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 원장 “국제표준이 국력, ISO 이사국 될 것”

다양한 분야 표준화 인프라 구축, 우리나라 영향력 확대 계획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9.09.09 08:1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표준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어줄까? 교통 신호등, 컴퓨터 자판, 복사지 사이즈 등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모두 표준이 적용돼 있다. 만약 나라마다 신호등 색깔, 자판의 개수와 순서, 복사지 사이즈가 제각각이라면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이처럼 표준은 사회·경제적인 효율을 증가시키고,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며 나아가 무역자유화의 토대가 된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국가의 표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기관이다.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산업의 주도권은 누가 먼저 표준 전쟁에서 승리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신기술의 국제표준을 선도하는 국가가 글로벌 산업과 경제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는 “산업의 주체인 기업들이 표준화에 적극 참여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표준물질 개발을 통해 대외 의존도를 낮춰 한국이 국제표준화 리더 국가가 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국가기술표준원(이하 국표원)은 어떤 기관이고 핵심 업무는 무엇인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표원의 가장 큰 미션은 국가의 표준(KS, Korean Industrial Standards)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전기용품, 생활용품, 어린이 제품 등의 제품안전 관리와 적합성 정책, 시험인증제도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해외 기술규제 문제가 많이 대두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무역상 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 협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외 기술규제대응 업무도 총괄해 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27조 2항에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고 명문규정을 통해 국가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표원은 1883년(고종 20년) 화폐를 주조하는 ‘분석시험소’로 출발해 136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1961년 국가산업표준화법이 생기고, 국가표준인 KS가 도입됐다. 이후에 KS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산업 표준화에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됐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비법정단위가 많은데, 법정단위를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큰가
▶법정단위 사용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법정단위를 사용하면 거래가 정확하고 편리해진다. 이를테면 돌반지를 살 때 1돈(3.75g)이나 반돈(1.875g) 아닌 1g 단위로 거래하면 소수점 2~3자리까지 측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정확한 측정으로 인한 손해를 예방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국가 간 무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최소화하고 원활한 무역을 가능하게 한다. 국제단위계(법정단위)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 라이베리아, 미얀마 3개국뿐이다.
국표원은 2007년부터 평, 돈 대신 제곱미터(㎡), 그램(g)을 사용하도록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와 계도를 지속해왔다. 특히, 2010년부터는 소비자감시원을 활용해 언론과 광고, 부동산 중개소, 전자제품 매장 등 우리 생활 주변에서 사용되는 비법정단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국표원의 산업표준과 제품안전 관리 업무 등은 한국소비자원과 중복되지 않나
▶국표원과 소비자원은 업무 범위와 행정 권한에 차이가 있지만, 안전한 국민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국표원을 비롯한 식약처, 환경부 등 국가기관은 소관 분야별로 제품안전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 원은 전기용품, 생활용품 및 어린이 제품 등 공산품 분야 제품안전 업무를 담당한다. 이를 위해 제품안전기본법 등에 근거해 안전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불법·불량제품에 대해서는 리콜명령 등 행정권한을 활용해 국민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원은 공공기관으로서 국가기관이 갖는 강제적 행정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 권익 증진의 일환으로 모든 제품 분야에 대한 제품안전 관련 조사와 분석활동, 업체 시정권고를 통해 국민안전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국표원은 소비자원과 정기적인 업무협의체 운영, 위해정보 공유 등의 업무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보다 촘촘한 제품안전망을 갖출 수 있도록 기관 간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3년마다 제품안전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 제품안전 환경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최근 IT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제품안전 환경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지능형 로봇, 5G 등 신기술의 발달과 드론, 헬스케어 제품 등 산업 간 경계를 초월하는 융복합 제품의 등장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각종 생활제품·전기용품의 유통경로도 다양화됐다. 해외직구나 구매대행과 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구매하면서 소비자와 제품의 접촉면이 확장되고, 제품시장 감시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또한, 일명 ‘액체괴물’이라고 불리는 어린이 완구 슬라임의 붕소 위해성 논란과 같은 신종 유해화학 물질이 출현하고, 전자담배와 전동킥보드 등 배터리 화재사고와 같은 제품 안전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경기도 군포시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안전기준에 부적합해 리콜 명령을 받은 액체괴물을 보여주고 있다./사진=뉴스1
국표원은 이런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4차 제품안전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기관에서 연구용역을 수행 중이며, 지난 6월에는 산·학·연 전문가 등과 그간의 정책을 되짚어보고 새로운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제품안전 혁신포럼도 개최했다. 앞으로 기업, 품목별 협회·단체 및 소비자단체 등과 세부 분야별 연구회를 구성하는 등 이슈별 추진 방안을 강구해 올해 말까지 종합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표원은 지난 5월 ‘4차 산업혁명시대 유망서비스 표준 발표회’를 열고 차량공유, 모바일 뱅킹 등의 서비스 표준안을 발표했는데 주요 내용이 궁금하다
