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화폐시대,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_무엇#1원의부활#화알못_주목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9.06.03 09:4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뉴시스
3월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 관련 질문에 대해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고 답하면서 화폐단위 조정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이후에 이 총재는 “원론적 차원의 답변이며 추진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정부의 추진 의사가 없음을 재차 밝혔지만 여전히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통화액면단위변경)이란

리디노미네이션은 ‘다시(Re)’와 ‘화폐액면 단위 절하(Denomination)’를 합친 단어로, 화폐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바꾸는 일이다. 이를테면 10000원을 10원, 1000원을 1원 등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화폐개혁의 일종으로 단순히 단위만 바뀌기 때문에 화폐 가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는다. 새로운 1원은 기존 1000원의 가치를 갖게 된다.

우리나라 과거 두 차례 화폐단위 조정
우리나라는 과거 두 번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적이 있다. 1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953년 2월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긴급명령 제13호」를 공표하면서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고 화폐 액면가를 100대 1로 절하했다. 100원은 1환으로 변경됐다. 이는 한국전쟁으로 생산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군사비 지출 등으로 초래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였다.
2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962년 6월 박정희 정권시절에 단행됐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긴급통화조치법」으로 화폐단위를 다시 환에서 원으로 바꿨고 액면가는 10분의 1로 조정했다. 10환은 1원으로 변경됐다. 2차 리디노미네이션은 국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산업자금 확보를 위해서 이뤄졌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화폐단위는 그대로 유지됐다.

리디노미네이션, 왜 필요한가
최근 이러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10일 발표한 우리나라 총 금융자산은 1경7148조780억원(17,148,078,000,000,0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1962년 2차 리디노미네이션 단행 이후 57년째 화폐액면 단위가 묶여 있는 동안 국민총소득은 4800배 넘게 불어나면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0의 개수를 세기도 어려울 만큼 경제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높은 단위 액면가를 편리하게 낮은 단위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위를 줄여 표시하는 것은 지금도 음식점이나 커피숍 등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1000원짜리 음식은 21로, 4500원 커피는 4.5로 표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회원국 가운데 1달러화 대비 환율이 1000단위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화폐단위를 낮추면 1달러=1.19원이 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오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유로나 파운드와 비교했을 때도 비슷한 정도로 통화가 표시되어 대외 위상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 총생산의 20~25%로 추정되는데 이는 대략 350~450조 원일 것으로 보인다. 화폐단위가 변경되면 새 화폐로 바꾸기 위해 지하경제의 숨은 돈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서 세수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 부작용
리디노미네이션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전문가들은 물가인상을 꼽는다, 1000원 하던 물건이 1원이 되고, 10억원 아파트가 100만원이 된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끼면서 소비가 늘어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천만원 연봉은 5만원으로 바뀌는 등 자산과 소득 역시 동일하게 단위가 줄어 물가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화폐단위 조정에 따라 신규 화폐 제작과 금융/회계시스템 교체 비용에 막대한 예산이 초래되는 것 역시 대비해야 한다. 2004년 김효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에 따르면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경우 화폐 제조 8200억원, 현금 입출금기 등 교체 4400억원, 전산 프로그램 수정 1조3500억원, 유가증권 재인쇄 등 기타 비용 600억원이 추산됐다. 물가상승 등을 감안하면 현재는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들의 생각은
CBS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1000원을 1원으로 변경하는 원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52.6%가 ‘물가인상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반대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규모에 맞춰 화폐단위를 바꿔야 한다’는 찬성 응답은 32.0%로 반대 의견보다 20.6%p 낮았다. 모름/무응답은 15.4%였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충청권과 30대, 진보층, 민주당 지지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과 계층에서 반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7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7547명에게 접촉해 최종 504명(6.7%)이 응답한 결과다. 통계 보정은 2019년 1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4.4%p다.

리디노미네이션, 성공하려면
지난달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화폐개혁,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화폐단위에서 0을 세 개 떼어내는 것이 전부다. 원달러 환율이 1000대 1인 화폐 후진성은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경제는 현재 국내 수요 부족으로 디플레 우려도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조건이 무르익었지만, 정치적 파장을 감당하기 어려워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 의견 역시 많았다. 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자동화 기기(ATM)와 자동판매기 교체, 전산시스템 수정을 포함해 많은 직접 비용이 유발되고, 화폐교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노출과 재산상 손실 우려로 상당한 간접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법개정-새 화폐발행-교환기간 설정-신구화폐 병용-가격 이중표시제-화폐 단위 변경 완료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터키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적으로 한 국가로 가장 많이 거론된다. 터키는 2005년 100만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은 한 자릿수에 그치는 데 성공했다. 1998년 관련 입법을 추진해 시행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준비했으며 국민공감을 끌어내는 데도 힘썼다. 전문가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이 이처럼 순기능과 역기능 모두 갖고 있는 만큼, 장기간 충분한 공론화와 여론수렴 과정을 통해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경제적인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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