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 회장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일”

[특집]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머니투데이 더리더 정민규 기자 2019.02.18 16:1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올해는 3·1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정부와 지자체, 학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일제 치하 36년간 치열했던 항일투쟁의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식민지 극복, 산업화, 민주화를 향해 달려온 우리 현대사는 이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시대정신에 부응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통한의 역사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열었던 독립투쟁사의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매우 활발하며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아울러 좌우 연합체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성은 갈등극복과 사회통합을 위해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기해년 새해를 맞아 3회에 걸쳐 임시정부와 3.1운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은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함으로써 그간 부족했던 우리들의 역사 인식을 성찰해보고자 한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92세가 된 ‘임정둥이’의 꿈은 임시정부 기념관 보는 것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92)은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조선민족대동단의 총재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북로군정서의 고문으로 활약한 동농(東農) 김가진(1846∼1920)의 손자다.


동농은 구한말 개화파 학자로, 유길준과 함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활약했으며 1883년 체결된 제물포조약의 실무협상을 주도했다. 그 후 1894년 갑오개혁 때 내정개혁에 적극 참여했고, 농상공부·법부 대신, 중추원 의장 등을 지냈다.

 

동농은 민영환과 함께 을사늑약에 격렬히 저항하다 실패한 후 대한협회 회장으로 일진회를 규탄했다. 또한 독립협회를 결성하는 데 앞장서 독립문 현판석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로 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은 고위관료였지만 이를 거부하고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그 후 1919년 아들 김의한과 함께 상해로 망명했고 대동단 본부의 상해 이전과 때를 맞추어 대규모의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의 나이 일흔넷이었다.

 

그 무렵 대동단은 의친왕 이강(李堈)을 상해로 망명시키려고 시도 했으나 망명 도중 중국 안동(현재의 단동)에서 일제에 발각되어 무산되고 말았다. 비록 망국의 왕자로 전락한 의친왕이었지만 그의 망명이 이루어진다면 당시 사회에 파급될 영향은 매우 컸기에 비밀리에 추진된 매우 큰 계획이었다.

김 회장은 1928년 중국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청사 인근에서 독립운동가 김의한(1900∼1964)과 정정화(1900∼1991)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김의한 선생 역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 상해지부 재정위원, 애국단원, 광복군총사령부 주계, 광복군 조직훈련과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과 상무위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위원 등을 지내며 활발한 독립운동을 했고, 1948년 4월 한국독립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모친은 남편을 도와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고 임정의 안살림을 책임졌으며 한국애 국부인회에서 활동했다.
‘임정둥이’로 태어난 소년은 수많은 독립투사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임시정부가 1932년부터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창사(長沙), 광저우(廣 州), 류저우(柳州), 충칭(重慶)으로 이동한 경로를 따라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김구와 안창호를 비롯해 이시영, 이동녕, 엄항섭, 박찬익, 조경한, 윤봉길 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과의 추억도 가질 수 있었다.

광복 이후 조선일보 공채 1기로 언론계 생활을 시작한 김 회장은 새나라 신문과 민족일보에서도 일했다. 김 회장은 5·16 직후 박정희 정권이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을 사형에 처하자 언론계를 떠나게 된다.

1980년대에는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과 <모택동 전기>, 러시아 10월 혁명을 소재로 한 미하일 숄로 호프의 장편소설 <고요한 돈강> 등을 번역 했다.

2004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발족해, 현재 92세의 노구를 이끌며 독립투 쟁의 뜨거운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제 그 시대를 증언할 분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리더>는 ‘대한 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김자동 회장을 겨울바람이 매섭던 1월 중순에 만났다.

▲(위) 본지 정민규 기자와 인터뷰 중인 김자동 회장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설립 계기는
지금까지 대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조상을 위한 기념 사업회를 만들었다. 우리도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을 위한 기념 사업회를 만들자고 자녀들이 의견을 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 중에는 후손이 없거나, 있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기념사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고려하여 특정 인물 차원이 아닌, 임시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기념 사업회를 만들기로 했다.

임정기념 사업회 설립 목적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주 독립정신을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민족정기와 독립사상, 평화통일과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고자함이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가려진 독립운동 가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서였다.

기념사업회의 역점 사업 및 현황과 성과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사적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정신’ 답사단의 연례 정기 답사는 2005년부터 해마다 진행되었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 곳곳의 항일투쟁의 역사를 현장에서 몸소 느껴보는 활동이다.


2006년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는 제1차 재북 애국지사 후손 성묘단을 구성해 재북 애국지사 후손·본회 임원·기자단 등 총 50명이 광복 후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여 성묘했다.

현재 2차 성묘를 위해 북측과 꾸준히 접촉 중이다. 또한, 회보인 <독립정 신>은 격월간으로 발간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설립취지 및 목적을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주화, 통일문제 등에 관련된 연구논문, 학술자료를 회원과 사회 각계각층에 보급하여 본회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4년 11월 <창간호> 발간으로 시작되어 현재 103호가 발간되었다.

격주 간격으로 회원들에게 기고를 받아 ‘100년 편지’ 단행본 편찬작업도 진행 중이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 속의 존경하는 독립 운동가들에게 쓰는 편지 형태로 기획되었다. 편지를 선정하여 <백년편지2>를 발간할 예정이다.

한편, 독립운동 관련 학술회의 개최와 역사 연구 조사 및 서적 발간, 특별 전시회 및 각종 문화기획도 활발하다. 연 1회 특정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 운동사와 관련하여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에는 3·1운동·임시 정부 수립 99주년 기념 음악회인 ‘백년의 약속’과 영화제인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북 콘서트, 알쏭달쏭 대한민국 임시정부 골든벨 퀴즈 개최를 열었다.

▲1932년 쟈싱의 은신처 추풍장에서. 제일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구 선생, 앞줄 왼쪽 두 번째 어린아이가 김자동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에 대해
우리 기념사업회가 처음부터 가장 중점을 갖고 추진했던 부분이다. 내가 살아 있을 때 꼭 기념관 건립을 보고 싶다. 중국에서는 상해, 충칭 등 임시정부 청사로 활용되었던 현지 장소를 복원하여 임시정부 관련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임시정부 활동을 기리는 기념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너무 안타깝다.

 

늦었지만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 너무 고맙고 다행으로 생각한다.
2020년 8월까지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인근 서대문구 의회 청사 부지에 건립 예정이다.

최근 문제가 됐던 건국절과 임정의 법통에 대해
임정수립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분명히 나와 있다. 극소수가 이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새로 건국절을 만들자고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의도가 불순 하다.

국민들과 미래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임시정부뿐 아니라 한국독립투쟁사 공부에 모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임정수립 100주년이라고 일시적인 관심과 기념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임시정부의 이상은 복지국가, 통일국가에 있었다. 우리의 꿈은 진행형이다. 새로운 100년을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교육하는 것은 우리의 막중한 의무이다. 젊은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의 부족했던 점을 반성 하고 다 함께 더 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되짚 어보는 것은 바로 그 시작이다.

프로필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1928년 10월 17일 중국 상해 출생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성장
 1949년 서울 보성중학교(6년제) 졸업
 1949년 서울대 법학과 입학, 전쟁으로 학업 중단
 1950~1954년 주한미군 통역관
 1953~1961년 조선일보·민족일보 기자
 2004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회고록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2014),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2018)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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