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용퇴론’은 태풍일까 미풍일까

여-수도권, 야-영남 집중… 전문가 “물러날 이유는 없어”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9.12.03 09:2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지방자치체단체장은 3선 제한이 있는데 국회의원은 왜 없나요?”
21대 총선에 나가는 후보자 A씨는 이렇게 물었다. 그는 “대통령은 임기가 5년이고, 지자체장은 3선 제한이 있는데 왜 국회의원만 그 임기 제한이 없느냐”고 지적했다.

총선이 다가올 때면 다선 국회의원들은 ‘청산의 대상’이 되곤 한다. 특히 국회의원 3선 이상이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다. 3선 이상 지목의 근거로 ‘지자체장 3선 연임 제한’이 제시된다. 이용주 의원이 지난 2017년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다선금지법’으로 불린다. 국회의원 선수를 3선으로 제한하자는 게 골자다. 이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현행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를 4년, 연임은 3기로 규정하고 있음. 반면 국회의원은 4년 임기에 연임에 제한이 없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는 2006년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임 횟수를 3번으로 제한한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을 결정했다. 지자체 공무원이나 지역 세력을 이용하거나 인사권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지자체장은 소속 공무원 및 지역 지지세력을 이용하거나 인사권을 비롯한 많은 권한을 통해 선거에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 장기집권의 가능성이 높고 이를 통해 형성된 사조직이나 파벌 등이 엽관제적 인사로 연결돼 공무원 사기 저하, 부정부패 등이 이뤄질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지자체장이 가지는 인사권이 3선 이상이 되면 사조직이나 파벌이 생겨 공직사회에 문제가 생긴다는 판시다.

지자체장들은 적게는 수천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2조원대의 예산을 집행한다. 서울시장의 경우 매년 24조4000억원의 예산 집행권을 갖고 있다. 공무원 1만500여 명에 대한 행정 권력, 11개 출연기관 수장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다.

다선 의원, 지역구 대물림하기도

대부분의 국민은 ‘국회의원 3선 이상 제한’에 대해 찬성한다. 지난 1월 ‘국회를바꾸는사람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국회의원 3선까지만 허용하는 선수제한제 도입에 대해 68.4%가 찬성한다고 나왔다. 반대는 20.7%였다. 국민은 정치가 개혁하기 위해서는 속해 있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선 의원이 터줏대감으로 있는 지역구는 정치 신인이 뚫기 힘들다. 다선 의원은 지역구 내에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로 거론되는 것은 정치적 대물림이다. 다선 의원이 정치를 그만두고 그 아들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선친이 국회의원을 지낸 20대 국회의원은 총 14명이다. 다선 부모가 다선 의원으로 이어지는 사람은 네 명이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의원(3선·부산 금정구)은 선친 김진재 전 의원(5선·부산 동래구,금정구갑)이다. 이종구 자유한국당 의원(3선, 서울 강남구갑)의 선친은 이중재 전 의원(6선, 전남 보성군, 서울 강남구)이다. 정우택 한국당 의원(4선, 충북 진천군 음성군,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선친은 정운갑 전 의원(5선, 충북 진천군, 서울 성동구, 서울 강남구)이다. 정진석 한국당 의원(4선, 충남 공주시 연기, 부여군·청양군)의 선친은 정진모 전 의원(6선, 충남 공주군·논산군)이다.

3선 이상 의원, 與-수도권 76%, 野-영남 43% 몰려 있어

각 정당마다 ‘3선 용퇴론’이 불고 있다. 내용은 다르다. 우선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수도권 중진의원’에게 시선이 쏠린다. 민주당의 3선 이상 의원은 총 38명이다. 이들 중 서울은 14명(36%), 경기는 13명(36%) 인천은 2명(5%)다. 3선 이상 의원 중 76%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는 것이다. 수도권 국회의원 정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한국당 3선 이상 수도권 의원 비율(42%)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민주당 3선 이상 의원은 충청에 5명(13%), 대구와 부산, 전북, 제주에 각각 한 명씩 있다.

민주당 3선 이상 의원이 수도권에 많은 이유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수도권 열풍이 분 덕도 크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총선 때 서울과 경기, 인천에서 82석을 확보했다. 

