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C 커피아카데미 이강옥 대표, 커피향 싣고 농촌으로 향한 ‘순례자’

“농사일과 커피로 함께하는 새참 시간은 향기로운 나눔”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9.12.30 10:3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M.O.C 커피아카데미 이강옥 대표가 수장생들에게 커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사진=가현정 제공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서른여덟 번째 주인공은 전국으로 농촌봉사활동을 다니며 향기로운 나눔을 실천하는 M.O.C 커피아카데미 이강옥 대표다. M.O.C 커피아카데미는 서울 연신내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강옥 대표의 활동 무대는 서울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국의 구석구석 농촌마을로 향하는 날이 더 많다. 커피 향 가득 싣고 떠나는 농촌봉사활동은 마치 신의 은총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걸어가는 순례자의 모습을 닮았다. 농번기에 농촌을 방문해 일손을 거들고, 새참 시간에 향기로운 커피를 내려주는 이강옥 대표와 함께 나눔과 봉사의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강옥입니다. 저에 대한 소개를 거창하게 해주시니 부담감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생깁니다. 서울에서 오랜 시간을 일해왔지만 저는 사실 시골 촌놈 출신입니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 줄곧 일해왔습니다. 어느덧 도시에서의 삶이 더 길어졌지만 저는 여전히 빌딩 숲에서 마시는 커피보다 농촌의 논두렁 밭두렁에서 마시는 커피가 더 좋은 사람입니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다양한 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요리와 커피로 봉사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대단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저에게 있는 작은 재능을 활용해 즐거움과 보람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것뿐입니다.
하시는 일이 많은데 봉사할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어렵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커피클래스와 요리클래스, 핸드드립 자격증 과정과 바리스타 1. 2급 자격증을 대비하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직업체험사, 청장년 시니어 인생2막 하프타임 강사로 활동하며 성남시 청소년재단에서 요리와 바리스타 분야 진로체험 강사로 활동합니다. 월드커피바리스타협회 심사감독관, 바리스타2급 검정을 담당하면서 전국의 다양한 기관 및 단체에서 강의하고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시간은 결국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면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이러한 말이 유능함을 드러내는 또 다른 표현처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무능함의 극치를 드러낼 뿐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쩌면 시간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상에서 떼어낸 다른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단순히 시간을 나누고 계획을 세워 사용하는 방식과 다른 혁신적인 개념입니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시간에 향기를 부여하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나만의 꿈과 목표를 이루는 시간이야말로 의미 있는 시간이자 향기로운 시간입니다.
▲M.O.C 커피아카데미 이강옥 대표/사진=가현정 제공

-향기로운 시간을 나누기 위해 농촌봉사활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우선 향기의 특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향기는 결코 독점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방 안에 꽃을 두면 그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내가 사 온 꽃이니까 나 혼자만 향기를 누리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방 안에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꽃향기를 나누게 됩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도 커피 향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입니다. 작은 꽃 한 송이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향기를 나눠주듯이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다면 노동의 고달픔 속에서도 큰 휴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독점이 되지 않는 향기의 속성과 우리의 인성을 연결해보면 더 의미 있는 봉사가 됩니다. 좋은 향기가 공간을 채우고 흘러 넘쳐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곧 풍요와 나눔의 시간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농촌에서 바리스타의 원두커피를 마시는 것을 꺼리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제가 어릴 때 지내던 농촌을 떠올리면 원두커피보다는 큰 대접에 설탕과 프림을 가득 넣은 커피가 어울립니다. 시골집에 손님이 오시면 대접하는 귀한 커피를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귀농을 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건강에 좋다며 설탕 없이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농촌에 커피 전문점이 없어서 그렇지, 갓 내린 신선한 커피를 드시고 나서는 다들 좋아하십니다. 맛과 향도 좋지만 건강에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해드리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커피 봉사만 하셔도 되는데, 실제 농사를 짓는 분처럼 돕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관광객과 순례자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제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겁니다. 농촌관광이 대세로 떠오르는 요즘이지만 제가 농촌에 갈 때는 언제나 순례자의 자세를 가지려고 애씁니다. 관광객은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지만, 순례자는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내려놓고 헌신하는 것에 목적을 둡니다. 또한 순례자는 관광객과 달리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는 사람입니다. 농촌의 경치를 감상하고, 좋은 농산물을 구매하고 즐거운 체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농사일을 돕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농번기에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함께 농사일하고, 휴식 시간에 커피 봉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농사일도 힘든데, 휴식 시간에 쉬지 못하고 봉사를 하는 것이 힘들진 않나요

