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성당 한옥과 현대 건축의 조화, 지역을 바꾸는 모티브로

[지역을 바꾸는 건축-우대성 건축가]“역사도시에서 건축을 밀도 있게 생각하고 해법 만들어…”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19.08.23 11:2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신창훈 운생동 건축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건축가들과 만난다. 신 대표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시작으로 서울시 건축상 대상까지 수상한 그야말로 ‘핫’한 건축가다. 뛰어난 설계는 기본이고, 완성된 후 지역사회와 함께 어우러질 공간을 만드는 기획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수국마을 전경/사진=윤준환 작가
“건축가님 고맙습니다. 이런 집에서 살게 해주어서”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설계한 부산 서구 암남동 ‘수국(樹國)마을’은 아이들 스스로 행복을 꿈꿀 수 있게 도와준다. 우대성 건축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걸 또 한번 실감했다. 아이들 스스로 생활비를 아껴 동네 독거노인에게 전달하는 모습에 눈물을 쏟았다. 그는 삶을 바꾸고 마음의 변화를 만드는 일을 ‘건축’으로 해냈다.

지역을 바꾸는 건축에서 만난 8월의 주인공은 가회동 성당과 수국마을의 건축가 우대성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공동대표다. 담백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두 개의 프로젝트를 맡은 건 행운이라고 말한다. 인터뷰는 7월 무더운 여름날 가회동 성당에서 진행됐다. 성당 한켠에서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관광객들의 발길로 끊임없이 분주했지만 시끄러운 느낌보단 활기찬 분위기다. 그가 설계단계에서 상상한 모습 그대로다.

신창훈: 한국농촌건축대전 본상, 한국적 생활문화공간, 서울시건축상 우수상,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골든스케일 어워드, 가톨릭건축상 등을 수상한 실력파 3명이 오퍼스를 구성하고 있다. 거의 20년간 삼인 체제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와 두 파트너에 대해 소개해달라.
우대성: 여러 계기가 있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합쳐서 덩어리가 된 것 같다. 1998년 조성기, 김형종 건축가와 함께 설립했다. 2005년에는 인테리어 전문회사인 디자인 모노솜을 만들어 건축과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초기 프로젝트와 작업 방식이 지금은 달라지긴 했다. 초기엔 경험치도 적고, 일도 적어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20년이 지나다 보니 각자 내공이 쌓여 두 명이 같이 할 때도 있고 혼자 할 때도 있다.

신창훈: 지금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은
우대성: 제일 큰 건 또래집단의 힘이다. 초기에 천년의 문 프로젝트로 어려움이 컸는데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탄탄해졌다. 사무실의 작동방식은 공동 성장, 공동 분배 원칙 외엔 없다.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공동대표들, 왼쪽부터 우대성, 김형종, 조성기/사진=오퍼스 제공

한옥과 현대건축의 좋은 만남, 가회동 성당
신창훈: 가회동 성당은 만들어질 때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장소다. 북촌이 가진 역사성과 종교성, 공공성과 현대적인 요소 등 여러 성격이 뒤섞인 장소다.
우대성: 인터뷰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이곳을 찾았다. 프로젝트 성격이나 땅의 성격이 복합적인 장소였다. 지금 이 자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앉아 있고 방금 전 주임신부님이 올라가고. 이 성당을 지을 때 지향했던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다.
이런 날에 오면 행복하다. 처음 의도하고 만든 대로 잘 작동되고 있구나 싶다. 건물 지을 때 땅에 대한 쓰임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건축 구성 이 세 가지를 잘 고려해야 한다. 이 땅에 대한 첫 느낌은 너무 무거웠다.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땅으로 시간이 녹아 있었다. 땅 자체가 어려운 데다 가톨릭 성지로 복잡한 역사가 있었다. 이 건물을 사용하는 대상도 복합적이고 건물을 운영하는 성당 측 태도도 중요했다.
이곳은 성당으로 지었지만 건물을 이용하는 대상은 신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 천주교 순례길을 찾은 사람들과 관광객들 모두를 이 공간이 받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당인데 성당처럼 안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회동 집들이 대부분 30에서 40평 정도로 작은 한옥들이 보글보글 있는데 천 평이 넘는 대형 건물이 들어오는 건 이 동네 ‘결’과는 다른 것이었다. 일단 그걸 해결해야 했고, 또 하나 심한 경사로 등 전체 숙제를 한번에 넣고 해법을 풀어갔다.
천백 평짜리 건물을 어찌하면 드러나지 않도록 할까, 어떻게 작아 보이게 할까 고민했다. 건물을 쪼개는 것과 지하로 많이 묻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고민 덕에 가회동 성당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이 한옥 보존 지역은 아니지만 한옥을 전면에 배치했다. 종교를 드러내지 않고 동네에 원래 있던 건물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우대성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현대건축과 성당 그리고 한옥의 다른 양식을 사이에 두고 마당이 존재하는 것 같다. 건축으로 풀어낸 스토리가 신선하다. 한옥과 현대건축이 새로운 양식으로 합쳐졌다.
우대성: 이 땅에 관심을 오래 가졌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한옥은 박제화된 옛날 건물로 생각되는데 나는 동시대에 써야 하는 어떤 건물이라고 본다. 한옥은 대부분 사람들이 선호하는 반면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다. 반면 현대건물은 호불호가 있다.
한옥을 전면에 내세워 사람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고 여러 해법을 주기로 결정했다. 오래전 이 자리의 성당은 한옥의 모습이었다. 또 인근에 한옥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네 풍경에 스며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티브기도 했다. 성당과 주임신부님도 그러기를 바랐다.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쪼개서 이 공간 안에 두 가지 느낌이 공존하도록 설계했다. 예전엔 못했던 방식이지만 현대엔 마당을 입체화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한옥과 현대건축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곳은 별로 없다.

