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화에는 북한 문화와 삶 있다”

문범강 교수, "조선화는 인물의 미묘하고 다양한 묘사에서 인간 존엄성 엿보여"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8.10.05 09:3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김인석, <소나기>, 2018, 조선화, 217x433cm

‘조선화’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동양화를 의미한다. 북한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다. 초기엔 한때 소련의 영향을 받아 미술 교육의 틀이 잡혔고, 이후 북한의 미술은 나름대로의 특징으로 독특한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체제 선전성이 가미된 ‘주제화’는 물론, 풍경을 묘사하는 ‘산수화’, ‘동물화’에 이르기까지 조선화는 강한 명암과 날카로운 선묘를 통해 리얼리티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난 뒤에도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국가는 오직 북한 뿐이다. 그 중 조선화는 괄목할 독자적 양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중국, 한국, 일본의 동양화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북한 고유의 표현’으로 특화를 보이고 있다.

8년 동안 북한미술을 연구하고 강연해 온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학 미술과 교수는 2018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미술전을 기획했다. 문 교수는 “이번 북한미술전은 조선화로만 이뤄진 북한미술의 핵심, 북한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획전”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선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표정 묘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면모까지 볼 수 있다”며 “더 많은 국민들이 북한미술에 관심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중인 2018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미술: 사실주의 패러독스’ 주제전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기획 동기는 무엇이었나
▶미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다 8년 전 처음 북한미술을 접했고, 특히 조선화에 매력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하면서 북한미술을 알리고 싶어 미국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작품을 슬라이드로만 보여주니 한계가 있었다. 그림은 붓터치라든지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데 강연으로는 그런 느낌을 사람들이 경험하기 어려웠다. 2016년 미국 워싱턴 아메리칸대학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현대북한미술전’을 기획하게 됐다.
그 후 한국에서도 강연을 했고, 작년 7월 서울 아트선재에서 강연했을 때였다. 당시 아트선재 디렉터인 김선정 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강연 며칠 뒤에 전화를 걸어왔다.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미술전을 기획해보지 않겠느냐고. 이번 북한미술전은 그렇게 기획하게 됐다

-미술전이 열린 지 일주일 정도 됐다.(인터뷰일 9월 13일 기준) 현재 반응은 어떤가
▶북한미술전은 9월7일부터 11월11일까지 총 66일간 진행된다. 참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북한미술전을 보기 위해 광주비엔날레를 찾아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은 난해성 때문에 일반 관람객이 작품 이해에 부담감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미술’을 전시한다고 하니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다.

최창호, <금강산>, 2010, 조선화, 212x402cm
-북한미술전은 정치적인 이슈와도 맞물려 있는데 기획에 어려움은 없었나
▶기획 과정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주된 이슈는 전시하는 북한 미술작품의 출처였다. 현재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 ‘만수대 창작사’는 유엔제재 대상으로 지명되어 있어 직접 그림을 받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전 22점의 작품은 평양 만수대창작사 창작작품이지만 15점은 북경의 개인 소장품이며, 3점은 이미 국내에 소장되어 있던 작품, 그리고 나머지 소품 4점은 워싱턴 예도재단(Yedo Arts Foundation) 소장품이다.
정부 쪽에서는 정치적인 이슈로, 소장한 개인에 대한 자료 요구를 많이 했다. 그리고 북경의 개인 소장가와 그가 운영하는 미술관이 UN제재에 포함이 되는지 등을 계속 의심했다. 또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언론에 내보내는 것도 엠바고에 묶여 힘들었고, 전시를 앞두고 기자회견 또한 안 된다고 막았다. 이런 국제미술전을 준비하기 위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많은 예산을 쓰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전시를 마련했는데 홍보를 잘 하지 못한 결과는 다소 안타까웠다.

-북한미술은 일반 국민들에게 생소한 분야다. 북한미술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면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개최됐던 많은 북한미술전과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우선 이 전시는 조선화로만 이뤄져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를 북한이 독특하게 발전시킨 그림을 조선화라고 부른다. 조선화로만 이뤄진 북한미술의 핵심, 북한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그 동안 북한미술은 천편일률적이고 다양성이 없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조선화 중 네 가지 장르를 소개함으로써 이제껏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조선화를 선보이는 기회가 되고 있다. 먼저 북한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인 ‘주제화’를 전격 공개한다. 그리고 주제화 속에서 여러 사람이 한 작품을 완성한 ‘집체화’도 있다. 524cm 폭을 가진 작품을 포함해 총 6점의 집체화가 전시된다. 다음으로, 북한이 개성적으로 발전시킨 산수화가 있다. 같은 금강산을 그렸어도 두 작가가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전통적으로 맥이 끊겼다고 여겨온 문인화도 이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동물화로 호랑이 그림 한 점이 전시에 포함돼 있는데, 범상치 않은 묘사력과 함께 시적인 느낌이 어우러지는 미술적 풍치를 느낄 수 있다.

