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록 상록수농원 대표, 상록의 마음으로 농사짓는 무릉도원의 농부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8.08.23 17:2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이상록 상록수농원 대표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스물두 번째 주인공은 상록수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조경수 농원을 운영하는 이상록 대표다.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 위치한 상록수농원을 찾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붉은 배롱꽃 잔치가 펼쳐진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우람한 고목이 가득한 푸른 숲길이 나온다. 사평리는 옛말로 모릿들 또는 모래들이라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사평(沙坪)이 되었다고 한다. 사평리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의 산열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들이 펼쳐져 있고 외남천이 사평리의 중앙부를 따라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취재를 온 것이 아니라 피서를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푸른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사평의 비옥한 땅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 대표를 인터뷰하는 내내 무릉도원에 온 듯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자신의 귀농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큰 키와 건장한 체격과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이 대표의 표정에서 분홍빛 복숭아의 미소가 번졌다. 

-소개 부탁드려요
▶“이곳 사평에서 태어나 성장하게 된 것이야말로 제 인생에 있어 최고 행운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 진학과 직장생활을 위해 사평을 떠난 세월도 어찌 보면 사평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 둘과 딸 하나, 삼남매를 둔 가장이 되어 돌아온 저에게 어린 시절부터 뛰어놀던 들녘은 여전히 넓은 품으로 받아 주었습니다. 오늘날 귀농이라면 특별한 일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아야 하고 돈도 많이 드는 것을 귀농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고향인 사평으로 돌아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종갓집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을 느끼며 성장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을 잘 일구기 위해서는 공부도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때론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러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기에 오히려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성실함과 책임감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신감과 성실함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수화물차량을 구입하여 운송업을 시작해 돈을 꽤 많이 벌었는데,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 둔 특장차를 도난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CCTV가 설치된 시절도 아니라 황망하게 큰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럼 그때 바로 고향으로 귀농한 건가요
▶“아닙니다. 그때 큰 좌절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가족, 특히 아내의 위로와 용기 덕분에 다시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응원으로 사업도 잘 되었고, 도시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향 사평은 참 좋은 곳이지만, 학창시절 충분한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한 개인적인 아쉬움도 영향을 끼쳤겠지요. 무엇보다 고향으로 가면 아내를 고생시키는 일이 될 것 같아 도시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농원 운영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어머님도 연로하시고 아무래도 장손인 제가 도시생활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 조심스레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고향 사평으로 귀농하고자 할 때 오히려 아내가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아내의 마음을 판단했던 것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성공을 할 때나 실패를 할 때나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아내 덕분에 제 이름 ‘상록(常綠)’처럼 늘 푸른 청년의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늘 바쁜 아내가 틈나는 대로 농원으로 달려와 도와주는 덕분에 혼자서 이 넓은 농원을 잘 운영해갈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몇이신가요
▶“사실 감사하게도 늦둥이가 있어서 막내는 아직 초등학생입니다. 첫째는 군 제대 후 복학한 대학생이고, 둘째도 대학 2년생인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막내입니다. 저 어릴 적만 생각하고, 그저 막연히 교육을 위해선 도시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시골 생활을 가장 많이 경험한 막내가 공부를 제일 잘합니다. 내친 김에 막내 자랑을 좀 더 하자면 아내와 저의 가장 좋은 점만 골라서 닮은 것 같습니다. 요즘 자녀를 낳지 않는 세대가 되어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제 경험상으로도 자녀는 셋 이상 낳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 경제적 여건과 교육 여건 등 여러 측면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어서 개인에게만 부담을 줄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농원의 이름을 상록수라고 짓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하, 사실 제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만 상록수처럼 한결같이 푸른 청년의 마음으로 농사짓는 농원이라는 의미로 시작했습니다. 사평에 오면서 보셨겠지만, 우리 지역은 상록수가 참 잘 되는 물 좋고 땅 좋은 곳입니다. 산과 들 어디 하나 비옥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논을 개간하여 복숭아 과수원으로 만들고, 산에는 다양한 조경수를 심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상록수 농원에서 재배하고 있는 복숭아

