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식 대표, “공공성 가진 건축의 주인은 시민”

[지역을 바꾸는 건축]광화문 광장도 ‘민중이 건축주’라는 개념이면 근사한 작품 나올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19.03.07 11:0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건축가들과 대담을 펼친다. 장 대표는 특색 있고 자연스러운 도시 재생으로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건축가다. 국내 건축가 중 ‘세계건축상’을 수상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장 대표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그가 만난 주인공은 한국건축계의 지성으로 불리는 민현식 기오헌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명예교수이자 미술건축가 협회 명예회원인 건축계의 큰 별이다.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파주 출판도시와 ‘미술관 같은 공장’이라고 불리는 신도리코 본사와 공장들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가 설계한 서울도시건축센터는 건축 분야의 첫 전문 전시관으로 건축계의 큰 사건이다. 전시관이 보통 관공서 형태로 지어지는 데 반해 이곳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새문안 동네, 종로구 새문안로 35-54)과 하나가 됐다. 마을 사이에 건축센터를 담아내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민 대표의 인터뷰는 서울도시건축센터 앞 ‘마당’에 위치한 소박한 쉼터에서 진행됐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경/사진=기오헌건축사사무소 제공
장윤규: 돈의문 박물관 마을과 서울도시건축센터를 비롯해, 서울 생활사 박물관, 스페이스 살림(여성재활센터) 등, 서울시 관련 현상공모를 통해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다. 선생께서 공공건축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기본적인 개념을 이야기해달라.
민현식: 건축은 모두 공공성을 띠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작은 개인 주택이더라도 도시 안에 있으면 공공건축의 한 부분이 된다. 그래서 건축은 다른 학문이나 예술과는 구분된다.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다. 공공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계기는 건축법이다. 건축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한 약속이다. 아무리 자신의 땅에 건물을 짓더라도 건폐율과 용적률을 비롯해 여러 규제가 생기는 것은 공공성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발주처가 공공기관일 경우를 공공건축으로 한정 지어보자. 그렇다고 해서 발주처와 건축주가 동일시되는 건 아니다. 모든 건물의 주인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공공건축은 정확한 건축주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도서관의 경우 시설과 같은 곳에서 발주를 하지만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니듯이 공공건축에서는 대부분 시민이 사용자다. 이 경우 발주처나 건축가 모두 대행하는 것이라 더욱 책임감이 든다.

장윤규: 개인적으로도 공공건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주로 운영자가 시민이 되면 뭔가 열린 구조를 만들어 사용자가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 부분이 민 선생님 말씀과 맞닿아 있는 거 같다. 2018년에는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민현식: 올해의 건축가 상이라고 종이 한 장 받았다. 그런데 서울시 공공건축에 한해 상을 준다는 게 너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개인 기업이긴 하지만 신도리코 본사와 공장 설계를 통해 도시와 임직원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이미지 쇄신을 넘어선 가치를 가진 작업을 했다면 인정받을 만하지 않나.
내 이야기 말고도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자문 및 설계를 위한 건축가로 활동한 김종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예를 들어보겠다. 직접 설계도 했고,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를 초청해서 우리 도시와 시민을 위해 좋은 건물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지 않았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올해 건축가 상을 서울 내 건축물 중에서만 선정하는 것은 다소 한정적이다. 수상자 역시 원로여서 공로상을 받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너무 원로들에게만 상을 주는 건 이제 그만하고 쉬라는 소리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니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품세계 ‘비움의 구축’에 대해
장윤규: 저는 민 선생님의 작품 철학인 ‘비움의 구축’을 텅 빈 충만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려 한다. 물리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다른 요소들, 예를 들면 공기, 빛, 기억, 일상 등 보이지 않는 다른 요소들로 채워져 있는 건축이라 생각한다. 작품 철학인 ‘비움의 구축’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민현식 기오헌건축사사무소 대표

