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연예계 큰 별 하용수 별세 “선생님이란 우월감 보다 오빠 소리처럼 사랑스러운게 좋다”

생전 인터뷰 수록 "젊음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9.01.06 11:3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故 하용수 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자 패션디렉터 스타메이커인 연예·패션계의 큰 별 하용수(박순식)가 5일 간암과 담도암으로 경기도 양주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그의 지인들과 가족들에 따르면, 앞서 서울대병원에서 간암말기와 담도암 등의 진단을 받은후 양주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디자이너 하용수는 1950년생으로 야당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나 향년 68세이지만, 누구보다 ‘젊게 살았고 젊게 소통하다’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본지는 2016년 8월 22일 그를 만나 생전에 장시간 인터뷰를 가졌고, 머니투데이 더리더 2016년 9월호 지면을 통해서 그의 자서전 제목 “네 멋대로 해라, 미친 세상 내가 정상이다” 제목으로 하용수 디자이너에 대해 조명하는 인물포커스를 다룬 바 있으나, 지면 분량으로 담지 못한 고인의 생전 인터뷰를 마지막이자 최초 공개한다.

◇젊음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은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디렉터였고, 패션 디렉터 이전에 머릿속에 숫자를 헤아릴 수 없지만, 한 20만 정도의 음악이 머릿속에 입력 되어있다. 내가 아는 음악적인 상식을 디자이너를 위한 패션쇼에 드라마틱하게 풀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느껴야하는 모든 감각적인 부분을 다 오픈하고 그네들의 의견을 접수하고 다시 어레인지하는 (패션)디렉터를 했기 때문에 솔직히 늙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항상 도망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몇 살이지 하고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같이 일을 해왔던 스텝들은 나보다 항상 젊은 스텝들이었기에 그네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네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통의 쾌감을 제 스스로 느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프랜디한 릴레이션쉽이 이뤄졌다.

특별히 내가 젊어져야지 했던 때가 없었고, 완전히 하이엔드인 내 부디크 말고 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해서 만든 베이직 이나 닉스를 만들 때는 불특정 다수의 많은 다중들을 위하기 때문에 내 눈에는 바로 안보이지만 나는 젊은이들의 영혼 속에 들어가 있고, 그네들이 느끼는 오감을 충족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현재 그네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네들의 취향은 무엇인가? 그네들은 어떤 음식을 즐기는지? 이런 포괄적인 문화라는 태두리 속에서 갖고 있는 정말 권위적인 거에 사로 잡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내가 유명인 이기 때문에 잘난척하고 하는 것을 내가 애써 거부했다. 한 부분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그래서 심지어 동료 디자이너들이 옛날에 모델들이 오빠, 오빠 그러니깐 물론 그 모델들도 지금 나이가 먹었지만 ‘선생님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래요’ 아니 'SO WHAT' ‘무엇 때문에 당신이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리고 나는 내가 하는 일들이 남한테 어떻게 비춰지냐는 신경 안쓴다 그러고 선생님 소리 들어서 우월감을 느낄지 몰라도 나는 오빠 소리처럼 사랑스러운게 좋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델이란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이전에 코카콜라 최초모델을 하였고, 그후 박카스 1호 인물 모텔, 오란씨 1호 전속모델로 활동했다. 이어 故 신상옥 감독의 <영화 천동(1973년)>에 주연으로 출연 후 이장호 감독의 영화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년)>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가 당시 46만명이 관람하며, 국도극장에서 명보극장까지 경찰 기마대가 동원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후 20대 그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만 15개가 들어왔었다.

그는 대학 시절에는 삼청동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앱생로랑’과 ‘샤넬’의 드라마와 뮤지컬 같은 연출의 패션쇼를 보고 컬쳐 쇼크를 받아 모델 영화배우에 이어서 패션디렉터로 1974년 진태옥 디자이너 패션쇼를 연출한다. 이어 1975년 박항치, 김희 외 12인의 유명 디자이너쇼를 연출한다.

그후 1982년 하이패션 부디크 파라오(Parao)를 설립하고, 당대 최고의 포토그래퍼인 조세현, 조남용, 조선희, 김용호, 김중만 등이 같이 일하며, 자연스럽게 스타메이커가 되어 김혜수, 이정재, 오연수, 주진모 등의 스타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했다.

故 하용수 디자이너가 걸어온 길
데뷔 1969년 TBC 공채 탤런트 7기
1974년 조선호텔 프랑소와즈 진태옥 디자이너 패션쇼 연출
1975년 박항치, 김희 외 12인 유명 디자이너쇼 연출
1980년 남대문 페인트 타운 조성
1982년 하이패션 부티크 Parao 설립
1989년 한국 불우아동돕기 미국 LA 패션쇼
1990년 Show 북경(아시안게임 개막식)
1993년 대종상 최초 의상상 수상(사의찬미)
1999년 NIX 총괄 디렉터
2001.2002 첸카이거 감독 작업 투게더 의상 담당
2013년 TV홈쇼핑 홈앤쇼핑 여성의류 최단시간 최다 판매 기록
2014 영화 놀자
2016 영화 천화

하용수 디자이너는 영화 ‘놀자’ ‘천화’를 찍었으며 마지막까지 신나게 배우로써 2019년 1월 5일 생을 마감했고, 빈소는 외국의 가족들이 돌아오는 6일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VIP실이며, 발인은 8일·장지는 경기도 양주시 하늘계단에서 치러진다.
jungmyeon@gmail.com

최신기사

정치 기사

사회 기사

연예 기사

스포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