▶몸이야 조금 힘들 수 있지만, 서울에서 바쁘게 생활하다가 이렇게 시간을 내어 농촌봉사활동을 하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야말로 치유의 시간이 됩니다. 강의만 주로 하다보면 정신적 노동 강도만 커지기 때문에 육체적 노동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신과 신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을 이루는 방법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현대인의 불안과 우울 등 많은 정신적 질병이 노동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차 안에 커피를 가득 싣고 농촌봉사활동을 다니는 것이 서울에서의 바쁜 일상을 더 잘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예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한 적은 없으세요

▶고향집에 자주 내려오기 때문에 귀농 귀촌은 아니더라도, 반농 반촌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많고, 전국을 다니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 섣불리 귀농과 귀촌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늘 고향마을과 농촌에 가 있기 때문에 농촌봉사활동으로 커피를 나누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가현정 작가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한 일상을 일구고 싶습니다.

-해외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는 것 같던데요
▶최근에는 필리핀을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한국에서 많은 자원봉사자가 오고 여러 단체가 와서 돕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필리핀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부유한 나라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전반적인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상하수도 시설도 미비해서 오폐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점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6.25전쟁을 겪을 때 참전국으로 많은 필리핀 병사가 한국에 와서 도와줬다고 합니다.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 받은 그 이상으로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교육환경이 열악해서 미취학아동도 많은 이곳에서 저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작은 나눔이라도 함께하려고 합니다.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애국심과 감사함이 커지기 때문에 제가 나눈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습니다.

-농촌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얼굴 피부색도 하얀 남자가 농사일을 거들면 얼마나 하겠냐는 미덥지 못한 시선도 많이 받았습니다. 농사일 바쁜데 방해나 하지 말라면서 일하는 것을 만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할 수 있다는 백 마디 말보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보여드리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전매력의 힘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기대가 낮아서 만족이 높다고 할까요? 제가 모든 분야의 농사일을 잘하는 것은 아님에도 항상 칭찬과 격려를 받는 비결은 저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농사일 돕는 모습을 보면 타고난 일꾼처럼 보입니다

▶최고의 칭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사실 제가 타고난 일꾼은 아니지만 일하는 환경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일 머리가 후천적으로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머리도 중요하지만 일 잘하는 요령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절감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끈기와 성실이라는 두 가지 태도만큼은 잘 갖추어진 사람입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면 그 어떤 일도 잘해낼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요리는 여성이나 하는 일, 농촌사람들은 원두커피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당장 버려야 할 편견과 선입견일 뿐입니다.

-앞으로의 농촌봉사활동에 대한 비전을 말씀해주세요
▶꿈의 씨앗이 되어 우리나라 농촌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나눔과 봉사의 향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씨앗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땅에 심어져 싹을 틔우고 자라면 굉장히 큰 나무와 풍성한 열매를 맺는 원리를 생각합니다. 농촌에서 일하는 건 이렇듯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꿈꾸게 해줍니다. 도시 속 높은 건물에 갇혀 지내는 일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지금은 저 혼자 훌쩍 떠나 농촌봉사활동을 하며 전국을 다니고 있지만, 앞으로는 저에게 커피와 요리를 배운 청소년들과 함께 향기로운 나눔의 순례를 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농촌봉사활동을 통해 자연을 닮은 성장과 변화의 열매를 맺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봅니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서울에서 열심히 강의하고 일하며 농촌을 향해 향기를 가득 꾸려 떠날 채비를 합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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