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부인’에서 ‘정치인 인재근’으로… “‘운동권’ 역할 끝나지 않아”

인재근 행정안전위원장, “서민의 따뜻한 친구 되겠다”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조준영 기자 2018.11.30 15:1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1987년 민주화 이후 소위 ‘운동권’이라 불린 이들은 제도권 정치에서 공고한 세력을 구축해왔다. 김근태 전 의장을 중심으로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대표적이다. 한국정치가 민주화되는 데 일등 공신이란 평가와 함께 우리 정치를 늙게 만든 ‘고인 물’로 불리는 등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20대 국회 후반기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위원장을 맡은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을 만나 “민주화운동이 끝났다고 해서 이들의 역할이 끝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화운동이 당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사회가 바라는 열망을 읽고 이를 위해 헌신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치권 내의 민주화운동가들이 민심을 계속해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인 위원장은 김 전 의장의 부인이자 스스로 ‘김근태의 바깥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만큼 민주당 내 주요 계파 중 하나인 ‘김근태계’의 핵심이다. 인재근이란 이름 보다 ‘김근태 부인’으로 익숙한 그는 인터뷰 중에도 김근태가 걸어온 길을 이어가겠다며 “김근태가 그랬듯 소외계층을 챙기는 따뜻한 정치를 펼치려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 많은 행안위, 타협과 조정능력 시험대에

10월 29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엔 총 1475개의 법안이 행안위에 계류돼 있다. 17 개 상임위 중 가장 많다. 이유가 있다. 위원회 이름에서 볼 수 있듯 국민의 안전과 생활에 밀접한 영역을 소관하기 때문. 지방자치 단체도 감독하는 탓에 업무의 범위와 살펴 봐야 할 예산사용처도 광범위하다.
이러한 행안위의 특성 탓에 여야 간 이견으로 교착상태를 겪는 일이 잦다. 경찰·소방등 안전분야보다 행정에서 잡음이 특히 많다. 최근 행안위 법안소위에 상정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제주4·3사건 진상규명 특별법’ 등 쟁점법안들은 서로 간의 의견차만 확인한 채 다음 회의로 의결을 미루기도 했다. 지방감사도 여야 간 신경 전이 벌어지는 장이다. 지난 국감일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선 경상남도 지역에 대한 감사반 배분을 놓고 1시간 이상 정회를 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광역단체장을 ‘싹쓸이’한 현정부에 대한 야당의 칼날은 지방까지 겨누고 있다. 이처럼 야당의 반대가 몰리는 상임 위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한 인 위원장의 조정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지방분권엔 ‘공동체회복’, 안전문제엔 ‘예방중심’ 강조

인 위원장은 ‘행정’을 주목했다. 그는 “국민의 인권과 안전을 위해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도 국민이 느낄 수 있는 행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직접 피부에 전달될 수 있는 행정제도 개선에 목소 리를 높였다.
지방분권의 핵심으로 불리는 ‘자치사무’ ‘자치재정’ 등에 대해선 지역활성화와 지역공 동체 회복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 위원장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우리 삶도 빠르게 변화했다”며 “극도로 개인화된 삶으로 주민들 간의 교류는 단절 됐고 고령화, 양극화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안전문제에 대해선 후속대책보다 예방에 무게를 뒀다. 그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매우 강력한 규제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회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안전규제가 변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뒀다. 그는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는 과감히 폐지하고 현실에 맞는 안전규제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 해야 된다”고 말했다.

경찰·소방 처우개선, 계류법안 처리 최우선

노동운동가로 일찍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 해온 그는 국회에서도 소외계층을 챙기는 따뜻한 정치를 추구한다. 사회적 약자인 아동·여성·장애인·노인 등의 안전과 인권이 중심이다. 이들을 최일선에서 보호하는 경찰·소방관들의 처우개선에 관심이 높은 이유다.
이미 해당 문제는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다.
말뿐이 아니다. 지난 8월 김포대교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소방대원 2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인력부족과 부실한 안전장비 등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 다. 관련법 개정안도 숱하게 발의됐지만 여전히 행안위에 계류된 상태다. 인 위원장은 "처우개선을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을 하루빨리 검토하고 심사해 처리하는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우리 경찰·소방 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인재근 행안위원장’s 법안 PICK, 고문방지법

인 위원장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법안 으로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에 관한 법률안’(고문방지법) 등 4건의 패키지 법안(형법·형사소송법 개정안, 고문·가혹 행위로 인한 피해의 회복을 위한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법안)을 꼽았다.
19대 국회 때도 인 위원장이 발의했지만 당시 새누리당의 반대로 끝내 논의되지 못한 법안들이다. 현행 형법상 모호한 고문 처벌 규정을 명시하고 형량 또한 징역 5년에서 7 년으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고문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공소 시효를 폐지하는 등 조항 하나하나에 깊은 고민이 담겼다.
이유가 있다. 삶으로 체득한 탓이다. 인 위원장은 민주화운동가 출신 정치인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이자 그 역시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남편인 김 의원은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서 서울대 민주화추진위(민추위) 배후혐의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한 바 있다. 이때의 고문후유증은 김의원의 평생을 따라다녔고 그 후유증으로 결국 2011년 사망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인 위원장은 당시 고문 사실을 외신에 폭로해 전 세계에 알렸고, 1987년 부부가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 들은 그가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앞장서게 한 가장 큰 동력 이다.
인 위원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도 “시대의 불행과 역사의 그늘에서 여전히 고통과 상처를 받고 있는 분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국가에 의해 고통받은 이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예산확보와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패키지법안들은 곧바로 20대 국회 첫 법안으로 발의됐다.
지난 2016년 11월 해당 패키지법안들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지만 그 이후론 감감 무소식이다. 하지만 인 의원이 해당 법을 소관하는 상임위원장이 되면서 법안처리에 다시금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행안위엔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을 위한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 멀리는 항일독립운동부터 가깝게는 군부정권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의문사 등을 조사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 재개 등을 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또 반유신독재의 구심점이었던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 조사와 한국전쟁 전후로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상을 조사케 하는 법안 들도 올라와 있다. 아울러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보상금 규정과 명예회복 방안들을 규정한 4건의 법률안도 논의 중이 다. 이들 법안들은 지난 11일 행안위 법안소 위에서 다뤄졌지만 여야 간 의견차가 커 계속 논의키로 했다.


인재근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1953년 11월11일 인천 강화 출생
인일여고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근태재단 이사장
민주통합시민행동 공동대표
제18대 대통령선거 민주통합당 문재인후보 멘토단장
제19·20대 국회의원 20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 위원장
20대 국회 후반기 행정안전위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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