▲신창훈 운생동 대표가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맞는 말이다. 좋은 예를 만든 거 같다. 한옥과 서양 건축이 만나는 실험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와서 그런 걸 배우는 거 같다. 좋은 모티브를 만들어냈다.
우대성: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옥은 이층 삼층으로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을 성당에서 잘 받아주셨다.
또 주거용 한옥은 혜택이 많은데 복합건물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에너지 절약이나 소방, 단열 등이 배제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은 굉장히 어려웠다. 여러 제안을 통해 없던 타입이 만들어졌다. 가끔 한옥과 현대건축, 두 개의 모델을 뒤집어서 했어도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생각하면 도시엔 상업적 공간과 주거하는 공간만 있지 나머지 영적인 휴식의 공간, 힐링 공간은 없다. 예전 도시에는 그런 공간이 있었다. 도시화되어 사라졌지만 그런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건축적으로는 꽤 어려웠다. 성당은 조용하게 미사를 하는 공간인데 관광객이 들어오면 번잡스럽다. 때문에 성당 입구가 제일 안쪽에 있고 외부인은 건물 입구 쪽에서 작지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더 중요한 것은 건축가가 이런 생각을 가졌더라도 완벽한 구현까지는 위대한 건축주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마당을 개방하고 화장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건물 옥상도 개방했다. 이 근처가 한옥마을이라서 높은 건물이 없어서 아름다운 한옥의 지붕선을 감상할 곳이 없다. 조선 후기부터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꼽히던 것인데 이곳에서 같이 누릴 수 있다. 건축주가 그런 걸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이어지면서 이곳을 계속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돌과 나무, 가회동 성당의 소재들에 대한 단상
신창훈: 이곳을 구성한 두 가지 재료가 보였다. 자연재료인 돌과 나무. 한옥은 나무로 그 속에 다른 디테일인 돌도 외관과 바닥에 돌 색감과 물성으로 자연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런 디테일을 만드느라 시공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우대성: 크게 한옥과 현대 건물의 조화를 만들어내야 했다. 나무와 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생각했다. 경계를 애매하게 하는 것. 건축적인 애매함이 아니라 시선에 대한 것인데 예를 들어 딱딱한 돌도 따뜻한 재료로 느끼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6년이 지났는데도 돌에 때 하나 없이 줄눈이 예쁘다. 줄눈을 파는 방법에서 예전 느낌을 소환하고 싶었다. 현대적 공법을 썼지만 시간에 대한 고민을 했다.

한옥 역시 시간이 묻어 있는데 20년 뒤에도 그런 느낌이어야 한다고 본다. 시간의 때나 풍화(aging)에 의해서도 크게 변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 디테일을 지키려고 하니까 시공팀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아 매우 어려워했다.

