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Julia H. Moon)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발레 선진국 춤사위… ‘영원한 지젤’

“작은 지역단체 육성하면 생활예술 자리매김, 한국 발레도 성장”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9.11.07 11:0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한국의 1세대 발레리나로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커튼콜을 7번 받은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나 문훈숙(줄리안 문). 무대에서 내려온 후 문 단장은 발레의 최정상 국가인 프랑스에서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세계 유수의 국제발레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한 그가 이끄는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세계는 물론 한국발레의 역사를 이끌고 있는 그를 만나 한국발레의 발전 제언을 들어봤다. 또한 최근 성공리에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내린 창작발레에서 지금은 고전이 된 <심청>과 <춘향>의 리뷰도 함께 담았다.
▲문훈숙 단장 프로필./

-사람 문훈숙은
▶욕심이 없다. 어디 나서고 그런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꿈이 아빠 비서가 되는 거였다. 뒤에서 도와주고 싶어 하지 앞에 나서는 스타일은 아닌데, 운명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다. 솔직히 좀 조용히 뜨개질이나 하고(웃음), 그런 스타일이다.
-동양인 최초 마린스키극장 무대에 올랐을 때를 떠올리면
▶발레리나에게는 전설의 무대이다. 정말 당시만 해도 학생 시절 때 가장 유명하고, 세계적인 무용수들과 전설의 안나 파블로바 등 전설적인 무용수를 배출하고 그런 무용수들이 춤췄던 무대였기 때문에 발레리나한테는 성지와 같은 무대이다. 러시아 극장의 무대가 한국과 달리 바닥이 15도 경사가 졌다. 평평한 한국 무대에 서다가 경사진 곳에서 춤을 추니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1막에서 토슈즈 신고 뛰는 동작이 있는데 공연 전날까지 체중이 앞으로 쏠려(웃음) 힘들었다. 그리고 당시 주연과의 호흡도 좋았고 커튼콜이 30분간 이어졌었다.
-‘지젤 그 자체’라는 찬사를 유럽에서 들었다
▶헝가리의 춤 전문지에서 나왔던 평이었던 것 같다. 헝가리가 오페라 발레 역사가 깊다 보니깐 저를 그렇게 봐주신 것 같다. 감사할 따름이다. 더 이상의 어떤 평이 있을 수 있나! 그렇지만 그런 평을 받았다고 해서 제가 정말 세계 최고의 지젤이라 스스로 자부하거나 그러진 않았다.(크게 웃음) 옛날 영상을 보면서 이건 더 잘했어야 되고, 이건 좀 더 이렇게 했으면 하고 느낀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나
▶가끔씩 무용수들이 토슈즈 신고 준비하는 것을 보면 저걸 안 해도 되어서 진짜 다행이라(안도의 한숨) 생각한다. 이제는 무대 막 올라가기 5분 전 공포심의 떨림은 누구한테도 겪으라고 하고 싶지 않다. 공연할 때마다 내가 왜 발레를 했을까. 이번 공연이 끝나면 당장 그만둔다고 항상 다짐하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고 나면 제일 먼저 연습실부터 찾는다.(웃음) 지금은 준비하는 무용수들 보면서 저 고통을 안 겪어도 돼서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것과는 다르게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공연장의 무대장치, 조명, 음향, 의상 등이 행여나 잘못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긴장감은 여전히 객석에 앉아서 느끼고 있다.
-예술경영자 문훈숙은 어떤 사람인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 <굿 그레이트(위대한 기업)> 같은 책도 읽고 배우려는 자세, 열려 있는 자세,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듣고 또 조언도 받고 항상 그렇게 한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항상 노력하고 귀를 열어놓는다. 제가 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경영학을 배운 것이 아니기에 공과 사가 분명하고, 항상 공적인 입장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초점을 둔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지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조직 내에서는 그 조직의 맥박을 느껴보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그리고 균형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커먼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9년 발레 '심청'이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11일~13일까지 올려진 가운데 강미선 수석무용수의 솔리스트./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파리 공연을 다녀왔다. 발레단의 공연은 만족스러운가
▶‘팔레 데 콩그레’에 6월 달에 다녀왔다. 발레단 공연을 보면서 저는 감동을 받기보다는 실수만 눈에 들어와 지적을 많이 하는데 그 공연을 보면서 UBC에 감동받았다. 제 목표는 문훈숙이란 사람이 발레단 공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도 문 단장이 있을 때 보다 더 좋더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단장이 없어도 잘하는 단체가 꿈이다. 그렇게 35년을 달려오니깐 이런 날도 있다. 그리고 해외 공연도 이제 적자를 안 보고 여기저기서 발레단을 초청하는 때도 올 것이라는 가능성도 보았다.

