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작가, 상처 받은 ‘현대인의 삶’ 치유하다

식물들의 생존방법 표현, ‘소비사회와 도시주의’ 투영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9.02.11 16:4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김유정 작가는 유럽의 변방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거주하고 있다. 그곳에서 정주하며 받은 문화 다양성의 영감을 작품으로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2018년 남도문화재단 2th 전국청년작가 미술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1월 19일까지 그의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가 소피스 갤러리에서 열렸다. 김유정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 세상에 대해 들어봤다.


▲김유정 작가가 지난해 12월 17일~1월 19일까지 소피스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메인 작품 앞에 서있다.

조각난 숲(Carved Grove), 숨의 광경(Breath Perspective) 등을 주제로 15년간 프레스코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 하는 김유정 작가. 그는 사진작업, 라이트박스 등 여러 매체로 확장하며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생장에서 성장으로 변화되는 환경에 매번 새롭게 적응하는 식물들의 생존 방법에 사회에 속한 개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환유적 자연이자 생명들은 소모품이자 연구의 대상이고, 전시로 채워진 소비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도시주의 안에서의 자연관 등 다각적인 관점을 <조각난 숲(Crarved Grove)>, <숨의 광경(Breath Perspective)>,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Plants also have power)>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작가 김유정만의 프레스코 화법은
▶내 방식은 습식 프레스코(Fresco) 방식인데 석회는 횟돌이나 백악, 조개껍데기 따위의 석회석을 태워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얻는 생석회(生石灰)와 생석회에 물을 부어 얻는 소석회(消石灰)를 사용 한다. 프레스코는 이탈리아어로, 영어로는 신선한, 젖은, 새로운이 라는 의미를 가진다. 건물의 벽과 천장 등에 그림을 그리는 벽화기법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기법이다. 석회를 숙성시켜서 점도를 높여 작업의 주재료로 이용하는데 이는 현재 가장 영구적인 기법이다. 회벽이 마르기 전에 수성흑색 안료를 바르고 마르기 전에 긁어내어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법은 건조된 후 수정할 수가 없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신속하고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회벽에 각인한 음각, 선각적 텍스처는 지난한 노동력과 사유의 과정을 통한 행위로서의 회화이다. 미세한 요철로 긁어내는 방법은 치유를 갈망하는 상처받은 현대인의 삶을 표현 하는 은유적 기법이자 현대인의 삶 그 자체이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나는 15년간 프레스코화로 전통 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연계한 길항 관계를 모색하고,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수용한 작업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식물의 생존 현상에서 벌어진 상태와 모양에서 심리적인 내면이 반영되어 새롭게 인식된다. 이는 개인의 심리와 사회적 관계 안에서 형성된 복잡하고 미묘한 상상력에서 드러난 사유의 단상들이다. 긁기를 통한 은유적 기법의 인공적인 풍경들의 재현은 빛과 생명력을 얻어 인간의 상실된 내면을 시각적으로 정화시키는 예술로 표현했다. 조각난 숲(Carved Grove), 숨의 광경(Breath Perspective) 등의 관심 화두 작품을 통해 재생산된 치유의 정원을 선사한다.

▲온기-생존기제 113.5x162.0cm 프레스코, 회벽에 스크래치 2018./

-남도문화재단 2th 전국청년작가 미술공모전에서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고단한 작가의 삶에 대한 격려의 상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고, 더욱 힘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시상 이후에도 남도문화재단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여러 가지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 대상을 받은 <온기-생존기제> 작품은 온실 속 식물은 누군가의 손길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수동적인 생육 방식을 인간의 삶에 비춰 사유한다. 잿빛으로 묘사된 화분들은 뚜렷한 주체성과 동력을 상실한 상처받은 자아를 상기시키며 화분뿐 아니라, 야생식물처럼 보이는 형상들도 실제로는 거대한 식물원 안에 갇혀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임을 나타낸다. 식물원은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구조를 암시하는데, 보호와 통제가 주는 안락함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수동적인 온실 식물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최근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는 어떤 전시인가
▶만약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어떨까? 식물이 인간의 내밀한 영역으로 들어온 상황을 상상한 식물 설치 작업이다. 유럽 변방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정주하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 삶의 모습들이 투영된 신작들이다. 타슈켄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검사와 평가 대상에 놓인 한국을 동경하는 다민족 학생들의 모습을 신분 증명의 현재를 담은 영상(K의 꿈)으로 선보인다. 7의 기원(prayer)을 통해서는 아름다운 천연염색의 전통 천을 수집해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 듯 공간 설치를 했다. 그리고 7이라는 숫자가 행운을 준다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의식, 무엇인가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 어떤 보이지 않는 무리들이 만드는 관습은 다수를 움직이는 기묘한 힘이 있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회칠한 다락(나무) 2018./

