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선 나눔과 소통 필요, 나이 들수록 즐겁게 놀아야”

김선웅 지리산 학교 대표, 지리산에 세운 ‘어른들의 놀이터’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8.10.18 10:1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김선웅 지리산 학교 대표/사진=가현정 제공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스물네 번째 주인공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위치한 지리산 학교의 김선웅 대표다. 장엄한 지리산의 정기가 깃든 하동군은 산과 물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유서 깊은 문화와 다양한 볼거리·먹을거리·놀거리는 해마다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또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화개장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섬진강 물줄기 너머 드넓은 평사리 들판을 품은 하동 악양면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와도 천천히 걷기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천 년을 이어온 야생차와 소설 <토지> 속 최참판댁이 자리한 이곳에선 시간마저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차 밭의 푸름과 대봉감의 주홍빛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농촌에 어른들의 놀이터를 세운 노래하는 베짱이 김선웅 대표를 소개한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지리산 학교 대표를 맡고 있지만 내가 대단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리산 학교에서 함께 활동하는 분들이 돌아가면서 2년 정도씩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이번에 내 차례가 된 것뿐입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낙원상가(악기상가)에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고 김광석을 비롯해서 유명한 뮤지션들이 단골 고객이 되어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서태지 이후 1990년대부터 댄스음악과 아이돌로 대중음악계가 채워지고 외환위기 이후엔 통기타, 일렉트릭기타 음악이 퇴조를 이루게 되면서 다른 길을 모색했습니다.”

-음악계의 지각 변동이 귀촌의 동기가 된 건가요
▶“처음에는 산을 좋아해서 매주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놀러 왔습니다. 악양에 와 본 뒤로는 악양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꼭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막상 서울살이를 접고 지리산으로 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흘렀어요. 아내가 먼저 귀촌을 해서 자리를 잡고, 나는 2000년대 초반에 귀촌했습니다. 그래도 서울 생활을 정리할 때는 과감하게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내와 처음 만난 장소도 지리산이었고, 나중에 결혼하면 지리산에서 살자고 약속했는데 한참이나 늦게 그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아내는 차를 좋아해서 작은 텃밭에 야생차도 재배하며 생활하는 지금의 일상을 무척 마음에 들어합니다. 서울에서 큰 회사에 다닐 때보다 지리산의 품에 안겨 생활하면서 모든 것이 더 좋아졌으니까요.”