이철희 의원이 지난 10월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86세대 용퇴론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86세대는 본래 ‘386세대’로 30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1960년대생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부분 17대 국회에 들어왔다. 이들의 지역구는 대부분 수도권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5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386세대가 2000년쯤부터 국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얼추 20년은 했다. 한 세대를 보더라도 어지간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러
서면 20~30세대가 들어와서 새로운 발상과 문제를 제기하면 한국 정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민주당에서 불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은 이해찬 대표와 백재현·이철희·표창원 의원이다. 여기에 수도권 중진 의원인 박영선, 원혜영 등이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다고 알려졌다. 제윤경, 최운열, 김성수 의원 등도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에 나설 현역 의원 평가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맡는다. 평가위는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3일까지 49일 동안 진행된다. 평가영역은 의정활동(34%)·기여활동(26%)·수상실적(10%)·지역활동(30%) 등 크게 네 가지다. 평가위는 12월 초 지역 유권자 안심번호 여론조사 등으로 내년 1월 초 현역 의원 중 ‘하위 20%’를 가른다고 밝혔다. 하위 20%에 선정된 이들은 공천 심사와 경선에서 20% 감산 페널티를 받는다. 여권 내 관계자는 “평가영역을 보면 중진에게 불리한 게 많다”라며 “의정활동을 초·재선에 비해 많이 하지 않아 하위 20% 내에 포함될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수도권 3선 이상·86세대에 쏠리는 눈에 우상호 의원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1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우리(86그룹)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돼 있다고 말하는데
모욕감 같은 것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그는 “보수가 (86그룹을)공격하는 것은 힘들지 않은데 같이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같은 지지자들이 ‘기득권층화되어 있는 386 물러나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런 기사들이 나
오는 것은(힘들다)”고 전했다.

한국당의 경우에는 3선 이상 의원이 영남권에 15명(43%)있다. 경남에서 10명(29%), 경북에서 5명(14%)이다. 서울은 4명(11%), 경기는 7명(21%), 인천은 4명(11%), 충청도는 4명(12%), 강원은 1명(3%)이다.
김태흠 의원이 ‘영남·서울 강남 3구 3선 의원 이상’에게 차기 총선에서 험지에 나갈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권과 서울 강남 3구 등을 지역구로 한 3선 이상 의원들은 정치에서 용퇴를 하시든지, 당의 결정에 따라 수도권 험지에서 출마해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당 기반이 좋은 지역에서 3선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졌다면, 대인호변(大人虎變)의 자세로 새로운 곳에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자세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라고 강조했다. 당 안
팎에서 ‘영남 다선 물갈이’ 등 주장이 물밑에서 나온 바는 있으나, 현역 의원이 실명으로 지도부에 이를 공개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1일 한국당은 내년 총선 관련 인적쇄신안을 발표했다. 박맹우 한국당 총선기획단장과 이진복 총괄팀장, 전희경 의원은 지난달 21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대정신과 국민적 염원을 담아 21대 총선 시 현역 의원 절반 이상을 교체하는 개혁공천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역 30% 컷오프·최대 50% 물갈이’한다고 밝혔다. 한국당 지역구 의원 91명 중 1/3 수준인 30명 정도가 컷오프 대상이 될 전망이다. 또 비례대표를 포함해 현역 의원 절반 이상을 교체한다는 방침을 내건 것이다.

▲김태흠 의원이 한국당 3선 이상 중진 의원을 겨냥, 험지에 출마하라고 언급하고 있다
전문가 “3선 이상 용퇴론? 정치학적 근거 없어”

전문가들은 ‘3선 이상 용퇴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정당이 3선 이상 물갈이를 하려는 이유는 국민들이 바라기 때문인데 정치학적인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17대 이후 총선에서 평균 물갈이 비율이 50%가 넘었다.

그렇다고 우리 정치가 바뀌었느냐”라며 “물갈이 요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람이 바뀐다고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50대가 물러나고 40대가 들어오면 더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물갈이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에서 정치신인이 가장 많이 들어갔을 때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워터게이트 베이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진출했을 때인데 그때 물갈
이 비율이 33% 정도였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정치 신인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는 “3선 이상 의원이 물러날 이유가 없다”며 “초재선들이 더 문제”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초선, 재선 중에 존재감이 드러나는 의원이 몇이나 되느냐”라며 “3선 이상
은 국민의 선택을 그만큼 받은 만큼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는 양질의 정치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86세대 물갈이론’에 대해 “86세대에서 좌장이라고 불리는 몇몇 사람만 기득권이 된 것”이라며 “전체 86세대가 물러나야 하는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86세대가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인위적인 프레임이다”라며 “86세대가 아닌 사람들이 프레임 싸움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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