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 건축가, ‘사회적 요구’에 건축으로 답하다

지역을바꾸는건축- 갖추지 못한 ‘필요’에 첫 번째 형식을 주는 것이 목표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19.06.24 11:2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신창훈 운생동 건축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건축가들과 만난다. 신 대표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시작으로 서울시 건축상 대상까지 수상한 그야말로 ‘핫’한 건축가다. 뛰어난 설계는 기본이고, 완성된 후 지역사회와 함께 어우러질 공간을 만드는 기획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공공그라운드 앞에서 신창훈 대표(오른쪽)와 조재원 대표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더리더
지역을 바꾸는 건축에서 만난 여섯 번째 건축가는 조재원 공일스튜디오(0_1studio)대표다. 코너의 첫 여성 건축가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베를라게 건축대학원을 수료했다. 2002년부터 공일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국토정보공사와 정림건축문화재단 사외이사로도 재임 중이다. 2009년 제주도의 주택 플로팅엘로 제주건축문화대상 주거본상, 2011년 대구 어울림극장으로 공공디자인대상을, 2016년에는 카우앤독으로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회적 필요는 있으나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민을 뜻하는 공일(0_1)에는 건축가로서 그의 가치가 담겨 있다. 그의 2015년 완공된 성수동 카우앤독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협업의 공간으로서 공유오피스의 시초가 된 것도 고민이 공간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내부의 구성과 여러 조합이 가능한 가구나 조명의 섬세한 표현력은 그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는지 짐작케 한다. 

2018년에는 故 김수근 선생의 작품인 샘터 사옥을 원작의 가치를 보존함과 동시에, 새로운 플랫폼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거장의 작품에 손을 댄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샘터 사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며 미션을 과감하게 성공시켰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건축의 요소를 유연하게 창조해내는 그만의 스타일이 돋보인다. 공공일호 5층에 위치한 공공일라운지에서 신 대표와 대담이 진행됐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조재원 대표/사진=더리더

공유오피스의 전형을 제시하다
신창훈: 성수동 공장지대에 만들어진 ‘카우앤독’이 스타트업 공유오피스의 시초가 됐다. 건축주가 이재웅 다음 창업자인데, 이 공간은 어떻게 출발하게 됐나.
조재원: 2014년에 카우앤독(CoW&DoG(Co Work and Do Good))의 설계를 시작할 때는 ‘공유오피스’라고 구글에서 검색하면 국내에 소개된 사례가 없었다. wework(위워크)가 “공유오피스로 성장하고 있는 주목받는 스타트업” 정도로 외국 매체에 소개되는 수준이었다. 이재웅님과는 카우앤독의 설계 이전에 오프라인에 구현된 온라인 포털서비스와도 같은,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인 교류와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플랫폼을 구상해보자고 의뢰하셔서 제주도에 소셜호텔을 계획했었다. 성수동에 부지가 확보되며 소셜호텔로 구상했던 모델을 옮겨와 사업적인 이윤추구와 함께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예비)창업자들이 모이고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공유오피스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창훈: 성수동이 핫해지기 시작할 무렵 카우앤독이 들어서 그 지역의 문화를 부흥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창업가들이 모여들면서 지역의 변화를 견인했는데.
조재원: 지역이 변한다는 건 새로운 사람이 유입됐다는 이야기다. 유입된 상주인구나 유동인구가 지역에 새로운 규범과 문화를 들여오는 것이 ‘변화’의 모습일 것이다. 카우앤독이 성수동지역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면 그것은 공유오피스라는 인프라를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을 초대하고 표방하는 공동의 가치를 확산하는 장소로 잘 작용했기 때문이다. 카우앤독(CoW&DoG)은 Co Work and Do Good의 준말이다. 독점과 경쟁이 아닌 상생과 협업을 공간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자 규범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는 공간운영의 규범으로 반영된다. 공간사용에 있어 소셜벤처에 대한 혜택이나 공간의 대관에 있어서 코워커를 비롯한 관심자들에게 참여가 열린 이벤트의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원칙 등이다. 이런 가치와 규범들을 공유하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지역의 변화가 확산되는데 카우앤독이 마중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창훈: 기본적 오피스 사업의 개념이 경쟁이나 독보적인 자기 성장이었다면 카우앤독은 협업과 소통의 공간으로 기존 것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이런 마인드를 건축의 개념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재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 어떻게 ‘플랫폼’을 구축할 것인가. 상상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떠올려보면,주어진 형식은 같지만, 내 페이스북 페이지와 다른 사람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 모두 같다면 생태계 성장의 여지도 없다. 공간의 플랫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건축가로서 공간의 영역과 성격을 정의하고 구축하는 데 있어서 바둑판의 그리드처럼 무한대의 게임이 펼쳐질 수 있는 최초의 판과 규칙을 공간화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했다.
카우앤독의 평면에서는 중앙의 코어(계단실과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오픈 랜드스케이프의 개방공간과 프라이빗하게 구획된 방들의 영역을 나누어 배치했다. 단면에서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거리에 면한 일층의 코워킹카페, 이층의 공유회의실에서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약속된 기간 동안 지정된 공간을 개인이나 그룹이 사용할 수 있는 영역들을 배치했다. 이렇게 수평과 수직의 메트릭스처럼 주어진 공유공간을 이용해서 사용자들은 저마다 필요한 협업과 프로젝트 공간, 사무실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높이도 면적도 달라 균질하지 않은 공간들이 사용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북돋우게 하고, 여러 조합이 가능한 유닛 가구를 사용해 사용자들이 각 공간들을 필요한 대로 재정의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사람들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쌓여 문화가 되고 건물을 늘 새롭게 정의하기를 바랐다.

