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일상서 즐기는 ‘문화도시 부천’ 조성

“미래세대 평등하게 성장하도록 공공 문화예술 공간 활짝 열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20.01.02 13:1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경기도 부천이 2018년 제1차 법정 문화도시 예비주자로 선정됐다. 주민의 문화 복지를 위해 2001년 부천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시는 문화정책의 기본 틀을 ‘생활문화’로 잡았다. 부천문화재단도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생활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일상 속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생활문화도시의 문화도시 부천’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만나봤다. 1월 2일 현재 경기도 부천시는 문화체육관광부 1차 법정 문화도시 전국 7개 지역 중 생활문화부분으로 지정됐다.

▲2019 부천문화재단 시민사업설명회의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사진제공=부천문화재단

-부천문화재단을 어떻게 이끌고 있나
▶2021년은 재단 설립 만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다섯 명의 대표이사를 통해 기초문화재단으로써 필요한 토대를 쌓아왔다. 여섯 번째 대표이사로 출발한 저는 과거로부터 쌓아온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이어받아, 변화하는 문화지형에 따른 인식과 이해의 지평을 넓히면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문화정책의 초석 마련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천문화재단 경영에 있어서는 설립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싶었다.

사업의 방향성과 관련해 최근 5년간 ‘즐거운 관심, 소통과 공유의 문화’라는 비전을 설정했다. 부천시민을 위한 사업을 수행할 때 문화기본권, 문화민주권, 문화평등권을 바탕으로 ‘시민-마을-예술’을 잇고,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문화 제공’, ‘창의성과 감수성의 인간다움 보장’, ‘건강한 문화공동체의 지속’이라는 핵심가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사업기획은 ‘문화적 과정’을 놓치지 않으면서 휘발성 프로그램을 지양, 다음 단계로의 성장을 염두에 둔 설계가 되도록 노력했다. 생활문화지원 사업은 ‘부천시민의 문화력’ 증대에 기여하고, 나아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는 주체적 시민으로 성장, 주민의 손으로 동네문화를 만들고 가꿀 수 있는 토양 만들기에 초점을 두었다.

재단의 성인지감수성 교육은 사후 처벌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 실효성 있는 예방에 교육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예방지침을 만들고, 직장 내 성범죄 방지를 위한 자체점검을 실시, 고충심의위원회에 외부전문가를 위촉하여 사전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관리자 대상 특별교육으로 ‘위계에 의한 성희롱 예방교육 및 2차 피해방지를 위한 관리자들의 인식전환과 책임감 강화 교육’ 및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응력 제고를 위해 사건처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관리자 대상의 특별교육 실시’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안전한 직장문화 조성과 전 직원 인식개선을 위한 폭력예방교육 및 신입직원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은폐가 능사가 아닌, 인식 개선을 통한 경각심 제고뿐만 아니라 상호존중의 문화정착을 위함이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의 무의식적 언어습관이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역문화재단과 우리나라 문화정책(법제)의 관계는 무엇이라 보는가
▶지역문화재단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우리나라의 문화정책과 관련한 법 제정의 흐름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제정 이래 △문화산업진흥기본법(1999) △문화예술교육지원법(2005) △예술인복지법(2011) △문화기본법(2013) 지역문화진흥법(2014)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2014)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2015) △문학진흥법(2016) △국제문화교류진흥법(2017) 등 20여 개가 넘는 문화 연관 법률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관련법의 제정은 문화정책 영역에서 정책생산과 시행전담기관의 설립, 사업설계와 예산집행의 법적구조가 마련된 과정의 이해와 함께 국가의 문화행정제도 기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중 문화기본법(2013)은 국가발전과 국민 개개인의 삶에서 문화의 중요성과 가치를 사회 전반에 확산하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명시, 국민 개개인의 문화주권, 다양성, 창조성 실현을 법적으로 선언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지역문화진흥법(2014)은 ‘지역문화’의 중요성과 실체를 인정, 지역이 주체로서의 법적 근거를 가졌다는 의의와 지역문화재단의 설립과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문화정책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12월 10일 인권경영헌장 선포식을 한 부천문화재단 임·직원들./사진제공=부천문화재단

-그렇다면, 지역문화재단의 법적인 위상은 무엇이라 보는가
▶민법에 기반하여 지자체로부터 출연금을 받는 재단법인으로 출발한 지역문화재단은 1997년 광역단위의 경기문화재단 출범, 2001년 기초단위에서의 부천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이후 지역문화진흥법,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광역·기초지자체의 문화재단 설립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광역단위 16개, 기초단위 82개의 지역문화재단이 설립·운영되고 있다.

-부천문화재단의 거버넌스 실천은
▶지역문화재단은 출자·출연기관으로서 예산 및 사업 방향을 시의회로부터 최종 승인받는다. 이는 지역문화진흥의 시책과 사업수행의 협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민으로 향해야 하는 공공서비스 질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에는 향토 문화를 지켜온 지방문화원과 예총·민예총 등의 단체를 통한 예술가, 예술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예술가와 예술단체를 정책대상으로 결합했다면, 이제는 정책파트너로서, 예술생산자로서, 그리고 지역에 삶터를 꾸리는 주민이자 구성원으로 만나야 한다고 본다.

민과 관은 서로 다른 역할과 전문성을 갖고 각자의 목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각자의 자원을 나누고 이웃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자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다루는 ‘같은 종의 개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영양분을 나누는 네트워크를 이뤄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모두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지역공동체의 자산이기 때문에, 주저할 것 없이 서로 손잡고 협력해야 할 관계이다. 따라서 협치를 하는 이유는 서로 살아나가기 위한 것이다.

