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회 교수,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안 돼요"

“언론은 책임 있는 보도, 국민은 선별적 수용자 돼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19.07.05 08:3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허명회 고려대 교수/사진=더리더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정치적 여론 조사가 늘어나고 있다. 국민들은 여론 조사를 어떤 관점에서 지켜봐야 할까? 수많은 여론 조사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혜안을 키우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다.
허명회 고려대학교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통계학 박사를 받은 후 고려대학교에서 통계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각종 선거 방송이나 언론에 여론 조사 관련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고 있으며 국내 통계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전문가다. 허 교수는 인터뷰에서 수용자가 당부해야 할 사항에 대해 언급했다. “어떤 조사든 결과만 보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질문 자체가 유도성이 있지 않은지, 공정한지 비편향적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대부분의 조사 응답자는 목표의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응답하기 때문에 질문의 의도가 있다면 금방 넘어가기 쉽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허 교수의 고려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최근 국민의 관심 이슈에 의견을 묻는 여론 조사가 자주 눈에 띈다. 이런 결과가 공표될 때마다 국민적 관심은 더 집중된다. 결과를 통해 의견을 정하지 않은 사람도 여론에 휩쓸리는 결과도 만들어낸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밴드왜건(bandwagon, 서커스 따위 행렬의 선두에 선 악대 차를 뜻함) 효과와 언더독(underdog,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 효과다. 밴드왜건은 이기고 있는 쪽에 사람들이 몰려 더 유리하다는 이론이고, 언더독 효과는 지고 있는 쪽에 동정표가 많이 간다는 이론이다. 둘 다 일리는 있다. 꼭 어떤 한 가지 현상만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정당이나 후보가 이기고 있을 때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심리적 요인이 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여론 조사에서 3등은 불리한 게 사실이다. 2등 안에 들어야 앞서 말한 혜택도 있다. 3등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자신의 표를 사표로 만들지 않기 위해 1, 2등 후보에게 표를 주기 때문이다. 과거 기록을 보면 3등은 여론 조사 결과보다도 실제 득표율이 항상 더 적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를 수용자의 입장에서 유의할 것이 있다면
▶어떤 조사든 결과만 보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특정되어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질문 자체가 유도성이 있지 않은지, 공정한지 비편향적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조사 응답자는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에 응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의 의도가 있다면 금방 넘어가기 쉽다.
그래서 어떤 팩트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맥락이 약간 편향된다든가 배경에 대한 질문을 쫙 깔고 있으면 많은 응답자가 동의하는 편향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질문을 받는 당사자가 특별히 자기 생각에 의식이 있기 전에는 더욱 그렇다.

-무작위 인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가 대표성을 가지는 이유는
▶확률은 불확실성과 무작위성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동전을 던졌을 때 윗면이나 아랫면 중 어떤 면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이런 불확실성을 지닌 것들이 여러 번 시행돼 많은 표본에 적용되면 그 결과는 확실해진다. 그것이 통계 조사의 기본 원리다. 동전은 한 번 던질 땐 어떤 면이 나올지 모르지만 그것을 천 번을 던지면 그 결과는 거의 확실하게 참값에 수렴되어간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한 명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이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천 명에게 물어보면 그 결과는 모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값은 모르지만 결국 그 값에 수렴해간다는 게 통계이론이다.
또 확률은 연구자나 조사자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방법으로 얻어져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무작위성이다.
▲허명회 고려대 교수/사진=더리더