▶서비스 표준은 품질개선, 소비자 보호와 같은 표준의 전통적인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 업종의 진출을 돕는 가이드로 활용되는 등 역할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과 서비스업 융합을 통해 새로운 사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소상공인,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시장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4차 산업혁명 시대 6대 유망 서비스업종으로 차량공유, 모바일뱅킹, 전기차 충전, 맞춤형 3D 프린팅, 공간 공유, 공공 드론 지원 등을 선정하고, 업종별 서비스 표준을 마련했다. 서비스 표준에는 실제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입, 해지, 계약, 보안, 사용자 인증, 품질관리, 고객만족, 클레임 처리 등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제반사항에 대한 가이드가 담겨 있다. 업종별로 상이한 용어로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 파트너 간 발생하는 혼란 방지를 위한 주요 용어 정의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업종별 우수 사례를 토대로 서비스 제공 방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참조 모델도 제시해 기업의 원활한 시장진출과 사업 확대를 도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국제 표준을 정하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전 세계 표준화의 양대산맥은 ISO(국제표준화기구,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와 전기전자 제품에 특화되어 있는 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 International Electronical Commission)다. ISO는 매년 정량 평가를 통해 국가의 순위를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2018년 말 기준 8위를 기록했다. IEC는 국제표준 제안건수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는데 3위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국제 표준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이 표준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활동주체가 정부와 대학, 학계 연구소 등이고 상대적으로 기업 참여와 인식이 저조한 상황이다. 앞으로 기업이 표준화 활동을 많이 수행하게끔 독려하는 것이 과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 IEC 부산총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전 세계 92개국에서 3300명이 넘게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의 총회로 기록되면서 우리나라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우리의 목표는 한국이 ISO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이다. 상임이사국은 6개 국가로 제한되는데 현재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이다. 올해 ISO 총회는 이달에 열리는데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캐나다, 멕시코, 네덜란드 등 많은 나라가 경쟁에 참가하면서 경쟁률이 4:1 정도로 치열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22일 부산 벡스코(BEXCO) 제1전시장에서 열린 '제82차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총회'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IEC CITY 기술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사진=국가기술표준원 제공
-국표원이 발간한 2018 무역기술장벽(TBT)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무역규제 건수는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무역장벽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인가
▶세계무역기구 164개 회원국은 새로운 기술규제를 도입하거나 종전 규제를 개정할 경우 무역기구 사무국을 통해 모든 회원국에 사전 통보하고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 이를 WTO TBT(세계무역기구 무역기술장벽) 통보문이라고 한다. TBT 발행 추이를 보면 각국이 얼마나 기술규제를 도입하고 있는지, 무역기술장벽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다. 2005년에는 894건이었던 데 반해, 2015년에는 1977건, 지난해에는 3065건으로 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거에는 선진국이 주로 발행했지만 최근에는 개도국의 신고건수가 늘고 있다. 개도국과 최빈개도국의 발행 비중이 전체의 83%다. 과거에는 선진국들이 기술장벽을 통해 상품 수입을 제어했다면, 이제는 개도국들이 학습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기술규제를 급격히 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표원은 이런 대외 환경 변화에 우리 수출기업들이 적응하고, 무역기술장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TBT 통보문과 더불어 미통보된 숨은 기술규제도 발굴해 기업에 전파하고 있다. 기술규제 중에서 우리 기업에 파급 효과가 큰 사안에 대해서는 분석과 대응방안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해외의 불합리한 기술규제로 인한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WTO 위원회에 특정무역현안(STC, Specific Trade Concetns)을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으로 대외여건이 크게 악화되어 있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무역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표준화 전략은 무엇일까
▶첨단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시행한다든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것이 단순하게 소재와 부품에 제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구조 면에서 기본과 원칙을 튼튼히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경고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은 선진국이 만들어놓은 표준을 따라 2등 전략으로 손쉽게 산업을 일궈왔다면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1등이 되는 산업을 양산해야 한다. 반일 감정보다는 우리 산업의 구조를 각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소재와 장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과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선 소재에 대해 자체의 표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불화수소의 경우 순도 99.999..에서 소수점 이하 12자리까지 9의 순도일 때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가스 순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표준물질의 원기가 있어야 비교할 수 있다. 이렇게 알아볼 수 있는 표준물질 1kg을 표준 원기라고 한다. 일본은 전 세계 표준물질 등록 1위 국가다. 소재나 물질의 기본이 되는 원기의 거의 대부분을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소재 아이덴티티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을 개발해서 등재해야 한다.

8월 2일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서 고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관리법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다중노출 촬영)/사진=뉴스1
-국제표준화 리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목표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이 국제 표준을 따르고 있는데 현재는 사실상 몇 개의 나라가 표준체제를 독과점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같은 국제표준이 대기업의 전유물이었다면 요즘은 경계가 없다. 중소, 벤처 기업들의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유전체 합성이나 휴먼 빅데이터와 같은 부분들만 봐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런 벤처기업들의 기술 표준화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표준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많이 하고자 한다.
또한 과거의 성장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표준은 제품, 서비스와 품질, 안전은 물론 호환성, 상호운용성, 성장성을 담보하는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국표원은 지난 6월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표준화 선점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을 통해 2023년까지 전기·자율차, 지능형로봇, 시스템 반도체 등 혁신산업분야에서 국제표준 300종을 개발해 전체 국제표준의 20%를 선점하고, ISO 의장단을 60명(현재 26명)까지 확대해 국제표준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 원장
지식경제부 정보전자산업과 과장
지식경제부 철강화학과 과장
지식경제부 부품소재총괄과 과장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 국장
산업통상자원부 시스템산업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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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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