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호 교수, “지도자에게 필요한 직관이 곧 유머”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 "유머가 있다는 것은 생각이 남다르고 배려가 있다는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9.02.07 10:3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사진=더리더
남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한다. 유머는 긴장된 분위기를 푼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자칫 실수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상황을 정확 하게 바라보는 직관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배려심도 깊어야 한다. 풍부한 언어 표현력과 유연한 사고 같은 예리한 지성도 갖춰야 한다.
역사적으로 유머는 ‘주류’가 아니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피에로나 광대, 각설이 딴따라는 신분도 낮았다. 유머가 교양이 되기 시작한 때는 1870년부터다. 영국에서 유머감각을 바람직한 자질로 보기 시작했다. 유머에는 지적인 요소가 담기면서 가치가 올라갔다. 지금 시대의 유머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다. 처칠과 링컨은 역사상 유머감각이 뛰어난 지도자로 꼽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를 향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머로 승화한 것이다.

<유머니즘>의 저자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는 “지도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공간이 넓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유머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보고 다른 걸 짚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매력이 권력이 되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요즘 정치인들에게 유튜브는 ‘대세’ 로 자리 잡았다. 텍스트 시대가 저물고 영상의 시대가 오면서 엔터테인 요소가 중요 해졌다. ‘재미’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유머러스해지는 법’이 있을까. 유머에 대한 책을 집필한 김 교수에게 지난달 15일 인터뷰를 진행하며 유머를 습득하는 법을 물었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
▶유머는 우리에게 중요한 일상이다. 유머가잘 먹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는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유머가 얼마나 통하는지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가 좌우된다. 그 시기와 흐름에 맞아 유머가 터질 때가 있는데 이건 어떻게 나오는 걸까 생각했다. 또 불편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유머가 잘 나오지 않는다. 상급자와 같이 있으면 농담하기 쉽지 않고 왠지 주눅 들어 있다. 이 사람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 알기 위해서는 유머가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찾아봤는데 유머에 대한 책은 많이 없었다. 혹자는 ‘읽고 싶은 책을 쓴다’고 한다.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싶어서 썼다.

-책을 쓰면서 깨달은 ‘유머’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지적인 것과 정서적 차원 두 가지가 있다. 지적인 차원은 사안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이다. 논리를 따르면서도 그 이상의 것을 봐야 한다. 유머의 대부분은 말로 한다. ‘유머러스’하다는 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이 깨질 때다. 늘 생각했던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깨질 때, 당연하게 생각 되는 전제가 깨질 때 웃음이 나온다. 지적인 영역에서는 논리적인 틀 속에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유머러스하지 않다. 이게 가능하려면 정서적으로 부드러워야 한다. 정서라는 것은 관계성이 다. 개인 자체의 정서도 중요하다. 부정적인 감정이 차 있고 분노나 수치심에 매몰돼 있으면 발상이 안 나온다. 이런 상태면 유머를 하더라도 굉장히 공격적이라든지 모멸감이나 비웃음을 줄 수 있다.

-지금 시대에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는 응어리가 많다. 양극화가 심하고 갑질이 서슴없이 벌어진 다. 지금은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한마디로 세상 사는 게 재미없어서 그렇다. 사는 재미가 있다면 늘 유머는 따라다닌다. 생존하느라, 투쟁하느라 바빴다. 이제 막 잘 살게 되니 그 이상의 문제가 생겼다. 우리 삶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유머는 상황을 너그럽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갑질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유머를 통해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머가 갖는 힘은 어느 정도인지
▶유머는 역사적으로 민중들의 지혜였다. 조상들이 남긴 예술 작품과 놀이에는 유머가 있다. 유머는 현실이 쉽게 바뀔 수 없고 처한 고통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견디게 해주는 힘이다. 우리 사회에 유머가 풍부해지면 상호 순환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회가 바뀌면 유머가 풍부해지고 사회가 같이 발전한다. 매력적이 될 수 있는 것이 다. 우리 사회는 매력이 없다.