-여론 조사 방식 역시 무선과 유선, 자동응답방식 등을 사용하는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유선번호 조사의 제일 큰 맹점은 재택 성향에 있다. 유선번호 조사는 집 전화를 말하는데 집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집에 있는 사람의 특징은 직업이 없다든가 나이가 많다든가 하는 인구사회적 편향이 있다. 이 부분이 유선전화의 문제다.
그에 비해 무선전화는 보급률이 100%에 가깝다. 또 항상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재택 성향에 의한 인구적 특성이나 직업적 특성이 개입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지만 무선전화는 특별한 도구가 없으면 지역 정보를 가질 수가 없다. 지역에 대한 통제를 사전에 두기 힘들다. 이 의미는 국회의원 선거 같은 지역 선거의 경우 성북구에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무선으로 들어가는 번호가 성북구 응답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지역선거에 취약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무선전화를 활용하기 위한 ‘안심번호’ 제도를 도입했다. 안심번호 제도란 이동통신 3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이용자의 휴대전화번호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일회용 가상번호로 변환해 제공하는 것으로, 가상번호로 전화를 걸면 실제 번호로 연결된다. 이동통신사는 유권자의 성별·연령·지역 등을 포함한 안심번호를 선관위에 넘기고, 선관위는 공직선거관리규칙 제25조 7에 따라 여론 조사 기관에 제공한다. 앞서 말한 지역정보를 구분할 수 있지만 이 번호는 선거 조사가 아니면 발급할 수도 없고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그 다음이 자동응답방식, 즉 ARS방식인데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불신한다. 전화 조사 요청에 대한 응답은 자발적이다. 의사 표현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조사에 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 무선이나 유선의 경우 거절은 가능하지만 편향적 선택의 가능성은 적다. 면접원 조사가 더 우수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특수 경우엔 이 방식도 좋다. 참여 의향이 강한 의견만 받고 싶다면 ARS도 괜찮다. 그런데 언제 좋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일반적으로는 편향적이고 불안정한 조사 방법이다.

-정치적인 여론 조사의 경우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질문에서는 ‘질문지’ 검토가 필요하다. 그 검토를 한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 패널들이 검토하면 더 좋다. 그렇게 되면 여론 조사의 공정성이나 신뢰도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여론 조사 외에도 포털 댓글이나 검색어가 DB가 축적되어 여론화되고 있는데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
이런 방식이 바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인데,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어떤 빅데이터를 통해 통찰력은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이슈에서 뭐가 문제인지 간파할 순 있지만 객관적인 방법은 안 된다. 서베이 방법과 비교가 안 된다. 아무리 데이터가 많고 몇백만의 추출이라도 사회 정보로서는 미흡하다. 앞서 말한 무작위성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댓글이나 검색은 특별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남기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에게 사회적 정보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선거환경은 갈수록 변수가 많아지는데, 여론 조사 기법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획기적인 기법이나 방식이 있다면
▶사실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나 더하자면 앞으로 더 늘어나야 할 긍정적인 방식은 공론 조사다.
여론 조사는 피상적인 생각을 수렴하는 데 반해 공론 조사는 숙성된 생각, 숙고에서 나온 생각이 측정되기 때문에 우수하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 전화 조사를 할 때에는 표피적인 생각이 나온다. 그런데 공론 조사를 하면 이게 어떤 측면이 있는지 좀 더 깊게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고 토론도 들어보고 나서 최종 자기 생각을 드러내게 된다. 공론 조사는 좋은 방법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추진해야 할 방식이라고 본다. 신정부 들어서면서 여러 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공표 또는 보도를 목적으로 하는 선거 여론 조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져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추게 할 책무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우리나라의 선거 관련 여론 조사가 조금 더 공정하고 신뢰도 있게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여론 조사가 범람할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이런 여론 조사를 어떻게 봐야 하나
참고만 했으면 좋겠다. 설문이나 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꼭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여론 조사에 대해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선 선거일을 앞두고 ‘블랙아웃 기간’이 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1항 '여론 조사의 결과공표 금지'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 시각까지 선거에 관해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 조사의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이비 정보가 진짜처럼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밴드왜건이나 언더독 효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쳐 국민의 진의를 왜곡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치다. 이미 국민들은 충분히 그런 가능성까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언론은 여론 조사의 질적 차이에 따른 선별적 보도를 해야 한다고 본다. 여론 조사를 발표하면 국민들 역시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ARS 조사를 우리나라 언론에서 다루는 게 불만이다. 여론 조사는 비편향성과 신뢰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허명회 고려대 교수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통계학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통계학 박사
●고려대학교 통계연구소 소장
●한국통계학회 사업담당 이사
●한국분류학회 회장
●한국통계학회 공업통계연구회 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