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건 작가 “탐욕 없는 농촌만이 최고의 도서관”

[농촌은 지금 jump-up]노동에 지쳐 소외된 공간 아닌 더 나은 삶의 장소 만들고파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9.09.30 11:1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민준건 작가(오른쪽)가 지역민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더리더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서른다섯 번째 주인공은 <더 좋은 삶으로 가는 더 좋은 생각>을 출간한 민준건 작가다. 많은 작가 중에서도 그가 더 특별한 이유는 자연과 농촌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일꾼이 부족한 것을 넘어 인구 자체가 줄어들어 지방소멸론까지 대두되고, 위기가 고조되는 농촌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활력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흔히 농촌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농업의 생산성 증가와 소득 증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한계를 벗어나 농촌이 존재하는 그 자체의 가치를 발견하고 알리고자 애쓰는 그야말로 독서의 달로 지정된 9월 명옥헌 초대석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농촌을 지붕 없는 도서관이라 칭하며 새롭고 더 좋은 관점을 제시하는 민준건 작가를 만나 독서의 계절을 누리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민준건 작가 소개 부탁합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고 자란 순천에서 지낸 시간보다 서울에서 생활한 시간이 몇 배나 길지만 그래도 제 마음은 언제나 순천을 향해 있습니다. 이름과 나이, 학력이나 경력 등을 밝히는 소개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말하는 자기 소개가 좋습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천장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옆문이 달린 다락방에서 생각에 잠기는 걸 좋아합니다. 문득 작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을 볼 때면 가장 가까워야 할 곳이 가장 멀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소외되어가고 있는 우리네 인생을 떠올리곤 합니다. 아무리 멀리 가보고 많은 풍경을 눈에 담고 헤아릴 수 없이 여러 사진을 남겨도 여전히 쓸쓸하고 외로운 건 아마도 인간의 나약함 때문인가 봅니다. 좀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삶의 공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경쟁과 시기, 질투로 가득한 속세를 탈출하여 채워진 것조차 없어 비울 필요가 없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권유합니다.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도 다음세대를 위해 더 좋은 삶으로 가는 행동철학을 세울 수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사색하며 글쓰기를 합니다.

-농촌이 좀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삶의 공간이라는 말씀인가요
▶문학가, 철학자, 정치인, 웅변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만약 당신이 정원과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Everything You Need)’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분투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경쟁의 장은 결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가진 것을 누릴 틈도 없이 부족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은행 잔고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여 누릴 때, 진짜 풍요를 체험할 수 있음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키케로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인용되지만 진심으로 그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뉴욕도서관에서 판매하고 있는 기념품에도 새겨진 문장입니다만, 기념품을 가지고 다닐지언정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정원과 도서관을 소유할 정도가 되려면 시간과 돈이 넘쳐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도서관을 꼭 크고 화려한 건물로만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도서관으로 삼는, 즉 지붕 없는 도서관을 꿈꾸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농촌을 지붕 없는 도서관으로 활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귀농과 귀촌에 대한 열망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패를 맛보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성공의 조건을 따지기보다 귀농과 귀촌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습관 그대로, 경쟁의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작은 땅에서 많이 생산하는 것을 성공으로 볼 수 있을까요?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은 대박이 날 작물이 무엇인지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결국 너도나도 대박이 날 작물에만 투자하여 공급과잉으로 모두 손해를 보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립니다. 다만 그 작물의 종류만 바뀔 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탐욕입니다.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탐욕이고 결국 파멸로 이끕니다. 농촌을 도시에서 못다 이룬 탐욕을 펼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대신 자연과 어우러진 가장 좋은 도서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의 출발점이 곧 다양한 활용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농촌이라는 공간에 대한 재인식만으로는 어렵지 않을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현실을 이야기하면, 상대방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뉩니다. 더러는 공감해주곤 하지만 인내심 없는 태도라며 비난의 화살을 쏘며 공격합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원인은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말하긴 어렵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 노력, 열정만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입니다. 여기서 환경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뿐 아니라, 그동안 갖고 살아온 가치관과 신념체계까지 의미합니다. 어렵고 살기 힘든 농촌이라는 기존의 관념과 신념체계에서 벗어나 다른 일상을 살고 환경을 바꿈으로써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준건 작가가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사진=더리더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경우에도 독서의 계절을 누릴 수 있을까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직업 형태도 급격하게 달라지고, 아예 사라지는 직업 또한 많으리라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면서 그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 분명한데, 농업분야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요? 지붕 없는 도서관으로 활용하자는 말은 1차 생산지로서의 농촌을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산과 제조, 서비스업까지 담당하는 6차 산업으로서의 농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농촌관광이나 서비스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단순히 농사체험과 숙식을 해결하는 정도의 서비스에 머물러 있습니다. 체험공간과 식당을 짓는다고 저절로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정부 지원금으로 세운 시설은 찾는 사람이 없어 예산 낭비의 원흉으로 남은 곳이 많습니다. 더 이상 건물 짓기가 해결해주지 않음을 아는 만큼, 문화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가을 수확기에 일손이 부족하다고만 하지 말고, 다양한 문화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중심에 책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면 강력한 매개체가 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인데 농촌에서 독서문화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책을 좋아하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작가들에 국한된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종이책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지만, 전자책이 그토록 다양해졌어도 여전히 종이책이 가지는 고유의 장점이 많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피로증으로 인해 종이책을 선호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농촌이 완전히 소멸될 것 같았지만, 요즘 들어 귀농이나 귀촌이 유행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에,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해주면 충분합니다.

