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이선형 부부, “보기 좋은 돼지가 맛도 좋아요”

약초 사료 등으로 청정 사육… “친환경 축산 유도정책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9.05.02 17:2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박찬숙, 이선형 부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가현정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서른 번째 주인공은 전북 순창군 유등면에서 자연 양돈과 친환경 과수농사, 논농사, 밭농사까지 복합 영농 방식으로 농사짓는 박찬숙, 이선형 부부다. 이곳에서 농사를 배우고 있는 김현희 귀농활동가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면서도 의아했던 것은 흔히 축사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순창군청이 인근에 위치해 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돼지를 키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길 안내시스템의 안내를 받고 한참이나 지나쳐버린 이유도 축사로 보이는 건물이 없어서다. 되돌아 주소지를 정확히 찾아가니 아늑한 시골의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계시다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부부에게 돼지를 키우는 곳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냐는 첫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여기가 바로 돼지를 키우는 곳이라며 안내를 받고 들어가니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건강한 돼지 무리가 보였다. 햇빛과 공기가 잘 통해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 쾌적한 축사 안에서 지내는 돼지들의 행복한 표정이 참 보기 좋았다. 축사는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고약한 분뇨 냄새로 숨이 턱 막히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은은하고 향기로운 풀 냄새가 났다. 어떻게 하면 이토록 쾌적한 축사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지 빨리 알고 싶어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안주인인 박찬숙 씨의 인사를 받자마자 먼저 소개를 부탁드렸다.

박찬숙 이선형 부부 소개
“대학을 나온 젊은 여성이 농촌에서 살겠다고,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오늘날에도 참 별난 사람 취급을 받죠. 그런데 198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제가 농촌에서 살기로 결심했으니 주위 사람들은 물론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지요. 사범대학을 나와서 공립학교 교사의 길을 걸을 것이라 예상을 하셨는데 놀라셨죠. 그렇지만 저는 농촌에서 교육활동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전공분야를 잘 살린 것이라 생각해요. 농촌의 교육 여건상 제 전공 분야뿐 아니라 영어, 음악, 한글 등 모든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여기 순창이 아닌 다른 농촌지역에 탁아소 교사로 일하러 갈 계획이었는데 발령 직전에 환상의 짝꿍을 만나서 본격적인 농업의 길로 들어섰죠. 남편을 만나면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으로 방향이 전환되었지만, 남편 덕분에 이젠 어엿한 농촌사람이 될 수 있어 감사하고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형제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던 터라 학업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복역 후 이곳 순창으로 내려와 바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농업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농업대학에 진학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다 농촌활동가인 아내를 만나서 지금까지 여러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면서도 항상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금은보화를 갖는 것보다 더 큰 자산을 보유한 것입니다.”

-그럼 굉장히 젊은 시절에 귀농을 하신 거네요?
▶“1983년에 내려왔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돼지농장을 시작한 지는 8년 정도 되었습니다. 사회의 첫발을 농촌에 디딘 것이 저에게는 참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즘 귀농의 장점을 생각하며 도시 생활을 정리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오랜 시간 익숙해진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농촌으로 온 것이 아니라서, 사실 귀농이라고 할 것도 없지요. 신혼 생활은 물론 젊은 시절을 모두 이곳 순창에서 보냈으니까요. 무엇보다 나이 들어 귀농을 하려면 가족들이 모두 뜻이 맞아야 하는데, 남편은 귀농을 원하고 아내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 부부야 오히려 농촌 생활을 전제로 만난 사이라서 다른 부부들처럼 의견이 맞지 않아 겪는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순창을 귀농지로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순창이 고향은 아니지만 농촌 공동체 운동을 하는 선배들이 터를 잡고 계신 곳이었습니다. 개간지에 농사를 짓는 상황이라 일손이 부족하다며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농촌에 연고가 없던 터라 별 고민 없이 바로 순창으로 내려왔습니다. 믿을 만한 선배들과 함께했기에 맨 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하는 상황이 크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뜻이 맞는 아내를 만나게 되어 더욱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30년 넘게 순창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내 고향 순창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죠?”

-돼지농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사육 규모는 100마리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습니다. 축사 크기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수의 돼지를 사육하는 겁니다. 넓은 공간에서 모돈들이 자유롭게 종돈과 함께 지내고 새끼를 낳고 돌볼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현대 축산에서는 500마리 이하를 사육하면 부업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보통 양돈을 한다고 하면 최소 몇천 마리의 돼지를 기르는 농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100마리 이하의 돼지를 기르는 것은 규모의 경제화를 이룰 수 없어 수익성과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지금처럼 규모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럼 직원은 전혀 고용하지 않고 운영하시는 건가요?
▶“적은 규모인 데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로 하는 방식으로 사육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 두 명의 노동력으로 충분합니다. 사료 또한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직접 발효하고 배합까지 하면서 돼지를 기르는 것이 가능합니다. 보기 좋은 돼지가 맛도 좋은 법이라 그런지 한번 맛본 소비자들이 생산량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와 아내의 노동력만으로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고용된 직원은 없지만 남는 방에 청년 농촌 활동가 2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어 사람 사는 집같이 활기가 넘쳐 좋습니다.”