신창훈: 성당의 내부에는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대성: 성당은 교회와 내부가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영적인 공간으로 200석밖에 안 된다. 미사의 용도도 있지만 혼자 울러 오기도 한다. 경건한 느낌과 밝은 느낌을 동시에 한 공간에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낮엔 자연조명으로 경건성을 유지하고 마음의 변화처럼 자연광이 비치는 느낌에 따라 바뀌도록 했다. 공간은 크기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료가 주는 친밀함을 이용했다.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낡지 않은 느낌을 주는 재료는 결국 천연 재료였다. 본질적 공간이 주는 울림이 만들어지도록 구상했다.
유리를 통해 홀에서 성당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내부의 성당으로 들어가면 누가 기도하는지를 보게 되는데 시각적으로 폐쇄적이지 않고 말없이 서로 기도하는 모습을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신창훈 대표(왼쪽)와 우대성 대표가 가회동 성당 옥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비와 김태희의 결혼으로 가회동 성당이 더욱 유명세를 탔다. 대단한 스타들인데 호텔 초호화 결혼을 마다하고 이곳을 택했다. 그 이후에 건축가로서 어떤 생각인지.
우대성: 사실 난 몰랐다. 두 신앙인이 여기를 택한 것은 두 분이 소박하고 건강한 철학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스몰 웨딩을 하기에 규모가 적당하고, 성당에 다른 인연도 있었을 테고,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구조도 한몫했다고 본다. 그 이후에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결혼을 한다. 나도 아들 둘이 이 성당에서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는 대기자가 많아져서 걱정이다.
사실 건물이 완성되면 건물 스스로 힘을 가진다. 가회동 성당이 가지는 힘이 사람들에게 느껴져서 선호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신창훈: 공공건축 설계를 하면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그런 거 같다. 개인 건물은 사용자가 정해지는 데 반해 공공건축(성당은 사적인 곳이지만 공적인 성격을 가졌다)은 작동하는 것에 따라 인생에서 가장 영예로운 순간을 꼭 여기서 하고 싶은 그런 장소도 된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세계적인 스타 두 명이 결혼을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우대성: 그때 생애 최초로 실검 1위에 떴는데 그 상황이 무척 감사했다. 건축가로서 행운이다. 다른 건축가가 했어도 좋은 아이디어로 했겠지만 다 운명이 있는 거 같다. 마음 맞춰 이뤄낸 것이 이 건물의 운명인 듯하고 나 역시 좋은 운명에 탑승한 것 같아 기쁘다.

신창훈: 비와 김태희에겐 사랑의 결실로, 어떤 분들에겐 슬픔을 분출하는 장소인 가회동 성당은 우대성에게는 어떤 장소인가.
우대성: 이곳에 얽힌 놀라운 추억이 있다. 1988년, 대학 4학년 때 학생 워크숍에서 선배 건축가와 팀을 이뤄 설계를 한 적이 있었다. 좁다란 길이 있고 한옥이 있는 되게 재미있는 땅이었다. 그 선배 건축가가 말하기를 1988년에 설계한 곳이 바로 이 땅이라고 하더라. 소름이 돋았다. 아무렇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나 아이디어 등을 그때도 고민했던 것들이 지금까지도 녹아 있는 거 같다. 이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규명하긴 어렵지만 오래된 역사 도시에서 건축을 밀도 있게 생각하고 해법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인 것 같다.

신창훈:
가회동 성당이 많은 건축상을 받으면서 이 지역을 바꾸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우대성: 그건 아마 한옥 덕분이었던 거 같다. 한옥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가지만 현대건축과 함께 한옥을 다루면서 동네와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근처는 앞쪽에 한옥 짓고 뒤에 다른 건축물을 짓곤 한다. 현실적으로 현대와 한옥을 조화롭게 하는 것도 해법이라고 제시했고, 건물이 작동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니까 주변에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건축주를 설득하기 좋은 사례를 만들어냈으니 그 힘이 파급됐다고 본다. 책임감이 무겁다.

행복을 꿈꾸게 하는 수국마을

신창훈: 수국마을도 가회동 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작은 마을 같아 보이는데 그 속을 보면 건축가로서 어려운 주제를 풀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 상황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수국마을을 통해 따듯한 마음과 용기를 가지도록 해줬다. 행복한 숙제를 푸신 것 같다.
우대성: 행복감보다는 지독한 현실의 문제를 풀었다. 수국마을은 행복한 집이 아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양육 시설이다. 대부분 아동 양육시설 프로젝트의 목표는 행복을 주는 게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곳에서 나와서 자립을 해 혼자 살아야 한다. 그런 연습이 안 돼 있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양육시설은 예전처럼 물질적으로 부족하진 않다. 다만 자립에 대한 문제가 크다.
집단 시설에 환경이 법적으로도 많이 변화해서 예전엔 많이 살아도 됐지만 지금은 아동양육법이 바뀌면서 한 시설에 살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다. “이 집 좀 어떻게 해주세요. 100명쯤 살 거예요.” 이게 건축가에게 요청된 내용의 전부다. 건축보다 삶의 시스템을 고민하는 게 문제였다. 그 결과가 건축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집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개별 집을 짓고 그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집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자리 분별을 하고. 그런 집을 8채를 만들어 한 집에 12명씩 사는 마을을 제안했다. 자립하기에 좋도록 생활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이 주택 형식에서 구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집을 만들어야 할까? 이 집을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은 ‘행복을 경험한 자만이 행복을 꿈꿀 수 있다고 했다.’ 좋은 환경을 여기서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의 시스템을 최고로 만들었다.