<심청> 83년 발레단이 창단하고 86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서양의 발레를 기반으로 한국적인 춤과 함께 고전의 스토리텔링이 조화를 이뤄 인상적이었다. 정리하면 1막의 스펙터클, 2막의 드라마틱, 3막 우아함을 모두 갖춘 공연이다. 1막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심청이 임당수에 빠지기 직전 보여주는 스펙터클함에 있다. 임당수에 배가 이르자 천둥과 파고는 소리와 영상으로 극적인 효과를 더하고 무대 양쪽 사이드에 걸린 큰 돛은 바통에 걸려서 위아래로 파고를 만난 후 출렁인다. 선장과 심청의 파드되 후 심청은 실제로 무대 밖 배 아래로 몸을 던지며, 임당수에 빠진다. 이어 임당수에 빠지는 영상으로 시작한 2막은 화려한 용궁과 용궁좌, 화려한 의상의 아바타 같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이어지는 군무 그리고 용왕과 심청의 파드되와 심청의 솔로 중에 왈츠풍의 음악이 흐른다. 심청은 용왕의 청혼을 거절하고 연꽃좌에 몸을 숨기고 연꽃잎 속으로 사라지며 드라마틱한 2막은 마무리된다. 3막의 ‘우아함’은 단청의 지붕이 보이는 왕궁에 연꽃 가마를 타고 심청이 나타나 우아함을 더한다. 심청은 하얀 옷을 입고 솔로를 추다 효심에 감동한 왕이 청혼을 하고 전통혼례복에서 왕비 옷으로 갈아입고 왕과 파드되를 춘다. 아버지 심학규를 찾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객석에서는 눈물을 닦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19년 10월 4일~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올려진 발레 '춘향' 1막의 초야 장면에서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춘향), 블라디미르 쉬클리야로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몽룡)./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춘향> 2006년 초연한 공연으로 1막 몽룡과 춘향의 만남, 과거시험, 2막 몽룡과 춘향의 재후로 구성됐다. 이번 <춘향>은 전곡 24곡이 차이콥스키 곡으로 이전 공연에 비해서 음악적 완성도를 더 높였다. 푸른색과 핑크빛 조명 디자인으로 춘향과 몽룡의 파드되 부분을 자연스럽게 살렸다. 이별을 암시하는 겨울의 회오리를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군무로 표현하고 그 속에서 춘향과 몽룡은 서로 위치가 엇갈리는 춤을 춘다. 장원급제 무용수의 솔리스트 군무 변사, 생일 파티의 기생들 군무는 소고와 천, 갓 등으로 단조롭지만 디테일을 살려 연출했다. 백미는 암행어사 출두와 몽룡과 춘향의 재후 파드되는 핑크빛 조명에 꽃잎이 떨어지는 마무리로 수미상관을 지켜 연출했다. <춘향>은 고전의 창작이지만 한국의 멋을 단아하게 살린 누구나 공감 가능한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35년 동안 발레단을 이어오게 한 원동력은
▶문선명 한학자 총재께서 설립한 국내 최초의 민간 발레단 비전이 ‘예술을 위하여 그리고 예술을 통해 위하는 삶’이거든요. 상업적인 것이 아니고 발레단의 창단 때부터의 정신이기 때문에 ‘예술이 나를 빛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예술을 빛내기 위해서 예술가로서 혼신의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투입하는 정신’, ‘그 다음에 그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이 예술로 치유받고 그 예술을 통해서 내가 세상에 무엇인가 기여하고 위한다는 그 정신’이 원동력이며, 발레단이 있는 이유이다.
-한국발레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나
▶유럽에서 발레는 귀족들의 생활예술에서 시작되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 발레가 우리의 생활예술로 자리 잡고 지방에도 좋은 공연장이 많이 생겼는데, 규모가 작더라도 시작해야 한다. 미국은 50개 주에 지역발레단이 있는데 제가 몸담았던 발레단 중 하나가 워싱턴 발레단이었는데 단원이 21명이었다. 뉴욕에 있는 또 다른 소규모 발레단은 12명이다. 공연장이 지원하거나 시가 지원을 해 이런 지역발레단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워싱턴 발레단처럼 실력있는 단체 출신들이 지역발레단 단장으로 또 대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양성하며, 선순환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한국발레가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의 지역단체들도 미국처럼 처음에 시작할 때는 수준이 낮을 거다. 지원해주고 격려해주면 그 단체가 5년 후, 10년 후, 15년 후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작은 단체들은 사실 해외 공연 가기가 더 좋다. 기발한 안무자가 있으면. 그런 기발한 안무자들이 탄생되는 것도 사실은 우리 같은 큰 단체보다 작은 단체가 더 실험적인 것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인지도가 있는 단체와 작은 단체를 지원할 때 공정성은 지키면서 별도의 인덱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호두까기 인형>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발레의 입문 작품이 <호두까기 인형>이다. 그 공연을 볼 때는 관객석을 둘러보는데 여성과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닌 아버지, 어머니 온 가족이 빠져들어서 보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족단위로 감동적인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연을 올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새로운 관객들이 입문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저희들한테는 굉장히 큰 효자상품이기도 하고, 발레 대중화에도 한몫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해마다 연말에 오셔서 <호두까기 인형>을 봐야지 안 보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하신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現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現 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現 선문학원 부이사장
영국 로열발레학교
모나코 왕립학교
미국 워싱턴 발레단
2000년 모스크바 국립예술대학 무용예술학
명예박사학위 수여
1989년 동양인 최초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키로프
발레단 객원 주연(커튼콜 7번)
2000년 모스크바 민족회의 명예 친선대사 임명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hoi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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