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인은 세계적인 흐름, 올드보이 대세는 정상 아니야”

“젊은 정치인 많아지려면 기탁금•진입장벽 낮춰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8.09.04 09:0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1),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38),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43),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39),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47),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46),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32). 나라 정상에 앉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청년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나 쿠르츠 총리는 ‘최연소’ 타이로 그 나라의 ‘젊은 정치’를 이끈다.

‘젊은 정치인’이 정당의 대표가 되거나 국가 수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EU 28개국 정상들의 평균 나이가 10년 사이 55세에서 50세로 낮아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여당 대표로 취임한 이해찬 대표는 만 66세로 7선이다. 2007년 대선후보였던 4선의 정동영 의원(65)은 민주평화당 대표다. 바른미래당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대표는 만 나이로 70세다. 국회의원의 전체적인 나이도 올랐다.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56.5세다. 20대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고 30대는 현재 두 명뿐이다.

▲(왼쪽부터)이성윤 전 우리미래 공동대표, 김종현 퇴근길 책한잔 대표,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여선웅 전 강남구의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위원장 / 사진=더리더, 머니투데이
◇“선거비용•일자리•인맥, 정치권 진입 막아”


<더리더>에서는 6개월 동안 청년 정치인들을 만나는 코너, ‘청년 정치인 발언대’를 진행했다. 이성윤 전 우리미래 공동대표는 “2017년 1월 기준, 전체 인구 중 2030세대가 35.8%를 차지한다”며 “국회는 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하는 곳이다. 2030 국회의원 비율이 최소한 30%는 채워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직접 정치권에 참여하는 2030 세대의 수는 적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젊은 세대가 정치권에 참여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정치 입문을 꺼리는 이유로는 첫 번째로 비용을 꼽았다.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기탁금은 시•도지사와 교육감 5000만 원, 구•시•군 의장 1000만 원, 시•도 의원 300만 원, 구•시•군 의원 200만 원, 국회의원 재선거 1500만 원 등이다. 거대 양당의 경우 15% 이상을 득표할 가능성이 높아 기탁금과 선거비용을 보전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신의 돈으로 충당해야 한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청년들이 선거를 치르려면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한다”면서 “청년에게 광역단체장 기탁금인 5000만 원은 몇 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대정당은 선거 비용을 보전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군소 정당이나 개인들은 득표율 15%를 넘기지 못해 보전받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이 전 우리미래 공동대표도 “최저임금이 7530원이다. 아르바이트 할 때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다”면서 “구의원 기탁금은 200만 원인데 나처럼 평범한 청년이 아르바이트로 200만 원을 마련하기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전 대표는 “출마하면 기탁금만 드는 게 아니다. 구의원 평균 선거운동 비용이 3000만 원에서 4000만 원”이라며 “청년에게 이런 돈이 어디 있나. 그래서 출마를 기피하는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장은 기탁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탁금이라는 제도를 처음 만들 때 당시 정치인들이 진입 장벽을 높게 하기 위해 올린 것 같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기탁금을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진입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정치권에 청년들이 일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 유급 일자리도 많지 않다”라며 정치권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이에 대한 편견으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선웅 전 강남구의원은 나이가 어린 게 발목을 잡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본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나이 지긋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라며 “전문적인 식견이 쌓이고 나서 정치를 하는 분들과 청년이 경쟁하면 사실 불리한 점이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청년정치 'up'데이트 아카데미/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젠더이슈•성소수자•환경문제’ 新 의제 산적, 고령 의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청년 정치인의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 여 전 구의원은 “젊은 정치인들은 어떤 기득권에 속해 있지 않다. 활동을 오래하지 않아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소신껏 일할 수 있다.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동영 대표는 지금 올드보이의 예시가 되고 있지만 한때 민주당의 세대교체를 주도했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중 한 명이었다. 정 대표는 DJ정부 시절 청와대 만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당이 대통령 특정 측근 중심의 비선으로 움직인다”며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주장한 바 있다. 권 최고위원은 당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보수정당의 대표 소장파인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은 2004년 당시 총선을 앞두고 당이 위기에 빠지자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 전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남경필 전 지사의 경우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정계 은퇴를 주장했다. 여 전 구의원은 “정치는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이라며 “이해관계에 얽혀있지 않은 젊은 정치인들은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 새로운 의제에 대해 유연하게 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 위원장은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싶었다”라며 “성차별이나 환경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육아문제 등 새로운 이슈가 나오는데 기존의 정치인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이런 불안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생 자체가 불안하다고 느낀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정치가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사회현상이 나오는 것에 대해 기존 정치인들은 맥을 못 짚는다는 의미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정치권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청년들이 더 잘 안다는 의미다. 신 위원장은 앞으로 제시할 의제에 대해 안락사 등을 거론했다.

◇세상을 바꾸는 2030 ’투표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전반에 걸친 ‘보수적인 문화’가 균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미투운동, 페미니즘 열풍이 단순한 여권신장 운동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오래된 권력관계와 관용 없는 보수적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이는 20대가 주도한다. 이 문화운동은 한국에서 이미 20대 여성들의 절대 다수가 적극 공감하는 주류적 가치로 자리 잡았고 SNS와 커뮤니티는 이 흐름을 견인하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안 교수는 ‘청년 자유주의 문화 네트워크’로 이름 붙였다.

또 20대의 투표율 증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19세 투표율은 77.7%를, 20대는 76.1%를 기록했다. 30대는 74.2%, 40대는 74.9%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투표율이 더 높다. 50대 이상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 17대 대선, 19세와 20대가 각각 54.2%, 46.6%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약 30%p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지난 18대 대선 당시 19세는 74.0%를, 20대는 68.5%를 보인 바 있다.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촛불시위부터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동네 정치부터 바꾸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구의원 프로젝트’ 소속 김종현 퇴근길 책한잔 대표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지난 촛불시위 때부터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제까지는 ‘투표로 세상이 과연 바뀔까, 정치가 바뀔 수 있을까’라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위에 참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니 진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넘어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자 구의원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바른정당 청년정치학교 헤드헌터단/사진=뉴시스
◇50년 전보다 퇴보한 정치?…‘기수론’ 어디에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정치인이 주름잡던 시대가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때 내건 슬로건은 ‘40대 기수론’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40대의 젊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제까지 야당 대선주자들은 나이가 많아 교체를 할 수 없다고 비판, ‘젊은 신민당’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대선에 출마했다. 이 논리에 가세해 당시 45세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48세였던 이철승 전 의원이 대선에 뛰어들었다. 신민당의 주류였던 유진산 전 총재는 이들을 ‘입에서 아직 젖 비린내가 난다’는 의미인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비유하며 견제했지만, 40대 기수론은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젊은 세대교체’를 부르며 40대에 대선주자급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YS와 DJ는 한국 정치사의 산 증인이다. 이들은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했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었다. ‘젊은 동력’은 역사를 바꿀 수도, 만들 수도 있는 힘이라는 의미다.

기수론은 사실상 우리 정치사에서 사라졌다. 청년 정치인은 정치권에 커다란 진입 장벽을 느껴 참여하려는 인재들도 사라지고 있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당 대표들이 ‘올드보이’로 불리는 것은 정당정치 자체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고여 있다는 현주소”라며 “정당정치가 활성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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