민현식: 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우리나라 전통 마당이다. 전통건축이 가진 마당이란 공간과 안방, 건넌방, 사랑방 등. 20세기 모더니즘의 산물은 모든 공간을 기능적으로 만드는 데 우리의 전통은 방에 일정한 기능을 부여하지 않았다.
미리 주어지진 않지만 그 공간을 점유하는 방법이 생겼을 때 한시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고는 다시 비어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그런 공간을 일컫는 말로는 프리 스페이스(free space), 누트라 스페이스(nutra space), 인데피니트 스페이스(indefinite space) 등이 있다. 가족이 모이면 거실이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고, 식사를 하면 식당이 된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공간의 기능은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전통 건축에선 방 문을 열면 밖의 자연이 들어와 특별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 윤증고택(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의 정치 및 학계의 중심 인물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의 사랑방과 퇴계이황의 사랑방은 구조가 비슷하지만 문을 열고 내다보는 풍경은 다르다. 풍경 때문에 미학적 성격을 띠게 되고, 풍경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방의 미학도 변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학(현상을 중요시하는 철학)적 미학이 되는 것이다. 그런 게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였다. 지금까지 지배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한 단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봤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이니 그런 게 되레 잘 맞을 것이라고 봤다.

장윤규: 공적인 공간은 비확정적 성질을 가지는 게 맞다고 본다. 공적인 공간은 비움을 통해 용도가 폭넓게 번져나가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용도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많은 역할을 수용하는 공간. 어떨 때는 공연도 하고 사색의 공간도 되면서 활용 범위가 커진다.
민현식: 텅 빈 충만이랄까. 잠재력 같은 거다. 잠재력을 주목하는 수용자가 구체적인 기능과 사건으로 그 공간을 만들고 사용한다. 그러곤 다시 잠재력으로 돌아가는 거다.

장윤규: 선생님의 건축 세계를 돌아보면 젊은 시절과 지금의 건축이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영국에 유학을 간 게 언제였나?
민현식: 30년 전, 89년이다.

장윤규: 그 당시에도 지성의 건축가였는데 갑자기 유학 길에 오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민현식: 김수근(1931-1986, 현대건축의 거장이자 민현식의 스승) 선생의 꿈 중 하나가 건축 전문 학교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국의 건축 교육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숙제를 낸 게 전 세계 건축학교의 커리큘럼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1년, AA 스쿨에서 공부하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무척 논리적인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이었다. 정말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가 알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반쪽짜리였다.
‘레닌 숍’이 있었는데, 레닌 흉상이나 레닌에 관련된 것은 모두 팔았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사상교육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던지 그 가게에 들어가면 제제를 받을 것만 같았다. 발터 벤야민과 존 버거 책을 접하고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불온전한지를 깨달았다. 이 책은 서울에 못 가지고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받은 문화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내가 갈 때와 올 때 세상은 달라졌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가지고 올 수 없는 줄 알았던 책들도 번역판이 나왔더라.
이 시기, 즐겁게 공부하고 생각한 1년이라는 텅 빈 시간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내가 가진 생각을 꺼내 의심하고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유학 전과 후 내가 꽤 바뀌었다고 느낄 것이다. ‘비움의 구축’도 그때 논리로 만들었다. 좋은 때였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새문안 동네)의 기억
장윤규: 이곳은 어떤 곳이었나.
민현식: ‘새문안 동네’는 서울의 근대적 삶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읽어낼 수 있는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전(保全)하고 있는 곳이다. 나에게도 학교를 다니면서 지나다니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아마도 도시사연구실 이상구 교수가 아니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인터뷰를 빌려 전한다.
이곳은 동네 자체가 마치 박물관같이 지난 100여 년 삶의 유물이 그득했다. 경희궁 담장, 한양도성 그리고 새문안로로 구획된 ‘새문안 동네’는 골목길로 이어지는 소단위 필지에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의 토속 건조물(urban vernacular)이 즐비했다.
‘건축가 없는 건축’을 주목했던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의 표현대로라면, ‘전통적인 계보에 기록되지 않은 족보 없는 서자(庶子) 건축’으로 건축 역사에서 소외되고 외면된 공간이었다. 30년대 일본식 주택, 60년대까지 도시주택을 담당했던 (도시형)한옥, 70~80년대의 세칭 ‘슬라브집’, ‘불란서식 집’ 등 토속 건조물은 근현대의 ‘집장사집’들과 그것들의 변형이 골목길을 따라 조직되고 100여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변모되어온 이 땅의 기록들이다.
인접한 광화문 지역과는 달리, 서대문 지역은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외면되어, 돌 가공장(加工場)과 의수의족점포, 접골원 등으로 채워졌다. 내부 주택들은 소규모 음식점과 카페 등으로 변환됐다. 권력자의 이데올로기에서 외면되어왔기 때문에 내부의 물리적 조직은 역설적으로 잘 보전되어 있었다.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대표가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장윤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현식: 개인적으로 그 명칭보다 ‘새문안 동네’라고 부르고 싶다. ‘새문안 동네’를 조성한다는 것 즉,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이 동네를 재생한다는 것은, 이 동네의 물리적 공간 조직(집, 길과 마당)뿐 아니라 여기에 깃든 삶의 조직 및 생산 조직을 보전(保全)하는 것이다. 이곳에 남은 건조물이나 도시 구조의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여 원래의 상태 그대로 보존(保存)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여 그 기능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하게 개입하여 현재에 적합하도록 재생, 강화, 개선하는 것을 포함한다.
기억이 특별한 맥락에 귀속되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고, 그때마다의 토양 위에서 자유롭게 재구성된 과거가 현재적 해석을 통해 가치를 획득하듯이, 우리의 작업 역시 선택적이었다.
많은 부분이 보전되었으나, 현재적 판단에 의해 조심스럽게 철거되고, 긁어내고, 어떤 부분은 새롭게 덧붙여져서, ‘새문안 동네’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쌓여갈 기억들을 포함한 지속의 일부, 아직도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기록되는, 완성되지 않은 양피지가 되기를 바랐다.
▲민현식 기오헌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윤규: 테마파크 같은 관광지가 아닌 공적 공간으로 예술가들이 들어와 공방도 하고 창조적 활동을 하면서 작품도 판다면 생활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 비워진 채로 구경만 하는 것보단 실제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지역을 바꾸는 건축으로서, 헤드 쿼터로서 역할이 가능할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민현식: 예술가나 건축가 같은 창작하는 사람이 이 동네에 너무 많이 들어오면 본래 가진 가치가 훼손된다.
처음 이곳을 조사할 때 자부심이 강한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다. 이 근처 회사원들이 먹는 만원짜리 한식당이었다. 우리나라에 고급 한식 연구가들은 넘쳐나지만 한 끼 만원짜리 한식당은 별로 없지 않나? 바로 그런 거다. 너무 고급지지 않고 이 동네에 맞는 일상과 관련된 상업 시설이 들어와서 작동하면 좋겠다.

