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지금 ‘출판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기관장 초대석]"독서의 당위성 상실… 상품이상의 가치, ‘정가제’ 유지돼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9.03.06 10:1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사진=더리더
“지금 출판 산업의 위기는 전과 차원이 다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출판 산업이 위기라는 말은 단군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출판 산업이 ‘호황’으로 느껴졌던 시기는 없었다는 의미다.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 원장은 지금 위기라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체감상 위기가 아니라 실제로 책을 읽지 않는다. 김 원장은 “문화 산업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부분 중의 하나가 출판”이라며 “지금의 위기를 출판만의 위기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아주 필수적인 무엇인가가 고장 났다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그는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책 의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라며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이 이제까지 부족했다”고 밝혔다. 기업형 중고서점, 도서정가제 등 출판 업계에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이야기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김 원장은 논의의 장을 만들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설명했다. 출판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은 출판진흥원이 유일하다.

2012년 출판 진흥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진흥원으로 확대됐다. 김 원장은 세 번째 출판진흥원장이지만, 출판계가 인정한 첫 번째 원장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전 출판진흥원장은 ‘낙하산 인사’와 ‘블랙리스트’ 논란을 얻었다. 출판진흥원이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8개월 동안 공석이었던 이유다.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방식이 아닌 임원추천위원회에서 공모와 추천을 거쳐 문체부에서 임명하는 것으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뽑힌 원장이 김 원장이다.

김 원장은 진흥원의 정상화와 위기의 출판 산업의 부흥을 이끌어야 한다. 그가 진단하는 위기는 어떤 것일까. <더리더>는 지난달 14일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출판진흥원에서 김 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판 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책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출판업계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책의 가치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위기라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은 실제로 책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가 줄어든다. 책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출판 산업 자체가 어렵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문화예술산업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하나가 출판이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다. 우리 국가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무엇인가가 고장 났다고 인식해야 한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단순히 우수한 책을 지원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위기를 맞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이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책이 독점하고 있었던 ‘지식 유통’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전에는 책을 보면서 지식을 쌓았는데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는 책을 읽지 않지만 텍스트는 아주 많이 본다. 모바일로 늘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책을 점점 읽지 않는다’는 결핍이 없다. 모바일로 텍스트를 읽으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를 잊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구성할 때 중요한 부분인데 사람들이 이걸 잊어버린다.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사진=더리더
김 원장은 책의 가치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책의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는 왜 좋은 텍스트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어렴풋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왜 그래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라며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독서의 당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색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출판계를 둘러싼 도서 정가제, 기업형 중고서점 등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밝혔다.


-대형 서점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출판 산업에 영향을 미칠텐데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출판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책이 소비되기 위해서는 우선 서점이 잘돼야 한다. 서점이 막히면 아무리 좋은 책이 많아도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책을 직접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독자를 모으기 위해서 조금 더 편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 문화생활을 즐기는 장소로 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출판사에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시장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까지는 이런 전자 기기들이 상업적으로 존재 가치가 있는지는 증명하지 못했다.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기대를 걸고 있다.

-도서 정가제에 대해 아직도 찬반 의견이 팽팽한데
▶도서 정가제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책은 가격을 붙여 파는 상품이다. 그렇지만 상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 할인 경쟁을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 책이 할인 경쟁에 돌입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다만 정가제에 따른 문제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나 정책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중고서점이 확산되고 있다. 도서 정가제에 따라 중고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중고 서점은 사람들에게 책의 접촉을 늘린다. 구매한 책을 버리거나 책장에 꽂아두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책은 많은 사람에게 공유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맞다. 문제는 지금의 중고서점에 신간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공유해서 책의 가치를 올리기보다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것이다. 구매한 책의 상품가치를 빨리 돌려받는 경제적인 보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신간 서적의 건전한 시장 형성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이제까지 출판 산업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고
▶출판 산업에 대해 분석하고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도 진흥원이 정해진 사업을 진행하는 데 급급한 측면이 있다. 여기서 만족할 게 아니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진흥원이 문을 열고 여러 사람을 모아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열린 독서토론회라든지 주제를 바꿔가면서 관계자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연다. 딱딱한 학술대회처럼 진행하지 않고 여기서 나오는 아이디어들 모아서 진흥원의 정책에 반영하는 일들을 시행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묻는 피드백 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도서가 해외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나
알려진 것보다 우리나라 출판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편이다. 문학 분야가 특히 인기가 있다. 또 학술서 같은 실용서 분야도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좋다. 여러 지원을 통해 이제까지 성과가 제법 있었다.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사진=더리더
출판진흥원은 블랙리스트 명단과 낙하산 기관장 임명 논란으로 8개월 동안 원장이 공석이었다. 그 이후 김수영 원장이 지난해 7월 선출됐다. 출판진흥원 세번째 원장이지만 출판계가 인정한 첫 번째 원장이라는 평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한 첫 원장으로서 소회는
▶이제까지 진흥원 원장을 출판계가 100% 동의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추천하는 사람을 원장으로 임명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제도적인 보완이 이뤄졌고 그 과정을 통해서 원장으로 선출됐다. 제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출판 환경을 잘 이해하는 첫 원장이라고 생각한다. 출판 현장에 정말 필요한 정책과 사업만 생각하고 있다. 현장과 더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철학으로 진흥원을 이끌어나갈 계획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다. 현장 변화가 심하다 보니까 정책적인 수요도 빨리 변한다. 한번 세운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이 변하면 유동적으로 변하고, 고치고, 보완해야 하는데 이게 게을렀다고 본다. 끊임없이 현장의 요구에 적응하고 소통하면서 우리 사업을 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진흥원을 이끌어나가겠다.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연세대 철학과 석사
독일 콘스탄츠대 철학박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로도스출판사 대표
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 국제교류위원장
문학과지성사 편집부장, 편집주간, 대표이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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