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코화 김유정 작가 , 타슈켄트-이슬람-몽골 지역 문화 정체성을 표현… 소피스갤러리 개인전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8.12.15 12:1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복제된 정원(Imitated garden), 2018, fresco, scratch on lime wall, 90 x 140cm


프레스코화 하면 제일 먼저 르네상스 작품이나 미켈란젤로의 바티칸 궁전 작품을 떠올린다. 그런 프레스코(fresco)기법 작업으로 작품을 만드는 김유정(Kim Yujung, b. 1974)작가가 개인전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Plants also have power)를 오는 17일부터 오는 2019년 1월 19일까지 소피스 갤러리에서 연다. 

전시는 지난 2016년 소피스 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2년여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식물이라는 소재를 고전적인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해 표현한 평면 작업과 사진 작업 그리고 김유정의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옮겨온 설치 작업을 비롯해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머물고 있는 그녀가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즈베키스탄의 정체성과 문화를 다층적으로 녹여낸 작품들도 선보인다.

김 작가는 그동안 회칠한 벽체를 한 획, 한 획, 일일이 긁어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프레스코 작업을 오랫동안 고수해오면서 인간의 트라우마(trauma)와 그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왔다. 특히, 프레스코 작업은 기법의 특성상 특수 제작된 벽체에 초지(arriccio)와 화지(intonaco)를 바르고 화지가 마르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하며 굉장한 숙련도와 세밀함이 필요하다.

또한 물감을 더하면서 완성시키는 방식이 아닌 화지를 긁어내면서 즉, 빼고 버려가며 완성되는 회화이므로 동시에 조각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그녀는 프레스코 신작에 <복제된 방(Imitated room)>, <복제된 정원(Imitated garden)>등의 제목을 붙이며 현대인들이 고유한 취향을 갖기보다는 집단의 편향에 따른 획일화된 취향을 가지는 현상을 식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사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유정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식물이라는 소재는, 기존의 라이트박스나 식물 설치 작업에서 더 나아가 그녀가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침대, 소파, 탁자 등 일상의 사물들이 틸란드시아(tillandsia)의 덩굴에 의해 잠식되면서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설치 작업인 <세력도원(Plant kingdom)>으로 표현된다. 이를 통해 평면 속의 식물과 그 바깥의 식물을 병치시킴으로써 다층적인 장면이 구현된다.

이 작업은 그녀의 프레스코 작업이나 버려지고 떨어져 무의미해진 식물의 껍질과 이파리를 한데 모아 사진으로 구현한 <세력도감(Forced plant)> 연작을 비롯해 병행해 왔던 식물 설치 작업의 연장선상으로서, 살아있는 생명을 인간이 일방적으로 돌본다는 것이 어떤 무게와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그녀의 회의적인 질문들을 더욱 발전시킨 작업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의 제목인 <식물에도 세력이 있다>의 의미는 우리에게는 익숙해서 사소하게 여겨지는 연약한 것들이 무리나 집단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힘을 식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은유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김 작가는 한국인으로 다른 문화권으로 떠나 생활을 하며 타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작업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그가 거주 중인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몽골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후에는 소비에트 연방에(구 소련)속했던 나라로, 이슬람과 사회주의의 영향권이라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문화들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이렇듯 가깝고도 먼 나라에 거주하게 된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의 일상적인 풍경과 문화들을 작품에 녹여내어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 중 <7의 기원(7 prayers)>은 초폰(chopon)과 캄줄(kamzul)이라는 전통의상이자 혼례, 장례 등 중요한 행사에 착용하여 자신의 신분과 직업 등을 나타내 주었던 의상을 만드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천을 이용해 설치된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 듯한 이 작업은 ‘7’이라는 숫자에 대한 사람들의 오랜 믿음, 그 관습이 다수를 움직이는 무의식적인 힘이 되는 지점을 포착한 작업이다.

100x200cm의 크기로 길게 늘어설 7개의 드로잉 연작인 <회칠한 다락(A whitewashed tree)>에서 ‘다락(daraxt)’은 우즈베키스탄어로 나무란 의미를 가진다. 다락 혹은 다락방이 병충해나 한파를 피하기 위해 지어졌듯이 벽의 여백을 이용하여 다락이라는 단어의 이중적이며 언어유희적 작품을 구현했다.

김유정은 타슈켄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병충해 방지를 위한 흰 칠이 모든 나무들을 비롯해서 전봇대 등 기물에도 칠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밑동이 회칠 된 여러 그루의 나무를 아크릴 물감으로 드로잉 하고 나란히 설치하여 숲과 같은 효과를 줌과 동시에 우즈베키스탄의 독특하면서도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국적인 새소리를 녹음하여 함께 배치하면서, 타국의 숲 풍경을 시청각 언어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다.

영상 작업인 은 검사와 평가의 대상에 항상 놓여있는 한국 청소년들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한국의 드라마와 K-Pop 등 미디어를 통해 파편적으로 비춰지는 한국의 문화를 바라보고 열광하며 동경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소년 소녀들의 모습을 담았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서로 원활한 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라는 동경의 대상에서 온 외국인에게 어눌한 발음의 한국말로 호의적인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작품에 담아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꿈을 꾸는 장면을 표현하면서 꿈과 현실의 괴리를 담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김유정은 기존의 프레스코 작업, 사진 작업, 식물 설치 작업을 그녀의 작업실이나 타국의 새로운 거주지에서의 일상과 밀접하게 결합시키면서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해 나가고 있다. 동시에 식물을 연약하지만 무리나 집단을 이루며 힘을 가지는 존재로 상정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식물들이 만들어낸 숨의 광경과 집단적 세력을 느끼며 미적으로 승화되는 지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또한 그녀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타국의 문화와 정체성에 받은 영감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냄과 동시에 기존 작업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소피스 갤러리는 그녀가 식물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조형방식으로 접근하는 지점에 주목하며, 이러한 시도들이 이루어낼 결과물을 기대한다.

jungmy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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