장윤규: 하나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집합체로 마을을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채워진다면 매우 흥미로운 사례로 남을 것 같다. 서울시에서 운영 원칙을 잘 세워야 할 것 같다.
민현식: 운영 부분에 대한 연구를 상당히 많이 했다. 여기 입주하는 조직들이 모인 기구들끼리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아직 형성이 안 됐다. 진행형이다. 모든 건축이 끝나는 때가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특히 이곳은 경찰박물관 이전과 주차 공간을 걷어내고 뉴타운을 만들면서 헐어낸 한옥 몇 채를 다시 옮겨오는 작업이 남아 있다. 입주자 자격 심사의 경우 원래 여기 주민이 재입주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상업적 발전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도 낮게 하는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전국에 퍼지는 도시재생 바람
장윤규: 서울을 비롯해 전국이 도시재생이라는 화두에 몰입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도시재생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주면 좋겠다.
민현식: 아시다시피 운명인지 모르지만 리모델링만 세 건 했다. 서울 서북부의 법조 단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시민생활사박물관과 여성창업지원센터로 바꿨고, 또 그리고 새문안 동네의 재생 사업을 맡았었다.
재생사업을 잘못 건드리면 부동산하고 엮여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젠틀리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관에서는 재생을 하면 골조도 있으니 최소한 공사비는 빠지고, 그 돈을 재생하는 데 쓰니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1.5배 더 비싸다. 아마 이 이야기에 많이들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예산이 더 드는 부분은 공사뿐 아니라 설계도 마찬가지다. 진행 방식 역시 신축과는 달라야 한다. 예를 들면 이곳(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가옥 하나씩 건축가가 붙어 각각 특색 있게 설계를 하고, 전체를 총괄하는 골목길은 한 사람이 해야 한다. 또 한옥은 한옥 전문 건설사가 오고 가옥의 특성에 맞춤 발주를 해야 한다.
또 도시재생에서 물리적 공간에 집중하다 보면 그곳의 생활은 떠나버리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건 위험하다. 오래전 모로코 페즈(Fez)의 골목길을 배회하다가 들른 어느 식당에서 일군의 건축가들을 만났다. 유네스코에서 이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점에서, 그들은 페즈의 무엇을 보존(保存)할 것인가 즉, 이 도시의 물리적 조직인가 아니면 그 조직 속에 깃든 삶인가를 주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뒤, 그곳을 다시 찾았는데, 그곳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지속(持續)되고 있었다. 둘 다 고스란히 보전(保全, conservation)되어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리스 에게해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그리스의 이드라 섬은 10여 년을 전후로 물리적 환경은 그리 변함이 없었으나,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그곳의 삶은 불행하게도 관광산업에 의해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런 것이 재생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장윤규: 재생사업이야말로 특화할 필요성이 있다. 최근 현상을 보면 재생 자체도 모두 똑같은 모델로 생각한다.
민현식: 맞는 말이다. 제일 우스꽝스러운 게 생태공원이다. 심지어 생태공원은 소위 스테레오 타입의 유형이 있다. 습지, 수초 등 FM이 있다. 그런데 그게 그 동네의 생태를 망가뜨린다. 생태공원을 만들려면 그 지역의 생태대로 해야 하는데 다른 지역의 생태를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 지역의 상태를 파괴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광화문 광장에 대한 단상