-상록수농원의 대표 작목인 복숭아 외에도 다양한 조경수가 있네요
▶“과거에는 논을 많이 갖고 벼농사만 잘 돼도 부자였는데, 오늘날의 농업에서는 벼농사야말로 소득이 가장 적은 인기가 없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농사짓던 논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농지정리가 잘 된 논이라서 아까운 생각도 있었지만 과감히 복숭아 과수원으로 개간했습니다. 복숭아는 맛도 좋고 모양도 예쁘고, 아내와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과일이라서 대표 작목으로 결정했습니다. 밤나무가 가득했던 산도 제가 귀농한 뒤로 다양한 조경수를 심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조경수로 가장 인기가 좋은 배롱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등을 판매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작목 변경을 할 때는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나요
▶“산에서 밤을 수확하고, 논에서 쌀을 얻는 생산 구조는 현대인들의 식생활 패턴을 고려해볼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업기술은 날로 발전해서 적은 규모의 토지에서도 생산량은 급증하는데 그만큼 소비가 뒤따라주지 못하는 작목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제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오랜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경영마인드가 농사에도 적용되나 봅니다. 그 옛날처럼 그저 열심히 농사만 잘 지어서는 결코 가정경제를 꾸려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작목을 결정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일단 작목이 정해지면, 과감하게 해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작목을 선정할 때의 중정사항을 말한다면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은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그저 돈이 된다는 작목만을 쫓아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전문가의 조언이라 할지라도 최종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으며, 그에 따른 책임도 오롯이 자신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처럼 귀농할 농지가 이미 있다면 자신이 농사지을 농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부분입니다. 신규로 창업농을 하는 분들은 작목을 결정하고 농지를 구입하거나, 맘에 드는 농지가 있어 구입을 먼저 했다면 저처럼 농지 분석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농지분석의 중요성과 더불어 비용 또한 고려해야 할 점은
▶“농지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비용절감 차원이기도 합니다. 경영의 기본은 투입 대비 산출입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으려면 리스크 관리, 즉 위험관리가 중요합니다. 비용을 많이 들여 개간하는 대신, 개간하는 비용이 적게 드는 작목을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농사를 지어 대박이 났다는 광고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최소 비용을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셔야 합니다. 제가 산을 전체적으로 개간하지 않고 비용을 최소화하여 조경수 농원으로 조성하고, 물이 많은 논은 밭으로 개간하는 대신 과수원으로 조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귀농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농업에 종사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소식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농업의 미래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기에, 젊은 세대들의 적극 참여를 저 또한 권장합니다. 정부에서도 각종 지원책으로 청년들의 창농이나 귀농을 장려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자신감이야말로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핵심 자원이 될 것이기에 무척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자신감은 살리되 초기 비용을 줄여서 위험을 최소화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농사를 짓는 것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경영 리스크를 관리해야 합니다.”

-귀농 관련 정부정책에 대해 의견을 주신다면요
▶“조경수 농원을 운영하며 복숭아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부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라 하시니 부끄럽습니다만,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귀농에 관련하여 다양한 정부의 정책이 펼쳐지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창업농과 승계농의 차별이 눈에 띕니다. 미래에는 농업이 정말 중요한 시대가 되겠지만, 아직까지 농업과 농촌의 현실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주요 원인은 여전히 농사는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편견이 작동해서입니다. 그 편견을 깨고 귀농을 하려 해도 실질적인 지원책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승계농은 농지와 기반을 갖고 출발하니 창업농 중심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그야말로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표본입니다. 승계농업인은 기반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부채를 물려받기 때문에 창업농에 비해 출발선을 뒤쪽에 둔 것과 같습니다. 대한민국 농가들의 평균 부채 규모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더 심한 경우, 기반조차 물려받지 못하고 부모의 채무만 받고 시작하는 승계농업인들도 허다합니다. 창농이냐, 승계농이냐를 따지지 말고 농업과 농촌을 살린다는 일관적인 목표 아래 실질적이고 형평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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