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이양희 “세상의 모든 존재가 안무의 대상, 뷰포인트”

연극과 시각예술 융합, 몸동작을 넘어 무용을 총체적 공연예술로 확대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9.01.08 12:5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아주 어린 나이부터 전통무용을 시작한 안무가 이양희. 그녀는 뉴욕의 댄스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국을 오가며 많은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해왔다. 지난해 아트선재에서 기록적인 8시간 공연인 <더스크>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특정한 기억의 순간을 음악, 영상, 디자인, 조명 등의 형식을 빌어 감각 가능한 형식으로 전환시키며 이를 통해 안무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공연 예술의 가치, 소유, 향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자 했다. 더스크 이후 에르메스가 주목한 작가 오민과의 협업 작품을 선보인 안무가 이양희 씨를 만나봤다.

▲안무가 이양희./사진=안웅철

안무가 이양희. 1990년대 후반, 당시 홍대 중심의 독립예술 무브먼트 선두에서 댄스 그룹 림보(Limbo)를 결성 무용과 음악, 미술,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을 접목해 공연에 나섰다. 한국 전통 무용의 움직임에 관한 구조적 분석과 ‘전통에서 삭제된 동시대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전통무용이 동시대 예술의 구조 안에서 맺는 현상학적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다양한 협업 작업을 통해 활동 영역을 무용에만 국한하지 않고, 연극과 시각예술을 포함한 총체적인 공연예술로 확대하여 ‘안무: 대상과 개념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미국행을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시키는 대로 하거나 틀 속에 갇히는 것을 답답해하는 성향이라 학교 밖 생활에서 무용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판을 벌이고 어울렸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무용 장르를 구분하는 개념은 그때부터 이미 재정립된 듯하다. 우연히 뉴욕의 ‘블루맨’ 그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작은 극장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즐거운 공연을 위해 뉴욕을 꿈꿨지만, 실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안무가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뉴욕에는 수많은 신진 안무가(Emerging Artist)가 존재하고 수위도 나뉜다. 나 역시 처음에 수많은 신진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8년 전 New York Live Arts(구 Dance Theater Workshop)의 상주 예술가 프로그램과 포스트모던 댄스의 메카라고 일컬어지는 무브먼트 리서치(Movement Research)의 상주 예술가로 선정된 이후에야 뉴욕 다운타운 댄스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겨우 자리매김할 정도였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회를 얻는 그 자체였다. 이를 위해 정보 습득과 네트워크 구축이 핵심인데 6년의 시간 중 처음 3년은 정보 구축에 소비됐다.

뉴욕에서는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운영 기관이 많다. 뉴욕 5개 자치구에 존재하는 예술 위원회들, NYFA, LMCC, Dance NYC 등이 있는데 이러한 기관들이 제공하는 실질적 프로그램을 거의 모두 찾아 들었다. 예를 들면 바이오, 레주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작품 샘플 등의 작성과 지원 전략에 관한 것부터 안무 워크숍, 즉흥 수업, 소마틱 프로그램까지 섭렵했다. 때론 극장을 돌아다니며 비치되어 있는 플라이어를 수집하고, 공연 팸플릿에 적혀 있는 안무가의 바이오를 모두 추적했다. 공연 베뉴에서부터 안무 워크숍, 신진 안무가들에게 주는 기회 등 모두 목록화 했다. 이러한 정보 구축은 현재도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하고 있다.

보통 뉴욕에서의 네크워크는 각 주요기관의 클래스에 참여해 그 안무가와 함께 작업을 하며 알아가거나, 안무 워크숍 같은 곳에서 만나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며 형성되기도 한다. 혹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커뮤니티에 자리하게 된다. 내 경우는 뉴욕에서 본인의 작품으로 라이브 심사와 인터뷰를 통해 선정되는 신진안무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네트워크 기반이 형성됐다. 아무 연고도 없이 한국무용만 해왔던 터라 컨템퍼러리 무용에 대해 무지 했던 조건에 비해 꽤 빠른 과정이었고, 이러한 경험들은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이끄는 전략의 원동력이 됐다.”

▲사진=이안더글라스

안무가 이양희에게 ‘판’이란
“판의 시작은 사실 음악과 림보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무용 공연에 관해 수많은 질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림보는 그 질문의 시작점에서 실천한 나의 첫 프로젝트이다. “왜 우리는 아무도 오지 않는 극장에서 우리끼리 춤을 추는가”, “이 창작 활동의 향유 대상이 누구인가”, “관객이 없는 극장이 라면 관객이 있는 곳을 극장으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대의 ‘발전소’와 ‘클럽 언더그라운드’, ‘클럽빵’에서 정기적 공연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젊은문화네트워크’로 공연과 축제를 함께했다. ‘여성예술인 모임’에서는 캠프와 워크숍 등 ‘잘 노는 판’에 참여했다. 90년대에는 홍대지역 비주류, 카운터 컬처의 주체로도 활동했는데 생각해 보면 당시 그 ‘판’의 다양한 경험이 현재의 독립예술, 거리예술, 다원예술, 청년문화, 시민참여 등의 키워드로 대변될 수 있다고 본다.”