신창훈: 가구나 테이블 조명 등이 가변성에 대해 섬세한 고민을 느끼게 해준다.
조재원: 회의테이블을 사이에 둔 인터뷰와 낮은 소파에서의 인터뷰는 다른 대화를 만들 것이다. 카우앤독에서의 소통을 계획하면서 바닥에 누웠을 때부터 서서 하는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그래서 툇마루에 앉는 공간도 있고, 편안한 소파와 낮은 탁자, 지나다가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바테이블 등, 약속하지 않아도 스치는 매 순간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조명, 가구 높낮이의 세팅이나 마주 보는 각도까지 섬세하게 계획했다. 1층 카페 테이블은 약간 사다리꼴인데 조합하면 여러 개의 독립된 모둠이 되기도 하고 지그재그 배열로 한 줄로 배치할 수도 있다. 한 테이블에 앉았을 때 정면으로 마주 보는 각도가 없도록 해서, 모르는 이들과 앉아서 각자 일할 때도 어색하지 않고, 협업회의를 하기에도 불편하지 않다. 다양한 모드의 ‘일’의 양태에 섬세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계획에 노력을 기울였다.
불특정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건물일수록 서로의 소통이 이뤄지려면 다양한 필요와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적절하게 설계돼야 한다. 특정 사용자에게 요구사항을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
▲신창훈 운생동건축사 사무실 대표가 질문을 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공유오피스 전성시대다.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우리나라 공유오피스의 시초를 설계한 분으로서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조재원: 대도시마다 크게 오른 지가와 그에 따른 임대료 등 창업비용의 상승과 함께 저성장의 시대를 맞아 공유오피스는 큰 흐름이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정보화 시대에는 모여서 일해야 하는 공간의 제약 없이 유목민처럼 흩어져 일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오피스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개개인이 모든 정보를 각자의 손에 가지고 있지만 함께 모여서 일해야 하는 필요는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협업의 기회,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더 큰 가치로 성장하는 확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질적인 밀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이 바로 공유오피스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샘터 사옥에서 공공 그라운드로
역사적 건축물의 리노베이션

신창훈: 샘터 사옥은 故 김수근 선생님의 작업으로 승효상 선생님의 이로재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40년 세월이 짙게 묻어 있는 건축물인데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조재원: 부동산 임팩트 투자 회사를 표방하는 공공그라운드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매입해 건물을 보존하면서도 혁신적 프로그램으로 운용하는 프로젝트의 첫 케이스로 진행됐다. 건물 매입을 결정하는 과정부터 참여했다. 샘터 사옥의 도시건축적 의미를 높이 사면서도 현실적으로 보면 건축의 역사적인 가치와는 상관없이 지가에 의해 형성된 높은 비용이 혁신적인 프로그램에 적정한 것인가 우려의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의 오랜 가치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이 만나서 미래의 가치를 만드는 희소한 경우가 될 거라는 발주처의 의지에 십분 공감해 이런 목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계획에 임하게 됬다.
▲조재원 대표가 공공 그라운드 쉼터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더리더

신창훈: 샘터 리노베이션을 살펴보면 외관적으로는 오랜 세월의 연속성을 받아들이면서 내부적으로 현대적 프로그램과 감성을 새롭게 해석하여 옛것과 새것의 묘한 조화를 자아내고 있다. 설계 의도 및 중요한 디자인 관점을 알고 싶다.
조재원: 처음엔 겁이 났다. 故 김수근 선생님의 작품을 어느 부분을 건드려서 새로운 의미로 바꿀 수 있을까.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까. 도전적으로 임해야 할까.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바꾸는 것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0년의 서사를 복원해 잘 아카이브하고 이 서사가 옛 샘터 사옥에서 다음 단계, 공공일호의 도시적, 건축적 의미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의 매입이 결정되고 ‘기억의 인수인계자리’라고 농담반 진담반 명명했던 상징적인 모임이 있었다. 

