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교수, “언어 감수성 높여야 말의 품격 상승”

[10.9 한글날 특집]말의 주인은 나, 많이 생각하고 잘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9.10.04 09:0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572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0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한 벽면에 '한글사랑해' 꽃장식이 되어있다./사진=뉴시스
“‘효자손은 왜 효자손일까? 효녀손은 없나?’, ‘유모차는 왜 유모차라고 부를까?’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언어의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언어가 세상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를 말이 잘 담고 있는가 질문을 던질 때 언어의 감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10월 9일은 우리말의 소중함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지정된 ‘한글날’이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에 대해 묻자 신 교수는 “내가 쓰는 말은 결국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말이 내가 지향하는 세계관을 잘 담고 있는지 점검하고,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 고민하고 잘 사용할 때 품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답했다.

-10월 9일 한글날, 서울시가 주최하고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연구팀이 주관하는 ‘다다다’ 행사가 열린다. 어떤 행사인가

▶‘다다다’에는 ‘모두 다’라는 뜻이 있고, ‘말하다, 듣다, 즐기다’의 다를 따서 ‘다다다’기도 하다. 서울시 ‘다다다’는 한글날인 오는 9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시청 시민청에 있는 활짝 라운지에서 열리는 시민들의 말하기 대회다. 지난달 21일 예선을 통해 뽑힌 18명이 이날 본선에서 ‘나를 안아준 말 한마디’, 혹은 ‘나를 배척하고 차별했던 말’이라는 주제로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나의 경험을 내 목소리에 담아 나누고, 청중들은 이야기를 잘 듣는 법을 배워보는 자리다. 본선 참가자 중 최종 3명에게는 서울시장상을 수여한다.
민주시민의 기본은 자기 생각을 자기 목소리에 담아 말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경청해서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더 좋은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소통이 부족하다보니 혐오와 갈등이 생기는것 아닐까. 특히 어르신들은 이야기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고 말할 곳이 없다보니 세대 간의 갈등도 그런 데서 오는 것 같다. 자기 표현을 잘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지겠다고 생각했다. 언어학자로서 사람들을 돕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그런 게 아닐까 해서 다다다를 기획하게 됐다.

-말은 사회를 반영한다. 일례로 저서인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우리말에는 높임법이 있어서 한국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나이를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말의 서열이 정해져야 말할 수 있다. 창밖에 비가 오고 있을 때 “비가 오”까지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발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비가 온다”가 될 수도, “비가 옵니다” 할 수도 있다. 그걸 결정해주는 요소가 나이와 직급이다. 아이들은 나이로 서열을 결정하기 때문에 만나면 나이부터 물어보는 것이다.
높임말과 함께 호칭도 중요하다. 대화할 때 상대방을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207개 언어를 분석한 유형론자가 207개 언어 중 7개 언어만이 2인칭 대명사인 ‘너’나 ‘당신’을 공손한 장면에서 사용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중 하나가 한국어다. 우리는 상대방을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가 제한적이다. ‘당신’이라고 하면 싸움 난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관계도 한정적이다. 그 대신 쓰는 말이 호칭이고, 매우 발달되어 있다. 나이가 똑같으면 친구가 되면서 이름을 부르고, 한 살이라도 많다면 언니, 형, 오빠, 누나 등으로 불러야 한다. 그래서 나이를 점검하는 것이다.

신지영 교수
-최근에는 유독 줄임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데 단순한 언어유희일까 한글파괴일까
▶일단 한글을 파괴한 적은 없다. 한국어의 법칙을 약간 벗어난 것이다. 문법이라고 배웠던 것과 다른 종류의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한국어' 파괴가 오히려 맞다.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진 않는다. 긴 말을 줄여 쓰는 것은 늘 있어왔던 인간의 보편적 욕구다. 단어로 만들고 싶어서다. 이를테면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단어처럼 만든 것인데, 문장이나 구가 명쾌하게 줄어들면서 단어로 전달되어서 효용성이 있다. 사자성어도 사실 준말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 영원히 변치않는 참된 우정)는 관중과 포숙이 나눴던 교류로, 관중 포숙 지교를 줄인 것이다. 지못미는 왜 안 되나.
와신상담(臥薪嘗膽,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도 굉장히 긴 고사를 네 글자로 줄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런 상황을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을 예전에는 한자성어로 했다면 지금은 한글을 두 글자에서 다섯 글자까지 줄이는 것이다. 저는 굉장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댕댕이(‘멍멍이’의 ‘멍멍’에 모양이 비슷한 ‘댕댕’을 넣어 만든 신조어), 롬곡옾눞(‘폭풍눈물’을 180도 뒤집어서 썼을 때 ‘폭풍눈물’과 모양이 비슷해서 만들어진 신조어)과 같은 시도는 어떤가
▶그건 시각적인 것을 청각과 연결시킨 일종의 언어유희다. 예전에는 ‘당연하지’를 ‘당근이야’ 이런 식으로 글자가 아닌 말로 유행어를 만들었다면, 이제 시각적으로 비슷한 걸 찾아 확산시키는 것이다. 언어는 법칙을 따라야만 의사소통이 된다. ‘컴퓨터’라고 하기로 했으면 ‘컴퓨터’라고 말해야 의사소통이 된다. 그게 언어의 본질인데 재미없으니까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 다르게 하는 것이 신선해 보이니까 남들이 보지 못한 방법으로 글자를 읽어보는 것이다. 그럼 유행처럼 너도나도 따라 한다. 그렇게 유행을 하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일종의 패션이다.
말하는 것은 옷 입는 것과 비슷하다. 옷을 잘 입는 것은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게 입는 것이다. 수영복은 수영장에서 입으면 괜찮지만 길에서 입으면 이상하다. 말도 똑같다. 유행어를 내가 쓸 수 있는 곳에서는 쓰고, 쓰지 말아야 할 곳은 안 쓰는 것처럼 말이다. 때에 따라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수도, 방해가 될 수도 있어서다. 그걸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을 사용력이라고 한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목적인지, 청자는 누구인지를 고려해서 말하기 능력을 키워내는 것이 진짜 국어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지난달 9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서울 365-한글박물관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한글이 수놓아진 의상을 입고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서울 365-한글박물관 패션쇼'는 한글날을 한 달 앞두고 우리 말과 글의 멋과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기획됐다./사진=뉴스1
-최근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두 가지 정도 생각해봤다. 이 단어를 씀으로써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몰래카메라다. ‘몰래카메라’ 하면 불법성이 잘 안 드러난다. 장난스럽게 하는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이다. 하지만 엄연히 말해서 ‘불법촬영’이다. 몰카사건이라고 하면 사건의 불법성을 좀 숨기는게 아닐까. 불법성이 있고, 사회적으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엄중하게 말하려면 몰카보다는 불법촬영이라고 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최근 많이 언급된 ‘강제징용’이다. 징용은 원래 강제이고 합법적이라는 뜻이다. 국가가 어떤 전시나 목적이 있어 노동력을 차출하는 것이 징용이다. 징병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국방을 위해 남성 국민을 합법적으로 병사로 모집하는 것이 징병이다. 일본이 과거 했던 것은 징용이 아니라 강제동원이었기 때문에 불법이다. 징용은 일본의 관점이다. 강제동원이라고 써야 한다. 대법원도 강제동원 피해자라고 표기한다. 강제징용 피해자라고 하는 것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2차 가해나 마찬가지다.