안무가 이양희에게 포스트모던 댄스와 컨템퍼러리 댄스는
“서양의 포스트모던 댄스는 1950~60년도의 컨템퍼러리 댄스였고 나의 포스트모던 댄스는 90년대 홍대에서 공연한 림보였다. 나의 컨템퍼러리 댄스는 90년대와 현재, 항상 지금이다. 시대에 앞서서 질문하던, 지금 시대의 현상과 함께 가던, 과거의 답들을 지켜내던 그 모든 것이 동시대에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치라 여긴다. 그저 나는 지금의 시대를 바라보고 미래의 시간을 제안하는 것이 동시대적 사고라 믿는 예술가일 뿐이다.”

한국의 레지던시 사업과 프로그램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레지던시나 해외초청 지원 같은 프로그램보다 좀 더 한국의 무용 커뮤니티의 현실과 특성을 고려해 근본적 질문을 해봐야 한다. 레지던시가 예술가의 작업세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활동을 위해 물리적, 심리적 그리고 환경적 조건들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 라면 해외경험, 한국경험의 ‘교류’적 프로그램도 좋지만 ‘자체생산’적 프로젝트도 발전시키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단발적인 기회를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구조 자체에는 한계가 있다. 예술가에게 작품 창작은 물리적, 심리적 그리고 환경적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예술가의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그들이 새로운 문화 창조 기여가 목적이다. 하지만 해외와 한국 경험의 ‘교류’적 프로그램도 좋지만 ‘자체 생산’적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것도 좋다. 이에 대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도 많다. 일단 레지던시의 대상이 국내 안무가들에게 보다 집중되면 좋겠고 표면적 숫자로 판단되는 사업보다 질적으로 집중된 지원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한 예로 신진안무가와 중견안무가가 함께 예술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할수 있는 ‘판’을 제공하면 어떨까 한다.”

▲안무가 이양희./사진=데이빗 곤시어

한국무용에 관한 질문들로 이루어진 공연들을 해왔다. 어떤 의미인가
“어린 나이부터 전통무용으로 춤을 시작했고, 그 시대까지 정립된 한국무용의 역사를 그 시대의 사회제도 안에서 공유했다. 호기심 많고 조금 반항적인 어린 한국무용수가 전통 춤의 형태와 형식의 제약에 관한 질문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본다. 처음 한국무용 춤사위와 구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어 나중에는 도제 시스템의 구조, 보수적 환경, 그리고 관객과의 미비한 소통 등 공연 예술이 사회에서 맺는 관계와 현상들에 대한 관심으로 질문의 폭이 확장되어 갔다. 나의 작업은 공연예술의 형식으로 이 질문들을 다루는 과정이고 이는 춤을 ‘안무’ 하는 것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요즈음 내가 질문하는 것은 안무원리, 안무의 대상과 개념의 확장을 기반으로 공연 예술의 가치· 소유·향유가 주를 이룬다.”

춤을 안무하는 것과 확장된 개념이란
“나는 안무가 1차적으로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을 주재료로 동작을 구성하는 행위라고 봤을 때 한국 전통무용에서는 안무의 개념이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만의 움직임으로 안무를 하고 싶었다. 후에 춤동작을 넘어 몸이 구현하는 모든 움직임이 안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나아가 그 대상이 내가 인식하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로 넓혀졌다. 그리고 이전의 1차적 안무 개념은 구조, 설계, 원리, 시공간 요소 사용, 존재의 방식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른바 나의 독자적인 안무 개념으로 심화됨을 의미한다.”