-농촌에선 작가의 강연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이 어렵지 않을까요
▶작은 책방 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의외의 장소인 시골에도 책방이 꽤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책방들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대전에 있는 한 지역 서점은 먹거리 불안의 시대에 책과 건강한 먹거리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고 함께 건강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작은 책 공간을 지향하며 운영됩니다. 책 속에 있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연결할 수 있어서 무궁무진한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책이라는 물성에 집착하지 말고, 책을 펼치면 열리는 다양한 세상에 집중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을 농촌에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기존에 있던 것과 연결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말씀인가요
▶“당신의 발을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기억하라.”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고집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에 나온 말입니다. 그는 21세에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평생 투병하면서도 마지막 생의 순간까지도 우주에 관한 놀라운 연구결과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자신이 처한 현실, 즉 발아래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제안처럼 이제는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농업과 농촌이라는 기존 관념과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주어진 문제만 붙들고 있어서는 해답을 찾는 데 어려움만 커집니다. 어려울수록 옆을 돌아보기 힘든 한계를 벗어나서, 다른 분야와 함께 연결하면 오히려 쉽게 문제가 해결됨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농촌이야말로 더 나은 삶의 공간(Better Place)임을 확신하는 이유는요
▶지역과 농촌이야말로 시기와 경쟁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도시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도시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과 태도로 인해 서로 분열한다면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도시와 농촌 모두 소중한 공간입니다. 다만 지금처럼 농촌의 소멸위기가 대두되는 상황은 오히려 대립과 갈등만 부추기고, 결국 공멸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더 나은 삶의 공간(Better Place)을 찾아가는 길에는 결국 좋은 사람이 함께합니다. 자연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회색 건물의 숲에서 벗어나 진정한 숲, 자연으로 돌아갈 때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고 상생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매개체로 책을 선택했고,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뿐입니다. 농촌은 더 이상 노동에 지쳐 소외된 삶의 공간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삶의 기회, 더 나은 삶의 장소로 이동할 여력을 만들어주는 데 남은 여정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가현정 작가는
귀농인문학아카데미 대표/한국독서치료학회 이사 /법무부 인성교육, 독서치료 및 국방부 독서코칭 담당/대통령상타기 고전읽기 백일장 심사위원/경기도교육청 공모제 교장 심사위원 /자유학기 진로체험 작가부문/은평대학 학과장 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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