-밖에서 보면 축사로 보이지 않던데, 집 안에 축사가 있는 건가요?
▶“집 안에 축사가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축사 안에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입니다. 농장 내에 집이 있고 바로 맞은편에 돼지 운동장과 모돈사가 붙어 있습니다. 집 양옆으로 비육돈사가 두 채 위치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영락없이 축사 안에 돼지가 살고 우리도 그 안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죠. 그렇다고 해서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돼지가 계속 뛰노니 먼지는 좀 날리지만, 그 외에는 딱히 불편할 것이 없고 오히려 가까이서 돼지들을 챙길 수 있어 편합니다. 처음에 우리가 돼지를 기르겠다고 했을 때, 마을 초입에 돼지농장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많았습니다. 돼지를 기르고 6개월쯤 지났을까요? 돼지를 안 기르기로 결정한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마을에서도 돼지를 기르는지 모를 정도로 냄새나 소음 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축사 안에서 은은하고 향긋한 풀 냄새가 나던데요?
▶“식품공장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와 한약재를 가공하는 건강원에서 나온 약초 찌꺼기 등을 직접 발효시켜서 돼지 먹이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사료를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이득이고, 업체에서는 쓰레기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습니다. 쓰레기가 발생할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가 자원으로 재활용하기 때문에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이득이라 생각합니다. 돼지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무척 온순하고 깨끗한 동물입니다. 화장실과 밥 먹는 곳을 철저히 구별할 정도로 청결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배를 긁어주는 것을 가장 좋아해서 머리 쓰다듬거나 등을 긁어주다 보면 배를 긁어달라는 듯 몸을 뒤집은 채 누워 있곤 합니다.”
▲박찬숙·이선형 부부가 기르는 흑돼지와 멧돼지 교접종

-흑돼지와 멧돼지 교접종이 다른 육돈에 비해 더 건강한 편인가요?
▶“우리가 사육하는 품종인 흑돼지와 멧돼지 교접종이 맛과 품질에서 일반 육돈에 비해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농장의 돼지들이 더 건강한 이유는 인위적인 시스템을 최대한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밀식구조를 통해 생산성과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스톨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함의 비결입니다. 밀식으로 키우면 면역력이 약해지고 질병에 잘 걸리기 때문에 항생제로 범벅을 한 사료를 주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돼지들이 먹고사는 게 아니라, 항생제로 연명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항생제로 연명을 하던 오리나 가축들이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에 한번 걸리면 살처분하는 비용만으로도 엄청난 국가재정이 투입됩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기에 결국은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겁니다. 우리가 농장의 돼지들에게 사용하는 유일한 약품은 구충제였으나 3년 전부터는 이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국가에서 무료로 예방접종해주는 것만 있습니다. 항생제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하루 밥 한 번만 주고 키우는데도 지금까지 단 한 마리도 폐사한 적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지금 축산을 배우기 위해 실습생도 함께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축산업의 미래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오늘날 축산업 종사자는 그저 환경파괴의 주범이자, 인근 주민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지역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입니다. 과거의 축산은 지금 우리 부부가 하는 것처럼 복합영농이었습니다. 논농사, 밭농사와 더불어 소 몇 마리 돼지 몇 마리 키우는 가정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정책적으로 축산업을 규모화, 전문화하면서 복합영농이던 축산업을 붕괴시키고 철저히 기업화된 축산을 양산했습니다. 지금처럼 축산업을 강하게 규제하는 상황에서는 신규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소규모로 친환경 축산을 하거나 순환농법이 가능한 복합영농 축산에 대해서는 조건을 달리해야 합니다. 거주민의 동의 등의 심의 기준을 완화해서 친환경 축산을 유도하고, 꽉 막힌 축산업에 숨통을 트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축사를 혐오시설로 간주하고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친환경 축산을 늘리고 우리처럼 소규모 복합 영농 축산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현 축산업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ROFILE
가현정 객원기자
● 귀농인문학아카데미 대표
● 한국독서치료학회 이사
● 법무부 인성교육, 독서치료 및 국방부 독서코칭 담당
● 대통령상타기 고전읽기 백일장 심사위원
● 경기도교육청 공모제 교장 심사위원
● 자유학기 진로체험 작가부문
● 은평대학 학과장 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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