▲더스크 공연 중인 안무가 이양희./사진=김재범

기록적인 8시간의 공연 <더스크>를 성공적으로 끝냈는데 소감은
“나를 믿었다. 물론 8시간의 공연은 수많은 요인이 있어 가능했다. 그보다 8시간 내내 공연을 지켜본 관객들이 더 대단하다고 본다. 6시간 이상 자리한 관객도 많았다. 미술관인 아트선재센터는 관객들의 입장과 퇴장이 자유롭다.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긴 시간 머물게 한 그 무엇. 그것은 내가 믿는 공연 예술의 핵심과 가치가 드러난 작업이었다고 본다. 아울러 내가 사는 동안 <더스크>의 공연 횟수를 총 5번으로 영구적으로 제한했기에 공연 자체의 횟수가 너무 아까워 길게 춤추고 싶었던 것도 그 이유다. 이제 4번 남았다.(웃음)”

뉴욕과 한국, 시각예술가와 연극인들이 협업한 이유는
“따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장르와의 협업 시 소통이 잘되는 언어를 가지고 있어서인 듯하다. 사실 정식으로 뉴욕의 무용학교에서 안무의 기법을 배우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그 선택은 현명했다고 본다. 뉴욕 SITI 컴퍼니에서 경험한 뷰포인트 훈련을 통해 나만의 안무에 대한 개념이 확장 되었다. 사실 공연예술의 핵심 축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잘 정립되면 모든 영역에서의 접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양희의 ‘뷰포인트 훈련’이 궁금하다
“공연예술에서 구성요소에 대한 분석과 해체의 과정은 창작자 혹은 공연자가 ‘즉흥과 앙상블’이라는 기본 구조 안에서 신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훈련한다. 앞서 말한 공연예술의 두 가지 핵심축인 시간과 공간의 구성 요소와 공연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창작자 혹은 공연자가 ‘즉흥과 앙상블’이라는 기본구조 안에서 실시간으로 인지, 탐구하고 컴포지션하는 훈련이다. 뉴욕에서 뷰포인트 개념을 처음 고안한 메리 오블리와 세분 화된 분류와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시 하며 뷰포인트를 확장시킨 앤 보거트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나 자신의 고유한 뷰포 인트 훈련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다.

요즘 안무가 이양희의 질문은 생존이다. 하고 싶은 작업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집중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보통의 영역은 사회가 제공하는 시스템 안에서 개개인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 예술가는 이러한 구조에 그대로 수용될 수 없다고 본다. 내가 하는 예술적 행동은 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지속하기 위해 나만의 고유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까지 포함한 다. 그래서 나의 창작 활동이 사회의 경제 구조 안에서 자생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뷰포인트 훈련을 하는 안무가 이양희./사진=임기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난해 11월 24일과 25일 양일간 아트선재 센터에서 오민 작가와 협업공연을 마쳤다. 이 작품에서 작곡가 줄리아 울프의 음악 ‘릭’(1994)을 바탕으로 이 곡이 품은 운동성 근원을 단서 삼아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오민 작가와는 지난해 뉴욕에서 처음 협업했다. 공연 예술의 구조와 설계, 원리 등 공통의 관심사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동료이다. 올해부터는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준비 중인 작업을 완성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사실 이를 위해, 나만의 물리적, 심리적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여러 측면에서 접근했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정보와 전략을 림보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발전시켜 올해 설립할 <림보프로젝트 | 퍼포밍아트랩> 과 더불어 사회 기여 프로그램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올해 뉴욕 댄스페이스 프로젝트 (Danspace Project)에서 협업 작업이 있고, 지난해 8월 아트선재센터에서 공연한 <더스크>의 해외공연을 계획 중에 있다.”

전통무용을 한 걸 후회한 적은 없는 지… 젊은 무용가들에게 한마디
“후회는 없고 오히려 전통무용을 시작한 우연에 감사한다. 오랜 시간 연마한 그 춤이 한국의 전통무용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답의 맞고 틀림의 여부를 떠나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찾은 나의 답은 여기까지이다. 나는 어떤 한 개인(내가 아는 한 최승희)이 한국의 근대화의 기점에서 극장 공연을 위해 서구화시킨 어떤 특정한 형태와 특성을 지닌 한국무용, 즉 ‘신무용’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레퍼토리를 오랜 시간 연마한 무용수이다. 이 특정한 한 가지 춤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체득할 수 있었고 춤이 삶의 가치와 태도에 관한 수양 그 이상의 것임을 배웠다. 전통무용을 넘어 젊은 무용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질문하고, 답은 스스로 찾아라’라고 말하고 싶다.” 

안무가 이양희
- 림보프로젝트 안무가
- 현 Theatre C, The Syndicate Associated Artist
- 뉴욕대학교 스타인하르트 무용교육학 석사
-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졸업
- 서울예술고등학교
- 예원학교
- 2018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 지원 선정 예술가
- 2016 아시아 문화 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 미국) 펠로우
- 2014-2016무브먼트리서치상주예술가(MovementResearch Artist-in-Residence)
- 2012, 2014-2016 제롬 파운데이션 (Jerome Foundation, 미국) 신진 아티스트
- 2012 뉴욕 라이브아트 상주 예술가(New York Live Arts Fresh Track Artist)
- 2011-2012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 국제교류 기금 선정 예술가
jungmy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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