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특허청, ‘지식재산청’으로 바꿔야 할 때다

일제 잔재 ‘특허청’, 세계 흐름 외면…“국가혁신 책무, 명칭 변경 꼭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20.08.05 10:4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박원주 특허청장이 7월 21일 서울 강남구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화상회의를 통해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및 유럽 특허청으로 구성된 세계 5대 특허청(IP5)의 청장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시대 IP5가 나아갈 방향 및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특허청 제공
특허청은 1977년 개청한 정부 부처로, 특허와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 심사와 심판을 수행한다. 현재 대한민국 특허청은 글로벌 지식재산 분야를 주도하는 세계 지식재산 5개국(IP5, Intellectual Property 5, 전 세계 특허 출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지식재산기관 협의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되면서 지식재산이 각국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으며, 미래시장 선점을 위해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고, 기관 업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명칭으로의 변경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허청의 명칭이 바뀐다?


지난 2018년 한 차례 시도됐던 특허청의 명칭 변경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특허청은 그동안 ‘특허’라는 용어가 일반인에게 어렵게 다가가고 권위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며 명칭 변경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해왔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취임 이후 기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단순한 특허 부여’에서 ‘지식재산 기반 국가혁신 주도’로 설정하면서 명칭 변경을 위해 힘써왔다. 

일각에서는 특허라는 명칭을 일본 제국주의 잔재로 여긴다. 또 특허청이 특허 업무뿐 아니라 상표, 디자인,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 전반을 다루고 있어 업무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명칭 변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 청장은 “특허청은 특허뿐 아니라 상표, 디자인,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 전반을 관장하지만 ‘특허’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허를 부여하는 기관’에서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국가혁신을 주도하는 기관’으로의 질적 전환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사적 책무임을 감안했을 때 기관 명칭 변경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계 주요 국가들 가운데 현재 한국과 일본만이 ‘특허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6년 기존 유럽특허청(EPO)에서 별도로 유럽지식재산청(EUIPO)을 독립시켰다. 캐나다, 러시아, 호주 등은 이미 지식재산을 기관명에 쓰고 있으며, 프랑스는 ‘산업재산청’, 중국은 ‘국가지식재산권국’, 미국은 특허에 상표권을 붙인 ‘특허상표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새 명칭으로 ‘지식재산청’ 또는 ‘지식재산혁신청’ 제안


지난 6월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한 박 특허청장은 “특허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지식재산권(IP) 기관으로 변모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공통 숙제를 안고 있다”며 “국민을 소외시키는 ‘특허’라는 이름보다 ‘지식재산’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만큼 이름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21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했던 시대전환 소속 조정훈 의원은 이날 “특허청은 21세기의 한국은행”이라며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관리하는 한국은행이 중요하듯 21세기는 데이터 중심, 지식 경제가 부가가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특별허가해주는 청’(특허청)은 고압적이다.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특허청장은 “저희도 똑같다. 자본은 더이상 경제발전의 동력이 못 된다. 사람이 가진 배타적 아이디어만이 부가가치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께 ‘지식재산’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만큼 이름 변경이 언젠가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원주 특허청장이 7월 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0회 국제 지식재산 보호 컨퍼런스’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사진=특허청 제공



특허청 명칭 “변경해야 한다” vs “변경하면 안 된다”


특허청 명칭 변경 논란이 일면서 변경에 찬성과 반대하는 주장이 각각 제기되고 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7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0회 국제지식재산보호컨퍼런스에서 “특허청 명칭 변경은 지식재산 거버넌스를 위한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가 지식재산 생태계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을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관계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확산됐다”며 “언택트 비즈니스가 등장하는 등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사람 관계 형성도 온라인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비대면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지식재산은 한층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분야의 지식재산권인 저작권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특허청의 방침에 우려를 표했다. 지식재산권은 특허청이 관할하는 산업재산권과 문체부가 관할하는 저작권으로 나뉘는데, 특허청의 명칭을 지식재산청 등으로 변경하게 되면 결국 저작권 업무까지 포괄하는 기관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또한 문체부가 저작권을 관할하면서 문화·예술을 장려하는 기능까지 관장하고 있는데 특허청이 명칭을 변경하면 이런 역할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만약 명칭을 변경하려면 ‘산업재산혁신청’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재현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지식재산권이라는 큰 개념 아래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이 있는데 성격적으로 달라 합치기가 어려운데도 합치겠다는 논의가 있다”며 “저작권이 업무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콘텐츠산업이나 문화·예술 같은 분야인데 (저작권 업무가 특허청으로 가면) 오히려 업무협조가 더 안 되고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장섭 의원, 특허청→지식재산청 명칭 변경 법안 발의해


지난달 7일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청주 서원구)은 특허청을 ‘지식재산청’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상 특허청은 특허뿐만 아니라 상표, 디자인, 영업비밀, 반도체 회로 배치설계,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 등 지식재산에 관한 업무를 총괄한다. 그러나 ‘특허’라는 명칭은 다양한 지식재산의 형태 중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관 전체의 업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돼왔다. 

영국, 중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러시아 등은 모두 기관 명칭으로 지식재산청을 사용하고 있다. 특허청의 영문 명칭도 이미 ‘Korea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한국지식재산청)’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의원은 “4차 산업시대를 맞아 지식재산은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 혁신성장의 핵심동력으로 그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며 “지식재산 기반 혁신성장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지식재산청’으로 기관명을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18년 국회의원 입법으로 특허청 명칭 변경안이 발의돼 논의가 진행됐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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