지자체로부터 출연금을 받는 기관으로서의 문화재단은 지역의 문화예술생태계를 만드는 데 당연히 기여해야 한다. 부천에는 부천문화원, 부천 예총, 부천 민예총과 다양한 생활문화동호회, 생활문화협동조합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조직과 예산이 독립되어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국제비보이대회 등이 있다. 각 조직들은 각각의 설립 목적에 따른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한다. 현재 정례적인 기관장 모임을 통해 서로의 결핍, 서로의 몰이해, 서로의 이해관계, 혹은 오해 등을 해소하는 대화부터 시작해 공동워크숍을 통한 타 기관의 이해, 공동홍보를 통한 시너지 효과, 행정적 어려움에 대한 공동대응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기관마다 사업 목적과 지향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협력 지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부천문화재단은 일상적인 시민향유 및 예술지원 사업을 적절하게 배치·연접시켜 일상과 생활 속에 밀착해 들어가는 문화사업을 펼침으로써 각 기관이 고유한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한다. 서로 다른 일을 통해 수평적으로 혹은 수직적으로 만나 문화와 예술의 풍성함을 삶속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협치의 좋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부천문화재단은 현재 생활문화지원센터와 부천시민미디어센터 운영을 포함해 소사생활문화센터와 오정생활문화센터 등 지역의 생활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천시민미디어센터는 시민미디어교육, 공동체미디어교육, 마을방송국 등의 사업과 더불어 한국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기관으로 지정받아 ‘판타스틱 큐브’를 운영한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독립영화를 219일 동안 상영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과 협력하여 영상미디어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바쁜 기관장 업무 속에서도 독서를 꾸준히 하는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최근 부천시 문화정책에서 ‘100년을 상상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올해, 우리는 ‘이제 100년을 상상하자’는 말을 많이 했다. 늘 중·단기계획을 수립하면서 가졌던 갈증, 문화분야의 일이 정량적으로 확인하거나 눈에 띄는 결과로 드러나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는 심증.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좀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해보고 싶었다. 통상적으로 ‘비전’이라고 하면 ‘장기적으로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관, 이념, 목표, 사업 전개방향, 전략 등을 포함해 조직구성원이 공유하는 경영 구상’이라고 이해한다. 재단경영의 기본에서부터 사업의 지향점까지 아우르기 위해 먼 미래 같은 100년을 상상하면 역설적으로 그 100년을 위한 1년, 5년, 10년의 계획이 오히려 더 꼼꼼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00년을 꿈꾼다는 것은 당대의 사고 수준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으로, ‘당대의 결여’를 끈질기게 도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100년의 문화비전을 만들어보고자 한 것은 ‘사람이 우선’이라는 현재의 자각이 시민권, 문화권의 강화와 시민주체성을 고민할 수 있는 생각할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고 미래를 탐험하기 위한 출발선을 얻기 위함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00년 뒤의 문화정책비전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금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살펴보게 된다. 조만간 초 고령화 사회가 된다고 하는데 문화예술영역에서 인구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재단에서는 지난 3년간 영·유아의 감수성 보호와 성장을 위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고 여겨 ‘0세 콘텐츠 개발 및 공연제작’을 시도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공연장 환경이 아닌, 다른 형태, 다른 콘텐츠, 다른 운영방식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면서 시도했다.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위한 초·중등 교육, ▲‘공생포럼(공공하는 생활문화-즐거운 공생포럼)’ ▲‘다행포럼(부천문화다양성)‘ ▲’꿈꾸는 아동위원회’ 등을 운영하면서 지속적으로 미래세대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결론적으로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닐 수 있도록, 지역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한 관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공의 문화예술공간을 활짝 열어 체험과 경험의 권리가 보장되는 첫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는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천시삼정동폐소각장 재생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자면
▶부천삼정동폐소각장 재생프로젝트(현재 명칭은 부천아트벙커B39이며 사회적기업 노리단이 위탁 운영)의 총괄기획자를 수행하면서 이를 진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역량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저는 비전 설정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화의 흐름, 그리고 동참하게 되는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조율과 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어떤 사안이 생기면 그 사안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의 감수성과 사안에 대한 전후좌우의 이해 및 분석,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도전이 요구되는 최종 판단력, 이러한 요소가 요구되는 역량이었다고 본다. 재단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에 대한 빠른 이해와 의사결정, 아닌 것에 대한 미련도 빨리 폐기하면서 새로운 도전과 응전에 더 눈을 돌렸던 것이 중요했다고 본다.

-자신만의 운영철학이 있다면
▶조직구성원과 함께 공정한 기준과 투명한 운영을 통해 건강한 노사협의, 윤리경영과 인권경영이 이루어지는 재단이어야 한다고 본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당연히 여기는 직장이 아니라 직원들 또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권리를 가진 자로서 존중이 이뤄지며, 복지가 보장되는 환경조성이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문성을 갖추고 인정받는 직원, 스스로 즐거워 진심으로 질 좋은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예술가를 존중하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직원들이 모여 비록 한정된 예산과 인력이지만 지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견인하는 기관이 되는 것, 이 이상 무엇이 있을까.

소통을 전제로 한 대화, 독점이 아닌 공유, 배타가 아닌 수용과 배려, 새로움에 대한 겁 없는 도전, 그리고 창의성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유하고 있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지역문화’ ‘지역문화발전’ 등의 용어에 갇힐 필요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을 잘 생각하면 이것이 곧 지역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단단하고 튼튼한 기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닐 수 있도록, 지역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한 관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공의 문화예술공간을 활짝 열어 체험과 경험의 권리가 보장되는 첫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ROFILE
부천문화재단 손경년 대표이사
-現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現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부천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상임이사
-문화체육관광부(구 문화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단 조사연구팀장·도시조성실장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초빙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신년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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