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교육은 ‘만남’ 통해 자신을 찾는 것”

[기관장초대석]지역별 ‘스카이 대학’ 많이 만들면 서울 쏠림현상 해결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9.06.10 10:2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교육은 만남이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은 인터뷰에서 교육을 만남으로 정의했다. 배움은 만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간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는 <교육개발>이라는 잡지를 분기별로 만든다. 반 원장이 직접 교육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파워 인터뷰 코너’가 있다. 지난 3월호 주인공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었다. 또 반 원장은 최근 토크콘서트를 진행한다. 기관장으로서, 전직 대학교수로서,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그는 형식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고교학점제 도입, 대학입시 제도 공론화, 학령인구 감소…, 교육개발원을 이끄는 반 원장이 답을 내놔야 할 문제들이다. 반 원장은 “교육의 문제는 교육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빈부격차, 노동시장 구조 등 사회 복합적인 문제와 얽혀 있다고 답했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면에서 전반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조금은 벅찹니다.”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를 지낸 반 원장이 구상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는 다소 복잡하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교육이라는 보수적인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 원장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미래에 대한 대응을 듣기 위해 지난달 27일 충북 진천 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교육개발원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도 직접 진행하고, 토크콘서트도 진행한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알게 된 우리나라 교육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인구가 감소하면서 연령별과 지역별로 인구 지형이 변하는 것이다. 인구 지형 변화는 향후 교육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과 저성장 시대로 양극화 문제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저성장인데다가 경기 침체가 지속되다 보니 양극화가 생긴다.

들여다보면 단순하게 인구가 감소하는 게 아니라 40세 이하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교육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단순히 ‘고령화’ 혹은 ‘복지비용 증가’로 이야기하는데 중요한 것은 ‘생산인구가 감소하는 것’이다. 특히 인구 중에서도 농촌과 어촌의 인구가 줄어든다. 농어촌 출산율이 낮지 않다. 이곳 인구가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전출현상이 문제다. 이런 인구지형 변화가 교육계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어떤 대책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지역에서 인구가 유출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세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 인프라와 문화, 교육이다. 우선 생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또 이동을 하지 않더라도 지역에서도 자녀교육이 잘 이뤄지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면 그다지 옮길 이유를 못 느낄 것이다. 지금의 농어촌에는 갖춰지지 않았다. 자족도시가 될 수 있게 교육과 지역 경제 발전이 연동된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4차산업 시대가 교육계에도 영향을 미칠 듯싶다
▶일본에서 AI가 사법고시 1차 시험문제를 뽑았는데 60% 정도 적중했다고 한다. 한국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사법고시 시험뿐만 아니라 수능 같은 경우에도 AI가 예상문제를 뽑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 왔다면 지금 같은 수능은 변별력이 없다는 것이다.

-변하는 시대에 학생도 달라졌을 텐데
▶어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요즘 학생들은 다르다. 지금 학생은 시각•청각•지각능력이 다르다. 인지구조가 달라진 것이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게 이미 우리 기성시대와 다르다. 그런데 여전히 공부는 주입식 필기식이고 시험은 정답 맞히기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되지 않았다. 교육의 내용부터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법, 그리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법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달라진 패러다임 중 하나는 고교학점제다.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다. 취지는 좋은데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강의를 많이 개설하는지가 관건이다. 또 개설한 과목을 담당할 교사가 있는지, 특히 대학처럼 강의실을 이동하면서 수업이 가능한지 등 인프라를 두고 실현이 가능한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개발원에서 고교학점제가 더 잘 실현될 수 있게 무엇을 연구하나
▶공간의 문제에 대해 연구한다. 개발원에서 ‘학습 공간 재구조화’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 학교처럼 ‘ㄷ’자로 된 획일화된 공간이 아니라 이동이 가능한, 21세기형 학습공간 재구조화를 연구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시급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학습 공간이 갖춰진다면 고교학점제를 더 잘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과목을 그저 듣는 게 아니라 관심 있는 것을 찾아가는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 대학 경쟁률이 낮아질까
▶대학입시 경쟁률에 대해서는 사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야 될 방향성을 언급하자면, 대학도 성적에 따라 선발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성적경쟁을 통해서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어떤 학생을 뽑았을 때 인재로 발전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봐야 한다. 대학입시 문제는 교육 내부의 문제만 가지고 볼 수 없다. 사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과열된 대학입시 경쟁은 노동구조 문제와 연관돼 있다. 노동시장에서 학벌이라는 요인이 작용되는 한 학벌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노동시장의 학벌 지향적 고용관행을 개입해서 개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의 역할은 대학에 투자해서 좋은 대학을 많이 육성해 지금과 같은 소수 대학 중심의 학벌체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대학 입시 경쟁 쏠림 현상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지역별로 ‘스카이(SKY) 대학’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포항공대와 카이스트를 보면 지방에 있지만 좋은 학교로 평가받는다. 국가에서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우수한 교수가 가르쳐서 인재를 배출하면 우수한 학교가 많이 생길 것이다. 실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이다.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이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전 정부들은 시장에 맡겼다. 그렇게 되면 지방과 서울권 대학교는 출발점이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별로 좋은 대학을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연구를 진행한 적 있다. 9.8조원 규모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고등교육 예산의 두 배 정도다. 우리나라 지난해 GDP는 약 1780조원이다. GDP 대비 정부재원 비율 평균인 1.1%만 확보하면 19.6조원이 된다. OECD 평균 정도만 고등교육 재정을 확보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나라의 교육의 토양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4차산업이 세계적인 물결이라면 그것에 맞는 준비된 인력이 있다는 의미다. 이런 점은 세계적으로 ‘맨파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잠재력이 그만큼 높은 나라다. 미국이나 EU처럼 선진국은 국가차원에서 대학에 많이 진학하라고 장려한다. 이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아니다. 대학이 혁신하면 양질의 인재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고, 이는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예산이 없는 게 아니다. 국가의 의지가 관건이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사진=한국교육개발원
-문재인 정부가 2년 지났다. 남은 임기 동안 교육 분야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 구조 개편이다. 교육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시•도 교육청이 나눠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권한을 나눠주면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의 정책은 일관되게 진행할 수 있다. 최근 이야기 나오는 게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다. 설치가 될 수 있도록 현 정부 내에서 어떻게든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3월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제까지의 소회는 어떻게 되나
▶제가 원장으로 취임하고 난 뒤 우리 개발원이 조금 달라졌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개발원은 1972년 설립됐다. 역사와 전통이 깊다. 어떤 원장이 와도 180도 변하는 개혁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급변하기는 어렵지만 점차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의 장으로 강조하는 것은 개발원 직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이다. 무엇보다 연구원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고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게 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가에 기여한 차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교육가치와 저의 생각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해야 할 것이 많은데 쉽게 실현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을 강요하지 말자’다. 장래희망을 써내지 말자는 것이다. 어렸을 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학생은 없다. 불가능한 것을 어른들이 강요하는 것이다. 교육은 만남이다. 무언가를 계속 만나가는 과정이다. 만나면서 자기 자신을 찾는 게 교육의 본질이다. 자연스러운 선택의 과정들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교육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 노력하겠다.

반상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원 교육행정학 박사
대통령자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상임전문위원)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소장
한국교육정치학회장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장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現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現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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