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 “바둑 제2전성기, 기초체력 다질 것”

바둑진흥법과 AI 활용 통해 ‘국민 스포츠’로 재도약 기대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9.05.10 09:29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2016년 3월 12일 낮 1시 서울 종로구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바둑 대결 제3국을 벌이고 있는 이세돌 9단이 바둑돌을 놓고 있다. /사진=Google 제공

2016년 3월 9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3월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된 ‘신의 한 수’ 결과는 알파고가 이세돌에 4대 1로 최종 승리했다. 과연 인공지능
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 의심하며 이세돌의 승리를 확신했던 이들에게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더욱이 경우의 수가 250의 150제곱에 달하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한 게임인 바둑이었기에 대국의 결과는 파장이 컸다.

알파고-이세돌 대국은 AI 기술 발전의 위력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바로 1980~1990년대 국민 스포츠로 각광받았던 바둑이 재조명받는 단초가 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바둑 문화의 대중화와 프로바둑기사 양성 기관인 한국기원의 김영삼 사무총장은 “앞으로는 AI를 활용한 바둑을 통해 한국 바둑을 한 단계 성장시키고, 바둑진흥법을 토대로 바둑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한국기원은 언제 처음 생겼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
▶한국기원은 바둑 문화의 창달과 보급, 전문 바둑기사의 기예 향상을 위해 1954년 공식 출범했다. 실제 한국기원의 원년은 1945년 조남철(1923~2006) 9단이 한성기원을 설립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기원 설립 전에 우리나라 바둑은 순장바둑과 근대바둑이 혼재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에서 바둑을 수업한 조남철이 광복 이후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을 세우면서 현대바둑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한성기원은 1948년 조선기원으로, 이듬해인 1949년에는 대한기원으로 개칭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기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부산에서 피난기원을 운영하던 대한기원은 전쟁이 끝나고 1954년 1월 8일 사단법인 한국기원을 창립했다. 그해 4월 10일 제1회 승단대회 개최를 시작으로 한국기원은 프로기사제도 확립과 바둑 인구 저변 확대로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한국기원 홍석현 전 총재가 사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최근 비대위원장 사퇴 등 공백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우선은 지난해 공백기에 자리를 맡으면서 가장 큰 과제는 조직의 안정화, 훌륭한 차기 총재 추대, 그리고 기전 확대까지 세 가지였다. 얼마 전에 임시이사회를 열었는데 새로운 총재분을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모시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아직까지 공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바둑을 좋아하고 아껴주시며 앞으로 미래 지향적인 기원 운영을 통해 바둑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을 생각 중이다.
덧붙여서 지난 2014년부터 작년까지 한국기원 총재로서 이끌어주신 홍석현 전 총재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홍 전 총재 덕분에 프로 바둑계가 많이 활성화되고 바둑의 외연이 많이 확대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사진=한국기원 제공
-‘바둑 미투’와 관련해 한국기원이 재작성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그 과정까지 잡음도 많았다. 앞으로 바둑계 성폭행, 윤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바둑계 미투 과정에서 있었던 불미한 사태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프로기사 양성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성폭행이나 성윤리와 관련된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고 느꼈다. 한국기원에 있는 직원들은 물론, 프로기사들도 성차별이나 성희롱 문제에 있어 구시대적인 가치를 벗어나야 할 것같다. 얼마 전 보고서를 재작성할 때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고, 성폭력위기센터와 협업을 통해 정기적인 성교육과 안전시스템을 구축해나갈 생각이다.
이번 사태로 조직 전체가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비 온 뒤 땅이 더 굳는다’고 했듯이 한 번은 거쳐가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바둑계 내부 적폐를 해소하는 등 장기적으로 바둑계 환경을 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80~1990년대는 한국 바둑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이창호 9단이 있었는데
▶그렇다. 천재 소년기사로 불렸던 이창호 9단의 등장은 그야말로 바둑사에 있어 혁명이라고 할 만했다. 그는 1989년 제8기 바둑왕전 우승으로 세계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했고, 연간 최다대국인 111국 신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1990년에는 최다연승(41연승) 신기록, 1994년에는 최다관왕(13관왕)과 연간 최다승(90승) 신기록, 사이클링히트(16개기전 한 차례씩 석권)를 기록하며 바둑 역사를 새로 썼다.
이런 발전을 토대로 한국 바둑은 1993년, 1994년 2년 연속 세계 바둑을 재패하며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 바둑은 제1회 진로배 우승을 시작으로 응씨배, 동양증권배, 후지쓰배 등 각종 세계 대회를 석권하고 8연속 세계 대회를 우승함으로써 세계바둑 최강의 기사임을 증명했다.

-바둑은 과거에 비해 대중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현재 바둑의 상황(바둑 인구 등)에 대해 수치로 알려주신다면
▶앞서 말한 이창호 9단 등이 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대 초반에는 바둑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했다. 현재는 성인 인구 대비 22%인 920만 명 정도가 바둑을 둘 줄 알며 1년내 바둑을 둔 인구는 370만 명 정도다. 비(非) 바둑 인구의 바둑 학습 의향은 16%로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 바둑사이트가 10개 정도 있고 인
터넷 대국 판수를 추정해봤을 때 바둑 인구는 예전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바둑을 즐기는 인구는 꽤 된다고 본다.