공공그라운드, 샘터사 관계자, 이로재 이동수 소장님 등 여러 분이 모두 모여서 샘터 사옥에 대한 자료들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건물에 대한 해묵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건물의 물리적 인수인계가 아닌 의미와 기억을 인수인계하는 자리였다. 도면자료부터 임대계약서까지 샘터사에 남아 있는 모든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통해 자료 뒤에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이어지지 않는 조각들 같았던 지금의 건물에 남은 변화의 흔적들을 스토리로 구슬 꿰듯 맞춰나갔고, 이 자료들을 아카이브했다. 그러면서, 이 건물이 지키고 보존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이 선명해져갔다.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도시의 길을 이어서 건물 안에 길을 내고 광장을 둔 것은 도시건축의 공공성을 실현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지금은 주변의 도시적 맥락이 다 완결되어서 길이 연결되고 통과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김수근 선생이 설계할 당시엔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이전한 직후의 백지 같은 조건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건축가의 비전과 상상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보존해야 할 가치가 선명해지니, 리노베이션의 원칙도 선명해졌다. 

구 샘터 사옥이 하나의 건물의 사적 경계를 허물고 길을 내부로 들이고 도시와 호흡하던 것을 원형이 의도했던 바에 가깝게 복원해 이어가고, 대신 원형의 계획이 세워질 당시에 김수근 선생이 가졌던 비전과 상상으로 지금으로부터의 미래를 상상할 때 건물이 가져야 할 과감한 변화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필요한 변화를 계획했다. 2012년 이로재에서 증축 계획 시에 적용했던 원칙을 이어서, 18년의 리노베이션에서도 새로 덧붙여지는 구조는 기존 재료와는 차별화되게,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되, 꼭 필요한 곳을 변경하되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하지 않고 그 자료를 남긴다는 원칙으로 계획, 시공했다.

신창훈: 공공그라운드에는 다양한 내부공간이 존재한다. 좀 더 자세하게 공간 프로그램과 활용에 대해 알고 싶다. 그리고 공공의 목적과 상업적 수익의 적정성도 궁금하다.
조재원: 건물의 규모는 지하 2층, 지상 6층이다. 1979년 건축 당시 4층이던 건물은 2012년도에 이로재 승효상 선생님이 2개 층을 증축설계해 6층 건물이 되었다.
길과 광장이 통과하는 접지층의 두 개 층은 상업시설에 임대 중이다. 지하는 신축 당시에는 식당, 기계실, 전기실, 보급소로 쓰였던 공간을 점차 용도 변경해 파랑새소극장 1,2관으로 사용하던 곳을 지금은 다양한 외부행사를 유치하는 공공일스테이지로 쓰고 있다. 공공일호는 교육과 미디어의 혁신 콘텐츠 공간으로 기획되어 지상 3층에는 미래교육의 실험실인 거꾸로교실과 교육혁신에 대한 라이브러리인 온더레코드가 있고, 4층은 미디어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와 다양한 입주사들이 일하는 코워킹오피스가 공유한다. 옥상라운지인 5층에는 입주자들이 미팅, 휴식, 소통을 하거나 외부의 행사가 벌어지기도 하는 공공일라운지와 공용회의실이, 6층에는 팟캐스트 녹음실이 있다.
공공성과 수익적정성의 조화는 공공그라운드에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공공일호는 재무적인 수익과 함께 사회적인 임팩트가 주요한 성과지표라는 점이 중요하다. 건축가로서 함께 고민했던 바는, 공공일호의 공간이 상주하는 제한된 인원만의 공간이 아닌, 훨씬 더 확장된 사람들의 활동과 교류 플랫폼이 되고 임팩트를 주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공유인프라를 계획하는 것이었다. 지하의 공공일스테이지나 옥상의 공공일라운지, 팟캐스트스튜디오 등은 공공일호를 플랫폼으로 교류되는 정보와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확성기, 공유인프라들인 셈이다. 계획하면서 공공일호는 교육과 미디어를 콘텐츠로 하는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하곤 했다.
▲조재원 대표(왼쪽)와 신창훈 대표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신창훈: 건축이 미디어가 된다는 말이 와 닿는다.
조재원: 공간에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매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공그라운드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가치 있는 건물이 개발 명목으로 사라지지 않고, 현재와 미래 세대가 혁신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도시의 공유지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것은 무척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공공이호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발굴하는 것부터, 역사적 조사, 보존과 활용에 이르는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아카이브할 수 있는 협업을 통해 더욱 의미 있는 전범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0-1스튜디오
이십일세기 공일의 좌표를 찾아서

