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갈등? 민주주의 자연현상”

[이슈플러스-이원재 카이스트 교수]국민통합은 낡고 관습적 개념, 통합 아닌 공존의 양식 교육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19.11.04 18:5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사진=더리더

최근 각종 현안을 두고 보수와 진보를 지지하는 세력이 각자 거리로 나와 갈등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회적 갈등의 이면엔 무엇이 있을까. 일부 사람들의 말처럼 나라가 망하려고 분열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정치적인 패러다임의 등장인지 어리둥절하다. 이 문제를 진단해보기 위해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시카고대학교에서 Sociology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에 와서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내다 현재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예술, 역사, 대중 음악, 문학, SNS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위와 성과에 대한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또 10월 3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는 ‘SBS D-Forum’에서 ‘생각의 차이와 착각을 넘어: 대립에서 화합으로’라는 주제로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보수와 진보의 분열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원래 존재했던 패러다임인데 최근 이런 패러다임의 갈등이 더 커지는 모습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갈등이 만연한 것처럼 보인다. 해방직후에는 친탁·반탁을 둘러싼 세력이 싸웠다. 우리 세대 교과서에 나오는 시위대의 사진처럼 말이다. 이후 거리 투쟁이라는 건 국가에 대항해서 학생이 시위를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이념을 가진 시민들이 한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해방 공간의 풍경이 재연되고 있다. 반세기만 벌어진 일이다. 예전과는 시위의 양상도 사뭇 다르다. 체포를 각오하고 합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국가에 대항하던 때와는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를 두고 갈등이 심해졌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민주화가 심화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히려 국민이 통합된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1년에 한 번씩 조사,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나라로 나온다.

-사회 갈등을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갈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집회 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 돈이 중요하다. 비용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순간 갈등 자체가 제도화된다.
갈등의 플랫폼에 기생하는 정치 자영업자, 숨어서 인터넷 댓글을 쓰는 사람 등이 액티비즘(Activism, 활동주의)을 유사 산업의 형태로 제도화한다. 댓글 조작 같은 온라인 선동을 하는 사람들 외에도, 서울 시내 특정 장소를 몇 년씩 점유하는 시위 형태도 이 같은 제도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법과 제도 안에서 갈등이 제도화되는 건 실질적인 민주화의 불가피한 결과들 중 하나다. 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보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부정적이다. 길거리에 몇 십만 명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익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건 너무 낭만적인 가정이다. 이익을 보는 특정인, 특정 집단은 갈등을 위한 갈등을 만들어내기 충분한 사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갈등의 표출은 정치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시나

▶한국 사회는 전쟁 이후 가난하던 시절에도 문자 해석에 대한 수준이 높은 나라였다. 브루스 커밍스(미국 내 저명한 한국학자,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의 책에 보면 전쟁 직후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교육 수준은 낮은 동네 공원에서도 사람들이 신문을 보면서 토론을 하더라는 대목이 있다. 과거 세대를 초월해 종이신문을 보며 정치 이야기를 하던 게 깊은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고, 이 전통 자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시대의 특성도 있다. 인터넷 게시판, SNS, 신문 댓글 같은 직접 의사 표현 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ICT 플랫폼은 의사표현과 참여의 범위와 규모를 급격히 키웠으며, 공감과 경쟁의 재미 또한 그만큼 커졌다. 인터넷 신문의 정치 섹션 열독률이 스포츠 연예면보다 높은지는 확인해봐야겠지만 새로운 기술적 환경에서 정치가 유희적 속성을 강화하면서 관심과 참여가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대중이 Efficacy(효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거다. 나의 정치적인 발언과 참여가 세상의 변화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경험들이 누적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주기적으로 그런 경험들이 누적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탄핵정국과 문재인 당선 같은 반전 드라마를 겪으면서 개인의 참여가 뭔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진다는 걸 20년간 학습했다. 모든 나라가 이런 걸 경험하는 건 아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가지는 특이함이기도 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정치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4·19 이후 계속 바뀌고 있다. 효능감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매우 남다르다.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사진=더리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런 사회 갈등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와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나
▶사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면 미국 도시들에선 대로를 사이에 두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서로 야유하고 시위한다.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을 정도로.
유럽에서 극우 정당들의 득세 과정을 보면, 사회적·정치적 소수자들에 대한 대중적 배제를 갈등적으로 고양시켜 정권을 잡은 경우가 많았다. <21세기 극우>라는 연구서에 따르면 이 같은 갈등적 배제 전략은 처음엔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연정이나 캐스팅보트 기회를 잘 이용하면 유력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우리 공화당이 뭘 하겠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정치적 국면에 따라 자기 몫을 찾을 것 같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일과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도 이런 극우 소수 정당이 의회제도를 이용해 다수당과 연정하는 모습들이 나오니까 화들짝 놀라서 연구를 시작했던 거다.
같은 사회 일원을 비난하거나 혐오하면서 갈등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건, 한국에서도 여러 소수 정치 세력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혐오만큼 사람을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것은 없다.

-언론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시각의 기사를 쏟아내다보니 언론 자체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보나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니다. 온라인 미디어 시대가 오면서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량이 엄청나다. 이전 미디어 산업은 미디어 생산에 대한 진입 장벽을 갖고 있었다. 이를 통해 언론인이 전사회적 필터링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정보의 독점적 생산이라는 부정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직업 세계가 규율과 양식을 갖게 되는 메커니즘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남긴 어마어마한 트윗에도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등장한다. 기성 언론의 지위가 하락하면서, 동시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그 신뢰성을 부정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다.
이 같은 반결과를 사람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회 자체의 역량 문제이다. 객관적 팩트에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해당 공동체의 발전과 생존에 직결돼 있는 문제이다.
인터넷이 대중의 직접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제공해준다고 해서, 직접민주주의가 바로 가능해지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1조는 어디까지나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가 운영하는 대의제에 관한 것이지, 대한민국이 직접민주주의 국가라는 뜻이 아니다.

