력을 양성할 예정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장비, 소재 등의 국산화에 기여하는 인력양성 센터로 발돋움할 것이다. 또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자로 인천이 바이오헬스밸리라고 하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인천은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지, 각종 연구소, 인력양성 등 3박자를 두루 갖춘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바이오 혁신 클러스터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인천형 뉴딜의 종합 계획은 어떻게 되나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요
가 급증하면서 디지털 경제로 전환됐다. 저탄소, 친환경 경제에 대한 요구도 늘어난다. 경제와 사회 전반적으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 시도 이런 추세에 맞춰 인천형 뉴딜을 진행할 것이다. 지난달 13일 시민시장대토론회를 통해 관련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대토론회에서 인천형 뉴딜 정책의 대표 과제는 무엇인지

▶투표를 통해 상위 5개 과제가 선정됐다. △수도권매립지 종료 및 친환경 자체 매립지 조성 추진(15.3%)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구축(9.1%) △생활권 도시 숲 확충(8.0%) △먹는 물 수질 개선을 위한 정수장 고도화(7.1%) △원도심지 그린 주거환경 조성(6.8%) 등이다.

-인천형 뉴딜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린뉴딜 5.5조원, 바이오 3.6조원, 디지털 1.9조원, 휴먼 1.5조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인천형 뉴딜을 통해 더욱 안전한 도시를 구축하고, 저탄소·자원순환 모범도시로 만들겠다. 이와 더불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이루겠다.

-계속 행정가의 길을 갈 것 같다

▶4년 가지고 시정을 운영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우리 시는 2년 연속 행정안전부 재정평가 우수단체로 선정됐다. 채무 비율은 16%다. 잠재부채는 반으로 줄였다. 중소기업부에서 스타트업파크를 따왔다. 이게 이제까지 2년 동안의 성과다
. 앞으로 더 많은 성과를 이룰 것이고 재선에 도전해 ‘박남춘 표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1958년 7월 2일 인천광역시 출생
제물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행정학 학사
웨일즈대학교 대학원 교통경제학 석사
해양수산부 총무과 과장
국립해양조사원 원장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실장
대통령비서실 인사제도 비서관, 인사수석
제19, 20대 국회의원 (인천 남동구갑)
제7대 인천광역시 시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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