윤건, 왕광국, 남성일, 정별, 김현욱, 백일광, 림주성, <청년돌격대>, 2016, 조선화, 212x524cm

-북한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북한미술을 접해보기 전까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10년 워싱턴에서 한 컬렉터가 가지고 있는 북한 조선화 한 점을 보게된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 그 조선화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면서 몸이 거의 물러서다시피 됐다. 그 그림은 젊은 날 항일투쟁을 하던 김일성과 부대원들, 그리고 부상당한 여인이 눈밭에서 진군하다 멈춰선 모습을 담고 있었다. 우선, 북한 그림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워싱턴이었지만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서 내재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이 걷히고 나니 대단한 그림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동양화로 이런 필력과 시적인 표현이 가능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북한 그림에 처음 매력을 느꼈고, 2011년 9월에 최초로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차 북한미술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올해 초부터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교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여러가지 교류 중에서도 문화예술교류가 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하여 현재 진행 중인 광주비엔날레의 북한미술전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교류가 모든 국민의 관심사다. 지금까지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아시안게임 카누, 농구, 조정 단일팀을 구성해 스포츠 교류를 했고, 남측 예술단이 평양에 공연을 가기도 했다. 물론 그런 스포츠, 음악 문화 교류도 중요하지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을 통한 외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술작품은 먼저 눈으로 느끼고, 거기에 대해 비판을 하던 감흥을 받던 한참동안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스포츠와 달리 미술 교류는 그림을 통해 사회 단면을 볼 수 있다.
조선화에는 군중화가 많다. 인물묘사에서 굉장히 입체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림 안에 많은 사람의 표정에 미묘하고도 다양한 뉘앙스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고된 노동현장이나 전쟁상황을 나타낸 그림임에도 웃는 얼굴이 많다. 이것을 체제선전의 일환이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선화는 인물 표정을 통해 인간이 모든 만물 중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기에 존엄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유교가 있다. 유교 발상지가 중국이지만 한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원초적 유교가 북한에는 아직 남아있다. 예의범절, 어른에 대한 존중,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다. 북한 사람들은 그걸 사회주의 교양이라고 한다. 이렇게 미술을 통해 그 사회의 의식·문화를 배울 수 있다.

김남훈, 강유성, 강윤혁, <자력갱생>, 2017, 조선화, 201x403cm
-북한미술가들은 어떻게 활동하는지 궁금하다. 북한이라는 특성상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밖에 없지 않나
▶그 문제가 항상 첨예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없는 사회의 예술이 과연 진짜 예술인가?’ 하면서 비판한다. 내가 연구하고 오랜시간 생각해서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결국 우리의 교육과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사회현상을 북한과 비교해서 그 쪽 미술은 미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는 사회’ 속의 우리 시각을 대입하는 것은 상당한 편견이 될 수 있다.
북한 미술가들도 현대 미술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과 복잡한 미술 양상이 북한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들은 단지 ‘그것은 우리 사회와 맞지 않다’고 한다. 인민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 그림, 사람들이 이해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런 목적을 가진 예술가들한테 ‘표현이 너무 제한적이다’고 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물론 주제가 제한적이고 혁명, 전투, 인민의 생활, 노동의 미화 등을 많이 표현하는 체제 선전성이 짙은 그림을 그린다. 이런 내용의 작품을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한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 특히 조선화의 표현력에서 우리가 배울만한 요소도 상당하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화 외에 정물화, 산수화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도 많이 창작하고 있다.

-현재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미국으로 가게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릴때부터 어디에 얽매이고 속하는걸 싫어했다. 그래서 대학도 자유로워 보이는 신문방송학과를 갔다. 졸업하고 취직해도 기자, PD 는 다른 직업에 비해 좀 자유로운 직종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보니 사회학, 문문 등 학문적인 부분도 많고, 실제로 방송국에 견학도 가보니 나랑 잘 맞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할때가 되서 취직, 사회생활에 대해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자유롭게 뭔가 해보자 생각하고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어서 미국으로 가서 미술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미대 입시 같은 것이 없다. 내가 아마추어로서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고 입학하게 됐다.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미대에 들어가 지냈던 20대 후반까지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것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발이 아플 정도로 서서 그림을 그리는게 너무 좋았고, 공부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 몇 차례 개인전을 했고, 작품세계가 독특하고 다소 ‘엽기적’, ‘난해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껏 해온 작품들의 생각의 뿌리는 내 안에 내재된 메모리칩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오늘날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나는 그림도 그리고, 커피도 마시는 등 여러 행위와 활동을 한다. 이런 생활이 현재 생에서만 있었던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은 생명이 다하면 죽는다. 그런데 죽음으로써 기억과 에너지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메모리칩에 남아 다음에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체에 전이 혹은 삽입이 되서 이어진다고 본다. 이전 삶은 기억 못하지만 무의식 중이나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본능에서 메모리가 발현된다고 본다. 내 작품들은 이 메모리칩에서 나오는 묻혀 있던 상상력, 무의식 세계가 표현된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을 그림이라는 시각적인 것으로 표현하면 엽기도 될 수 있고, 섬뜩함도 있을 수 있고, 부조리도 될 수 있는것 같다.

-미술작가, 대학교수, 큐레이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타이틀로 대중에게 각인됐으면 하는가
▶타이틀은 뗐다 붙였다 하는 레이블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봐도 신방과에 갔다가 갑자기 미술을 하고, 화가가 됐다가 교수가 됐다. 책을 저술하면서는 작가도 됐고 지금은 또 이렇게 국제미술 큐레이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미술 전문가라고도 불린다. 나는 뭐다, 이렇다, 하고 고정시켜 버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생명이 붙어있는한 타이틀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어떻게 기억되고자 하는 건 없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것이 중요하고, 그 순간에 내가 몰두하고 있는 일로 사람들이 나를 알면 좋겠다.

-앞으로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준비하고 있는 기획전이나 개인 작품전이 있나

▶그것도 아직 정해놓지 않았다. 내가 역량이 되는한 들어오는대로 일을 하고자 한다. 지금은 공익을 위해 일종의 예술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느끼고, 비판도 담론도 하게끔 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내 저서 중에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라는 책의 영문판을 내는 작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거기에 맞춰 활동을 하고, 또 미국에 돌아가서 학기가 시작되면 선생으로서도 활동하고, 집에가서는 남편, 아빠 역할을 자연스럽게 할 것이다.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학 미술과 교수
1954년 대구 출생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학 학사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아트 인 아메리카, 뉴욕타임스, CNN 등에서 조명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2018)> 집필
2018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전시 기획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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