신창훈: 그 공간 안에 12명의 학생이 살게 되는 건가.
우대성: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12명으로 정원을 정하고 체계도 중고생을 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게 한 가정이 되는 시스템이다. 100명처럼 대가족이 아니지만 12명이면 집에 대한 소속감도 갖기 좋은 인원이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집안에서 자기들 생활비를 아껴 독거노인에게 쌀을 사서 기부하는 일이 생겼다.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 ‘건축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창훈: 어떻게 보면 100명 정도 사는 수국마을이 5년이란 시간을 지나면서 다른 어떤 지역에 영향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대성: 동네와는 고립된 섬 같은 지역인데 전국의 사회복지 시설에서 수국마을을 보러 왔고, 다른 나라에서까지 왔다. 삶의 시스템에 대한 부분과 형태, 그리고 도면까지 다 줬다. 왜냐면 이 방식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하고 싶으면 하라고 줬다.

신창훈: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이 떠나고 또다시 방문하기도 하나.
우대성: 추석이나 명절에 다시 찾아온다. 지금도 매년 피드백을 하는 게 바로 아이들이 만든 집 매뉴얼이다. 마을 이장집을 만들고 그곳에 공동 규율을 만들었다. 살면서 얻은 제일 큰 교훈은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거다. 공동 생활에서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건축가님 고맙습니다. 이런 집에서 살게 해주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말했다. 나가서 살다 보니까 수국마을에서 미리 독립적으로 살아왔던 게 너무 자연스럽게 홀로 서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들 한다. 별것 아닌 거 같지만 나에게 행운의 프로젝트다. 그러고 보니 행운이 계속 있다.(웃음)
▲우대성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더리더

건축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크다, 세부적 변화가 필요한 때
신창훈: 본인의 건축 작업뿐만 아니라 건축정책 위원으로 제도나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우대성: 공공건축은 제일 어렵기도 하고 모든 건축을 선도하기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서 이뤄지는 많은 것을 실천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왜 그게 더디고 안 되는지 보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과 현장과의 괴리감 때문이다. 정책에서 강조하는 이론이나 텍스트는 현장에선 쓸모가 별로 없다. 다른 파트는 현장과 정책이 일치하는 부분도 많지만 건축은 다르다. 범위가 넓고 복잡해서 정책적인 부분을 다 해결할 수가 없다.
또 정책을 바꿀 때 큰 흐름의 변화도 중요한데 사소한 디테일에는 관심이 없다. 좋은 제도는 구체적이다. 정책이나 제도도 마지막에선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신창훈: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건축관련 정책 중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말해본다면.
우대성: 건축을 토목처럼 하나로 다루고 있다. 건축은 범위가 다양해서 세부적으로 구분해야 혼선이 발생하지 않는다. 많은 법령이 변화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특히 단열규정은 말이 안 되게 과하다. 적정 수준까지만 정하고 나머지는 선택에 따른 혜택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부분이 담론이 아닌 포괄적 개념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공건축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필요한 시설을 ‘만드는’ 것에서 ‘잘 만드는’ 시스템으로 전환. 한 글자 차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든 이가 이용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신창훈: 건축가면서 수필도 쓰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보기 좋더라. 일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획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대성: 건축은 우리 주변에 모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쉬워지면 좋겠다. 글을 쓸 때도 중학생인 아들이 읽고 이해되면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책도 깊은 이야기보다는 있는 대로 담백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 건축이든 책이든 있는 대로 그려내는 게 바람이다.

건축사사무소 오퍼스는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 woo daeseung, cho seongki, kim hyoungjong ‘오퍼스 건축’과 ‘모노솜 디자인’의 건축가. IMF때 사무실을 만들어 20년을 같이 일하고 있다. 가치와 지향의 공통점보다 ‘또래 관계’가 서로의 삶과 세월을 이끌었다. 새로운 시도였던 ‘천년의문’ 프로젝트로 혹독한 단련을 했다. ‘잘’ 그리고 ‘늘’ 쓰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데 몰입하는 중이다. 이상보다 실현가능한 현실에 촛점을 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건축을 한다. 고쳐 쓰는 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대담│신창훈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