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강석승의 북한이야기]‘북한-중국 접경지역, 단둥(丹東) 기행(2)’

미래안보전략연구원 강석승 원장 2018.10.10 16:2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중국의 단둥시와 북한의 신의주시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의 강물 색깔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나, 양국 강변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른바 ‘중조우의교’의 중국측 지역에서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과 모자, 선글라스를 쓰고 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붐볐으나, 북측 지역에서는 거무튀튀한 색상의 남루한 옷차림을 한 인부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힘겹게 모래와 석탄을 하역하거나, 그물로 고기를 잡는 모습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특히 이런 모습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서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연출되었는데, 중국측 지역에서는 다양한 음악에 따라 기(氣)체조를 하거나, 하늘 높이 폭죽을 쏘아올리는 가운데 휘황찬란한 야경(夜景)을 선보였으나, 북측 지역에서는 ‘김일성 동상’이 있는 곳만 불빛이 보였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희미한 불빛 몇몇 곳을 제외하면 칠흑 같은 어둠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단둥에서 일박을 한 우리 일행은 한때 중국과 북한 간의 경제협력 상징으로 비추어졌던 황금평지대와 신압록강교를 둘러보기 위해 동항(東港)으로 향하였다. 한때 보따리상들이 드나들던 이곳으로 향하는 동안 양국 사이에 드리워진 국경 철조망 곳곳에는 폐쇄회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철조망 사이로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밭을 매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목격되었다. 작업반장인 듯 보이는 사람의 감독하에 붉은 깃발을 꽂고 줄을 지어 힘든 일을 하는 북한 주민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며 상상해보는 사이 승용차는 어언 황금평지대에 도착하였다.

황금평 개발에 관한 사항을 알려주는 커다란 입간판 바로 옆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북한군 초병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일행을 살펴보고 있었고, 저 멀리 북측 지역에는 커다란 콘크리트건물만이 덩그렇게 축조되어 있었는데, 골조공사만을 마친 모습이, 이 지대의 완공이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불투명성을 시사해줄 뿐이었다.

이곳을 지나 도착한 곳은 ‘신압록강대교’였는데, 이 다리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9년 10월 북한을 방문하였던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일과 체결한 합의서에서 신설하기로 한 것이었다. 평북 남신의주 용천과 단둥 랑터우(浪頭)를 잇는 총길이 20.4km, 폭 33m의 긴 다리로, 중국측 부분은 이미 완공되었으나, 북한측이 자기측 연결도로와 해관(海關) 등 관련시설의 완공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이곳 역시 언제쯤 개통될 지 미지수(未知數)로 남아 있었다. 마치 북한이 자랑하는 105층 규모의 평양시내 유경호텔이 1987년에 착공된 이래 30년이 넘도록 완공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보였다.

“자국에 큰 도움을 주는 다리조차도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과연 그들 인민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제대로 보장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등 이런저런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단둥시내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중국 화교(華僑)로 마침 고향인 해주(海州)를 방문하고 돌아온, ‘해주해물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을 만나 최근 북한 내부의 움직임을 청취키로 하였다. 뛰어난 음식솜씨 덕분에 장사진을 이루는 식당의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 일행은 그녀로부터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비핵화’에 매우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의 선전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남북한간 정상회담을 통한 ‘판문점선언’,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싱가포르선언’에 대해 개괄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그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남북한관계가 개선되고 철천지 ‘원쑤’나라인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지금보다는 생활환경이 훨씬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소박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란다.

이는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북한의 비핵화,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북한 핵폐기”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알고 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 주민들은 “핵이 체제 보위를 위한 최대의 수단이자 보검(寶劍)”이라는 일방적인 선전과 교육만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온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단둥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약 80km 거리에 있는 수풍발전소로 향하였다.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와는 달리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내내 펼쳐진 압록강변에는 연어와 잉어 등을 기르는 ‘가두리양식장’이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무수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마치 우리의 일부 지역에 꼼꼼하게 들어차 있는 태양판을 바라보는 것처럼, 수심이 웬만큼 깊은 곳에는 예외없이 설치되어 있는 중국측 지역의 양식장과는 달리 북측 지역은 거의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발전량의 20% 정도만을 북한에 송전(送電)해 주고 있는 태평만발전소를 거쳐 우리 일행이 도착한 수풍발전소는 예전과는 달리 입장료(5위안)를 받고 있었는데,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300위안을 주고 승선한 모터보트에서 바라본 북한측 지역은 중국과는 달리 댐이나 그 주변 환경이 거의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4~5곳의 매우 규모가 작은 가두리양식장에서 작업하는 인부들 외에는 한낮이었기 때문인지 왕래하는 주민의 모습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저 멀리 민가(民家)들이 형성되어 있는 산에는 흰 글씨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가 쓰여진 입간판이 눈에 띌 뿐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수풍댐을 뒤로하고 단둥시로 오는 도중 구련성도로 인근에 있는 화물열차 계류장에서 총검을 휴대한 채 서있는 초병을 발견하였다.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회장은 “저것은 북한쪽으로 보내는 감압(減壓)장치입니다”라고 설명해주었다.

“아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중국이 왜 북한에 원유를 보냅니까?”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이 회장은 “저것은 지름이 큰 파이프에서 작은 파이프로 연결되게 만든 장치로, 압록강 하저(河底)파이프를 이용하여 원유를 공급하는 것입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 2003년 압록강물이 범람할 당시 이 장치에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파이프 내 원유 찌꺼기가 막히지 않도록 조치하였다고 부연(敷衍)하면서 이 회장은 사진을 찍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이후 우리 일행은 5년 전부터 단둥시에서 개장하여 운영되고 있는 ‘호시(互市) 무역구’에 도착하였다. 원래 ‘호시’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조공(朝貢)무역의 일종으로 서로 옮겨 살며 장사를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무역은 별도의 관세(關稅) 부과 없이 소규모로 거래되는데, 보통 북한 주민의 경우 1회 인민폐로 8000원 정도가 허용되고 있으며 5% 정도의 수수료만 낸다고 한다. 단둥시내에서는 이곳 한 곳에서만 허용되는데,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한 임가공품이나 농수산물, 화장품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넓은 부지 위에 조성되어 있는 이 지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여파로 한동안 굳게 닫혀 있었으나,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진 후에는 3~4개 북한 상점이 개업하는 등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인공기(人共旗)가 게양된 북한 상점에 들어서자 배지를 단 북한 여성이 접근해 오면서 상품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대부분이 한약재와 수공예품, 고사리와 버섯 등 농산물로 이루어진 매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고가(高價)의 ‘개성인삼’과 ‘웅담(곰열)’ 같은 한약재였다.

이튿날 우리 일행은 단둥역에서 겨우 1시간여밖에 걸리지 않는 고속열차를 타고 선양(瀋陽)에 도착하여 ‘서탑’에서 일박을 한 후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번 여정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우리 민족이 왜 중국이라는 제3국을 통해, 그것도 ‘강 건너 등불’을 바라보는 식으로 북한을 접할 수밖에 없는지, 이런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이라는 남북한 간, 그리고 미국과 북한 간 정상이 합의한 문건이 현실적으로 그 빛을 발한다면, 이런 안타까운 마음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자위(自慰)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철저하게 전쟁에 대비하라”는 경구(警句)를 재음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냉혹한 분단현실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강석승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장
행정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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