이세돌 9단과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2016년 3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제5국을 펼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드라마 <응답하라 1988> 프로 바둑기사 등장 등으로 다시 바둑에 관심이 커졌다. 바둑의 대중화를 위한 계획이 있다면

▶바둑을 사람들이 많이 알고 둬야 파이도 커지기 마련이다. 예전과 같은 바둑의 대중화를 위해 다시 기초체력을 다지고 있는 상태다. 아무래도 과거에 비해 게임이나 즐길거리가 많아지다 보니 오프라인 바둑의 인기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터넷 대국 판수가 상당한 수치다. 오프라인에 비해 쉽게 상대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온라인의 장점이다. 온라인 대국 유저들을 발판으로 해서 오프라인에서도 바둑을 둘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는게 목표다.
지난 3월 5일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세돌 9단과 중국 커제 9단이 특별대국을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알파고와 대국을 벌였던 유일한 한국과 중국의 두 최고 인기 바둑기사는 알파고 대국 이후 두 차례 특별대국을 벌여 각각 1승씩 한 상태였다. 이날 경기에서 이세돌은 156수 만에 흑 불계로 패했다. 이런 특별대국 같은 볼거리와 대중
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바둑 교육 프로그램 기획 등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바둑계의 파이가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해 10월부터 바둑진흥법이 시행됐다. 바둑 진흥법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둑진흥법은 많은 사람이 쉽게 바둑을 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내에 바둑센터를 둬서 누구나 쉽게 바둑을 둘 수 있게 하고, 프로기사나 선생님들이 바둑을 가르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법이다.
세부적으로 바둑진흥법의 내용을 보면 △바둑 진흥을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바둑진흥기본계획 수립과 시행 △바둑단체 지원 및 바둑전용경기장의 조성 △바둑 연구활동 및 국제교류와 해외 확산지원 △바둑의 날 제정 △바둑 관련 창업 및 기술 개발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
바둑은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처럼 두뇌 개발과 정서 안정에 좋으며 치매 예방에도 탁월한 스포츠다. 또한 비용이 크게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이고 건전한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둑을 배우고 즐기기까지 진입 장벽이 다소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다. 바둑진흥법이 만들어졌으니 정보 제공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고, 주민센터나 지역센터 등을 최대한 활용해서 많은 사람이 바둑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본다.

-지난해 열린 임시총회에서 바둑토토 추진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찬성률이 63%였다. 재추진에 대한 기원의 입장은 어떤가
▶지난해 가을 프로기사회 임시총회 투표에서 찬성률이 63%(찬성 101명, 반대 59명)가 나오면서 이사회에서 바둑토토를 추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당시 홍석현 총재도 다시 한번 바둑토토 추진에 관해 검토하라는 지시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하면서 현재 중단된 상태다.
바둑토토는 지난 2011년에도 한 차례 추진됐으나 일부 강경 반대 세력과 스포츠 승부조작에 대한 우려로 무산됐다. 바둑의 대중화와 활성화를 위해 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분들이 더 많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총재가 오시면 이사회에 바둑토토 추진을 재상정할 계획이다.

-한국여자바둑리그가 이달 6일부터 2019 시즌이 시작된다. 올해 눈여겨볼 만한 관전 포인트를 말씀해주신다면
▶한국여자바둑리그는 2015년 정규리그를 시작으로 5년째에 접어들었다. 5~10년 전만 해도 프로 여자 바둑기사들이 잘 두긴 했지만 우위를 점하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여자 바둑은 성장을 거듭해왔고 세계여자바둑 단체전에서는 우리나라가 제일 많은 우승 전적을 갖고 있다.
특히 여자 바둑 랭킹 1위인 최정 9단의 활약이 눈에 띈다. 지난해 SG골프 소속으로 뛰었던 최정은 SG골프가 이번 리그에서 빠지면서 드래프트 시장에 나와 1순번으로 사이버오로 지명을 받았다. 올해 여자 바둑리그에는 서울 부광약품, 부안 곰소소금, 서귀포 칠십리, 여수 거북선, 인제 하늘내린, 포항 포스코케미칼, 서울 EDGC, 서울 사이버오로 등 8개 팀이 참가한다. 6일 인제 하늘내린과 서귀포 칠십리의 대결로 2019 시즌 장정에 돌입한다. 올해부터는 한 경기당 3판의 대국이 동시에 시작되며 후보선수 선발은 자율에서 필수로 달라졌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올해 여자바둑리그에 거는 기대가 크다.

2018년 10월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서울특별시교육감배 학생바둑대회에서 참석 학생들이 대국을 펼치고 있다./사진=뉴스1
-바둑이 12년 만에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 바둑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은
▶지금 바둑계에서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가장 큰 화두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훈련이 바둑계에서는 이미 폭넓게 확산됐으며, 대국 중계에서도 AI 승률 분석이 활용되고 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남자단체, 여자단체, 혼성페어 3개 부문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한국기원이 국가대표팀을 운영한 지 4년 정도가 된 반면, 중국은 이미 15년 전부터 국가대표팀 운영과 강도 높은 훈련을 해왔다. 그 결과 현재 중국바둑은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왔다. 12년이 지나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우리나라가 바둑 강국임을 증명하려면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더욱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바둑이 위기라고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동양 문화의 정수이며, 인생이 담긴 두뇌 스포츠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생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 성인들의 취미활동과 치매 예방 스포츠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집중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필수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현재 바둑진흥법과 맞물려 공교육 편입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바둑이 다시 한번 국민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
1974년 12월 10일생
제1기 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 준우승
제1회 농심신라면배 우승
정관장황진단 감독
現 9단 프로바둑기사
現 BGF리테일CU 감독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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