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29만원’ 알츠하이머 전두환의 ‘굿샷’, 돈은 누가 냈나

‘라운딩 현장 급습’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인터뷰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김평화 기자 2019.12.11 10:2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전두환씨가 지난달 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공을 치고 있다. 사자명예훼손 재판의 피고인인 전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병 등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사진=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제공. 동영상 갈무리
‘탁!’

안정적인 드라이버 스윙에 걸린 형광색 골프공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가을하늘을 갈랐다. 포물선을 그린 공은 페어웨이 한가운데 잔디 위에 안착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88세, 전두환 씨가 친 공이다. 전 씨는 11월 7일 낮 12시쯤 강원도 홍천 S골프장에서 호쾌한 드라이버샷을 선보였다.

정교함이 필요한 어프로치샷도 안정적이었다. 홀컵을 40~50m 정도 앞에 둔 전 씨의 어프로치샷은 그린에 안착했다.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서울 서대문구 구의원)가 현장을 급습했지만 전 씨는 자신의 플레이를 위해 공의 위치를 살펴봤다. 남자 동반자에게 퍼터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이 동반자는 박지만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의 회사인 EG 로고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임 부대표 일행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퍼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카트로 이동하는 전 씨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묻어났다. ‘골프광’으로 알려진 그의 골프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 씨의 골프 라운딩 장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한 임 부대표는 지난달 10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인터뷰에서 “전 씨가 드라이버 티샷을 할 때 2번홀 언덕 밑에 숨어 공이 날아오는 걸 지켜봤는데 멀리서 보면 절대 88세 노인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한 사람의 스윙이었다”며 “알츠하이머는 당연히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전두환의 라운딩, 임한솔의 코스 공략

전 씨가 골프장 코스 공략을 고민할 때 임 부대표도 나름의 전략을 짰다. 라운딩 경험이 없는 임 대표는 정장 차림으로 진입했지만 전 씨에게 다가가기 전까지 골프장 측의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출발 지점에서 카트에 올라탄 전 씨 일행을 지켜본 임 부대표 일행은 ‘우회로’를 택했다. 라운딩에 나서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골프장 내 코스를 이용할 순 없었다. 골프장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50m 정도 산을 올랐다. 2번홀 그린 근처에 잠복해 전 씨가 1번홀을 마무리하고 오기를 기다렸다.

20여분 뒤, 임 대표 일행은 언덕에 숨어서 전 씨의 드라이버샷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전 씨와 곧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커졌다. 숨을 죽인 채 그린 주변으로 전 씨가 다가서길 기다렸다. 결국 전 씨의 샷 장면을 촬영하고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임 부대표는 여러 제보와 언론보도 등으로 전 씨의 ‘패턴’을 파악했다. 전 씨가 이날 라운딩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씨 자택 앞에서 잠복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오전 9시 23분 전 씨를 태운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연희동에서 출발했다. 

이 차는 1시간 20여분 뒤 홍천 골프장에 도착했다. 골프장의 의전은 이례적이었다. 캐디들은 ‘90도 인사’를 했다. 골프장 직원 2명도 함께 인사했다. 전 씨의 아내 이순자 씨 등 10명 정도가 카트 두 대를 나눠 타고 함께 이동했다. ‘황제골프’로 부를 만했다.

임 부대표는 “주변에서 주목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엄청난 위세였다”며 “수행인력까지 붙고 현직 대통령이 와서 골프를 치는 것 같은 의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묻는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질문에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며 답변하고 있다./사진=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제공
“너 군대는 갔다 왔냐?”

전 씨의 라운딩 현장을 급습한 임 부대표는 전 씨와 10분 정도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 씨는 임 부대표에게 “너 군대는 갔다 왔냐”고 질문했다.

임 부대표는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실권자가 아니냐고 추궁하니 ‘네가 군체계에 대해 뭐 아느냐’ 이런 뉘앙스로 한 말 같다”며 “무력을 동원한 쿠데타로 군 지휘체계를 망가뜨린 장본인인 전 씨가 군체계에 대해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씨는 여전히 본인이 불법 무력 동원 쿠데타를 일으킨 것에는 일말의 반성이 없었다”며 “그런 전 씨가 감히 군체계를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 재산 29만원’ 전두환, 라운딩 비용은 누가?

전 씨는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손꼽히는 세금 고액·상습체납자면서도 갚을 돈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날 라운딩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임 부대표는 골프장 관계자로 추정되는 동반자에게 “계산은 전두환 씨가 하냐”고 두 번 물었다. 첫 번째 질문에 관계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재차 같은 질문을 하자 “나가 이 개XX아”라는 욕설이 돌아왔다. 

임 부대표는 “전 씨가 계산을 했다고 하면 재산이 없다는 사람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가 문제 되고, 골프장에서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본인에게 화살이 향할 테니 대답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전 씨의 아내 이순자 씨의 욕설도 나왔다. 이 씨는 다른 여성 동반자(골프장 관계자 아내로 추정)와 함께 앞 카트에서 라운딩을 즐기고 있었다. 임 부대표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더니 이순자 씨가 심한 욕을 하면서 고성을 질렀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임 부대표를 쫓아낸 이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임 부대표가 멀어질 때까지도 크게 소리를 질렀다는 전언이다.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5.18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전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추징금 추징,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서대문 구의원’의 소명

임 부대표는 지난해 서대문구 구의원으로 당선됐다. 정의당 후보로 세 번째 출마한 뒤 당선, 삼수에 성공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31만 서대문구 구민을 잘 모시겠다고 하는데 전두환 이 사람만큼은 자신이 지은 죄를 사과하지 않아 모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 씨가 죗값을 물게 하는 게 진보정당 최초로 서대문에서 당선된 제가 기꺼이 담당해야 할 소명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 씨 라운딩 영상을 촬영한 이유이기도 하다.

임 부대표는 구의원이 된 후 전 씨의 세금 체납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임 부대표는 “전 씨는 세금 수십억원을 안 내고 있는데 일반인이었으면 당장 가택수색을 받고 재산이 압류당했어야 하지만 징수팀에서 가택수사 안 한 것이 문제라며 전직 대통령의 특혜가 부당하다는 걸 지적했다”고 말했다. 

임 부대표의 지적 이후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전 씨 가택 수사에 나섰다. 재산도 일부 압류했다.

이후 전 씨 라운딩 관련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 씨 뒤의 팀에서 라운딩하던 사람 등의 제보였다. 임 부대표는 관련 정보를 모았다. 목격담 등을 듣고 패턴을 연구했다. 이번 라운딩 현장 급습은 첫 열매인 셈이다.

임 부대표가 정치인으로 활동한 건 10년이 넘었다. 17대 국회 고 노회찬 의원실 보좌관으로 국회에 발을 들였다. 19대 국회에선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현 대표)와 함께 일했다. 임 부대표는 “맡은 바 일에 충실하겠다”며 내년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지역구민이나 당의 요구가 있다면 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1981년 4월 10일 서울특별시 출생
정의당 서울특별시당 서대문구위원회 위원장
제8대 서대문구의회 의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