장윤규: 혹시 광화문 광장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 하는 의견이 있나.
민현식: 광화문 광장은 역사 전체로 볼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많은 사람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공간을 꼽아보라면 아마 광화문이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권력이 바뀔 때마다 손질을 한다. 건축과 도시는 당대 지배 권력의 시녀다. 그게 싫은 건축가는 그때 사그라든다. 

제일 먼저 광화문에 손댄 건 일제였다. 북악산-경복궁-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축선을 깨고 총독부-경성부청(현 서울시청)-남산조선신궁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새 축선을 만들었다. 지금 고치려고 해도 안 되는 수준으로 굉장히 훼손했다. 두 번째가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소위 중앙청이라고 불리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두고 그 앞에 광화문만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했는데 중앙청을 헐지 않았기 때문에 비뚤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다. 또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 당시 이순신 장군상 중앙에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군인들 상이 다 있었다. 급조한 조각상들과 함께 김유신 장군의 기마상이 있었다. 

그러다가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부수고 나니 광화문이 잘못됐다는 게 더 확실히 보였다. 이렇듯 광화문의 변화를 보면 우리나라의 권력 변화가 보인다. 앞서 말한 대로 건축과 도시가 권력의 종속물이라면 지금 이 시대가 가지는 보편적인 권력이 무언가를 밝혀야 한다. 그런 다음 권력의 시녀가 되는 광장을 만들면 된다. 이 시대의 역사를 만드는 주인은 민중이다. 민중이 권력자라는 개념이면 뭔가 되지 않을까? 정치인들의 의사대로가 아니라 광화문 광장의 진정한 건축주가 누군지를 밝히면 근사한 작품이 나올 것이다. 건축가로서 개인적 욕망은 4대문 안이 보행자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골목에서 민현식(왼쪽) 대표와 장윤규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윤규: 이게 모두 선생께서 추구하는 비움의 구축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권력으로 채워지는 구조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비워진 공간을 제공한다는 개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도 점령하지 않은 순수하게 비워진 시민의 공간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끝으로 선생께서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민현식: 최근에 읽은 패트릭 리 파머의 <그리스의 끝, 마니>라는 책에 나온 구절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상하게도 어떤 나무는 몹시 황량한 풍경을 아주 온화하게 바꾸는 힘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는 길들여진 문명의 장소에 야성의 기운을 퍼뜨리기도 한다. 근사한 말이다. 앞으로 내가 하는 건축은 이런 나무같이 황량한 풍경을 온화하게 바꾸고, 너무 길들여진 문명에는 내 건축으로 야성의 기운을 잃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PROFILE
민현식 기오헌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출생 1946년, 경상남도
●서울대학교 건축학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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