-입사지원서에는 결혼유무에 대한 상태 표시를 미혼/기혼으로 선택하게 되어 있다.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비혼, 돌싱을 고려했을 때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런 범주화가 필요할까?’라고 생각한다. ‘입사지원서에 왜 결혼 여부를 적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아마도 그동안 계속 있어왔기 때문에 관성으로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여성의 경우 기혼자는 잘 뽑지 않았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결혼 여부가 왜 중요할까. 결혼하면 안 뽑고 결혼 안 했으면 뽑을 것인가. 필요하지 않다면 없애야 한다.
만약 필요한다면 결혼 여부에 대해 결혼을 했다, 안 했다, 기타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직접 보면서 칸을 메우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일지 고민해보면서 만드는 게 성숙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말도 아직 많다. 특히 남녀 쌍이 있는 단어의 경우 여성을 나타내는 단어가 남성을 나타내는 단어보다 월등히 많은데 평등사회로 갈수록 없어질 것이라고 보나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이게 왜 효자손이야? 효녀손은 왜 없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감각하던 사람들이 ‘진짜 그러네?’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권 교육이나 평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런 단어는 불편해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런 표현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공고하게 하는 건가?’ 하는 불편한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유모차’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끄는 느낌이다. 관점을 바꿔 유아가 타기 때문에 ‘유아차’라고 하면 된다. 관습적으로 가지고 왔던 생각일 뿐이기에 바뀔 수 있다. 언어는 과거의 산물이다. 세상이 변하면 당연히 언어도 변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언어가 담지 못할 때 언어의 줄다리기가 일어난다.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의 이데올로기를 언어에 담고있는가?’ 이런 질문하면서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이다. 

572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아래 '세종이야기'에 외국인들이 한글로 쓴 이름이 걸려 있다./사진=뉴시스
-국민들의 경우 방송, 기사 등을 통해 한글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방송인과 기자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최근 방송용어나 기사 중에 이것만은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느꼈던 것이 있다면
▶사실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 이게 문제다. 피해자 이름을 사건 이름에 붙인다든지,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특정 지역 이름을 붙인다든지, 이런 것들은 경계해야 한다. 또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불법촬영을 몰카라고 하면서 불법성이 숨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불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정도야 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건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성상납’이라는 표현도 한때 썼는데 엄연히 말해 성폭력이다. 성폭력 사건의 개요를 가리는 것이다. 무한경쟁 시대이기에 클릭을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쓰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라면 기자정신을 발휘하고,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 수용자의 수준도 중요하다.

-‘언어 감수성’이 높아야 ‘성찰적 말하기’와 ‘배려의 듣기’가 가능해진다고 했는데,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언어에 대한 민감도가 언어 감수성이다. 효자손에 대해 누가 얘기해주면 그 다음부터는 민감해진다.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효자상품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고 유모차도 궁금해진다. ‘왜 이름을 저렇게 붙였을까?’ ‘우리의 생각을 잘 담고 있나?’ 이렇게 주목하기 시작하면 민감해진다. 예를 들어 LCD TV가 생기고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해지기 시작한 것은 피부다. TV에 피부가 너무 자세히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피부에 엄청난 마케팅과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것처럼 언어에 대한 민감도, 감수성을 높여주면 내 생각을 이 단어가 잘 담고 있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 건지, 이런 작업이 이뤄지면서 사회가 좋아진다.

-언어의 주인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말의 품격을 올리는 것은 결국 성숙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하기, 글쓰기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내 생각을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보자.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내 생각을 내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A에서 B로 번역할 때 우리는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을 쓸지 고민한다. 출발어가 가지고 있는 취지를 적절한 도착어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확인하듯이, 내 생각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들이 내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
내가 쓰고 있는 표현이 내가 지향하는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그리고 내 말이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들릴지 이런 것들을 고민해보는 것이 성숙한 것이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품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언어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언어의 주인으로서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더 잘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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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학교 대학원 언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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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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