-지리산 학교를 세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내가 귀촌할 당시에 문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지리산의 품으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모임과 소통의 결과물로 지리산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분들이 모두 남아 계시지는 않습니다. 떠나신 분들도 있고 새로 오신 분들도 있지만, 지리산 학교의 기본철학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서 재능기부를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9년이니 내년이면 지리산 학교 10주년이 됩니다. 10년 동안 매주 일요일이면 1시부터 3시까지 항상 기타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골 농촌에서 10년을 버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스스로를 칭찬하곤 합니다. 우리나라 농촌 현실을 비춰보면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10년 삶은 어땠나요
▶“지리산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했지만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많이들 떠났습니다. 농사를 열심히 지었는데 작황이 좋지 않으면 고스란히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그렇게 빚더미에 두어 번만 앉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농촌에서 소득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결국 도시로 돌아가고 맙니다. 재산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고서 말이죠. 기본 소득이 보장될 수 있다면 농촌의 현실은 훨씬 달라질 것입니다.
지리산 학교를 세운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즐겁게 살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대답하면 당황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뭔가 거창한 답변을 예상했나 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준 높은 생존의 기술입니다.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도 있지만, 잘 노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잘 노는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시점은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입니다. 열심히 일만 하던 성실한 개미보다는 노래하는 베짱이가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 살아갑니다. 잘 노는 사람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시골에 세운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라니 참 독특합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문화놀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과 끼가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하나씩 내놓아 즐겁고 흥이 넘치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를 세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만 열심히 하던 시대에서 벗어난 오늘날 우리 어른들도 제대로 놀아야 합니다. 그저 술이나 마시고 놀던 그 옛날 농촌의 어른들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리산 학교의 운영 방식이 궁금합니다
▶“지리산 학교는 열린 학교라는 개념으로 교사가 있는 곳을 교실로 쓰거나 공용 공간을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업하는 반의 개설은 학생들이 원하는 반을 신설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공급자인 교사 중심으로 강의 일정이 짜인 기존의 학교와 달리 철저히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입니다. 그리고 자본이 안 드는 학교, 나누는 학교, 함께하는 학교라는 처음의 정신을 잇기 위하여 교사도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학생들은 운영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교사와 학생이 역지사지 입장에서 서로 돕는 방식입니다. 교사와 학생 임원과 지역민이 운영위원회를 꾸려 학교에 관한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귀농이나 귀촌을 위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무엇인가요
▶“아내와 함께 텃밭 농사를 조금 짓고 있지만 귀농이라고 하기 보단 귀촌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농업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면 귀농에 해당한다고 하니 우리 부부는 확실히 귀촌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귀농과 귀촌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시골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은 같으니까요. 귀촌이라 하더라도 작은 텃밭에 찬거리로 낼 수 있는 푸성귀 정도는 심으면 좋습니다. 농촌에서 살아가면서 밭에서 뜯어온 신선한 채소를 맛볼 수 없다면 너무나 슬프지 않을까요? 차를 좋아하는 아내는 직접 차나무를 기르고 찻잎을 채취하는 것 자체에서 큰 기쁨을 얻는 것 같더라고요.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귀농이나 귀촌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기타연구소를 운영다고 들었습니다
▶“벚꽃 길로 유명한 곳, 화개면 쌍계로에 작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김선웅의 기타연구소라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놨지만 연구공간이라기 보다는 그저 음악이 있는 놀이터입니다. 화개초등학교와 쌍계초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와서 함께 기타를 배우고 공연 준비를 하는 연습실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학교가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로 활용되고 있지만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자체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이 됩니다. 시골이라 대중교통이 없어서 아이들의 연습이 있는 날이면 차량으로 직접 데려다 주느라 부모님들도 한 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고맙고 죄송한 마음에 제가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씩 대접해드리고 있습니다. 은은한 커피 향과 왁자지껄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10년 가까운 세월을 산골에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생을 사서 하는 편인거 같습니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그 말을 살짝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 편하게 쉰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활기차게 지내고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 갈고 닦은 자신만의 기술이 하나씩 있을 것이기에 그 재능을 하나씩 꺼내놓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조금은 뻔뻔하고 당당하면 됩니다. 내가 왕년에 이런 것도 잘했다고 말입니다. 거창하게 인생 2막이라는 표현도 필요 없습니다. 함께할 수 있으면 됩니다.”

-지리산 학교의 지속성 비결은 무엇인가요
▶“지리산 학교가 2009년 5월에 시작되었으니 내년 봄이면 10주년을 맞이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잘 유지해온 지리산 학교의 10번째 생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지금까지 오면서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중간에 떠난 사람도 참 많았습니다. 물론 떠난 만큼 좋은 사람들이 새롭게 와주어서 지금까지 지리산 학교를 유지해올 수 있었습니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 낮 12시부터 3시에 열리는 지리산 학교 마당장이 소통의 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수업중인 지리산 학교/사진=가현정 제공
-농촌에서 살아가기 위한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개인으로서 농촌에서 살아가는 힘은 기본 소득과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만 공동체가 지속하려면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소통과 나눔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치 물이 흐르듯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공동체를 관통해야 하는 것이 소통과 나눔입니다.
지리산 학교는 소수의 유능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으로 이루어지고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사와 학생은 물론 지역민들이 함께해서 일궈낸 공동체입니다. 바로 우리가 해낸 것입니다.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지리산 학교는 웃음과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10년을 맞이하는 지리산 학교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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