-유머러스해지는 방법이 있을까
▶유머는 스킬이 아니다. 물론 코미디언들처럼 웃기는 일이 업인 사람들은 일반 사람보다 스킬이 뛰어나다. 웃긴 이야기를 하려면 입담이 있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 라도 입담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 하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작정하고 웃기는 것은 20~30%밖에 되지 않는다. 70~80% 정도는 일상생활에서 웃긴 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말이 헛나왔다든지, 엉뚱하게 알아들어서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흘러간 다든지.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 다. 유머러스해지는 법은 별다른 스킬이 없다. 유머는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

-현 시대에 유머가 없어졌다고 말했는데
▶유머를 하려면 정서적으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사회적인 관계가 끊겼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불안이 크다. 요즘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너무 많이 생각하는 듯하다. 유머는 항상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안전한 유머는 별로 없다. 안전 하다는 것은 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재밌지 않다. 불확실하니까 재밌는 것이다. 불확실한 것에 도전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터넷 영향이 크다. 관계를 파편화시키는 것 같다. 실제로 관계와 소통을 경험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게 쉽지 않아졌다. 물론 인터넷에 재미 거리는 많다. 그건 그저 가십이다. 웃기는 것은 없어졌는데 소비는 늘었다.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사진=더리더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 ‘유머’

-지도자가 유머러스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도자는 실무자가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전을 만드는 사람이 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공간이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는 언어로 표현 된다. 언어가 더 유연하고 풍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단어도 전혀 다르게 생각할 때 사고가 넓어진다. 이를테면 시인은 똑같은 일상 언어를 다르게 표현한다. 시와 유머는 통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지도자는 직관이 있어야 한다. 유머가 바로 직관이다. 유머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보고 다른 걸 짚어내는 것이다. 또 유머는 관계 속에서 나오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유머가 나올 수 없다.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나도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유머를 구사한다면 분위기가 썰렁해지거나 상대방이 불쾌해질 수 있다. 유머감각이 있다는 것은 생각이 남다르다는 것은 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모두 지도자의 덕목이다.

-유머러스한 지도자는 누가 있었나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故 노회찬 전 의원이다. DJ는 야당에 있을 시절 에는 그렇게 유머러스한 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투쟁만 해서 그렇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는 유머러스한 점들이 많이 보였다. 노 전 의원 같은 경우도 어록이 워낙 많다. 이런 분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여유가 돋보였다. 신체적 결점도 유머로 승화하는 대인배적인 면모가 보였다.

-우리 정치에는 유머가 실종된 듯하다
▶권위주의적인 의식이 팽배할 때 유머감각이 없어진다. 우리나라 국회의 원들은 의전을 받고 과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위계질서가 중요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유머가 나올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으로 강조하는 것은 권위주의다. 권위주의가 팽배하면 유머가 나올 수 없다. 상황이 권위적인데 웃음이 나온 것은 타락한 것이다.

-그래도 많은 정치인이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유머는 처세술이다. 정치인들은 늘 논쟁한다. 불편한 질문을 받는 대상 이다. 이런 상황을 유머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면서 자기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상대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도 적어진다. 트럼프가 이게 부족하다. 전혀 여유롭지 않고 유머가 없다.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소통강화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오픈한다./사진=뉴시스
-정치인 유튜브가 대세인데. 유튜브에서 유머를 빼놓을 수 없다

▶매력이 권력이 되는 시대다. 군사 정권 때는 개인의 매력이 필요가 없었 다. 폭력으로 제압하던 시기다. 지금은 매력이 있어야 재력도 얻고 권력도 얻는다. 특히 개인의 캐릭터가 중요하다. 그 매력이 발휘되는 공간이 미디어다. 그중 가장 잘 발달된 게 유튜브다. 정치인들이 유튜브로 1인 방송을 시작했다. 1인 방송은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엔터 테인적인 요소가 중요해졌다. 이제는 재미없으면 영상을 보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이제 유머러스해져야 한다. 권위주의를 내려놔야 한다.

-유머를 잘못하면 희롱이 된다
▶유머는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특히 희롱은 선이 명확하지 않다. 똑같은 말을 해도 누구에게는 희롱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희롱의 대부분은 성희롱이다. 성적인 유머만 하는 것은 그의 사고 체계가 넓지 않은 것이다. 다른 것은 재미없고 이런 이야기만 재밌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감수성이 필요하다. 젠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유머가 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하면 안 된다. 특히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 사람은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혹시라도 유머가 누군가를 불쾌하게 했다든지 희롱이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유머니즘’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니체는 ‘즐거움이 없는 것은 지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면 재밌을 수밖에 없다. 깨달음 주는 것은 모두 유머러스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또 그 경험들이 다양 하게 공유돼야 한다. 우리는 경험이 너무 빈곤하다. 스마트폰으로 접한 건 경험이 아니다.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 거기서 스토리가 나온다. 그 스토리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유머가 나온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1962년 대전광역시 출생
연세대학교 사회학 학사•박사
오사카대학교 객원연구원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
연세대학교 강사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전문연구위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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