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잘 아는 정치인…양향자의 ‘테크폴리티션’ 양산론

삼성전자 30년 경력 뒤로하고 민주당 ‘새 얼굴’ 합류, 내년 총선 ‘기대주’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김평화 기자 2019.09.09 09:4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최근 부쩍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찾는 곳이 많다. 일본이 7월 초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반도체 전문가’인 그가 나서야만 했다.

양 부위원장은 7월 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자리를 내려놓고 특위에 합류했다. 일본 수출규제 직후 민주당이 청와대에 양 부위원장 합류를 요청했다. 반도체 기술과 정치를 모두 아는 그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 부위원장은 국내에 몇 명 없는 ‘기술인 출신 정치인’, 테크폴리티션(Tech+Politician)이다. 기술을 아는 정치인은 지금같은 위기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정치에 기술을 입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양 부위원장은 최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인터뷰에서 “정치권에도 기술 인재가 필요하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치의 역할이 큰 데 기술인들이 정책과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부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도 언젠가는 기술패권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과거 식민지 역사를 보면 기술패권을 못 쥔 국가들이 다 식민지가 됐다. 미래기술을 이끌어갈 ‘키맨’(Key Man) 기술인들이 ‘정치 훈련’을 받고, 결국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 부위원장은 일본 수출 규제가 오히려 ‘기회’라고 봤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춰야 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새 판을 짤 수 있게 됐다. 양 부위원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히려 우리의 체질 개선에 기여한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치권에 반도체 전문가로 불릴 만한 사람은 양 부위원장이 유일하다. 양 부위원장은 광주여상 졸업 후 삼성전자에 연구보조원으로 취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들은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비서 등 평범한 진로를 택했다. 양 부위원장은 평범한 데 끌림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연구 보조원을 뽑는데 공채로 가겠냐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이 있었다”며 “낯설었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를 다루는 회산데, 주산을 전공한 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졸업 학기 때 주말에 학교에서 열심히 특강수업을 들었던 일본어가 도움이 됐다. 회사에서도 자신의 일본어 능력을 활용했다. 당시 반도체 산업 주도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다. 중요한 자료도 대부분 일본에서 온, 일본어로 된 것들이었다.

양 부위원장은 엔지니어들이 빨리 자료를 이해하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일본어 번역을 도왔다. 반도체 지식이 자연스레 쌓이게 됐다. 

고 이병철 전 삼성전자 회장의 ‘멘토’였던 ‘반도체의 대부’ 일본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 통역을 맡은 것도 양 부위원장이다. 그는 최근 한일 갈등 국면에서도 하마다 박사와 국내 정치권 인사들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양 부위원장은 ‘잡사’의 길을 택한다.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도체공학은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익혔다. 디지털정보학과 전자전기소프트웨어 분야도 공부했다. 일하면서 궁금한 게 생기면 밤잠도 걸렀다. 회사에서 마련한 대부분의 강좌를 들으며 지식을 쌓았다. 

그는 “지금은 한 가지 자신의 주무기가 있어도 살아남기에 너무 복잡한 사회가 돼버렸다”며 “여러 가지를 잘하는 ‘잡사’가 성공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차근차근 승진하며 ‘팔로우십(Followship)’을 쌓았다. 양 부위원장은 “항상 1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 행동을 가볍게 할 수 없다”며 “직급이 낮아도 생각과 행동은 항상 한 직급 위에 있었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양 부위원장은 결국 한 회사에서 30년간 일하며 기술상무까지 승진하는 신화를 썼다. 그는 “현장 경험이 많아 미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있다”며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데 따라 어떤 영향과 결과가 나타날지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로 까지 불리는 최근 상황에서 양 부위원장의 존재가 더 빛나고 있다. 반도체 이슈에 대해 가이드라인과 기조 방향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서다.

기술패권 싸움에서 ‘한국 대표선수’로 활약하는 대기업의 고뇌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와 기업 간 ‘징검다리’ 역할도 자처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기업들 입장에서도 현장을 잘 아는 양 부위원장을 신뢰한다. 

양 부위원장은 “기업들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인정해주니 기업들도 민감한 이야기까지 해준다”며 “정치인들이 메시지를 낼 때도 기업의 기술보호 등 입장을 생각해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부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의 인재영입으로 민주당에 입당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지만, ‘국민의당 열풍’에 고배를 마셨다. 이후엔 민주당 최고위원과 전국 여성위원장으로 활약하는 등 정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치 신념을 묻자, 양 부위원장은 “절대 ‘조롱의 정치’를 하지 않으려 한다”며 “조롱은 복수를 부르고 건전한 비판은 반성을 부른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상황에 분노하지 않고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에서 같이 분노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양 부위원장은 “삼성에서의 또 다른 30년을 꿈꿨다”며 “30년간 회사에서 성장했고 회사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역량과 경험을 나눠야 한다”며 “인류에 이바지하는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승부사’를 자처한다. 양 부위원장은 “승부를 할 땐 과감하게 버리는 게 있어야 한다”며 “놓은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그는 “한번 승부를 보기로 했으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과거에 집착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양 부위원장의 사명은 정치에 기술을 입히는 것이다. 10년 후 양 부위원장은 어떨까. 그는 “공적인 영역에서 국민을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민이 위임해준 권력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가질 수 있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 정치인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
1967년 광주 출생
광주여상 졸업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 상무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
더불어민주당 전국 여성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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