-대의제에서는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한데
▶국회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갈등 해소’이다. 갈등하는 집단 사이에 중지를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국회가 이 점에 무능하다. 이게 국회의원 개개인의 수준이나 역량 탓이 아닌 게 더 큰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행정부에 대한 합리적인 견제 과정이나, 견제를 당연시하는 의식 자체가 자리 잡지 못했다. 나아가 경쟁하는 두 정당이 합의하고 뭘 만들어내는 경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회 선진화법’이란 게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에 봉사할 동기로 시작되었지만, 국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인한 부분도 있다. 국회의원 개인들이 자신의 임기를 지속하고 싶다면 이 같은 합의 절차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더 매진해야 할 것이다.
거리에선 대중들이 갈등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합의하면 이를 따라가는 사회적 동의나 합의의 메커니즘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걸 법으로 다 만들 수 없다. 정치 엘리트나 정치 지도자가 실천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야만 자리 잡는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경쟁이 심할수록 누군가 선의의 한수를 먼저 시작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그럼 정치적 합의의 모습,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나
▶냉정하게 말하면 세대가 바뀌어야 한다. 미래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 변화나 제도 개혁이 한 세대 안에서 발생하는 건 역사를 되돌려봐도 없다. 그 세대가 퇴장하고 진일보한 세대가 들어가면 비로소 변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개혁의 방향은 다음 세대가 진입했을 때 지켜야 할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양쪽으로 갈린 것 같은 양극화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나
▶최근 갈등으로 인해 대중이 양극화로 벌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16년간 한국인의 가치관을 조사해본 결과, 우리 국민은 여전히 중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도에 있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댓글을 달지는 않는다.
의견 양극화는 사실 온라인에서 과대 표현되고 있다. 온라인 양극화나 갈등이 일어나는 건 플랫폼의 기술적 조건 탓이 크다. 첫째, 온라인에서는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활동적이다. 다수처럼 보인다. 둘째, 온라인에 개진하는 의견은 독자적(independent)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적과 우리 편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고 나서 만들어지는 의존적(dependent) 판단의 결과이다.
나라의 중요한 일은 투표로 결정하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투표는 누가 뭘 찍는지 보고 하는 게 아니라 혼자 하는 거다. 일반 여론조사가 혼자 답하는 방식과 마찬가지이다. 혼자 답하게 하면 대부분의 경우 양극화가 나타나지 않고 가운데가 봉긋한 결과(중간적 답을 하는 사람이 많아 그래프가 가운데로 치솟은 모습을 의미)가 나온다. 여론조사와 동일한 메커니즘인 비밀 투표를 헌법적 프로세스를 유지하는 한, 중도층이 항상 가장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결론은 다시 대의제다.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이 과정을 통해 국민의 평균적 일반 의지를 반영하는 과정이 실질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이게 지난하다고 해서, 직접 민주주의 시대가 왔으니 국민이 직접 다스리자고 하는 건 수사에 불과하다.
직접 통치를 목표로 거리로 나서며, 결국 맨 앞에 서는 건 양쪽 극단이다. 중도층은 동일한 에너지를 가지고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국민 평균의 의지를 반영하는 건데 평균 의지를 도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온라인은 아니다.
거대 정당 내외부에서 온라인 정치를 이끄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몇 년간 선거, 정책, 심지어 사법적 결과가 이들이 예측한 대로 나온 적이 있는가? 결과는 대체로 조용한 대다수, 즉 중도층의 의지를 따랐다.
선거에 임박하면 중도를 양극단으로 이동시키는 게 어렵다는 걸 다들 깨닫는다. 이때 누가 먼저 중도로 접근하느냐가 항상 성패를 좌우했다. 이를 이용해서 중도층의 마음을 잡았던 사례가 과거 민주당이 김종인 씨를 깜짝 섭외한 것이다. 갈등적 양당제에서의 승리는 항상 이 같은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현상을 대중들은 어떻게 인식하면 좋을까
▶민주주의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선, 국민이 교과서적인 상태를 잠시라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화해본 경험을 한두 번 정도 가지고 있다. 탄핵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한다든가 인터넷으로 변방에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다든가 하는 경험이 민주주의 제도의 실질적 정착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최근 갈등 상황을 혼란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간헐적이지만 날카로운 집단적 경험이 쌓여가면, 그것이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는 통합이 필요한 사회인가
▶국민통합이란 낡고 관습적인 개념이다. 이를 유년기부터 교육받은 세대가 아마 1970~80년대 초반 출생자까지일 것이다. 지도자의 말을 따르고 질서를 잘 지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개개인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능력과 의사를 가지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통합이 아니라 공존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어떤 세대가 이 같은 공존의 양식을 교육받으며 자랐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부족하다면 이 점을 더 중점적으로 교육시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최근 사회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정치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정치 담론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개인적으론 헌신할 수 있는 가치와 그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학자로서 더 관심 있는 건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치 담론을 추동하는 사회적, 제도적 구조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같은 사회적 조건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이다.

프로필
-1971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사회학 학사, 석사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sociology 박사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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