신창훈: 조재원 대표의 공일스튜디오는 “0에서부터 1 사이, 아무것도 없던 데서 처음 생기는 것 사이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세상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건축가의 역량을 발현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이런 건축적 철학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달라.
조재원: 0과 1을 디지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대로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담겼다. ‘카우앤독’이나 ‘공공일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필요가 있는데 현상으로 발현되지 않은, 이를테면 ‘짬짜면 그릇’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건축을 하고 싶다. 우습지만 짜장이냐 짬뽕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이었다. 누군가 그릇을 반으로 나누고 메뉴를 만들고 나니 새로운 거래도 발생하지 않았나. 필요가 있는데도 물리적 환경이 구현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나 필요에 응하는 첫 원형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련되고 완벽한 나만의 건축 언어를 구축하는 것보다 필요하지만 틀을 갖추지 못한 사회적 요구에 거칠더라도 첫 번째 공간적 형식을 주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에 가깝다. 그렇기에 공유오피스 1호를 만들었지만 공유오피스 전문가로 여러 곳으로 확장하는 일보다는 다른 필요에 관심이 옮겨가는 거 같다. AI가 건축가의 일을 대체한다면 아마 나 같은 건축가들이 살아남지 않을까?(웃음)

신창훈: 다양한 캐릭터의 건축가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좋은 거 같다. 관심이 계속 옮겨간다면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조재원: 사실 건축가가 스스로에게 커미션을 주진 못하지 않나.(웃음) 그럼에도 의지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후배 건축가에게 혼잣말을 하더라도 들리게 말하고 보이게 적으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가치를 가진 생산을 하고 싶어’라는 말을 계속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번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건 ‘노인 주거 프로젝트’다. 나도 1인 가구로 중년이 되었고, 부모님 역시 연로하셨기 때문에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아졌다. 돌봄없이 생활이 어려운 노인의 주거는 가족과의 동거가 아니라면 현재는 돌봄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시설’의 선택지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다. 시설은 돌보는 사람,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계획되기 마련이다.

신창훈: 방금 하신 말씀은 최근 생활형 SOC 사업에 몇십 조를 투입하면서도 진지한 논의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힌트처럼 느껴진다. 시대는 바뀌어 노인을 돌보는 시스템이 노인 위주로 만들어져야 잘 작동하듯이 이런 문제들을 계속 발현시켜야 한다. 이런 논의가 SOC 사업에 반영되도록 소스를 제공하는 단계를 만들어내는 고민이 필요하다.
조재원: 급속하게 산업화를 거친 사회에서는 차근히 단계를 밟아서 좋은 정책이나 시스템을 만들기보단 각성한 개인이나 그룹이 새로운 전범을 보여줌으로써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케이스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돌봄은 결국은 가족단위에서 해결이 안 된다. 다양한 노인 주거를 상상하려면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사회적 신뢰를 기반한 대안가족과 새로운 단위의 주거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신창훈: 언론에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조재원: 월드(world)= 윌(will)+액션(action). 세상은 의지와 행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이 말을 어디선가 듣고 오래 기억하고 있다. 윌(will) 즉 의지의 단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건축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의 연장선이라고 본다. 건축이 도시에,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바를 글로 공유하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의지가 바뀌면 결국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겠나?(웃음) 길게 보면 영업활동이다.

신창훈: 운생동 사무실도 여성이 반이다. 또 요즘 건축학과 학생도 여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조 소장님은 이제 여성 건축가 중에서도 선두에 계시는데 후배 건축가나 여학생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조재원: 너무 큰 판을 읽으려고 하기보다 만나는 하나하나의 배틀에서 작은 승리를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 큰 덩어리의 목표를 한 번에 격파하고자 하다가 지치기보다는 여성이 가지는 방식으로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으면 맥락이 찾아지는 경우가 있다.
“프리츠커상을 받겠어”, “사회를 바꿀 거야” 같은 명분 있는 목표가 아니더라도 “내 가족의 방을 바꿔주고 싶어” 같은 마음에 와 닿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해 그걸 한 단계씩 큰 의미와 연결해나가다 보면 어느덧 나만의 멋진 서사를 만들고 있음을 알게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마 이런 말에 공감하며 힘을 받는 여성 동료들이 있을 것 같다.
대담│신창훈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PROFILE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
●공일스튜디오(0_1studio) 건축사사무소 대표
●네덜란드 베를라게 인스티튜트 석사과정 수료
●한국국토정보공사 비상임이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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