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묵 충주계명산농원 대표, “믿고 찾아주는 분들 덕분에 무농약 불가능 도전”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8.08.31 17:1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임건묵 충주계명산농원 대표/사진=더리더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스물한 번째 주인공은 사과의 다정한 연인 임건묵 충주계명산농원 대표다. 사과 하면 충주로 알려져 있어 그야말로 사과의 고장인 충주로 달려가는 내내 사과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을 떠올렸다. 사과가 익어가는 시기에 해야 할 작업이 많아서 농번기 중의 농번기임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임 대표께 감사하는 마음에 가는 길이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는 지역은 일교차가 매우 커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힘든 환경이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때에 맞춰 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단순히 사과를 농사짓는 농부가 아니라 사과의 다정한 연인처럼 보였다.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산골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위해 아플 틈도 없이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나를 인터뷰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사과를 사주는 좋은 인연으로 알게 된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에 있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되고 힘든 분야에서 오히려 두각을 나타낸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맛 좋고 몸에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일이 무척 힘들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적성에 딱 맞는 분야입니다. 무농약 사과를 농사짓는 분들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지만, 오늘 이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인터뷰에 응한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노래하고 기타를 치며사과 농사를 짓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힘들이지 않고 즐겁고 신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군 복무를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에서 했는데, 군 복무 시절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아름다운 기타의 선율과 노래야말로 어렵고 힘든 일도 즐겁게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음을 알게 된 때였습니다. 무엇보다 사과도 살아있는 생명체인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맛있는 사과를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식물에게 욕설을 들려준 경우와 아름다운 음악이나 칭찬을 들려준 경우를 대조하여 실험한 사례도 떠올랐고요. 거창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사과나무들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농한기는 언제인가요
▶“벼농사와 달리 과수농사는 농한기가 없습니다. 과수농사를 모르는 분들은 사과를 다 수확한 후에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줄 압니다만 겨울 내내 추위에 아랑곳없이 매일 과수원에 출근해야 합니다. 한겨울에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과나무에 공급해야 할 다양한 친환경 약제를 직접 만들어 쓰기 때문에 다른 과수 농부들보다 훨씬 바쁩니다. 나무가 겨울잠을 자는 때에 가지치기를 해야 나무도 아프지 않아 좋습니다. 매년 2월까지는 가지치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듯 추운 날씨에 혹독한 환경에서 업무를 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노래를 들려주고, 한겨울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음 따뜻해지는 노래를 사과나무에게 들려줍니다. 사과나무를 내가 일처리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연인, 매일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면 훨씬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사과나무와 함께합니다.

-직거래 구입 하는 분들이 많은가요
▶“제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한다 한들 구매해주는 분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매년 사과를 수확하기 한 달 전에 예약판매가 종료될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친환경 유기농 전문 매장에도 납품하지만 사전 예약으로 직거래로 구입해주는 분들이야말로 가장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공동 생산자로 생각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신뢰를 가지고 직접 구매해주는 분들은 나와 함께 농사를 짓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근로자와 농부 간의 만남이 그저 소비자와 생산자의 만남으로만 남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살아가는 곳과 일하는 곳이 다를 뿐 노동의 순수한 본질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편리하게 구매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를 믿고 농사에 도움이 되라고 예약 구매를 해주는 분들의 정성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무농약이 어려운 사과 농사에 도전장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유기재배 무농약 사과 농사가 가능하냐며 놀라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때론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죠. 철저한 인증심사를 거쳐 받은 사과의 품질을 놓고도 의심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척 안타깝습니다. 무농약 사과 농사가 어렵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농사짓는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는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농업은 먹는 것을 생산하는 것이고 생명과 직결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비자와 생산자 농부가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생명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어렵다고 하면 할수록 도전정신이 싹트는 것은 태생인 건지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움을 뚫고 문제를 해결할 때 느끼는 성취감을 맛본 후 계속해서 도전하는 길을 걷게 된 것 같습니다.”

-유기재배 무농약 사과 농사의 비결은 무었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과일 농사는 무농약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사과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요. 여기에 어려움의 원인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전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지고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농사는 과학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농사는 과학을 기초로 하여 철학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통해 농사의 어려움과 불가능함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과연 농사란 무엇이며 왜 농사를 짓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가 없으면 그저 수익이 나는 농사, 비용대비 생산성과 경제성만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농업은 달라야 합니다. 반드시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유기재배란 무엇인지 종류별로 설명해주세요
▶“화학비료, 유기합성 농약, 생장조정제, 제초제, 가축사료 첨가제 등 일체의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고 유기물과 자연광석, 미생물 등 자연적인 자재만을 사용하는 농업이라고 정의합니다.
나도 우리 농장 주변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천연약초를 활용합니다. 퇴비와 외양간 두엄 등 유기물을 주비료로 사용하며, 토양의 활력이 회복되면 작물 자체에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이 자연적으로 생기게 된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는 농업입니다.
유기농법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영국의 농학자인 앨버트 하워드는 야생 또는 길들여진 동식물의 사육을 통하여 도시의 쓰레기를 토양의 영양물질로 다시 사용하는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6년 ‘한살림농산’이 개설됐고, 1988년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이 창립되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유기농업은 그 내용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1) 생명과학 기술형 유기농업: 합성화학물질인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가축사료 첨가제 등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동식물성 유기물을 토양에 환원시킴으로써 지력의 유지·증진 및 회복을 도모하는 농법
2) 환경친화적 유기농법 : 자연생태계 물질순환체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며 인간과 자연 속의 생물이 공생·공존하도록 하는 자연농법
3) 자연농업 : 무경운, 무비료, 무제초, 무농약 등 4대 원칙에 입각한 유기농업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생태계를 보전, 발전시키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방법
4) 경제형 유기농법: 유기농법을 사용하여 농업생산력을 계속 발전시켜 먹을거리 생산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농가경제의 안정과 수익을 보장하는 농법
5) 철학형 유기농법: 도시인의 소비활동과 거기서 소비되는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업인, 즉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튼튼하게 하는 풍요로운 복지사회를 만드는 농법

-사과즙을 내기에 좋은 사과는 어떤 제품인가요
▶“바쁜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기 힘들기 때문에 천연과즙이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장에서도 사과즙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과즙은 사과의 영양이 농축돼 있고 맛도 좋아서 인기가 많습니다. 다만 사과즙을 낼 때 사과 껍질이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사과즙이야말로 무농약 재배한 사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칫하면 안 좋은 성분이 농축되어 체내에 쌓이면 독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을 생각하며 농사짓기의 팁을 알려주세요
▶“약도 먹는 것(식물)도 그 근원은 하나라는 약식동원을 늘 생각하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건강의 유지, 증진에 우수한 효능, 효과를 가진 것으로 평소 먹는 음식을 고려했던 말입니다.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는 일이야말로 사과를 사먹는 분들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농사는 과학과 철학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친환경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함께 농사짓기의 개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농촌에서 농사를 열심히 지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도 소비가 되지 않고, 적절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몸에 좋은 농산물을 찾으면서도 막상 정당한 가격을 치르는 것에 인색한 분들이 있습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는 것은 나쁜 물건을 비싸게 파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사고파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애쓴 만큼 그 수고를 보상받으려면 소비자의 마음이 아니라 함께 농사짓는다는 마음으로 우리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해주셨으면 합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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