아울러 보호와 살균의 목적으로 칠을 하는 나무들(무리들)을 내가 거주하고 있는 가스 피탈리 바자르 지역의 주변 나무(다락-우 즈벡어)를 중심으로 아크릴 물감으로 드로 잉하며, 그리기 시작했다. 100×200cm 크기로 7개의 작품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여기에 사운드 아트로 음악적 치유가 아닌 유니크한 새소리를 녹음해 전시장에서 시청 각적인 효과를 부각시켰다. 각기 다른 새 울음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데 때때로 폭력적이고 유니크한 이 새소리는 아침마다 피곤한 몸을 일으키는 내가 타지에 머물고 있음을 알리며,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러한 작업들로 공간을 구성하여 그동안 작업해온 회화, 사진, 사진작업과 타슈켄트에서 받은 작업적 영감을 기록적인 의미로 담아냈다.

▲Alternative Plant-Love 2015./

-설치와 사진작업을 병행한 <얼터너티브 플랜트 러브> 작품에 대해 소개해달라
▶작품에는 일상의 단면과 감정, 기억과 회한이 교차돼 있다. 인간사회에서 느끼는 내면적 병과 외상, 아픔과 슬픔이 녹아 있는 반면에 희망과 절망, 실존과 허상 등이 이입돼 있다. 사랑과 꿈과 같은 명사들이 여타 그림 속 빼곡하게 자리한 식물들의 잎사귀처럼 촘촘히 새겨져 있다. 물론 그건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소탈하게 적시한 것이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희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낱낱의 상징들(사회적 관계성을 띤 구성원으로서의 식물, 박제화된 온실 혹은 건축물 그 내부에 똬리를 튼 채 살아가는 세상 등)의 이 현재의 투영-존재성의 기록임은 변하지 않는다. 식물이 각별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는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 다른 식물로 대체되는 경우다. 의 경우는 화분을 보고 드로잉한 것을 다시 철사로 표현해서 설치한 후 촬영한 작품이다. 식물의 내면적인 움직임과 활동성을 드로잉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추상화된 식물은 드로잉이 겹쳐질수록 불필요한 요소가 사라지고 본질만 남게 되는데, 걸러내는 과정을 통해서 모든 시각적 묘사에 적용될 수 있다. 식물의 재현을 넘어 시각과 촉각이 한 몸을 이루어 끌어낸 신체화된 표면은 상실한 현대인의 내면을 그린다. 도심의 정원은 누군가에 의해 어떤 이유를 갖고 한편에 자리를 차지한 화분으로, 도시인의 마음의 정원이기도 하다.

▲틸란드시아(tillandsia)의 초록색 덩굴로 뒤덮은<세력도원>

-틸란드시아(tillandsia)의 초록색 덩굴로 뒤덮은 <세력도원> 작품이 인상적이다
▶<세력도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들, 우리에게는 익숙해서 사소하게 여겨지는 연약한 것들이 무리나 집단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힘을 보여준다. 개인의 내밀한 공간까지 뒤덮는 식물의 폭력성으로 방 안에 잠식된 조용한 세력들이 하나의 토피어리(topiary) 풍경을 자아낸다. 콘크리트 벽에 기생하는 식물의 모습은 타슈켄트 작업실에서 사용해왔던 가구인 침대, 소파, 탁자, 선반, 화분, 거울, 샹들리에, 옷걸이 등 개인의 사물이 하나의 오브제가 돼 틸란드시아 식물로 덮인다.

