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未曾有), 그리고 실패와 성공 사이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안민호 교수 2020.04.01 09:1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하루에도 몇 번씩, 윙윙 소리를 내며 휴대폰이 급박하게 들썩인다. 붉은색 사이렌 표시가 선명한 코로나19 관련 ‘안전 안내 문자’다. 문자는 중앙 대책본부에서도 오고, 시청이나 구청에서도 온다. 사회적 거리 두기 등과 같은 시민 행동 지침 준수에 관한 일반적 내용도 있고, 몇 번째 발생한 확진자 기본 신상과 동선을 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라는 실시간 속보성 내용도 있다. 홈페이지에는 확진자의 성별, 나이, 거주지, 일자별 시간대별 이동 경로와 방문 장소가 빽빽이 공개돼 있다. 확진자가 방문했던 장소가 폐쇄되고,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이 격리조치된다는 언론보도도 뒤따른다. 무엇이 옳은 행동이고 그릇된 행동인지, 또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 초래할 두려운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뉴스는 이처럼 매일매일 계속된다. 자칫하다간 나도 신천지처럼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대책본부와 미디어가 전달하는 행동지침은 자연스레 내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규범이 된다.

살다 보니 나쁜 일인 줄 알았는데 결국 좋은 일이었고,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나쁜 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게 나이 먹을수록 참말임을 실감한다. 엎치락뒤치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겪어내다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방역 초기에는 정책적 혼선도 있었고, 중국발 입국 금지 필요성과 관련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국내 마스크 수급과 관련해서는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행정이 계속되었다. 경제활동인구만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식의 황당한 발언들이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보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상당히 선전을 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검사 숫자, 확진자 수, 사망자 수, 사망률, 완치율 등 계량 가능한 모든 수치를 비교해볼 때 대유행이 시작된 여러 나라 중에서 우리는 가장 상황이 좋은 축에 속한다. 

말 그대로 위기가 기회였다. 확산 초기 전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되고 입국 금지 대상이 되었던 우리가 얼마 안 돼 이런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로 비춰졌던 한국이 지금은 가장 큰 승리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의료 시스템을 포함한 각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비교하는 시험대가 돼버린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입증함으로써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이런 반전이 가능했던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우리가 가진 총체적 역량이 뛰어나서다. 많은 나라에서 발생한 생필품 사재기가 벌어지지 않은 것도 그렇고 코로나 의병이라 불리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나 끊어지지 않는 기부 행렬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우리의 역량이다. 뛰어난 의료진은 말할 것도 없고, 행정일선에서 최선을 다한 공무원들도 빼놓을 수 없다. 다수를 위해 양보하고 헌신할 준비가 돼 있는 우리 모두의 공동체 의식도 남달랐다. 위기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 빨리빨리 문화도 시간을 다투는 팬데믹 상황에서 한몫했다. 이 모든 것에 더해 결정적이었던 것은 구성원들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던 공공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세심하게 준비된 전략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보다 그것은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우리의 문화적 특성과, 한 방향으로 쏠려가는 매우 경쟁적인 미디어 환경 그리고 초기 시범케이스로 타산지석이 된 신천지 집단감염사건과 같은 여러 계획되지 않은 요소들이 창발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긍정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계의 성자(Guru)라고 부른 사람이 있다. 공공 캠페인 광고 제작자로 유명한 토니 슈왈츠라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인간 행동 변화에 대해 날카로운 식견을 가진 이를 본 적이 없다. 미국 대통령을 바꾼 영상광고로 알려진 ‘데이지 소녀’와 미국 방송에서 담배 광고를 퇴출시킨 결정적 계기가 된 금연 캠페인 영상을 만든 장본인이다. 두 영상의 핵심 메시지는 동일하다. 당신이 선택한 어떤 행동으로 인해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닥칠 위험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먼저 그 위험이 매우 심각한 것이어야 하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야 하고, 또 위험을 낮추기 위해 제안된 행동이 효과적이면서도 단순한 결심으로 선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단순한 선택에 대한 제안, 이것이 사람들의 행동변화를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토니 슈왈츠의 생각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토니 슈왈츠가 없었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우리의 공공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작동했다.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차이를 만든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확진자의 신상이나 동선 관련 정보의 실시간 공개, 그리고 즉각적인 접촉자 격리 및 방문 시설의 폐쇄 조치였다. 정부가 자랑하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한데, 원래 목적은 정보 제한에 따른 시민들의 막연한 공포심을 완화하고 정부 조치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역 초기에는 그것이 투명함을 넘어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경쟁적 정보 공개로 나타났고 또 다른 불안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것은 바이러스 감염 자체에 대한 불안감과는 차원이 다른,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입게 될 피해와 그로 인해 자신에게 퍼부어질 수 있는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 즉 사회관계적 차원의 불안감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사회관계적 불안감은 정부가 제공하는 방역을 위한 행동 지침을 따름으로써 그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고 긍정적 태도와 행동의 변화로 나타났다. 대책이 없는 막연한 공포가 초래했을 수 있는 혼란과 비극이 대안 있는 구체적 두려움으로 바뀌면서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도하다 싶은 정보 공개와 함께 신천지 신도의 집단 감염사건도 나쁜 것이 결국 좋게 작용한 역설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내 감염자의 절대 다수가 대구 경북지역에서 발생했고, 또 그 지역 감염자의 절대다수가 신천지와 관련 있었다. 이것은 신천지 교회 집단 감염이 없었더라면 우리 사회의 지역 감염자가 훨씬 적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천지 문제가 초기에 드러난 것이 도리어 다행인 측면이 있다. 그를 통해 집단 감염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고, 그들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해 여론의 강렬한 비난이 집중됨으로써 신천지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과 규범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감염 확산의 결정적 요소인 집단 감염 사례가 그나마 대폭 줄어든 데는 이처럼 일종의 시범케이스가 된 신천지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어떤 집단도 신천지와 같은 마녀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실패와 성공은 상대적이다. 남의 큰 실패로 인해 나의 작은 실패가 성공이 되기도 한다. 그런 상대적 성공에 지나치게 흥분하는 건 소인배다. 자신감도 좋지만 과하면 없느니만 못하다. 지금은 전쟁의 마무리가 아니라 겨우 첫 단계를 지나고 있는 시점이다.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바이러스는 잠복했다가 언제라도 다시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지금이 1차 대유행이라면, 올 가을과 겨울, 혹은 내년에라도 2차, 3차 대유행이 또다시 덮칠 수도 있다. 게다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전부가 아니다. 팬데믹은 단순한 공중보건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다시 수많은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양산하게 된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미증유의 위기를 정부 혼자서 결코 헤쳐나갈 수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적극적 협력과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게 잘 준비된 공공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행운은 계속되지 않는다. 지나간 행운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미래의 불운에 대비할 수 있다.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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