-지금까지 작업들은 식물, 나무, 숲, 정원들이 소재인데 어떤 의미인가 
숨의 광경을 통해서 인간 삶의 모습이 투영돼 보여주는 소재들이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과 산소, 공기 등이 필수적이다. 프레스코 기법의 수용으로 표현된 회벽에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대는 생채기는 현재 우리 삶의 기본적인 상처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우리는 자의와 타의로 다양한 상황과 시도에 처해진다. 생채기는 지난 상처를 기억하며 부조리하되 진실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모순을 목격, 침묵하면서 삶의 그늘에 지친 영혼을 잠시 맡겨둔다. 이내 회복한 듯 다른 세계와의 교류를 시도하고, 공유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인공적이나 끊임없이 알맞은 조건을 만들어가는 따뜻한 정원을 발견해서 잠시나마 안정을 취하고 재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과정들은 너무나 필수적인 우리 삶의 생존 조건들이다.

▲Dream of the Green fresco 회벽에 스크래치 2013./

-<조각난 숲> ‘Dream of the Green’ 작품의 식물원 안에 서있는 여인은 무엇을 의미하나 
조각난 숲은 2013년에 OCI미술관 입주작가로 있을 때 작업한 것이다. 인간과 식물 혹은 인공과 자연의 관계를 넘어, 우리가 주변과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생각하게 하면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맺고 내재하는 관계를 반영한 작품이다. 인공의 환경 속에서 뒤로 밀어두었던 자연의 생명력을 건져 올리기 시작해 채색이 극도로 절제된 화면에서 화면 중앙에 유일하게 드러나는 초록색 식물은 생명력을 상실한 채 왜곡된 에너지로 가득한 온실 속 흑백의 자연과 대비된다. 한편, 구도자와도 같이 화면 중앙에 생명 없는 인공의 땅에서 혹은 왜곡된 생명의 힘이 주도하는 인공의 정원에서 녹색의 생명을 건져 올리고 있는 여인은 이전 시기 작업이 인간과 식물, 보살핌과 억압, 주변과의 관계 정립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다면,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정제된 화면에 희망적 의미를 직접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수많은 그룹전과 개인전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8년도 작품 인데, 100호 5개가 하나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추운 겨울에 회벽이 마를까 걱정돼 난방도 못하며 작업하고 있는데, 작업을 보러 오신 평론가 선생이 방문하셨다가 너무 추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작업 재료들로 인해 생기는 미세먼지와 작업 조건으로 인해 냉난방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은 나에게는 늘 익숙하면서도 꼭 극복해야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Skin 162x651.5cm Fresco 회벽에 스크래치 2008./

-다음은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있나
▶현재의 작업과 연계된 복제된 정원과 복제된 방을 이어서 진행하며, 구상 중이다. 이케아 등 소비적 취향은 개인의 고유한 취향보다는 동시대 사람들의 소비 지향성에 따른 집단의 편향성이 중심이 되는 현상이 다분하다.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공간과 숨의 광경들을 작업으로 이을 계획이고 유럽의 변방에서 겪게 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작업 세계를 모색할 계획이다.

▲복제된 방 회벽에 스크래치 2018./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나에게 있어 작업은 작가로서 삶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것이다. 오늘 보낸 하루하루가 모여서 그 사람의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더욱더 열심히 살아서 늘 다음 전시가 기대되는 작가이고 싶다. 그리고 열정 에너지가 나이와 함께 익어가면서 깊이 있는 삶의 태도가 반영된 진중한 작가로 남고 싶다.

김유정 작가
현 부천대학교 조교수(해외파견교수 BUT=Bucheon University in Tashkent)
예원예술대학교 조교수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서양화전공 박사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석사 졸업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18~2019 서울문화재단 후원, 서울 소피스갤러리-식물에도 세력이 있다(Plants also have power) 외 다수의 개인전 성곡미술관, 서울미술관 외 다수의 기획전 참여(레지던시 2015~2017 인천아트 플랫폼 6, 7기 입주작가, 2012~2014 OCI 미술관 창작스튜디오 2, 3기 입주작가)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수원아이파크시립미술관,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부산시립미술관, 소피스갤러리, OCI미술관, 이랜드문화재단, 남도문화재단, 주식회사 삼천리, 인천문화재단 등 다수 기관에서 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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